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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享及配享 尤菴宋先生○配享斗南朴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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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瀛山七寶隔西東魯院惟淸大老風君子安貧輕富貴文章出世啓群蒙數間精舍建坮上重疊雲甍聳谷中占得小春辛亥日奉安禮式二賢同 後學彦陽金昞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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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道喪文獘海之東尤老敎聲百世風徒弟斗南賢處士心經一部受童蒙瀛洲此日致誠地楚水千秋遺恨中報佛惟心終不沫翼然院宇士林同 後學瀛州李鍾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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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陽書院誌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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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陽書院全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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位置 全羅北道井邑郡【元古阜郡】所聲面玄岩里壹百四十九番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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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物 院宇七架三間【魯陽書院四大字揭于正中門楣】○中門三架三間○講堂五架三間【山仰齋三大字揭于正堂中門楣】○由道門三架三間【隆熙紀元後丁酉湖南多士創建魯陽書院妥侑尤菴斗南兩先生先是尤菴先生受後命于椘山斗南先生以老先生之高足講道于此此地實與椘山可相望故仍以建院其講堂曰山仰門曰由道永爲春秋享祀時齋宿之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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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蒼天眷佑海山東降此華陽變俗風積置諸書開後學講明義理破昏蒙尤門親炙斗南老心得眞工誠敬中師弟而今奉祀地四方多士致齊同 後學長興高應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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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天使此鄕寄與東四方和氣動仁風工深理學追前聖訓篤詩書啓後蒙月到千秋瀛海上炬明此夜楚山中先師道德如斯屹多士駿奔享祀同 後學瀛州李鍾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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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維新虔享瀛山東衛道尊賢古士風宋子德儀萬世準斗翁功業千秋蒙文章盡是羅麗後忠義無非漢魏中史筆丹心受命地魯陽靈幀生時同 後學金海金鏡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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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聞道瀛州楚水東魯陽院宇振文風平生心學受尤老百世芳名傳後蒙已見祥雲開海內更逢瑞日到天中子孫追慕如斯極況復春秋士友同 後學瀛州李鍾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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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이종건(李鍾健)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華岡書院儒會所 李鍾健 華岡祠印(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자년 3월에 화강서원 유회소에서 이종건을 제관으로 추천하 선정한 망기. 갑자년 3월 1일에 華岡書院 儒會所에서 3월 20일에 행하는 제사에 李鍾健를 祭官으로 추천하여 선정한 결과를 알리는 望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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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3년 6월 22일, 제 정헌규가 사우 형님에게 답장을 하여 상대의 인사에 답하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 후 최근 자신이 산지를 사서 조부모를 합폄할 생각임을 전하며 선선할 때 상대가 방문해 줄 것을 청한 서간. 