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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정규삼(鄭奎三) 쌍화정기(雙華亭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庚申三月 日 鄭奎三 庚申三月 日 1920 鄭奎三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0년에 정규삼이 작성한 쌍화정의 기문. 1920년에 정규삼(鄭奎三)이 작성한 쌍화정(雙華亭)의 기문(記文)이다. 쌍화정은 일명 상화정(尙華亭)으로보 불리웠던 곳으로, 덕암(德菴) 최병달(崔秉達)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다. 원문에는 영주산(瀛洲山)에 있다고 하였는데, 영주는 고부(古阜)의 옛 이름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정읍시 덕천면 우덕리에 해당한다. 물론 이 정자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기문의 작성자 정규삼은 1858년생으로, 1888년(고종 25)에 직부전시(直赴殿試)를 통해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급제 당시의 거주지는 고창(高敞)이었다. 관에 들어가 정언(正言)을 지냈다. 그의 조부 정성일(鄭誠一)도 문과 급제자로, 1816년(순조 16)의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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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華亭記(一名尙華亭)德菴崔公秉達隱居行義於瀛洲山中爽然有無求於人世之意隱然有貞不絶俗之態華夷之分辨王霸尊黜把作腔肚裹一部春秋皆多之矣晩節捿遑一邱將欲建築之際因其從姪文烈缺輪奇事之備禀遂以之名焉噫東國雖僻在海表衣冠文物禮義風敎模倣三英者多華人稱曰小中華蓋使人如生於偏壤則生此小華見先王盛制流行於華夏者固一大幸也而公之生公之見兩得人人之所難焉亭之錫嘉蓋宜乎顧今伊洛腥羶禮樂籧篨不復目見則存諸心而寄留扁楣亦豈非華國之一邊手也有時乎携鳩筇岸鳥紗登欄憑眺東南群山羅列過墻(缺)楚江一帶平鋪開鏡之面郊林蒼翠巷陌烟樹遠近相望蓬瀛之間形勝在在而於此可讓一頭地也又其家法固多可記者兄弟聯枕之湛樂是雙棣之華胤子趨庭之詩禮亦雙蘭之華方興未艾艶人稱訟皆出於德菴行義之餘力聊以此遍告于登亭諸君子庚申三月 日 正言晋州鄭奎三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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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최학선(崔學善) 낙육정기(樂育亭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丁巳春三月下澣 崔學善 丁巳春三月下澣 1917 崔學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7년 3월에 최학선이 작성한 낙육정의 기문. 1917년 3월에 야은(野隱) 최학선(崔學善)이 작성한 낙육정(樂育亭)의 기문(記文)이다. 낙육정은 원문에 완주군 초포면 미산리 172번지에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곳은 그동안 행정구역의 변천으로 지금은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부근에 해당한다. 원문에는 최학선이 정사년 3월에 이 정자를 지었다고 나온다. 그의 생몰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와 관련된 기록으로, ?승정원일기? 고종 5년(1868) 4월 9일(정해)조에 예조(禮曹)에서 임금에게 올린 계문 가운데 유학 최학선(崔學善) 등이 전주(全州)의 고(故) 학생 백상수(白象洙)의 효행에 대하여 정려해 달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최학선이 기문의 저자와 동일인물이라고 한다면, 위의 정사년은 1857년이나 1917년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학선의 기문에 뒤이어 기미년 11월에 춘계(春溪) 유상룡(柳相龍)이 작성한 낙육정 서문이 실려 있다. 유상룡은 최학선과 교우하였던 인물인데, 문익환(文翊煥, 1870-1930)의 ?정헌유고(靜軒遺稿)?에 문익환이 보낸 간찰의 수신인으로 나온다. 따라서 기미년은 1919년에 해당하는 것이 틀림없으며, 위의 기문 작성연대인 정사년도 1857년이 아니라 1917년이 맞다. 최학선은 정자의 이름을 낙육(樂育)이라고 지은 이유를 맹자(孟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하나에서 찾고 있다.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하였다.(?孟子? 盡心上) 요컨대 최학선은 말년에 이곳 완주군 초포면 미산리에 정자를 지어 후진을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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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부사(府便) 최명손(崔命孫)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己丑至月 族後孫崔秉心撰 己丑至月 崔秉心 崔命孫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9년 11월에 최병심이 작성한 부사공 최명손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949년 11월에 후손 최병심(崔秉心)이 부사공 최명손(崔命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최명손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집현전 직제학 월당(月塘) 최담(崔霮)의 현손이다. 