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郡居儒生朴有安謹拜上書于城主閤下伏以母之烈猶難况繼以子之孝孝烈雙全於一家者乎本郡士人朴昌俊之母晋州河氏自結縭後事姑嫜以禮敬夫子如賓閨門懿範素著里隣而其夫偶羅難醫之疾三年伏枕竟至奄忽之境河氏操刃割耳一塊和糜飮之以其經年之病宿痼遞見翌日之乃療想必神明眞感之誠竟獲靈效尙今偕老而其子昌俊踵乃母之遺訓克供爲子之孝職菽水承歡昏晨省安逈出俗曰鄕黨稱孝民等俱以秉彝是好之性見一善行聞一善言尙不欲沒人之善况一家烈孝之兼備乎玆敢齊籲將此孝烈之行具報于上府傳啓于 天庭俾蒙褒㫌使此雙全之行毋至湮沒之地千萬祈恳之至城主 閤下癸卯四月 日 朴根祚 曺文承 朴學性 朴聖學 金鳳殷 韓承琦 曺克憲 朴忠林 朴東琪 李碩根 朴鳳輝 郭日魯 金贊五朴禮祚 河明龍 李承祚 梁漢鍾 朱永伯 李士黙 金昌齕 等官[着押](題辭)母烈子孝世所罕有感歎而已第當有報闡之日向事二十七日[印][印][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73년 청송심씨보소(靑松沈氏譜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酉 閏六月日 靑松沈氏譜所 各 地域 靑松沈氏宗中 癸酉 閏六月日 靑松沈氏譜所 各地域 靑松沈氏宗中 전라북도 익산시 靑松沈氏譜所(흑색, 정방형) 함열 남당 청송심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73년(고종 10) 윤6월에 청송심씨보소(靑松沈氏譜所)에서 각 지역 청송심씨 종중(宗中)에 보낸 통문(通文). 1873년(고종 10) 윤6월에 청송심씨(靑松沈氏) 보소(譜所)에서 경향(京鄕) 각 지역에 있는 청송심씨 종중(宗中)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청송심씨 종가는 족보를 편찬한 후 40년이 지나 그 동안 세월이 지난 만큼 자손들의 변화가 많아져 다시 족보를 편찬하게 되었다. 이에 각처에 흩어져 있는 종중에게 통문을 보내 모든 파(派)는 종가의 대표로 유사(有司)를 정하여 그로 하여금 현재 자손들의 상황 즉 사망과 출생 등의 내용을 포함하여 구보(舊譜)와 상이(相異)한 점을 빈틈없이 조사하여 단자(單子)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족보를 간행할 때 필요한 사항을 일일이 범례(凡例)로 정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皮封]菅村棐几下拜納沙上盤上不圖令季兄若允兄惠枉 賻典銘感季兄之夙願抱曾所艶慕而允兄之淸雅韞藉不問可知爲法家賢肖子弟爲德門賀孰大於是邇來起居憑悉無遺兼又承惠緘幷賜寬譬伏感伏感生重庭氣力長夏失寧入秋來始克復常伏幸而又以寒嗽添若旋復悶迫家親宿祟添損焦灼度日而舍仲祥朞隔月摧割之情益復如新令季令允修程跋涉似不無困憊而旋又啓發暢敍未暇悵缺增深忙草不備上盤書甲戌八月二十五日生奇宇萬拜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76년 기양연(奇陽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菊念六 奇陽衍 丙菊念六 奇陽衍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76년(고종 13) 기양연(奇陽衍)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 1876년(고종 13) 9월 26일에 복제(服弟)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서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나지 못한지 오래되어 그리워하였는데 뜻밖에 상대방의 동생이 편지를 가지고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고 눈이 밝아지는 것 같다. 이즈음 형제분들이 건강하다니 크게 위로된다. 복인(服人)인 자신은 올여름엔 단문(袒免; 9촌의 상)의 친족상을 당하여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산 아래로 지는 해처럼 되었다. 산송(山訟)은 사리가 곧은데도 패소를 당해 분하다며 임실 관아에 정소하였는데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가벼워 가망이 없다. 상대방 동생의 일은 지시하신대로 기록하였으니 열어본 뒤에 전하라고 하였다. 기양연은 기정진(奇正鎭)의 재종질이다. 1876년 1월 25일에 기정진의 아들 기만연(奇晩衍)이 사망하였으므로, 이를 근거로 원문의 '丙菊念六'을 병자년(1876) 9월 26일로 추정하였다. 기양연의 자는 자민(子敏), 호는 백석(柏石)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기윤진(奇允鎭)이다. 기정진의 재종질로, 일찍이 종숙부인 기정진에게 수학하였으며, 1867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척양사론(斥洋邪論)을 지었으며, 문과에 급제한 뒤에 곧바로 사헌부 지평과 장령에 제수되었다. 