계미년 6월 22일, 제(弟) 정헌규(鄭憲圭)가 사우(士友) 형님에게 답장을 하여 상대의 글 받은 인사에 답하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 후 최근 자신이 산지를 사서 조부모를 합폄할 생각임을 전하며 선선할 때 상대가 방문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모리(牟利)의 장(場)이 사람을 매도하는 것이 심하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여 사우(士友)간에 안부를 묻고 편지할 마음은 있었으나 하지 못하였다고 한탄했다. 육순의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자신의 기량이 이 정도라며 스스로를 가여워하고, 형이 6월 6일에 쓴 편지를 6월 하순이 되어 답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였다. 자신이 상대가 부탁한 글을 사양할 수 없었던 상황을 전하고 지금은 지은 글을 형이 고치신 후에 사람들에게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은 지난번 강신일(講信日)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병도 있고 도로도 좋지 않아서 갈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상대의 나이 드신 어르신의 안부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권솔들이 모두 잘 지낸다고 인사했다. 자신이 산지(山地) 한 구역을 사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내외를 합장할 계획임을 전하며 돈이 300엔이 넘는다고 언급한 후 날씨가 선선해지면 형이 한번 오셔서 살펴봐 주시면 안되겠느냐는 바람 등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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甚矣 牟利場之埋人也 營營紛紛 不知時日之如何奔去 而其於士友間吉凶問聞及寒喧往復之道 有之心而未及經營或有經營而未得遂焉 前後人事幾乎滅如者多矣 顧此六旬賤年可謂不死是爲賊者而終作以此技兩而已 則熟不爲之可憎而深斥耶 自憐自憐 於 兄五月六日書迨今六月下旬而稽答私豈欲慢也 因仍推待之餘不覺時日 至此遲晩也 况有 珍重之託 旣示以幅面 又書於年月日後紙者乎 然此等文字 弟非其人則當固辞之不暇而其不敢辞之由 兄已細及 故不得不以數行蚯蚓 仰塞久不久 兄已槩悉矣 惟時斥正後及僉眼矣 語失後先 去講信日預擬晉參而竟以病阻塗道相左 便亦難得 寸紙替躬 末由修焉 中心藪恨 迄于今如物在候 今於 先施以何辞而可謝耶 更伏問比炎此酷尊堂隆耋氣力何以扶支 省餘棣體何如區區仰溯不任勞禱 弟以渾眷無警爲穩耳 忽於花池求地 山地一區買得 以爲鄙祖考內外合窆之計 然以若瞽眼 而其吉凶何論也 價金已渡三百円也 生凉後 兄或一次枉臨而眷過耶 是所望也 餘恐燭 不備 惟照亮癸未六月二十二日 弟 鄭憲圭 拜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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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이종건(李鍾健)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玉堤祠 李鍾健 玉堤祠(흑색, 5.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묘년 9월 27일에 옥제사에서 이종건을 제관으로 추천하여 선정한 망기. 계묘년 9월 27일에 玉堤祠에서 李鍾健를 10월 8일에 행하는 釋菜禮의 祭官으로 선정하였음을 알린 望記이다. 衆望에 따라 선정하였음을 언급하고 있고 掌議와 色掌 명의로 보냈다. 그리고 전날에 재계를 위해 들어와야 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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輪告文右文爲輪告者 惟我 蘆沙奇先生 以命世之才 闡發理學 啓牖後人 以當靑邱文敎一治之運 當時及門親灸無慮百千 而惟見而知之 發揮羽翼 菀然闢大門庭者 於嶺湖可敷而知 至于今 生人斯稍 知廉隅知 先生之道 爲主理御氣 先生之學 爲炳義斥邪 邪者畏懼 而知愧善者慕向而鑽仰之皆其賜也然欲觀於海而不知百川之朝宗則指江淮河漢而爲海者有之欲學先生之道而不知淵源之端委則往往入於旁岐曲逕而不知大正至中之道矣 道一源而已故子禽學於子貢而知夫子之求之異乎 人之求之 則其門路之端的統緖之一貫不可以前後而差殊亦不可以未得親承咡詔爲非其淵源也然卽今日淵源錄之不可緩而欲汲汲編修字盖欲使今人之登是錄者知何者是淵源何者是門路則可謂不負先生之道而聞風私淑慕德向義者亦同在是科也玆敢具由仰告惟願僉君子樂聞而贊同之俾成右文之擧 千萬幸甚 右敬通于僉尊 座下丙申九月 日蘆門淵源錄刊所都有司 梁會甲 校正 呂昌鉉副有司 金度中 李鍾遠李會春 金顯奎總 務 朴興圭 幹事 鄭在會外 務 邊時淵 卞榮濩內 務 奇老章 徐鉉球編 輯 李建秀 梁在允洪錫憙 掌財 邊舜燮要項一 題 目 蘆門淵源錄一 蒐輯範圍 蘆沙先生門下諸先生及其淵源各家一 編纂凡例 姓名貫號字生科宦享祠某之后某之門人及其住所一 單 金 額 每單五百圜以上一 冊子購入 二卷一帙價額分帙同時結定一 刊 所 全南長城郡珍原面珍原里澹對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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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공삼【규용】에게 보냄 與安公三【圭容】 한 해가 저물어 새해가 되고 계절에 따라 경물(景物)도 바뀌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효성이 천성에서 비롯되었으니 슬픔과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십니까. 