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烟村崔先生家錄後跋昔我先君子題叙烟村崔先生家錄後四十餘年先生八世孫世榮夢與氏與其大胤邦彦就舊錄正其舛譌而重刊之尤齋宋先生續題跋語其末有曰諸序跋中澤老最詳而其所稱引者亦甚重矣只以知幾云者爲小而似若不足以稱先生者然然則易何以曰知幾其神也耶澤老必有深意幸夢與問於其胤子夢與氏以是命余且索一言噫不肖幼無知識未嘗以此義奉質於家庭今於長者之問以何辭奉對也然朱夫子解易知幾之義只以言行中節纔過些子便不是知幾爲訓而臨川吳氏乃以穆生劉柳於去就之際能見幾與否爲說未知果合於易之本義而朱子又釋詩明哲保身之義曰明哲只是曉天下事理順理而行自然灾害不及其身今人以邪心讀詩謂明哲是見幾知微先占便宜如楊雄說以此而觀先生且觀先君子所以發明先生心事者世雖稱先生炳幾保身然先生之退在景泰辛未 顯陵賓天之促 魯山遜位之遽皆天數也非明哲所可推測惟天道虧盈益謙愷悌君子神所勞矣先生急流勇退道與神謀自不蹈於大難云者正與朱夫子易詩兩說相符然則先君子深意其在斯歟且念先君子示兒代筆有曰中庸聖賢相傳明道之書也下位傳述兼明士君子處世處變之義如素位而行明哲保身等語皆有感於所遭之世因以著訓垂戒於此跋又以正學稱先生盖其揭樓扁以存養者以中庸戒懼爲第一義殆是有聞於聖賢相傳之道而處世處變自中其節非若見幾知微先占便宜者然此先生之所以爲高而先君子之所以發明者有異於世人之見也歟小子愚矇不敢自信敢以是復於長者仍書其說以塞夢與氏之請云歲舍甲子孟秋上澣德水後人李端夏敬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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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년 박팽년(朴彭年) 연촌선생퇴휴시송별시발(烟村先生退休時送別詩跋) 고문서-시문류-발 교육/문화-문학/저술-발 景泰二年十一月初八日 朴彭年 景泰二年十一月初八日 朴彭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451년(문종 1) 11월에 박팽년이 연촌 최덕지를 위해 지은 송별 시문집에 부쳐 작성한 발문. 1451년(문종 1) 11월에 박팽년(朴彭年)이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를 위해 지은 송별 시문집에 부쳐 작성한 발문이다. 연촌은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관(史官),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 김제군수(金堤郡守), 남원부사(南原府使) 등을 지냈다. 문종이 즉위한 후 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에 기용되었으나,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당시 그의 나이 아직 70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임금을 비롯하여 조정의 신료들이 그에게 머물러 있기를 바랐으나, 연촌은 전라도 영암에 존양(存養)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소당(小堂)이 있다면서 이제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귀향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조정의 많은 사대부들이 연촌을 추모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들을 작성하여 책을 만들었는데 이미 40여편이 넘었다.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는 박팽년에게 시는 이미 지어서 책을 만들었으니 발문이나 적으라고 권유하였다. 높은 벼슬에 올라 축하시를 구하여 책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려고 하여도 그 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갑자기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는 연촌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축하시를 바치는 것이야말로 연촌의 높은 덕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박팽년은 이 발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박팽년은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이고, 회덕(懷德) 출신이다. 1432년(세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갔다. 세종 때 신숙주, 최항(崔恒), 유성원(柳誠源),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등과 함께 집현전에서 경학을 연마하면서 명망을 얻었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뒤에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박팽년을 포함하여 사육신이 사면 복권된 것은 그로부터 2백여년이 훨씬 지난뒤 1691년(숙종 17)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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烟村▣▣(先生)遺[退]休時送別詩跋人有功名富貴能動一世而不可以得匹夫匹婦之心者又有卑巽謙退若不自勝而有足以負天下後世之望者是豈非人心不可以勢服而公議自有所在也耶今完山崔先生上書乞歸士林相稱道知與不知莫不欽慕夫使先生在朝其名聲爵位當不止此而人之欽慕者宜於是乎在今也退休田里已不與世相關而萬口咨嗟稱頌不已者何耶其所以感人心而負物望者有不在彼而在此也余於是局從先生有年日接談論固已服其高義頃者牢於職事阻濶數年矣今還舊局也則先生已告歸離別之情詎可言歟方欲賦詩以叙其意而泛翁氏謂余曰諸公有作卷已成矣子當跋其尾余開卷奉讀詩凡四十餘篇道先生出處之高斯文眷戀之意甚詳一一皆可傳於後也盖世之人有拜大官而求賀詩以傳後者請之勤而或累年不過數篇先生一朝罷官還鄕求以自晦而人自榮之爭先歌頌其夛乃至如是其感乎人心者可知余於是益信公議之不可誣也諸公之詩已足余不作可也遂書卷端云景泰二年十一月初八日中訓大夫集賢殿直提學知製 敎 經筵侍讀官兼春秋館記注官平陽後人朴彭年仁叟跋号醉琴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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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제학파문안단자(提學派門案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제학파에서 작성한 문안단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제학파(提學派)에서 작성한(門案單子)이다. 제학파의 문안을 만들기 위하여 족원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단자의 하나이다. 부안군 보안면 입석에 사는 최동옥, 최영렬, 최봉렬의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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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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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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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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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정해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안초건(門案草件)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丁亥正月 日 丁亥正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해년에 부안 전주최씨 각 파의 종원들의 관계와 자, 생년을 기록한 문서의 초안 정해년(丁亥年)에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사성공파(司成公派), 처암파(處菴派)등 각파의 종원들의 관계와 자(字), 생년(生年), 관직명(官職名), 지명(地名)을 기록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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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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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原告民金東容金洛周被告崔炳 