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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십삼연졔사이월이라국호장임 젼명문우명문사은 다름이안이오라 조자등궁ㅣ의망부산지을급가단양하옵고용산하야삽던이닷서문의하온적산지가단이불긔타하오긔로달은고ㅣ이잡하올차로우인젼의의본가단양밧사옵고구문긔한장과입지소즤한장아오로영영방마하거일후의잡담인직잇차문긔로빙고사라이셩문하온후의의신망부이장옵ㅅ던지안이하옵션지댁의셔ㅅ도다시서장하■■오들무신말삼하오리가산쥬자필고창탑젼이김지근이[着名]증은의사기졈김명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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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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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34년 국석석(鞠碩石)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昭和九年甲戌二月二十九日 昭和九年甲戌二月二十九日 金容琪 鞠碩石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 석호 담양국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외 옮김, 『유서필지』,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934년 음력 2월에 국석석(鞠碩石)이 김용기(金容琪)에게 초가(草家) 3칸을 살 때 작성한 매도증서. 1934년 음력 2월 29일(양력 4월 12일)에 국석석(鞠碩石)이 김용기(金容琪)에게 초가(草家)를 살 때 작성한 매도증서이다. 가사는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高敞郡 興德面 五湖里) 300번지에 있었으며, 초가 3칸 규모이다. 원래 이곳은 김용기의 아버지가 국석석에게 전당을 잡힌 곳이었다. 즉 김용기의 아버지가 가대를 전당잡히고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자 국석석이 들어와 살았던 것이다. 이후 결국 김용기는 국석석에게 전문 20냥을 받고서 완전히 방매하였다. 그런데 문서말미에 노치수(魯致守) 등 5명의 이름, 나이, 출생간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문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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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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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모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소지(所志) 초(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문중에서 올릴 소지의 초안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부안현감 앞으로 올릴 소지(所志) 초안(草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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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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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五年庚寅九月十三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伏在只沙舘基村體舍三間柿木一株桑三株臼石一介恭字員卜數二負七束㐣價折錢文什六兩依數捧上是遣右前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若有他說則以此憑考事家垈主幼學安秉守[着名]訂人幼學黃龍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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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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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모년 순흥안씨(順興安氏) 가승(家乘) 초(草)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HIKS_Z018_01_A00034_001 모년 순흥안씨 족보 또는 가승(家乘)을 편찬하기 위해 작성한 단자(單子)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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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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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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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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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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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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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52년 이섭규(李燮奎)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정치/행정-과거-백패 咸豊二年三月十六日 幼學 李燮奎 咸豊二年三月十六日 哲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52년(철종 3) 3월 16일에 이섭규(李燮奎)가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에 합격하여 왕으로부터 받은 백패(白牌). 1852년(철종 3) 3월 16일에 이섭규(李燮奎)가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에 합격하여 국왕으로부터 받은 백패(白牌)이다. 당시 이섭규는 2등 제23인의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문과(文科)와 무과(武科)의 급제자에게는 붉은색의 합격증서, 즉 홍패(紅牌)를 주었고, 생원시와 진사시의 합격자에게는 하얀색의 합격증서, 즉 백패를 주었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문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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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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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5년 황경모(黃敬模) 수표(手標) 2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乙巳九月十四日 票主黃敬模 南原安禧鎭 乙巳九月十四日 黃敬模 安禧鎭 전라북도 남원시 [着名] 2개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18_01_A00027_001 1905년(광무 9) 9월 14일에 황경모(黃敬模)가 광양(光陽) 골약면(骨若面) 용소동(龍沼洞)에 몰래 쓴 무덤을 다음달 4일까지 옮기겠다는 뜻으로 안희진(安禧鎭)에게 작성해 준 수표. 1905년(광무 9) 9월 14일에 황경모(黃敬模)가 남원(南原)의 안희진(安禧鎭)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황경모의 아버지 산소가 광양(光陽) 골약면(骨若面) 용소동(龍沼洞) 후록에 있는 안희진의 선산에 있었다. 따라서 황경모는 그 묘를 다음달 4일까지는 파내어 옮기겠다고 수표를 작성하여 다짐하였다. 