멀리서 애타는 마음 견딜 수 없습니다. 삼가 보건대 세상의 형편은 재앙이 천하에 가득하여 아침에 저녁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두렵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우리 동방에 복을 내려 황제의 조서가 반포되었으니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의 어리석은 백성들조차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병이(秉彝)가 추락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고 또 우리나라의 보록(寶籙)이 무궁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 한관(漢官)의 위엄32)을 오늘 다시 볼 수 있으니 우리는 과연 예전처럼 태평 세계를 뒤따르겠지요. 위안이 됩니다. 송사 선생(松沙先生 기우만(奇宇萬))의 봉함 상소는 역시 한 도의 바람을 채워주고 천하에 할 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세초(歲初)에 송사 등 여러 벗과 나아가 우리 벗을 조문하고 이로 인하여 중흥동(中興洞)으로 가서 한 번 서로 만날 계획이었지만, 곧 사사로운 일에 매여서 잠시 그만두었습니다. 몸을 잘 보중하시어 세상이 어려워졌을 때 서로에게 바라는 뜻에 부응하시기 바랍니다. 歲色飜改。時物變嬗。伏惟孝思根天。哀慕何堪。遠外區區不任。竊覵時象滔天。凜凜若不俟朝夕。天祚我東。溫綸渙發。雖深山窮峽。愚夫愚婦。無不感激流涕。此可見秉彛之不墜。又可見我國家寶籙爲無窮也。嗚乎。漢官威儀。今可復覩。而吾儕果爾追逐於昇平世界如前日耶。可慰可慰。松沙先生封章。亦可以塞一路之望。而有辭於天下矣。歲初與松下諸友。晉弔吾友。因往中興洞爲一番相觀計矣。旋爲私故所縻。姑且見停。更冀加愛。以副歲寒相望之意。 한관(漢官)의 위엄 지금은 없어진 옛날의 제도와 문물을 말한다. 신망(新莽) 말년에 유수(劉秀) 즉 광무제(光武帝)가 회양왕(淮陽王) 유현(劉玄)에 의해 사예교위(司隷校尉)에 발탁되었을 때, 그동안 왕망(王莽)에 의해 폐기된 한나라의 복식(服飾) 등 옛 제도를 모두 복구시키자, 늙은 관리들이 눈물을 흘리며 "오늘에 다시 한관의 위의를 보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不圖今日復見漢官威儀.】"라고 탄식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1上 光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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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창호】에게 답함 答吳汝周【昌鎬】 《대학(大學)》의 8조목(條目)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차례로 말하였습니다. 《논어(論語)》의 지학(志學)은 다만 명덕(明德) 위에 나아가 공효(功效)의 순서로 말하였습니다만 가리키는 바가 같지 않습니다. 만약 함께 말하고자 한다면 지학(志學)은 《대학(大學)》의 도(道)에 뜻을 두는 것이며, 세운다【立】는 것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이 이미 깊고 성의정심(誠意正心)의 힘이 이미 굳건한 것입니다. 불혹(不惑)은 물격(物格)이고 지명(知命)은 지지(知至)입니다. 이순(耳順)은 물격지지(物格知至)하여 생각지 않아도 얻는 경지입니다. 불유구(不踰矩)는 뜻이 성실하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 힘쓰지 않아도 알맞게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앎과 행동이 함께 진행되어야만 앎에 조리(條理)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배움에 나아가는 것은 치지(致知)에 있으므로 중간의 세 마디는 오로지 말과 행동을 아는 것으로 조리를 마치며, 또한 처음과 끝의 강령(綱領)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우는 것【立】은 말과 행동에 있어 불유구(不踰矩)하는 것입니다. 저의 견해는 이와 같으니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大學八條。以明德新民之序言。論語志學。只就明德上。以功效次第言。所指有不同矣。若欲合言。則志學是志於大學之道也。立是格物致知之功已深。而誠意正心之力已固也。不惑是物格也。知命是知至也。耳順是物格知至。不思而得也。不踰矩是意誠心正。而不勉而中也。蓋知行固倂進。然知爲始條理。而且進學在致知。故中間三節。專以知言行爲終條理。而且爲終始之綱領。故立與不踰矩。以行言。愚見如此。未知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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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중【형식】에게 답함 答范善仲【瀅植】 그대【傾蓋】가 욕되게도 여기를 찾아오신 것이 예전 어느 날이었습니까? 