옥구현감을 역임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皮封]安碩士貞晦宅入納只沙▣本倅候書來此以後卽欲一晉而公擾多端果有意未遂耳謹詢蜡序體居萬謐仰庸慰祝記下所祟痰咳遇序添肆許多邑務年底惱擾公私悶憐無以盡喩如深近者候節留不備候禮或有入府之駕幸一先顧如何使禮吏通利好矣臘月旬三 記下尹宖善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74년 기우만(奇宇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戌八月二十五日 奇宇萬 管村 甲戌八月二十五日 奇宇萬 管村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74년(고종 11) 8월 25일에 사상(沙上)에 사는 기우만(奇宇萬)이 관촌(管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모인에게 보낸 서간(書簡). 1874년(고종 11) 8월 25일에 사상(沙上)에서 기우만(奇宇萬)이 관촌(管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동생과 아들이 뜻밖에 방문하여 부의(賻儀)를 표해 주어 고맙다. 동생의 숙원(夙願)과 포부는 부러워하던 바였고, 상대방 아들의 청아한 도량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만하니 법도 있는 가문의 현명한 자제들이라고 칭찬을 하였다. 그들을 통해 요즘 상대방의 기거에 유감이 없음을 알았으며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조부의 기력이 여름엔 편치 않다가 가을이 되면서 평상시처럼 회복하여 다행이었는데 다시 감기와 가래로 걱정스럽게 되었다고 하였다. 부친의 묵은 병도 나빠져 애태우며 날을 보내고 있는데 다음 달이면 중형(奇宇蕃)의 상기(祥朞)가 다가오니 애통함이 다시 더욱 새로워진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동생과 아들이 가는 길에 급히 편지를 쓴다고 하였다. 사상(沙上)은 기정진이 살던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幼學李燮奎進士二等第二十三人入格者咸豊二年三月十六日[印](別紙)幼學李燮奎進士二等第二十三人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6년 안태섭(安泰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子蜡月旬七 朞服族從泰燮 丙子蜡月旬七 安泰燮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936년 12월 17일에 기복인(朞服人) 안태섭(安泰燮)이 보낸 서간(書簡). 1936년 12월 17일에 기복인(朞服人) 안태섭(安泰燮)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식이 막힌 지 두서너 달인데 문득 편지를 받으니 감사하다. 부모님 모시고 상대방과 가족들에 대해 걱정했으나 집안이 다복하다니 위로가 된다. 다름 아니라 대보(大譜) 총 41책을 철도편으로 오수역(獒樹驛)으로 운송하고 파질(派帙)은 백평(白坪)의 순칠(舜七)이 가는 길에 머지않아 부치겠다. 자신은 18일에 대구 발 기차로 떠나 다음날 아침 오수에 당도할 것이니 상대방의 아들을 오수역의 양대규 주점(梁大規酒店)에 보내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겠다고 하였다. 위의 순흥안씨 족보 병자보는 1936년에 간행되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貽阻數朔忽擎惠圅感荷良深謹承審酷塞轉劇省餘眷節仰庸獻慮而寶庥地鴻禧實爲慰賀就大譜全部四十一冊以鐵道便輸送于獒樹驛派帙則白坪舜七上來專管不遠間當付致也族從旬八發大邱車翌朝必抵獒樹矣幸須諒此令胤起送于該驛梁大規酒店暫爲面敍至企至企勿泛如何餘留姑此不備謝禮丙子蜡月旬七朞服族從泰燮拜謝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병술년 김용배(金龍培)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戌三月 金龍培 官 丙戌三月 金龍培 全州府尹 전라북도 전주시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병술년 3월에 북일면(北一面) 매교(梅橋)에 사는 화민(化民) 김용배(金龍培) 등이 전주부사(全州府使)에게 올린 상서(上書). 병술년 3월에 북일면 매교리에 사는 화민 김용배 등이 전주부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김용배 등은 본디 자신의 가문이 청빈하여 선조의 제사를 받들 위토전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병인년에 당내의 제족들이 각각 조금씩 재물을 모아 계를 설립하고 식리를 통해 얼마간의 위토전을 매입하였는데, 삼종숙 민오가 종손을 칭탁하여 여산에 사는 김사희, 고산에 사는 서여집 등과 작당하고서 전답 문권을 위조하여 은진에 사는 윤감역댁에 몰래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종숙이 투매한 제전을 찾아주는 한편, 투매에 가담한 이들을 엄히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전주부사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하고자 삼종숙 민오를 잡아 대령하도록 