만일 약속 날짜를 어긴다면 관정(官庭)에서 벌을 받고 묘를 파내는 일을 당하더라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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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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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903년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 공명첩(空名帖) 2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고신 光武七年十月二日 中樞院議長勳一等金嘉鎭 光武七年十月二日 金嘉鎭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Z019_01_A00017_001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의 처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공명첩.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의정부찬정대신훈일등(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의 처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공명첩이다. 숙인(淑人)은 문무관 정3품의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어모장군(禦侮將軍)과 종3품의 중직대부(中直大夫)·중훈대부(中訓大夫)·건공장군(建功將軍)·보공장군(保功將軍)의 적처에게 내린 작호이다. 명받은 숙부인(淑夫人)은 외명부 정3품으로 문무관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이다. 조선 후기에 국가의 재정이 궁핍해지자 정부에서는 백성들로부터 돈이나 쌀 등을 받고서 사령장을 발급하였다. 이 사령장을 납속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는 첩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채 발급한 사령장이 있는데 이를 공명첩이라고 한다. 공명첩을 받은 경우, 그 첩에 기재된 관직에 실제로 나아가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남편이 받은 공명첩의 관직에 상응하는 품계를 그 아내에게 발급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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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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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勅令淑人封淑夫人者光武七年十月二日中樞院議長勳一等金嘉鎭 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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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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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747년 한상기(韓尙箕)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정치/행정-과거-백패 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幼學韓尙箕 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英祖 韓尙箕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0_001 1747년(영조 23) 2월에 왕이 진사시(進士試) 합격한 한상기(韓尙箕)에게 내려 준 합격증서. 1747년(영조 23) 2월에 진사시(進士試) 합격자였던 한상기(韓尙箕)에게 왕이 내려 준 합격증서이다. 한상기는 한양오(韓養吾)의 손자였다. 한상기의 등위는 3등 41번째, 즉 100명 가운데 중간 정도의 석차로 합격의 영예를 누린 것이다. 조선시대 생원이나 진사의 위상은 사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존속한 1393년(태조 2)부터 1894년(고종 31)까지의 502년 동안 배출된 생원과 진사는 모두 46,000명이었다. 1년에 불과 100명이 채 되지 못하였던 셈이다. 그만큼 생원이나 진사의 칭호를 얻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집안에서, 그것도 한양오와 한상기처럼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는 점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규격 9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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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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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京居幼學柳 焌等狀…▣情由事 生等始祖妣▣▣▣(三韓國)大夫人墓所在於本府府東表石里而守護等節目與他有異山直之勿侵雜役完文成給非至一再而挽近來人心不…▣上烟戶之役間有侵責故玆敢仰訴 叅商敎是後嚴明措辭完文成給俾無更侵之弊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戊辰十二月 日後 幼學柳恒 柳燁 柳華喆 柳旺 前判官柳承根 進士柳遠根 前郡守柳完根 前郡守柳南珪 監役柳曾珪 監役柳 琠 監役柳 瑞 監役柳 琯 幼學柳 詮 等 幼學柳厚喆 進士柳昌植 前郡守柳興秀 前郡守柳光秀 前府使柳 璞 前牧使柳 瓚 前水使柳 琡 正言柳星杓 校理柳章鎬 奉事柳肯鎬 前郡守柳致潤 承旨柳致好 幼學柳宅凞 前五衛將柳 瑛 幼學柳聖養 幼學柳璟養 幼學柳廷模使[着押][題辭]完文成給向事卄四日[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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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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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1년 류시춘(柳時春)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巳二月 日 本州化民柳時春 柳赫養 柳炳養 城主 辛巳二月 日 柳時春 全州府尹 전라북도 전주시 官[着押] 1개(적색, 정방형)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3_01_A00012_001 1881년(고종 18) 2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시춘(柳時春) 등 44명의 전주류씨(全州柳氏) 일족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상서. 1881년(고종 18) 2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시춘(柳時春) 등 44명의 전주류씨(全州柳氏) 일족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상서이다. 이들은 이 상서에서 전주부 부동면 표석동에 있는 시조비(始祖妣)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묘소를 지키는 산지기(山直) 6명에 대하여 부과한 환곡과 잡역을 취소하여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시조비의 산지기에 대해서는 역을 부과하지 말라면서 관으로부터 받은 완문(完文)이 분명히 있는데도, 이번에 이들에 대하여 환곡을 부과하고 역을 집행하였다면서 지난 5백여 년 동안 묘역을 수호해 온 자손들의 입장에서는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이들 산지기가 호역(戶役)의 과중함을 이유로 산지기 일을 그만둔다면 사대부의 묘역을 지킬 수가 없게 되어 서울과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손들의 입장에서는 원통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류시춘 등은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전주부윤은, 이번에 환곡을 부과한 것은 개혁의 일환으로 집집마다 일률적으로 부과한 것이므로 넣고 빼고 할 수 없다면서, 만일 탈역(頉役)한 전례가 있다면 공의(公議)를 따라 좋은 쪽으로 조치하도록 하겠다는 제사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사년으로 되어 있는데, 관련문서를 통하여 이를 1881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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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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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68년 류준(柳焌)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辰十二月 日 幼學 柳恒 柳燁 柳華喆 巡相 戊辰十二月 日 柳焌 全羅道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1개(적색, 정방형)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3_01_A00012_001 1868년(고종 5) 12월에 한양에 사는 유학(幼學) 류준(柳焌) 등 31명의 유생이 연명하여 순상(巡相)에게 올린 등장. 1868년(고종 5) 12월에 한양에 사는 유학(幼學) 류준(柳焌) 등 31명의 유생이 순상(巡相)에게 올린 등장이다. 