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김영한(金寗漢) 월당(月塘) 최담(崔霮) 묘도비명(墓道碑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著雍敦牂黃華節 金寗漢 著雍敦牂黃華節 金寗漢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8년에 김영한이 작성한 월당 최담의 묘도비명. 1918년에 김영한(金寗漢)이 작성한 월당(月塘) 최담(崔霮)의 묘도비명(墓道碑銘)이다. 최담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아(崔阿)의 증손이며, 중랑장(中郎將)을 지낸 최용봉(崔龍鳳)의 손자이고 동정(同正) 최을인(崔乙仁)의 아들이다.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하여 참의(叅議)를 역임했고, 검교호조참의집현전직제학(檢校戶曺叅議集賢殿直提學)을 지냈다. 전주(全州) 주덕산(周德山)에 그의 묘가 있다. 숙부인 전주박씨(全州朴氏)와의 사이에서 네 아들을 두었는데, 최광지(崔匡之), 최직지(崔直之), 최득지(崔得之), 최덕지(崔德之)가 바로 그들이다. 이 중 최득지는 사마시에 합격했고, 나머지 세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최담은 은퇴 후 향리에 내려와 한벽당(寒碧堂)을 지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지냈다. 그 중에는 약절재(若節齋) 김종서(金宗瑞), 만육(晩六) 최양(崔瀁), 양촌(陽村) 권근(權近), 안평대군(安平大君), 대제학(大提學) 권맹손(權孟孫), 문정공(文靖公) 안지(安止) 등이 있었다. 한벽당은 처음에 그의 호를 따서 '월당루(月塘樓)'라고 하였다가 뒤에 '한벽당'으로 바뀌었다. 전주의 한벽당은 남원 광한루(廣寒樓), 무주 한풍루(寒風樓)와 더불어 호남의 삼한(三寒)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