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정성문(丁星文)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辛酉 丁星文 이원창(李元暢) 辛酉 丁星文 전북 남원시 [印]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1년 9월 11일에 정성문(丁星文)이 이원창(李元暢)과 작성한 계약서 1921년 9월 11일에 정성문(丁星文)이 이원창(李元暢)과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정성문이 이원창에게 항월평(項越坪)에 있는 1두지(斗只)의 답을 전당(典當)하고 20원을 빌린다는 내용이다. 이 돈은 정성문이 준비되는 대로 갚는 것으로 하였는데, 상환 일자를 이런 식으로, 다시 말해서 특정한 날짜를 정하지 않고 돈을 빌려가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갚게 한다는 점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아마도 정성문과 정성문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원창과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거나 혹은 친척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문서 말미를 보면 "재미일두(再米壹斗)을 本人病時得去(本人病時得去)인바 우금이십(右金二十)원 내(內)에 제납(除納)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재(再)"는 추가 사항이라는 의미이다. 본문 외에 더 써야 하는 내용이 있을 때 "재"라고 적고 그 뒤에 추가 사항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 "미일두"는 당연히 쌀 1두를 말하고, "본인병시득거"는 "본인이 병을 앓고 있었을 때 가지고 갔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본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 점은 다음에 나오는 "제납"이라는 단어로 짐작할 수가 있다. "제납"은 "제외하고 납부한다."는 것이므로, 돈을 빌린 정성문이 돈을 갚을 때 쌀 1두 값은 제외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가지고 간 사람은 정성문이 아니라 이원창이 되는 것이다. 이원창이 아플 때 돈이 필요하여 정성문으로부터 쌀 1두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20량 중 쌀 1두의 값은 얼마로 계산이 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