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北一面梅橋化民金龍培等謹再拜上書于城主閤下伏以家禮曰祭田不得典賣禮經曰士無田則不祭祭田所重之義與他田自別況於支孫擅自偸賣以營肥己之私乎民等家世淸貧素無遺來位畓則四代忌祭親盡墓祭舞以供籩豆秶盛之需故去丙寅秋與黨內諸族畧畧鳩財剏設一契其時本財卽不過壹石租也勤艱詰拒計其息利買得祭田幾許斗落是乎所其間連値歉荒則以其祭田所出租或稱其宗中稅納之莫辦者或賑其門內窮節之未炊者名雖爲先之祭田實是爲子孫之義庄也每感先世之積蔭庶效豺獺之報本矣嗚呼家運零替民之三從叔敏五素是浮浪不肖之人假托宗孫符同礪山金士希高山徐汝執爲名者僞造畓券放賣於恩津尹監役宅云而乃使金徐兩人摘奸畓廤欲爲移作於他人處世豈有如許無法無據之事乎民等不勝抑鬱不避悚忸敢此齊籲伏乞洞燭敎是後特爲 題下一以治三從叔偸賣祭田亂宗圮族之罪一以縄金徐兩人稱託士夫侵漁殘民之罪以杜來弊使此祭田毋至見奪得奉先祀之地千萬幸甚行下向敎是事城主閤下 處分丙戌三月 日後宗孫金龍培次宗孫金駿培門長金明植次門長金顯敎等祭田北二作卑字畓二夜味四斗落所耕十六負七束受字畓八夜味七斗落所耕二十八負西一作張字畓一夜味三斗落所耕十七負三束(題辭)查實懲礪次所謂敏五捉待事初七日 狀官[着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788년 한상기(韓尙箕)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乾隆五十三年六月十五日 進士韓尙箕 乾隆五十三年六月十五日 正祖 韓尙箕 서울특별시 종로구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0_001 1788년(정조 12) 6월 15일에 왕이 한상기(韓尙箕)를 조산대부(朝散大夫)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추증(追贈)하면서 내려 준 교지. 1788년(정조 12) 6월 15일에 임금이 한상기(韓尙箕)를 조산대부사헌부지평(朝散大夫司憲府持平)으로 추증(追贈)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따라서 한상기는 사후(死後)에 이 직에 제수되었는데, 조산대부는 종4품 상계(上階)요, 사헌부 지평은 정5품이었다. 문서의 왼편을 보면 '효행탁이증직사승전(孝行卓異贈職事承傳)'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한상기의 효행이 매우 뛰어나 이 교지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승전(承傳)'에서의 '전'은 '왕명(王命)을 뜻한다. 그래서 글자를 줄도 바꾸어 썼고 또 글자 위치를 높인 것이다. 요컨대 한상기는 왕명에 의해 이 교지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한상기는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낸 진사(進士) 한양오(韓養吾)의 삼남(三男) 한진상(韓震相)의 아들이었다. 자(字)를 상백(尙伯), 호(號)를 만희당(晩喜堂)으로 하였던 한상기는 1687년(숙종 13)에 태어났으며, 1747년(영조 23)의 정묘식년시(丁卯式年試)의 진사시에도 합격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위패도 남원 대산면의 고암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進士韓尙箕贈朝散大夫司憲府持平者乾隆五十三年六月十五日孝行卓異贈職事承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6년 한양오(韓養吾)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정치/행정-명령-완문 丙辰十一月日 丙辰十一月日 南原都護府使 전라북도 남원시 7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56년(철종 7) 11월에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가 한양오(韓養吾)의 후손들에게 발급해 준 완문. 1856년(철종 7) 11월에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가 한양오(韓養吾)의 후손들에게 발급해 준 완문이다. 완문이란 결정문이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판결문에 해당한다. 이 완문에서 말하는 '한공(韓公)'은,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1646년(인조 24년) 병술식년시(丙戌式年試) 진사시 합격자였던 한양오(韓養吾)를 가리킨다. 그를 참봉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냈기 때문이다. 본 완문에는 누가 발급해 주었는지가 적혀 있지 않지만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한양오의 후손들이 남원 오수면 용정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용정리는 조선시대에는 남원에 속했지만 지금은 임실 관내이다. 그리고 작성연대가 병진년으로 되어 있는데, 문서의 상태나 지질(紙質) 등으로 미루어 보아 1856년(철종 7)으로 추정하였다. 완문의 내용은 덕고방(德古坊) 저동(楮洞)에 있는 한양오의 묘를 관리하는 묘지기(墓直)와 묘노(墓奴)들에게 각종 요역(徭役)을 부과하거나 혹은 그들을 군오(軍伍)에 편입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남원도호부사가 이러한 조처를 취한 이유는 물론 한양오를 대우해 주기 위해서였다. 