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21년 이덕노(李德魯) 소작계약서(小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辛酉四月五日 李德魯 辛酉四月五日 1921 李德魯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1년 4월에 이덕노가 최씨 문중과 작성한 소작 계약서 1921년 4월 5일에 이덕노(李德魯)와 최씨문중(崔氏門中)과 작성한 소작계약서(小作契約書)이다. 부안군의 소유 전답의 소작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보증인은 이공현(李公玄)이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通文右文爲通諭事先祖作室子孫肯搆肯堂善繼善述聖王之遺訓也完東宗垈卽惟我 先祖之所遺址而宗中先長老刱設宗垈者曾已屢百年之久矣近爲風雨所磨上棟下宇東頹西圯幾至傾敗則豈不寒心哉各邑宗族以繼述之意公議爛商卽欲收錢當此窮節難以收合不獲已今五月良得債於完府設役重修三朔工已告訖凡所用費數至壹千五百餘金則待秋成幷本利將過貳千餘百也爲 先之錢趂期備報乃已故玆通告于各邑 僉宗氏不有後期通到之日依後錄一一收納宗中以竣宗事之地千萬幸甚右敬通于 此亦中收錢有司路需自 貴各邑宗中 派宗中計其程道以備厚給事癸卯六月 日扶安 古阜 秉泰 成來全州 南原 秉哲 式烈靈巖 報恩 鴻坰 宇洪羅州 順天 鳳錫 正洪咸悅 舒川 光成 秉吉〃 〃 寬洪 彦圭完東宗垈修理所發文 鳳洙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3년 소윤공종중(少尹公宗中)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丑 月 日 少尹公宗孫 崔圭哲 等 13人 扶安門中 癸丑 月 日 崔圭哲 扶安門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3년에 전주최씨 소윤공 종손들이 제수답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부안문중에게 보낸 통문. 1913년에 전주최씨(全州崔氏) 소윤(少尹)공 종손(宗孫)들이 제수답(祭需畓)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부안문중(扶安門中)에게 보낸 통문이다. 전주최씨 소윤공종손들에게는 고부(古阜)에 거주하였던 선조(先祖) 3대 즉,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지낸 최자목(崔自睦), 상장군(上將軍) 최분(崔汾), 그리고 선천군사(宣川郡事) 최명손(崔命孫)의 묘소가 부안군 분토동(粉土洞)에 있었다. 한편 군사(郡事)공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큰 아들이 진사공(進士公) 최희윤(崔希潤)이고, 작은아들이 판관(判官)공 최희정(崔希汀)이다. 이 중 진사공의 증손(曾孫)으로 모암공(慕庵公) 최안(崔安)이 있는데 이 최안이 대종손(大宗孫)으로 당시에 천석부자였다. 그런 이유로 3대 조상의 묘토로 24두락(斗落)을 바쳐 그 가운데 13두락은 제향수(祭享需)로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 11두락은 산직이가 경작하여 먹고 살면서 묘소를 보호하도록 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판관공 자손 3대의 선영이 있게 되었다. 이후 선영 때문에 자손들의 갈등이 일어나자 문중에 호소하여 옳고 그름을 밝혀달라고 요청한 내용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갑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甲寅十月二十三日 各處用錢人與契員 甲寅十月二十三日 發文有司 各處用錢人與契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갑인년 10월 23일에 부안의 전주최씨 봉사공파계에서 각처의 계원들과 계의 자금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계일을 통보하면서 보낸 회문. 갑인년(甲寅年) 10월 23일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에서 각처의 계원들과 계의 자금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계일(契日)이 다음 달 10일로 확정되었다고 통보하면서 보낸 회문(回文)이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본전과 이자를 지참하고 석동재각(席洞齋閣)에 참석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회문의 끝 부분에는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성명과 금액(본전)과 아직 갚지 못한 잔금 등이 차례로 적혀 있다. 예컨대 신리(新里)의 장명중(張明中)은 202냥 5전을 빌렸는데, 현재 101냥 2전 5복을 갚지 못한 상태이다.(원문에는 二百과 二兩五戔 사이에 △ 표시가 있는데, 이는 오기(誤記)로 추정된다.) 