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월헌(月軒) 최일홍(崔一洪) 행장(行狀)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丁酉年 丁酉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7년 단옷날에 최재홍이 작성한 최일홍의 행장. 1957년 단옷날에 최재홍(崔在洪)이 작성한 월헌(月軒) 최일홍(崔一洪, 1890-1950)의 행장(行狀)이다. 최일홍의 자(字)는 도국(道局)이며, 월헌은 그의 호(號)다. 송촌리(松村里) 출신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 월당(月塘) 최담(崔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관환(寬煥)이다. 최일홍의 아버지는 충서(忠恕)와 효우(孝友)로 일관된 삶을 살았으며,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평생 은거(隱居)하면서 학문에 매진하였다.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 직상(直相)의 딸로 성품이 매우 부드럽고 온후하였다. 최일홍은 타고난 자질이 매우 영민하였으며, 부모님께 항상 효도를 다 하였다. 행실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켰으며 그 행동거지가 고결하였다. 제사를 지낼때에도 항상 정성을 다하였으며,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나라가 무너지면서 윤리를 경멸하고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권세를 쫓아 금수의 도굴에 빠지면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다. 월헌은 이 같은 세태를 통분해 하면서 산림에 숨어 들어가 문을 닫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자신의 입으로 남의 장단점을 일절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선한 마음을 들으면 더할 수 없이 좋아했다. 월헌은 산수(山水)를 사랑하고 매죽(梅竹)에 대해 읊었으며, 아무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최일홍의 묘(墓)는 부안군 주산면(舟山面) 돌천리(乭川里)에 있다. 최일홍의 처(妻)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운권(運權)의 딸이다. 최일홍은 8남 3녀를 두었는데, 병훈(秉勳), 병윤(秉潤), 병수(秉秀), 병길(秉吉), 병오(秉五), 병하(秉河), 병식(秉植), 병근(秉根) 등이 그의 아들이다. 첫째 사위는 본관이 김해(金海)로 김영배(金永培)이다. 둘째 사위는 본관이 부녕(扶寧)으로 김영철(金濚喆), 셋째 사위의 보관은 충주(忠州)로 지병주(池炳柱)이다. 행장을 지은 최재홍은 최일홍의 족종(族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