한양오와 같이 훌륭한 인물이 잠들어 있는 묘를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그 묘를 관리하고 있는 자들을 관에서 특별히 보호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덕고방은 남원 관내에 속한 곳으로 오늘날의 남원시 덕과면과 임실군 오수면의 일부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本州化民柳時春柳赫養柳炳養等謹齋沐百拜上書于城主閤下細細垂察焉民等始祖妣三韓國大夫人全州崔氏之墳墓在於府東面表石洞而定山直六名守護者于今五百有餘年矣以六名下還穀與雜役勿侵之意 營府完文昭然故前後別無受還侵役者一邑所共知也而今番還上以六山直名下出秩豈有如無前之變乎以士夫家山直五百餘年例頉之戶今爲受食懲納則爲其子孫者豈不寒心哉且山直不勝戶役之重大擔負出去則守護等節自今乃已京鄕子孫豈不冤枉乎緣由齊聲仰籲洞燭後依完文頉下山直六名以爲奠居之地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巳二月 日後 柳時春 柳赫養 柳炳養 柳福養 柳敏養 柳泗養 柳匡養 柳興養 柳基養 柳星養 柳英養 柳恒養 柳俊培 柳英喆 柳錫喆 柳宗喆 柳成培 柳錫培 柳相烈 柳詮 柳訓 柳詵 柳誠 柳記 柳諄 柳詢 柳譚 柳譔 柳諸 柳詠 柳龍根 柳誠根 柳哲根 柳泓根 柳寬根 柳弘根 柳善根 柳泰根 柳喆根 柳敬根 柳成根 柳判根 柳福根 柳鳳根 等官[着押][印][印][印][題辭]今番均還係是更張一從家座未有存拔果是例頉是去等自面內公議從長措處向事初十士首都尹洞頭民告金正祺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81년 류시춘(柳時春)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巳 月 日 幼學柳時春 柳赫養 柳炳養 巡相閤下 辛巳 月 日 柳時春 全羅道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都使[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3_01_A00012_001 1881년(고종 18)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시춘(柳時春) 등 43명의 전주류씨(全州柳氏) 일족이 순상(巡相)에게 올린 상서. 1881년(고종 18)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시춘(柳時春) 등 43명의 전주류씨(全州柳氏) 일족이 순상(巡相)에게 올린 상서이다. 이들은 이 상서에서 전주부 부동면 표석동에 있는 시조비(始祖妣)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묘소를 지키는 산지기(山直) 6명에 대하여 부과한 환곡과 잡역을 취소하여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시조비의 산지기에 대해서는 역을 부과하지 말라는 완문(完文)을 발급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이번에 이들에 대하여 적간색리(摘奸色吏)가 다시 환곡을 부과하고 역을 집행하였다면서, 만일 이들 산지기가 호역(戶役)의 과중함을 이유로 산지기 일을 그만둔다면 장차 사대부 가문의 묘역을 누가 수호할 수 있겠느냐고 류시춘 등은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내용의 소지를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 같은 해 2월에는 전주부윤에게 소지를 올려, 공의(公議)를 따라서 좋은 쪽으로 조처하겠다는 제사를 받았지만, 영문(營門)에서는 아무런 제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순상, 즉 전라도관찰사에게 상서를 올린 것이다. 순상은 이에 대하여 이번 환곡(還穀)의 배정은 종전과는 달라 조절할 수 없으며, 다만 산지기 한 사람만은 특별히 역을 면제해 주겠다는 제사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사년으로 되어 있는데, 관련문서를 통하여 이를 1881년으로 추정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인사관계

1914년 이광현(李光現) 임명장(任命狀) 고문서-첩관통보류-임명장 정치/행정-임면-임명장 大正三年四月壱日 任實郡廳 李光現 大正三年四月壱日 任實郡廳 李光現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Z019_01_A00022_001 1914년 4월 1일에 임실군청(任實郡廳)에서 이광현(李光現)을 운암면(雲岩面)의 임시서기(臨時書記)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임명장. 1914년 4월 1일에 임실군청(任實郡廳)에서 이광현(李光現)을 운암면(雲岩面)의 임시서기(臨時書記)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임명장이다. 이 임명장에는 그의 일급(日給)이 27전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광현은 이보다 앞선 1912년 8월에 임실군(任實郡) 하운면(下雲面)의 서기로 임명되었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32년 전주부(全州府) 부남면(府南面) 귀석리(龜石利) 민인(民人) 등장(等狀)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府南面龜石里民人 金時豊 金恒律 金宇哲 金時豊 全州府尹 전라북도 전주시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1_01_A00005_001 1832년(순조 32)에 전주부 부남면(府南面) 귀석리(龜石里)에 사는 김시풍(金時豊) 등 99명의 민인(民人)이 고을의 수령에게 올린 등장(等狀). 