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기미년 부안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 도유사(都有司)·총무(總務)·유사(有司) 망(望)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정치/행정-임면-망기 己未正月七日 己未正月七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미년 정월 7일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도유사, 총무, 유사를 임명하는 문서. 기미년(己未年) 정월 7일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도유사(都有司), 총무(總務), 유사(有司)를 임명하는 문서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기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회계기(參奉公派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己酉秋 己酉秋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유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참봉공파에서 작성한 회계기. 기유년(己酉年) 4월 15일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참봉공파(參奉公派)에서 작성한 회계기(會計記)이다. 그 전년인 경술년의 구월의 추감기(秋監記), 그리고 이듬해 무신년의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기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옹암공비역기(甕菴公碑役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己酉六月 日 己酉六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유년 6월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옹암공의 비역에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 기유년(己西年) 6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옹암공(甕菴公) 최생명(崔生明)을 비역(碑役)에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을해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수세책(元齋收稅冊)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경제-회계/금융-밧자기 辛未年度 昭和六年度 辛未年度 昭和六年度 扶安 全州崔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을해년에 부안의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원재 수세책. 을해년(乙亥年) 12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원재수세책(元齋收稅冊)이다. 문중에서 받은 대세(垈稅)를 마을별로 정리한 명부이다. 기재 순서는 마을명, 지번과 대세의 금액, 대지를 빌린 사람들의 성명 등으로 되어 있다. 산직리평, 옹상리평 등 두 곳 7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문서의 맨 끝에 을해년도의 지세금(地稅金)으로 2월 50전이 입금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원재수세책에 이어서 '辛未年門中土地 辛未年度 昭和六年度 門中土地結稅'라는 제목으로 1931년도의 전주최씨문중의 토지 결세가 연곡리와 신흥리, 옹중리를 대상으로 기재되어 있다. 연곡리는 원재(元齋)의 대지와 논을, 신흥리와 옹중리는 논을 대상으로 경작 규모와 도조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수세책이 작성된 을해년은 1935년도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무자년 석동재(席洞齋)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子九月 日 戊子九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자년에 석동재에서 작성된 추감기. 무자년(戊子年) 9월에 석동재(席洞齋)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자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석동평(席洞坪) 연곡리와 통정리와 신흥리 등 세 곳에 있는 전답의 지번과 지목, 지적, 경작지의 종류, 경작인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연곡리에 있는 전답은 16곳이며, 경작인 중 안복동(安福同)이 연곡리 내 8곳을 경작했으며, 황종술(黃鍾述)이 6곳을 경작했다. 연곡리의 전답은 모두 8,140평이다. 통정리의 전답은 1,1517평이다. 신흥리의 전답은 1,191평이다. 이 성책문서의 끝에는 무자추향제수전기(戊子秋享祭需錢記)가 실려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신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辛酉九月 日 辛酉九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유년에 작성된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추감기. 신유년(辛酉年) 9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신유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묵교평(墨橋坪)과 통정평(通井坪), 정해평(井海坪), 마전평(麻田坪) 등에 있는 전답의 경작인과 두락 수, 도조(賭租)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묵교평에서는 최응수가 7두락을 경작하여 2석을 조로 납부했으며, 통정평에서는 최경도가 5두락을 경작하여 1석 15두를 조로 납부했다. 정해평에서는 최경선이 5두락 1곳과 4두락 3곳 등 4필지 17두락을 경작하여 5석 40두를 조로 납부했다. 마전평에서는 최경직이 2두락을 경작하여 10두를 조로 납부했으며, 이명언이 7두락 1곳과 3두락 1곳을 경작하여 모두 5석 18두를 조로 납부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무자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子秋 戊子秋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자년에 부안의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된 추감기. 무자년(戊子年)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자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신기평(新基坪)과 통정평(通井坪), 정해평(井海坪) 등에 있는 전답의 두락 수와 경작인, 도조(賭租)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신기평에서는 최순구와 허익효가 7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6두의 도조를 납부했으며, 통정평에서는 최성도가 5두락을 경작하여 1석 12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정해평에서는 최경선이 5두락 2곳과 4두락 2곳, 3두락 1곳 등 5필지 21두락을 경작하여 6석 36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그리고 최경원이 7두락과 3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3석 10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정사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叅奉公派)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丁巳八月二十七日 丁巳八月二十七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사년에 부안의 전주최씨 참봉공파에서 작성된 추감기. 정사년(丁巳年) 8월 27일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叅奉公派)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정사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하장평(下長坪)과 행안면(幸安面) 묵교리평(墨橋里坪), 상서면(上西面) 통정평(通丁坪), 하서면(下西面) 정해평(井海坪) 등에 있는 전답의 경작인, 두락 수, 도조(賭租)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하장평에서는 김우옥, 김재중, 이경일 등 4명이 4필지 18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8석 20두의 도조를 납부했으며, 묵교리에서는 최응수 등 2명이 13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모두 4석의 도조를 납부해야 하는데, 둘 다 그 중 2두씩을 납부하지 못했다. 통정평에서는 최경원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5두의 도조를 납부해야 하지만 그 중 5두를 납부하지 못했다. 정해평에서는 최성일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0두의 도조를 납부해야 하지만 그 중 5두를 납부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경선은 3필지의 논 10두락을 경작하여 2석 34두의 도조를 납부해야 하지만 그 중 5두를 납부하지 못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제수물목(祭需物目)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된 제수물목.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제수물목(祭需物目)이다. 작성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19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옹암공세일제제관분정(甕菴公歲一祭祭官分定) 고문서-치부기록류-분정기 교육/문화-서원/향교-분정기 己未三月十日 門中 崔澤洪 등 15인 己未三月十日 1919 全州崔氏門中 崔澤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작성한 옹암공과 고궁당의 1919년 시제 담당 제관의 명단 1919년 3월 10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중(門中)에서 작성한 문서이다. 1년에 한 차례 지내는 옹암공(甕菴公)과 고궁당(固窮堂)의 시제(時祭)를 담당할 헌관(獻官) 및 봉향관(奉享官)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옹암공 시제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선정된 최택홍(崔澤洪)과 고궁당 시제의 초헌관으로 선정된 최판홍(崔判洪) 등 모두 14명의 이름이, 그들이 거주하는 마을의 이름과 함께 나와 있다. 옹암공은 최생명(崔生命)을, 고궁당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