세월이 덧없이 재빨리 흘러 아득하기가 허공과 같으나, 오직 온화한 모습이 아련하게 마음과 눈 속에 남아있어 지금까지도 감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뜻밖에 그대의 종형제가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그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펼쳐보고 감동했으니, 실로 울적한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그대 부모님의 건강이 오래도록 좋지 못했는데, 근래에 원기를 회복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사이의 근심은 필시 적지 않았을 것이나, 오늘 날이 있게 되었으니, 또한 어찌 정성과 효성에 감동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로되고 축하하는 마음이 멀리서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글을 읽으려고 하는 것은, 여력이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게다가 부모님이 병환 중이니 어찌 오로지 글을 읽을 수 있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모시고 형을 따르는 것은 학문을 하는 실질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번 찾아와 주신다고 하셨으니, 벌써부터 기쁘게 기다려집니다. 그러나 몸소 먼 곳까지 오는 노역을 행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대 부친의 목재(牧齋)에 대해 읊은 시【牧齋韻】와 죽취정(竹翠亭)에 대한 상량문【六偉文】을 함께 지어 보냅니다. 졸렬하고 거칠어 취할 바가 없으니 읽어 본 후에 없애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傾蓋屈旆。昔何日矣。荏苒流光。茫然若空。而惟有愷弟風度。黯黯留在於心目之間。而至今不敢忘也。不謂令從氏遠垂委枉。惠存隨之。披玩感感。賓慰積菀之懷。仍審庭候久愆之餘。近復天和云。其間致憂想必不少。而至有今日。亦豈非誠孝攸感耶。爲慰且賀。不任遠情佔畢一着。此是餘力底事。況親癠之中。安有專一咿唔之理。事親從兄。此是爲學實地。如何如何。一枉之示。預用欣企。然親下遠役。豈易事也。尊府牧齋韻與竹翠亭六偉文。竝此構呈。拙澁無取。覽後滅棄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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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 박공 실기》 뒤에 적다 題安亭朴公實記後 내 일찍이 고인이 된 벗 우인옹(愚忍翁)과 함께 우리 고을 선배 인물들의 성대함에 말이 미쳤는데, 공이 말하기를 "나의 족조 정재(淨齋) 휘 장환(章煥)과 안정(安亭) 휘 양환(亮煥)과 진사 휘 문환(文煥)은 이 고을 사람들이 '박씨 삼환(朴氏三煥)'이라 칭하는데, 그 문장과 풍의(風儀)는 우리 고을에서 또한 걸출하다."라고 하였으니, 내가 듣고는 나도 모르게 공경하고 부러워하였다.이윽고 우인옹이 돌아가시고 나 또한 늙고 병들어 가천(佳川)의 우사(寓舍)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안정공의 현손 준동(俊東)이 그의 삼종질 병해(炳海)에게 맡겨 공의 실기를 가지고 와서 한마디 말을 써주기를 부탁하였다.삼가 살펴보건대, 실기 가운데 실린 것이 당일 들었던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우인옹이 좋아하는 데 아부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고 공이 공이 되는 이유를 더욱 믿을 만하였다. 공은 일찍 부모를 잃고 조부모를 섬김에 효순(孝順)으로 이름이 드러났다. 스승을 따라 힘써 배워 이치를 두루 꿰뚫고 통달하여 문장으로 칭송 받았다. 재물을 가볍게 여겨 베풀기를 좋아하여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여 풍의(風義)로 소문났다. 전후 200년 동안 남긴 향기가 자자하게 향곡(鄕曲) 인사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으니, 이것은 이지러진 세상 끝난 바둑판에 인물이 미미한 날에 있어서 기수(氣數)가 모여 기른 특이함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박씨(朴氏) 후손들이 번성하고 문학하는 이가 성대하니, 앞으로 수립하는 것이 두 세 명의 공들이 아름다움을 나란히 하여 함께 일어났던 것 같음이 있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우인옹이 당일 일컬으며 기약하고 면려했던 뜻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라네. 余嘗與故友愚忍翁。語及吾鄕前輩人物之盛。翁曰。吾族祖淨齋諱章煥安亭諱亮煥進士諱文煥。此鄕人所稱朴氏三煥。其文章風儀。在吾鄕。亦爲傑然云。余聞之。不覺欽艶。旣而愚翁下世。而余亦老且病焉。索居于佳川之寓舍。一日安亭公玄孫俊東。屬其三從姪炳海持公實記。託以一言之役。謹按記中所載。與當日所聞無異。可見愚翁之不阿好。而公之爲公。尤可信矣。公早失所怙。事王父母。以孝順著名。從師力學。淹貫該洽。以文章見稱。輕財好施。賙窮恤匱。以風義有聞。前後二百年。遺芬餘馥。藉藉不絶於鄕曲人士之口。此在缺界殘枰人物藐然之日。而非有氣數鍾毓之異。何以得之。朴氏雲仍詵詵。而文學蔚然。安知前頭樹立。不有如二三公之聯美倂作耶。庶不負愚翁當日稱道期勉之意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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