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계(巖溪) 최연손(崔連孫)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旁孫 命龍 謹撰 崔命龍 崔連孫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에 최명룡이 작성한 암계공 최연손의 묘갈명 병서 초안 모년에 최명룡(崔命龍)이 암계공 최연손(崔連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 초안(草案)이다. 최연손의 자는 자윤(子胤), 호는 암계(巖溪)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합격하였는데, 생원시에서는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판결사(都承旨判決事)를 역임했다. 암계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릉(江陵)에는 그의 추모비[去思碑]가 세워져 있다. 암계는 어렸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히 대하며 말을 부드럽게 하고 봉양하였다. 그의 유순하면서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행동거지가 한 고을의 모범이 되었으며, 사방에서 그의 행실에 탄복하였다. 또한 그는 경전(經傳)의 깊은 뜻과 하락(河洛)의 도서(圖書)가 지닌 심오한 이치에 대하여도 통달하였을만큼 학식이 깊었다. 공의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전주최씨는 병마절도사 최전(崔湔)의 딸이며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증손이다. 부부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윤조(潤祖)이고, 작은아들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감찰(監察)을 역임한 엄조(渰祖)이다. 딸은 좌랑 정기수(鄭期壽)에 시집갔다. 그리고 손자 2명과 손녀 1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