증조는 한성소윤을 지낸 율헌(栗軒) 최득지(崔得之)이며, 조는 현감 최자목(崔自睦), 부는 증상장군(贈上將軍) 최분(崔汾),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창령성씨(昌寜成氏)이다. 공은 선천부사도총관경력(宣川府使都摠管經歷)을 지냈고 부인은 숙부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묘는 분토동(粉土洞) 현감공 묘 아래 서쪽을 향하여 쌍분으로 있는데 어언 400여 년이 흘렀다. 가첩(家牒)에 기록되는 것이 이와 같이 적지 않은데도 자, 호, 생졸년, 또한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가정이나 고을을 다스린 일에 대해서는 전하는 것이 없다. 옛날 공자 때에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예를 기(杞)나라와 송(宋)나라에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선대의 비를 세우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근거 없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공의 둘째 아들 희정의 ?덕촌집(德村集)?을 보면. 공이 추천을 받아 북으로 가면서, 둘째에게 효도로서 그의 장형을 섬길 것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공이 공적을 세우고 조정에 돌아오자 조정에서 이를 가상히 여겨 관직을 하사하였는데, 공은 신하로서 적을 멸하였을 뿐인데 어찌 감히 상을 받을 수 있냐고 하며 굳게 사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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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홍(崔斗洪) 효열부이씨전(孝烈婦李氏傳)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斗洪 崔斗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두홍이 지은 효열부이씨전의 초안 최두홍(崔斗洪)이 지은 것이다. 효열부이씨(孝烈婦李氏)는 본관이 고부(古阜)였다. 집의(執義)를 지낸 이백첨(李伯瞻)의 후손이요, 이동엽(李東燁)의 딸이었다. 그리고 부안에 거주하던 최수환(崔壽煥)의 부인이었다. 본 열부김씨전은, 수정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보인다. 일부 탈락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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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公諱弼成家狀公諱弼成字虞卿姓崔氏系出完山高麗侍中謚文成諱阿其七世祖也高祖諱霮集賢提學曾祖諱匡之集賢殿直提學祖諱生明京市殿直考諱秀孫進士自號固窮純孝德行世皆慕仰妣崔氏司正孝老之女非一崔也公以成化癸卯生于扶安甕井里第幼而穎異天性明敏器度宏深纔學語語輒驚人及就外傳聖經賢傳微辭奧義無不貫通以爲己之學爲自任成公博士重淹卽公之表從也與之講磨爲道義交及燕山戊午成公直諌見忤賜死江陵公自是無意名利含光晦彩不欲見聞於世天性至孝竭力盡誠必供甘旨兄弟五人同居一室共宿大被子姪婦女視無差異鄕有如陳元者來言其不孝公曉以人倫諭以孝友不罰而爲化固窮公嘗植五槐曰吾子五人登科必懸鼓于此其後公之兄順成文科弟克成進士登第公與第三弟繼成號處庵同榜司馬第四弟竟成又登司馬盖固窮公先知之明也至今人稱其址曰五鼓亭云母夫人患乳腫浹旬若劇砭劑無效公累日口吮其汴毒盡乃瘳固窮公又患唐瘧九朔彌留百藥無效醫云蝙蝠最良而時値冬月非所可致公號泣禱天蝙蝠忽至試之輒效是豈非至孝之感於神明者耶前後內外之艱及其葬而親自負土成墳因廬墓側六年歠粥哀毁過制成疾幾危幸賴天佑僅保性命朝廷薦其孝 中廟嘉其行名題 御屛因命旌閭與其弟繼成連楔寔公生時旌也而世稱二連矣當己卯靜庵趙先生之薦賢良也公亦與其薦薦曰才兼文武奉親至孝以靜庵明知之鑑甄拔人物致君民堯舜之地而陶化一世當時士大夫一經品題如登龍門故人皆慕仰榮其名跡天喪斯文未及施用黨禍旋依嗚呼痛哉公超世之學絶倫之才宜有用於時而時値不幸遯跡無悶恬靜自守四方學者負笈坌集咸稱處士因以爲號公之從曾大父烟村先生當 文廟朝投紱歸田以知幾明哲見稱於成公三問及諸賢中王考殿直公亦以淸名直節至有兩疏之稱後來濯纓金先生誄之以志剛節廉等語考固窮公自二公賦歸之後無意進取專心道學安於處貧扁以固窮盖取君子固窮之義也公以丙午卒于家享年六十四後 肅廟甲午道內章甫慕公及殿直固窮與處庵行誼立祠本縣三世四公並享俎豆何其偉哉配光山卓氏生二男長淸無后次海參奉生二男一女男長芬副護軍次蘭參奉女金忠朴部將護軍生一男潤參奉生二男淵澗其餘玄孫以下多不能盡錄後之君子取諸己卯錄與三綱行實錄觀之則亦足以知其公之所存耳噫吾先祖遺風懿行不宜堙沒而中經喪亂文獻無徵及至世遠人亡之後雖欲記述無可考信惟以所聞於家庭及邑誌與諸賢略記者採而錄之謹藏之於家以俟後日尙論君子云七世孫泰像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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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공(壺菴公) 최도명(崔道明) 행적(行蹟)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문성공의 5세손인 호암 최도명의 행적을 기록한 글 전주최씨의 시조(始祖)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의 5세손인 호암공(壺菴公) 최도명(崔道明)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여기 