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국학이야기

누정 소개

누정 개괄

밀양 영남루(嶺南樓)

밀양 영남루(嶺南樓)

누정(樓亭)은 멀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탁 트인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누정조(樓亭條)를 보면,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보통 언덕이나 높이 쌓아 올린 대 위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 한다. 누각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백제 망해루(望海樓)에 대한 기록과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의 명학루(鳴鶴樓), 월상루(月上樓) 등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부터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자는 주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정각(亭閣) 또는 정사(亭榭)라고도 한다. 정자에 대해서도 『삼국유사』에 신라 소지왕(炤知王)이 488년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누정은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자, 학문을 연마하면서 정신을 수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따라서 주거 공간 이외에 산수 좋은 곳에서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사방이 트인 높은 곳에 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임금과 신하의 휴식처인 공적 공간으로서 궁궐이나 관청에 누각을 짓기 시작하였고, 점차 사대부 남성들의 풍류와 강학의 장소로 사적 공간인 정자가 건립되었다.

누정의 명칭과 유래

누정의 명칭은 그 누정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으며, 그 명칭이 생겨난 유래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누정 주변의 산이나 바위, 강이나 바다와 같은 산수와 관련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 바위 위에 세워진 남원의 용두정(龍頭亭), 경포호에 있는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등이 있다. 둘째, 달, 구름, 비와 같은 자연 현상이나 동식물과 관련된 이름이다. 달을 맞이한다는 뜻의 여주의 영월루(迎月樓), 연꽃을 뜻하는 창경궁 부용정(芙蓉亭) 등이 있다. 셋째, 사람의 이름이나 호, 혹은 모임에서 따온 이름이다. 건립한 사람의 호를 딴 담양의 면앙정(俛仰亭)과 송강정(松江亭)이 있고.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의 모임 이름을 딴 강릉의 금란정(金蘭亭)이 있다. 넷째, 시문·경전의 구절이나 고사 등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소옹(邵雍)의 시 "음아부족수호가(吟哦不足遂浩歌)"에서 따온 광주(光州)의 호가정(浩歌亭), 인조반정 때의 고사에서 유래한 종로의 세검정(洗劍亭)이 있다.

남원 용두정(龍頭亭)

남원 용두정(龍頭亭)

누정의 위치와 기능

담양 면앙정(俛仰亭)

담양 면앙정(俛仰亭)

누정이 자리하고 있는 지리적 특징을 살펴보면, 배산임수(背山臨水) 즉, 산을 등지고 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누정은 경치 좋은 산이나 언덕 위에 위치하여 산 앞에 펼쳐진 경관을 조망할 수 있게 하고, 산속의 계곡이나 호수에 인접해서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언덕 위에서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곳에 있기도 하고, 궁궐이나 집터의 원림(園林)에 세워진 누정들도 있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국의 누정 수를 885개소로 기록하고 있는데, 지역적으로 보면, 경상도가 가장 많고 다음이 전라도이다. 시기적으로는 16세기에 들어서 새로운 누정 건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특징은 16세기 사림(士林) 정치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의 사림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신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서원의 건립과 함께 누정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생긴 것이다.

누정은 세워진 위치나 건립 목적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유흥과 휴식의 공간이다. 산수의 경관이 좋은 곳에 누정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휴식과 함께 시를 즐기는 선비들이 모여 유흥의 흥취를 시로 나누는 시회(詩會)의 장소가 된다. 아울러, 누정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사대부들이 자신의 학문을 수양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하며, 한편 마을공동체, 혹은 친족간의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호남 누정의 특징

호남은 현재까지 많은 누정이 남아 있는 지역이며, 다양한 누정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상도에 263개소, 전라도에 170개소의 누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영호남 지역은 지방 사림세력의 거점으로서 많은 누정을 건립하고 누정 문학을 꽃피운 곳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16~17세기 사대부 문인들을 중심으로 유흥과 친교의 공간으로서 누정이 건립되었고, 이들은 누정에 모여 문예 취향을 공유하고 누정을 대상으로 한 문학 작품을 남겼다.


호남 지역 특히, 전라남도와 광주에서도 누정 건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85년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광주 지역에만 총 105개의 누정이 있었고, 이 중 47개소가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호남 지역의 누정은 근대 시기에 크게 증가하였다. 광주 지역은 호남의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근대 이후에 더욱 활발하게 누정이 건립되었고, 누정제영(樓亭題詠)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누정 작품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광주의 연파정(蓮坡亭)에는 무려 400수가 넘는 작품이 남아 있어, 누정이 근대 시기까지 문인들의 문화향유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광주 환벽당(環碧堂)

광주 환벽당(環碧堂)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의 누정은 이 지역 문인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자 타지역 출신 문인들과의 문화 교류의 장소였으며, 다채로운 누정 문학을 향유하고 전승한 곳이었다. 대표적인 곳으로 광주의 환벽당(環碧堂)·풍암정(風巖亭)·식영정(息影亭)·양과동정(良苽洞亭), 나주의 석관정(石串亭), 순천의 연자루(燕子樓), 진도의 벽파정(碧波亭) 등이 있다. 이러한 누정들은 주변 경관과 함께 문인들의 풍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누정문화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