1832년(순조 32)에 전주부(全州府) 부남면(府南面) 귀석리(龜石里)에 사는 김시풍(金時豊) 등 99명의 민인(民人)이 고을의 수령에게 올린 등장(等狀)이다. 작성연대가 적혀 있는 문서의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거의 같은 제목, 즉 '全州府南面龜石里民人等狀'으로 작성된 문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같은 해, 즉 1832년에 작성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전주의 민인들은 이 등장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감영(監營)을 통해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등장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비록 한미한 집안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 성행이 범상치 않았으며, 단정하고 정숙한 덕을 지녀 그 이름이 마을에 널리 알려졌으며, 모두가 탄복해마지 않았다. 나이 스물이 채 안되어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일심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집안을 잘 다스렸다. 그러나 박복(薄福)하여 불행하게도 금년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씨는 애통한 나머지 남편을 따라 순절하고 싶었지만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구씨는 쑥대처럼 된 머리를 빗질조차 하지 않았으며, 새까만 얼굴도 씻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순간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남편이 죽은 직후부터 이미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죽기로 맹서하였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리고 예에 맞추어 곡을 하며 집안일을 처리하였고, 평상시처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시집과 친정식구들은 그녀가 결국에는 반드시 순절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흔히 열부(烈婦)가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것은, 상을 당하여 급박한 때이거나 형편이 어쩔 수 없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구씨의 경우처럼 살아서는 지아비를 섬기는데 정(情)과 예(禮)를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기한을 정하여 남편을 따라 순사하기로 결심하여 마치 죽음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일은 결코 평범한 열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장문택의 며느리 이씨(李氏) 또한 지난 정해년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도(道)에서 조정에 포양을 상신하였지만 아직도 정려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전주부 부남면 귀석리의 민인들은 이 두 사람의 열행을 영문(營門)에 알리고 조정에 계문하여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고을의 수령인 전주부윤(全州府尹)은 한미한 집안의 연소한 아녀자로 온화하면서도 절개를 지켰으니 그 뛰어난 절행에 참으로 가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고부가 다른 가문에서 시집을 와서 한 집안에서 둘 다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으니 또한 비범한 일이라면서, 다시 마땅히 공의(公議)를 수렴하여 감영에 보고할 일이라는 제사를 내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嘉慶二年丁巳十二月二十五日金光春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府東伏在陽字畓參斗落只及同字田貳斗落只合五斗落只所耕貳拾㱏卜貳束庫価拾捌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參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正爲乎乙事畓主 金宗吉[着名]證人 金臥成[着名]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