崔光事實은民等之十五世祖漢城少尹墓所在於本郡席洞山이온바外孫이崔塚을許葬於稍遠之地矣러니崔之孫이乘其本孫之微弱ᄒᆞ야次次倒葬의計釀奪麓하야倡出衿得之說ᄒᆞ고使渠外先墓로歸之僞塚ᄒᆞ야斫碑開逕ᄒᆞ야做變百端故로去庚申의呼訴京營ᄒᆞ야關飭到付則本官親審査覈하시와幷山地松楸을一一推給이고墳傍松을卽日開拓하시와山地四標을尺量ᄒᆞ야報于京營ᄒᆞ야仍成與立案完文하야斷案이已成이오나壓逼崔塚은在法當掘故로去辛酉의蹕路擊錚하야至承詳査督掘之判敎이오나終不掘移故로民之族一人而仍辨私掘彼崔則律在一人而挾勢ᄒᆞ야幷勘九人而旣掘之塚을兀然還築故로去丙寅의再擧鳴錚하와判敎內에令道臣으로掘移後狀聞이온則彼隻이以不掘之計로開拓墓門松을虛張萬株故로兩邑査官이定價七十兩ᄒᆞ야給於崔捧侤矣러니又於壬申의爲被誣陷ᄒᆞ야再徵二万兩하니此是讐上之讐오寃中之寃也라自庚申推麓以來로訟之反覆이但其掘被塚勘律之事와徵松価再徵之事也而山地則一無動搖矣러니去丙申春의彼崔가以私和說로自請分界이되民等不爲應從이고丁酉戊戌年間의繡衣道與觀察使親審定界이되終不歸正이삽더니今此國有民有地調査之時의彼崔가計在永奪하와暗然測量의偃然自主則其設奸計狀을口見奸肚라民等之累世血寃髓痛이實爲徹天이압기前後狀軸與完文立案을粘連請願하오니照亮ᄒᆞ시와俾此殘民으로毋至再奪先隴之地望要三年二月城主閤下左開金有相金珪相金均相金義相金奭相金學容金基淳金秉容金佑容金洛瑾金洛珣金洛乙金千容金鍾善金益容金芝容金玉+憲容金匡容金貞容金駿容金周容金右容金寬容金洛柳金洛鋒金洛琪金敎潤金秉述等彼告가初無단本申請者ᄒᆞ니不必煩訴事 三月十六日 再二百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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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07년 부안 석동산(席洞山) 가처분결정서(假處分決定書) 고문서-첩관통보류-지령 법제-소송/판결/공증-지령 陰八月三十日 陰八月三十日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07년 부안 석동산에 대한 가처분결정서 1907년 부안(扶安) 석동산(席洞山)에 대한 재판소의 가처분결정서(假處分決定書)이다. 음력 8월 30일에 석동산 신고서를 제출하여 봉덕리 15정(町) 3반(反) 3(묘畝) 28(步)에 대한 사방 경계를 밝혔고, 10월 8일 송지가처분(松枝假處分)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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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무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처암공파(處菴公派) 색조(色租) 밧자기(捧上記)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경제-회계/금융-밧자기 戊申十一月 戊申十一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신년에 부안의 전주최씨 처암공파에서 작성한 색조 밧자기. 무신년(戊申年) 11월의 문회(門會) 때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처암공파(處菴公派)에서 작성한 색조(色租) 밧자기(捧上記)이다. 계원들이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계원들로부터 거둔 색조의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행하리의 송희문(宋希文)이 12석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 중 5두 2승은 아직 내지 못했다. 연곡의 심정희(沈正希)는 3석 10두를 납부했으며, 모산의 김명회(金明會)는 1석 10두를 납부했으며, 이정숙(李正淑)은 1석 10두를 납부했다. 이밖에 석제의 묘산댁이 3석을 납부했고, 외갈의 김치숙(金致淑)이 1석 10두를 납부하였다. 도조의 합계는 22석 10두이어야 하지만, 이 중 5두 2승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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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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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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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경오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자하기(自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庚午十二月 庚午十二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경오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지출한 비용을 기록한 문서. 경오년(庚午年) 12월부터 신미년 8월까지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지출한 비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갈촌리, 석제리, 옹정리 등 각 마을별로 부녀들이 상(床)을 차린 수와 그 비용을 기록한 일종의 상수기(床數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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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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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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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하기(元齋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丁巳三月十六日 丁巳三月十六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사년에 부안 전주최씨 원재의 지출내역을 기록한 장부. 정사년(丁巳年) 3월 16일부터 무오년 3월 21일까지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元齋)의 지출내역을 기록한 하기(下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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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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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무오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각파제수위차기(各派祭需位次記)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戊午正月七日 戊午正月七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오년 정월 7일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각파의 제수 위차기. 무오년(戊午年) 정월 7일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각파제수위차기(各派祭需位次記)이다. 참봉파, 처헌파, 봉사파, 사성파 등 각파의 위차 수와 해당 위차의 제수를 맡은 사람의 성명을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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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지도(地圖) 잔편(殘片)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사회-지리-지도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유절재 소장의 지도 잔편 유절재 소장의 지도로, 도면의 일부여서 어느 지역인가는 알 수 없으나, 묘소 또는 소유 임야와 관련하여 작성한 지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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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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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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