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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扶安郡) 부녕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지도(地圖) 1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사회-지리-지도 崔炳郁 崔炳郁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군 부녕면 연곡리에 위치한 석동산의 지도 부안군(扶安郡) 부녕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지도(地圖)이다. 이곳은 전주최씨 부안문중(扶安門中)의 재실(齋室)인 석동재(席洞齋)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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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元齋) 하기(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戊午十一月十二日 戊午十一月十二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오년 11월 11일부터 기미년 3월 16일까지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원재에서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 무오년(戊午年) 11월 11일부터 기미년(己未年) 3월 16일까지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원재(元齋)에서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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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반와소용기(反瓦所用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庚辰三月 庚辰三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경진년 3월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기와 공사에 지출된 내역을 기록한 문서. 경진년(庚辰年) 3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기와 공사에 지출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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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회계기(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戊午三月卄日 戊午三月卄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오년 3월 21일부터 기미년 3월 16일까지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회계기. 무오년(戊午年) 3월 21일부터 기미년(己未年) 3월 16일까지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회계기(會計記)이다. 색조출급조(色租出給條) 3석 5두 등의 항목이 실려 있다. 회계기의 일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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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회계기(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丁巳三月 丁巳三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사년 3월부터 무오년 정월까지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회계기. 정사년(丁巳年) 3월부터 무오년(戊午年) 정월까지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회계기(會計記)이다. 처암공파와 참봉공파의 기록이 나오고, 도조(賭租) 수납 기록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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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제수전기(祭需錢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경제-토목/건축-치부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제수전 납부 기록.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제수전기(祭需錢記)로, 네 사람의 백미 납부 사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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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관련 명단(名單)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각 고을에 사는 부안김씨의 명단. 부안(扶安) 각 고을에 사는 부안김씨(扶安金氏) 관련 명단(名單)으로 추정되지만, 어떤 목적으로 작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중에 김병헌이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00년대 후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관문서의 일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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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 고사(告祀) 위차(位次)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열린 고사의 위차.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열린 고사(告祀)의 위차(位次)이다. 옹암공, 고궁당공, 사성공, 처헌공, 검열공, 처암공, 봉사공 등 각 위패의 합설과 위차를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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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계전(參奉公派契錢) 밧자기(捧上記)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경제-회계/금융-밧자기 乙未十一月 乙未十一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을미년 11월에 부안의 전주최씨 참봉공파계에서 작성한 밧자기. 을미년(乙未年) 11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에서 작성한 밧자기(捧上記)이다. 계원들이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계원들로부터 거둔 돈의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가을의 강신(講信) 때로 추정된다. 차기정(車奇定)과 김찬경(金贊敬)이 각각 15냥을 납부했으며, 최내순(崔乃順)은 32냥을 납부했다. 배병환(裵丙煥)은 14냥을 납부하였고, 김이중(金理仲)은 7냥 5전을, 김치명(金致明)은 25냥을, 최공일(崔公一)은 5냥 5전을, 최의정(崔義正)은 10냥을 각각 납부했다. 그리고 12일에는 최사언(崔士彦)이 37냥 5전을 납부했고, 최인보(崔仁甫)가 4냥을 납부했다. 