이 문서에는 장명중 외에 목하리의 이도춘, 신흥리의 서상용 등 세 사람만 적혀 있지만, 훼손된 문서의 뒷 부분에 더 많은 계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02년 최봉수(崔鳳洙)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壬寅 正月 日 各邑宗中 壬寅 正月 日 崔鳳洙 各邑宗中 전라북도 전주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02년 정월에 최봉수 등 66명의 전주최씨 종원들이 각 지역의 종중에 보낸 통문. 1902년 정월에 최봉수(崔鳳洙) 등 66명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종원(宗員)들이 고부(古阜), 전주(全州), 남원(南原), 영암(靈巖), 보은(報恩) 등 각 지역의 종중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이들은 제학(提學)공(公) 최덕지(崔德之)의 묘역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변고로 인하여 '궐향(闕享)'에까지 이르게 된 저간의 사정을 통탄하면서, 또다시 제학공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면 안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건은 최성흠(崔聖欽)이라는 족인이 작년 봄에 제학공의 묘역 단청룡(單靑龍)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덤을 쓴 데서 시작되었다. 제학공은 월당(月塘) 최담(崔霮, 1346~1434)의 장자이자 소윤(少尹)공(公) 최득지(崔得之)와 연촌공(烟村公) 최덕지(崔德之)의 형이 되는 큰 어른이다. 그런데 낯선 무덤이 또아리를 틀고 서로 마주하면서 제학공의 묘소와 석계공(石溪公) 최명룡(崔命龍) 모자(母子)의 묘역을 위에서 압박하는 형세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400여 년 동안 지켜온 선산으로 다른 잡인의 무덤 하나 없었는데, 저 성흠이란 자가 투총을 하여 선조를 추모하는 이곳을 크게 모욕하였다고 종원들은 통탄해 하고 있다. 변고를 처음 당했을 때는 관을 통하여 일을 순조롭게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일문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바깥의 모욕을 사는 일도 또한 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사람의 의리를 들어 성흠을 꾸짖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세 번을 거듭하여도 끝내 무덤을 굴거하지 않았다. 급기야 3월의 묘사(墓祀) 때에는 설령 선영에 음식을 차려놓는다 한들 조상의 혼령이 마음 편히 흠향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투총을 파간 뒤에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다. 요컨대 월당공 4부자의 묘역이 같은 국내(局內)에 있어서 매년 함께 제사를 지내왔는데, 제학공만 궐향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로부터 다시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르러 또다시 제사를 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최봉수 등의 종중원들은 생각하였다. 이에 각 지역의 종원들에게 통문을 보내 결코 궐향을 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46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石洞齋)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丙戌正月 席洞齋 丙戌正月 席洞齋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6년 부안 전주최씨 석동재 통문 1946년 1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席洞齋) 도유사(都有司) 최주홍(崔周洪)이 보낸 통문(通文)이다. 족보 발행을 위해 2월 30일까지 명단을 보내달라고 하였으며 임원과 규례를 적어 보냈는데 족보 1질은 100원, 수단금은 관자(冠者) 10원 아이 5원, 수단소는 석제(石堤)와 백석리(白石里) 2곳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通文右通諭事夫有姓之修譜亶出於昭系收族之原義而惟我 提學公派辛亥之家乘譜頗多漏落之人甲子之大同譜未得家家有冊是誠諸族之所同慨歎而且歲紀已週三十滄桑屢回百六死者墓木已拱生者童已抱子矣修譜之期亦云且晩咸願續修維新得以家家有冊其於昭先敦族之義庶有考據之無弊幸甚云故今於寅會僉議齊發玆定任員與規例略列如左輪仰惟願僉族斯速收單今二月晦日內無漏納單于席洞齋爛議開板事丙戌正月 日 席洞齋 都有司崔周洪規例一譜冊一秩에百円으로磨練事一單金은冠에拾円童에五円으로磨練事一收單時譜冊申込ᄒᆞ되冊価半額과單金全部를交附할事一納單期限은今二月晦日內完定事一收單有司은譜廳任員과同一報酬事一收單所은石堤白石里兩處로定홈譜所任員編輯 崔光煥 崔秉澔校正 崔斗洪 崔基洪掌務 崔春洪 崔在洪監印 崔玉煥 崔墀洪正書 崔敏洪 崔秉甲 崔秉炫收單有司司成公派 處士公派 檢閱公派--崔秉淵處庵公派 崔東周 崔相烈參奉公派 崔秉浩 崔弘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52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흥학계(興學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壬子三月二十七日 壬子三月二十七日 1852 全州崔氏門中 興學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52년(철종 3) 회문 1852년(철종 3) 3월 