저기 수정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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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后三庚辰 中學敎授南綺老撰 崇禎紀元后三庚辰 南綺老 崔繼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20년(순조 20)에 남기노가 작성한 처암선생 최계성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820년(순조 20)에 남기노(南綺老)가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 최계성의 자는 소선(紹先)이며, 처암은 그의 호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의 넷째 아들이다. 조는 최생명(崔生明), 증조는 최광지(崔匡之)이며, 고려시중 문성공 최아(崔阿)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최씨(崔氏)로 사정(司正) 최효로(崔孝老)의 딸이다. 처암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보다 제법 뛰어나 고궁당이 일찍이 아이를 안고 정원을 거닐다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누가 네 구석에 어떤 기둥을 두었길래 하늘이 이처럼 광활한가. 어린 아들이 대답했다. 하늘이 땅을 덮고 땅이 하늘을 실었으니 그 가운데가 자연히 광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궁당은 아들을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는 장성하여 부모에게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부모의 질병은 하늘이 가져가라고 빌기도 하였다. 상(喪)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치뤘으며, 형과 누이를 어버이 섬기듯 똑같이 섬겼다. 일이 조정에 알려져 명종(明宗) 때 정려(旌閭)를 받았는데 그 사실이 삼강록(三綱錄)에 실려있다. 정묘년에 사마시(司馬試)에 다시 응시하지 않고 부령(扶寧)의 옹정(甕井)에 거처를 마련하여 처암(處菴)이라고 부르며 당대의 유명한 유림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부인은 김씨(金氏)인데 소생이 없고 후처 최씨(崔氏)에게서 하(河), 온(溫), 활(活), 말(沫)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들 중 하와 온은 요절하여 자식이 없다. 활은 부령김씨(扶寧金氏)를 취하여 아들 시립(時立), 산립(山立), 선립(善立) 등 3명을 두었고, 말은 여산송씨(礪山宋氏)를 취하여 딸 1명을 두었다. 공의 묘는 석동(席洞)의 선영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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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菴先生諱繼成墓碣銘幷序崔公繼成字紹先全州人固竆堂秀孫第四子也祖諱生明生員殿直曾祖諱匡之集殿提學高麗侍中文成公阿於公爲鼻祖妣宜人崔氏司正孝老女也公幼而秀穎固竆公嘗抱行中庭指天問曰誰柱四隅而如是廣闊曰天覆地地載天中自廣闊固竆公奇之旣長克孝父母疾祈天獲冥隲居喪以禮以所事移兄姊事聞于朝 明廟嘉之旌其閭事在三綱錄中丁卯司馬不復應擧卜居于扶風之甕井號處菴息營屛囂潛心講究所與遊皆一時名儒也配金氏後配崔氏生四男長河次溫次活奉事次沫正郎河溫早殀無子活娶扶寜金氏通政義貞女生三男長時立奉事次山立次善立奉事沫娶礪山宋氏縣監期忠女生一女適判書權悏後孫蘩衍克紹家聲式公種德貽穀之驗也墓左席洞先塋下公七世孫道彬屬余以銘銘曰孝以傳家趾美乃先胡式其閭維黔與連刻文玆石永圖厥傳崇禎紀元后三庚辰通訓大夫弘文館副修撰知制 敎兼經筵檢討官春秋記事官中學敎授南綺老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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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동(金魯東) 석천(石泉) 최응렬(崔膺烈)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金魯東 金魯東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김노동이 지은 최웅렬의 묘갈명 안동김씨(安東金氏)인 김노동(金魯東)이 지은 최응렬(崔膺烈)의 묘갈명이다. 석천(石泉)은 최응렬의 호이다. 최응렬은 학문이 매우 뛰어났던 분이다. 그의 학문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으로부터도 인정 받을 정도였다. 본 묘갈명은, 수정 흔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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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임필희(林苾熙) 이우당기(二友堂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己卯蜡月 日 林苾熙 己卯蜡月 日 1939 林苾熙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12월에 임필희가 작성한 이우당의 기문. 1939년 12월에 임필희(林苾熙)가 작성한 이우당(二友堂)의 기문(記文)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 최득호(崔得昊)와 최득화(崔得華)의 효우(孝友)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이 지은 정자에 임필희가 이우당이라는 당호(堂號)를 지어주면서 작성한 기문이다. 