한편 문서의 왼쪽에는 11월 10일에 계에서 최인보, 배병환, 차기진, 배정술 등에게 돈을 지출한 내역을 적은 출급기(出給記)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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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谷序余老且病閣筆硯久何敢人號哉然得聞鄭友寅韶之口則崔處士秉禹眞君子人序號春谷烏可辭夫春其氣和谷其地幽幽谷和春乃萬物發生之始餘何可量也盖嘗聞秉禹氏卓然湖南名士容用余老毫贊然不阿好故爲之序系之以詩曰谷有盤君子之居李愿去矣秉禹攸廬谷有口君子之扃鄭眞去矣秉禹攸耕號始鬼春谷亦谷我有所祝幽遷喬木己巳冬十一月旣望資憲大夫掌禮院卿弘文館學士碧珍李愚冕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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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隱齋小序吾齋成吾以名吾齋以沙隱者固以據吾本號而推及之也客有登齋而叩之曰何不別擇齋名惟以本號加之乎吾應之曰齋是吾身爰居之所則身與齋同一吾也故如此云矣客曰隱固今日十分義諦則切宜乎僻岡窮峽時人不知之處何必爲此歷歷沙上人而但借跡於隱乎吾曰吾之隱於沙不敢追跡於河武海襄之擇地避世以八隱也盖吾八世祖沙浦公自龍城之芳磎始移家於此下沙里因爲世居故追慕先蹟之在玆且身爲漁釣之侶於斯也客曰齋居何事爲了當吾曰魚鳥爲隣觴咏自娛以終餘年計也客曰噫爲人父祖者其於日用動作固當貽謨於子孫也奚止於一生閒逸乎昔柳節度中門東小齋固美其家法百原山書齋必正其衣冠而篤學武夷山隱求齋必求長其道心遂成千古典型今此齋主人亦爲隱此而熟講其先祖沙浦公所讀書以求道心之長以篤學業之正以治家法之美要得師法乎彼三齋之凖的豈非立齋之嘉猷乎吾聞客言而惴惴以自警省且詳道其言於家弟與兒孫輩使之激勵因爲序次當日主客立論庶欲有補於垂世成立之…▣矣…▣申中戊寅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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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이식(李植) 연촌선생가전시문록후서(烟村先生家傳詩文錄後叙) 고문서-시문류-서 교육/문화-문학/저술-서 崇禎丙子七月之望 李植 崇禎丙子七月之望 李植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636년(인조 14) 7월에 이식이 연촌 최덕지의 가전시문록에 쓴 후서. 1636년(인조 14) 7월에 이식(李植)이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 1384~1455)의 가전시문록(家傳詩文錄)에 쓴 후서(後叙)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관(史官),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 김제군수(金堤郡守), 남원부사(南原府使) 등을 지냈다. 문종이 즉위한 후 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에 기용되었으나,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당시 그의 나이 아직 70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임금을 비롯하여 조정의 신료들이 그에게 머물러 있기를 바랐으나, 연촌은 전라도 영암에 존양(存養)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소당(小堂)이 있다면서 이제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귀향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연촌이 귀향할 때 조정의 명사(名士)들이 시부(詩賦)를 지어주며 전별했으며, 존양루에도 제문을 지어주었다. 또 장수를 누리고 많은 후손을 두고 있는 연촌의 부친 월당(月塘) 최담(崔霮, 1346~1434)을 칭송하는 시문도 많이 지어 주었다. 전주최씨 문중에서는 이들 시문을 오래도록 소중하게 지켜왔지만 정유왜란을 거치면서 존양루가 훼손되고 시문도 산일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제 향리의 사람들이 연촌을 위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연촌의 7대손 전 참봉 최정(崔珽)은 남아 있는 시문 90여 수를 수습하여 시문집을 간행하면서 이식에게 발문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였다. 이식은 연촌이 순실하고 순덕한 학자로 백세(百世)의 사표가 되는 분이라고 하였다. 또한 당대에 고관에까지 올라 장래가 촉망되었지만 갑자기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결과적으로는 곧바로 불어닥칠 문종의 죽음과 노산군의 양위(讓位)에 이르는 어려운 시기를 모면할 수 있었으니, 얼핏 보기에는 기미를 알아채고 화를 피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명석하다고 하여 어찌 그같은 천수(天數)를 미리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이식은 ?주역(周易)?의 겸괘(謙卦) 단사(彖辭)에서 "천도는 차서 넘치면 허물어뜨리고 겸허하면 더해 주며, 지도는 차서 넘치면 변화시키고 겸허하면 계속 흘러가게 하며, 귀신은 차고 넘치면 재앙을 내리고 겸허하면 복을 주며, 인도는 차고 넘치면 싫어하고 겸허하면 좋아한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라는 구절과,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서 "화락하신 군자님은 신명이 보우한 바이로다.[豈弟君子 神所勞矣]"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 모든 일이 연촌의 순수한 덕성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관계에서 갑자기 물러난 것은 연촌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형 최광지(崔匡之)와, 최광지의 아들 옹암(甕菴) 최생명(崔生明)도 마찬가지였다. 세속적인 명리를 추구하다가 단종대와 세조대에 패가망신한 사람들과 가문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니 전주최씨의 오늘이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연촌을 비롯한 선대의 올바른 처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후서를 지은 이식은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남궁외사(南宮外史), 택구거사(澤癯居士) 등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설서(說書), 북평사(北評事), 선전관(宣傳官) 등을 지냈다. 1618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관직에서 물러나 경기도 지평(砥平)으로 낙향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이조좌랑에 기용되었으며, 뒤에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이식은 1642년에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할 것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가 그 뒤 탈출하여 귀국했다. 1643년 대사헌과 형조·이조·예조의 판서 등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이식은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힌다. 문집으로는 『택당집(澤堂集)』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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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령김씨족보등본(扶寧金氏族譜謄本)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사회-가족/친족-족보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령김씨족보의 등본. 부령김씨족보(扶寧金氏族譜)의 등본(謄本)이다. 내지에 ‘崇禎四丙午暮春刊印’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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