27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흥학계(興學稧) 일자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들의 회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回文右回諭事 惟我叅奉公派稧日字定于來月初十日爲去乎各處用錢之人與族人僉員齋會于席洞齋閣以修契事幸甚乙未十月 發文楓洞 崔義正 錢 十五兩 利七兩五戔內十兩入蓮洞 崔乃順 錢 二十七兩 利十三兩五戔內三十二兩入富谷 崔國興 三兩八戔三卜 △一兩九戔二卜元巖 崔奉得 △九兩三戔九卜 △四兩七戔新光 崔違元 △二十兩五戔二卜 △十兩二戔二卜星岩 崔文汝 △五兩 △二兩五戔山直里 車奇鍾 △十兩 △五兩杏山里 金理仲 △五兩 △二兩五戔〃 金贊敬 △三十兩 △十五兩〃 金致明 △五十五兩 △二十七兩五戔內二十五兩入〃 崔仁甫 △十兩 △四兩山亭里 裵俶煥 △十兩 △四兩葛村里 崔公一 △十一兩 △五兩五戔新蓮洞 崔士賢 △二十五兩 △十二兩五戔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을유년 부안 석동재(席洞齋)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酉二月十四日 崔基洪 乙酉二月十四日 崔基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을유년 2월 14일에 부안 석동재의 최기홍이 재실의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회의하기 위하여 족원들에게 보낸 회문. 을유년(乙酉年) 2월 14일에 부안(扶安) 석동재(席洞齋)의 최기홍(崔基洪)이 재실의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회의하기 위하여 이달 17일로 회의날자를 정하고 이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족원(族員)들에게 통지하는 회문(回文)이다. 문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최기홍은 신임 도유사(都有司)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회의에서 논의하려고 했던 문제들은, 재실의 수리와 산직 자퇴로 인한 충원 문제, 향사비(享祀費)의 결정, 정문(㫌門) 앞 논을 밭으로 만드는 일을 재촉하는 문제, 처우 감사금(處遇感謝金)에 대하여 통지하는 문제 등이었다. 문서의 끝에는 마을별로 일족의 대표자들의 명단이 실려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무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봉사공파(奉事公派)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戊申十月二十一日 戊申十月二十一日 1848 全州崔氏奉事公派 門中 全州崔氏一族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43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卯十一月十一日 癸卯十一月十一日 1843 全州崔氏門中 全州崔氏一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43년(헌종 9) 회문 1843년(헌종 9) 11월 16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회문을 발송한 이유는 부족한 종재를 종원들끼리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무신년 최택환(崔澤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至月旬日 澤煥 參奉公派稧中 戊申至月旬日 崔澤煥 參奉公派稧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신년에 최택환이 참봉공파계에 보낸 서간 무신년(戊申年) 11월 10일에 최택환(崔澤煥)이 전주최씨 참봉공파계(參奉公派稧)에 보낸 서간(書簡)이다. 문중 여러 사람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최근 병폐가 생겼다며 계회(稧會)는 잘 치렀는지 물었다. 돈도 사람도 가지 않아 중한 꾸지람을 면치 못 할텐데 하(河)형(兄)의 몫까지 있어 할 말이 없다며 병이 나은 후 마련할 것이니 양해 바란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09년 전주군지방재판소증설회회장(全州郡地方裁判所增設會會長) 이중익(李重翼)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隆熙三年六月二十八日 李重翼 隆熙三年六月二十八日 李重翼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09년 전주군지방재판소증설회회장 이중익(李重翼)의 통문 1909년 6월 28일에 전주군지방재판소증설회회장(全州郡地方裁判所增設會會長) 이중익(李重翼)이 부안군교중대표(扶安郡校中代表) 최순환(崔順煥)에게 발송한 통문(通文)이다. 지방재판소가 광주(光州)에 위치하니 전라북도사람의 소송(訴訟)은 거리와 경비면에서 곤란한 점이 있다. 그래서 1907년 겨울에 지방재판소증설회를 설립하고 각군 인사를 초청하여 지방재판소 전주 유치를 위한 논의 끝에, 상경하여 일을 주선하는 자의 경비와 재판소 건축비 일부를 군의 크기에 따라 분배하기로 결정하였다. 부안군이 부담할 돈은 31원이므로 첨부하는 각군 분배 건기를 살펴보고 해당 돈을 전주군민회(全州郡民會) 재무원(財務員) 박봉래(朴奉來)에게 보내고 수령증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