최씨 형제는 연촌(烟村)과 암계(巖溪)의 후손으로 강선(降仙)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강선은 유절재 소장 문서 가운데 하나인 '1954년 권도용(權道溶) 귀후재기(歸厚齋記)'에 따르면, 전주최씨 중에서 두 형제가 천령(天嶺)에서 이곳 강선대(降仙臺) 아래 최씨가의 별장[崔氏莊]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살면서 향족(鄕族)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강선대의 위치를 말하면서, 덕유산(德裕山)의 남쪽이자 금원산(金猿山)의 북쪽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일대로 추정된다. 이들 최득호 형제의 후손 최광호(崔光顥)가 임필희를 찾아와 새로 지은 정자의 당명을 부탁하자 두 형제의 우애가 돈독하였다는 뜻으로 이같은 당호를 지어준 것이다. 기문의 작성자 임필희는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임유동(林有棟, 1900~1950)의 부친이다. 임필희는 또 1957년에 경남 함양의 종담서당(鐘潭書堂)에서 석채례(釋菜禮)를 지낼 때 자이당(自怡堂) 유사(有司)의 한 사람으로 그곳에 보낸 제수단자가 전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우당 기문의 작성연대로 기록한 기묘년은 1939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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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최병수(崔秉銖)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중건기(重建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己卯四月上澣 秉銖 己卯四月上澣 崔秉銖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최병수가 지은 전주최씨종대 중건기의 전사본 1939년 최병수(崔秉銖)가 지은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중건기(重建記)를 누군가 연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끝에 최기홍서(崔基洪書)로 되어 있인데, 그것은 본 기문을 현판에 새길 때의 글씨를 최기홍이 썼다는 의미이다. 본 중건기에는 전주(全州)에 있는 전주최씨 종대의 역사와 중건하게 된 과정 등을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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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靈山) 최지열(崔智烈) 가장(家狀)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圭煥 崔圭煥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영산공 최지열의 가장 초안 영산공(靈山公) 최지열(崔智烈)의 가장(家狀)이다. 뒷 부분이 탈락되어 있기 때문에 지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수정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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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處土) 최필성(崔弼成) 행장(行狀)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崔弼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처사 최필성의 행장의 초안○ 내용 처사(處士) 최필성(崔弼成)의 평생의 행적을 작성한 행장(行狀)의 초안(草案)이다. 모년에 처사공 최필성(崔弼成)에 관한 평생의 행적(行迹)을 기릴 목적으로 작성한 행장(行狀)의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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府使公諱命孫墓碣銘幷序公諱命孫全州■〔人〕高麗門下侍中諡文成阿爲上祖我 朝集賢殿■(直)提學諱霮號月塘之玄孫也曾祖諱得之號栗軒官漢城少尹祖諱自睦官縣監考諱汾 贈上將軍妣淑夫人昌寜成氏公宣川府使都摠經歷配淑夫人延安李氏郡守登全女墓粉土洞縣監公墓下西向雙兆今距公之世已四百有餘年矣家牒所錄不過如此雖字號生卒年亦皆不傳况乎家政郡治之懿乎夫杞宋王之〔者〕之後■〔以〕其文獻不足徵故聖人不言夏商之禮顧此碑役何敢爲一毫無據之言乎但嘗見公之次允希汀德村集有德村被薦入北之日■〔以〕孝養事囑其伯兄進士及功成還朝之日 中廟嘉之歎賞以官公固謝曰滅狄臣職何賞之有且言歸養云云 上特賜東岦山一區今遠孫追先孝以營墓碑此可銘也且公繼祖塘栗之烈垂後德慕順農之裕俱以忠孝師傅著■今古亦可書也男長希潤成均進士次希汀 贈兵曹參判享書山院進士生鎭河工曹參議兵參生鎭洪禦侮副司果鎭河生汝浩參奉主簿司果生英佑司僕寺副正英俊禮賓寺正參奉生安慕■〔菴〕直長與子二順堂壬辰倡義募軍納米享道溪院當〔富〕通德郞寅工曹佐郞容副正生寬■〔僉〕樞寔中樞府事宏主簿寺正生宣奉事密奉事守主簿寧主簿銘曰 上承祖作下啓子述公之無憂周辟彷肆大小事殊隱顯理■〔達〕遠孫追孝盡誠治碣欝欝粉崗五尺有屹配德同原千秋芬苾 己丑至月上澣族後孫■〔崔〕秉心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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