전주류씨(全州柳氏) 종중의 이들 유생들은 전주부 부동면 표석리에 있는 자신들의 시조비(始祖妣)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묘소의 경우 수호(守護) 등의 절목이 남다를 뿐만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산지기에 대해서는 잡역을 부과하지 않도록 완문(完文)을 발급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런데도 근래 인심이 흉흉하여 연호(烟戶)의 잡역(雜役)을 부과받았다면서 순상께서 이를 잘 살피셔서 완문을 발급하여 주셔서 다시는 침해를 받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순상은 완문을 발급하라는 제사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를 무진년으로 기재하고 있는데, 연명자들 중에서 정언(正言) 류성표(柳星杓)와 승지(承旨) 류치호(柳致好)와 관련된 기사가 『고종실록』에 고종 11년 9월 16일자 및 고종 3년 5월 29일자에 나오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무진년을 1868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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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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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2년 전주유생(全州儒生) 이환정(李煥晶)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辰六月 日 幼學李煥晶 柳錫祚 黃纘源 巡相閤下 壬辰六月 日 李煥晶 全羅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1_01_A00005_001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 이환정(李煥晶) 등 38명이 순상(巡相)에게 올린 상서(上書).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 이환정(李煥晶) 등 38명이 순상(巡相), 즉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작성연대가 임진년으로 적혀 있는데, 관련문서를 통해 이를 1832년으로 추정하였다. 유생들은 이 상서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상서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지만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부도(婦道)를 공경히 지키고, 예(禮)로써 제사를 받들고 집안에서는 그 범절이 뛰어났다. 형제와 종족에 대해서도 모두 성신(誠信)으로 응대하여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에 향리에서 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씨는 애통한 나머지 남편을 따라 순절하고 싶었지만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구씨는 쑥대처럼 된 머리를 빗질조차 하지 않았으며, 새까만 얼굴도 씻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순간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장문택의 며느리 이씨(李氏)는 지난 정해년에 도읍(道邑)에서 장계를 올려 정려를 청한 문서들이 쌓여서 두루마리가 될 정도에 이르렀다. 이에 전주의 유생들은 이들 고부(姑婦)의 열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순상은 이에 대하여 이전에 올린 소지에 대하여 참으로 가상하다는 제사를 내린 바 있다면서, 지금 다시 이 소지를 보니 모두가 다 한결같은 공의(公議)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땅히 포양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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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0년 최생댁(崔生宅) 노(奴) 세화(世化)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五年庚申九月初三日 畓主 金光春 崔生宅▣(奴)世化 嘉慶五年庚申九月初三日 金光春 崔生宅▣(奴)世化 전라북도 전주시 [着名] 2개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정신문화연구원, 1999.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서, 1974. 이재수, 『조선중기 전답매매연구』, 집문당, 2003. 1800년(정조 24) 9월 3일에 김광춘(金光春)이 최생댁(崔生宅) 노(奴) 세화(世化)에게 부동면(府東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00년(정조 24) 9월 3일에 김광춘(金光春)이 최생댁(崔生宅) 노(奴) 세화(世化)에게 부동면(府東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대상은 논 3두락지와 동자전(同字田) 2두락지 등 총 5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23부(負)인 곳이었으며,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18냥이다. 이때 김광춘은 이 전답의 본문기 4장을 세화에게 넘겨주었다. 이 거래에는 류자남(柳自男)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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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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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산도(山圖)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있는 전주최씨 소유 선산의 그림 부안에 소재해 있는 전주최씨 소유의 선산(先山)을 그린 것이다. 부안에는 전주최씨 중종 소유의 산이 많이 있었다. 허씨(許氏)와 김씨(金氏) 소유의 산도 주변에 보이고 있다. 산송 사건 때문에 작성된 그림으로 생각된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점들은 모두 묘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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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1939년 최병호(崔秉澔) 등기신청서(登記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昭和拾四年貳月貳日 崔秉澔 全州地方法院扶安出張所 昭和拾四年貳月貳日 崔秉澔 全州地方法院扶安出張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에 최병호가 전주지방법원 부안출장소에 제출한 등기신청서. 1939년에 최병호(崔秉澔)가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 산33번지의 임야 소유권을 등기하기 위하여 전주지방법원 부안출장소에 제출한 등기신청서이다. 이 문서는 법원에서 등기를 한 뒤에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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