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府東外里三執綱爲文報事烈行者三綱之一六德之源也本里朴昌俊之母河氏三日入廚十年食貧之餘厥夫以三年長疾百藥無效而聞有食人肉得效之說割其肉以食夫厥疾則療至今偕老豈非貞烈之感于神明乎其子昌俊繼以孝養一里咸稱母烈子孝可謂有是母有是子也一女之樹立尙多况我明府孝理之下豈可泯嘿乎一里觀感興歎之由敢玆牒報爲卧乎事合行牒呈伏請照驗施行須至牒呈者右 牒 呈行 郡 守癸卯四月 日 洞長朴[着名]公員朴[着名]戶首朴[着名]官[着押](題辭)一門孝烈極爲嘉尙益篤益勉如無泯嘿之理向事二十三日[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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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진도군(珍島郡) 면장(面長) 박충림(朴忠林) 등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정치/행정-보고-첩정 癸卯四月日 面長 朴忠林 行郡守 癸卯四月日 朴忠林 珍島郡守 전라남도 진도군 官[着押] 4개(적색, 정방형) 진도 동외 밀양박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4_01_A00001_001 1903년(광무 7) 4월에 진도군(珍島郡) 면장(面長) 박충림(朴忠林) 등 10인이 연명하여 진도군수(珍島郡守)에게 올린 첩정으로 사인(士人) 박창준(朴昌俊)과 그의 어머니 진주하씨의 효열을 건의하는 내용. 1903년(광무 7) 4월에 진도군(珍島郡) 부동외리(府洞外里)의 삼집강(三執綱), 즉 동장(洞長), 공원(公員), 호수(戶首)가 진도군수(珍島郡守)에게 올린 첩정이다. 첩정은 하급관아에서 상급관아에 올리는 말한다. 동장 등 10인은 부동외리에 사는 사인(士人) 박창준(朴昌俊)과 그의 어머니 진주하씨의 효열을 건의하였다. 진주하씨의 남편은 나병을 앓은 지 3년이나 되자 진주하씨는 자신의 살을 도려내어 남편에게 먹여 병을 완치시켜 해로하였다. 그의 아들 박창준도 효행을 다하니, 온 마을에서 그들의 효열을 칭송하였다. 이에 동장 등은 삼강과 오륜의 행실아 세상에 다시 밝혀지기를 바라면서 이들의 포양을 건의하였다. 이에 대해 25일에 진도군수는 "한 가문의 효열은 진실로 가상하다. 마땅히 포양을 받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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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기우만(奇宇萬)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戌八月二十五日 奇宇萬 安生員宅護喪所 戊戌八月二十五日 奇宇萬 安生員宅護喪所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98년(광무 2) 8월 25일에 기우만(奇宇萬)이 안생원댁호상소(安生員宅護喪所)에 보낸 서간(書簡). 1898년(광무 2) 8월 25일에 삼산(三山)에서 기우만(奇宇萬)이 안생원댁 호상소(安生員宅護喪所)에 보낸 서간(書簡)이다. 우리의 도(吾道)가 불행한 때에 후배들이 우러르며 의지하던 여러 공(公)이 차례로 죽으니 공도 선배를 따라 죽었다며 어두운 거리에 불빛을 잃고 걸어가는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과는 50년의 정의(情誼)가 하루아침에 공허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재작년 금성(錦城; 나주)과 광산(光山)에서 생사를 함께 하며 그의 의(義)를 사모하고, 늙었지만 정정함을 믿었는데 이제는 다 끝났다. 눈물이 강물 기울이듯이 쏟아진다며 몇 줄의 글로 자신이 마음을 알린다고 하였다. 삼산(三山)은 기우만이 은거하던 전라남도 장성의 삼성산 삼산재(三山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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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挽詞凌雲奇氣老嶙峋從古光黃出異人仗義疎財眞學問忘身憂世大經綸道山正急仙官主衆鬼應驚長德隣誰向史家添一行普天巖穴爲傷神長溝黃玹哭拜敬輓計日則距 襄不遠無以趁茀謳之列故祗得短柬寫呈且詩詞荒拙其不入 泉臺之高眼決矣幽窮宙雪涕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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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정기(鄭琦)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二月望日 弟 鄭琦 安德洙氏 二月望日 鄭琦 安德洙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1952년 2월 15일에 정기(鄭琦)가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에 사는 안덕수(安德洙)에게 보낸 안부 편지. 1952년 2월 15일에 鄭琦가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에 사는 安德洙에게 보낸 안부 편지. 우체국 소인을 통해 작성연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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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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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모년 정기(鄭琦)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五月念四日 弟 鄭琦 安德洙氏 五月念四日 鄭琦 安德洙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모년 5월 24일 구례(求禮)에 사는 정기(鄭琦)가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에 사는 안덕수(安德洙)에게 보낸 안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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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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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標右標事矣身之父以關洞宅置標事方今在囚依 官分付卽爲毁去置標是遣標器還完冠洞宅之意留置於在囚罪人金關瑞家成手記伏上爲白乎白辛巳三月晦日手記朴龍西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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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主前 單子恐鑑伏觀以民等始祖妣國大夫人山所在於府東面表石里前麓而位土畓在於草谷面帛洞坪也五百年世世傳來之物而字號卜數昭然自在上以爲正供下以爲墓祭矣忽於今者稱以乾止山局內而民等始祖妣墓畓一石七斗落誤入於摘奸此可成說乎論其地形則乾山之於帛洞坪非但非一面非一洞也重巒疊嶂遙遙絶遠則不可以局內論也論其買得則不知幾百年舊物也如是屬公則何處何畓初非吾國之所有乎公田私田自古有之而今焉無公私之別乎此無乃挾雜輩憑公營私瞞告弄奸之致也伏乞 洞燭敎是後民等始祖妣位畓一石七斗落特爲勿侵之意立旨成給俾爲香火之地千萬幸甚戊戌九月 日化民幼學 柳 記 柳 讙 柳 讜 柳 譔 柳 誾 柳 詢 柳 浡 柳昶根 進士 柳浩養 柳 譓 幼學 柳新根 柳完根 柳豊根官[着押][印][印][印][印][題辭]當初乾止山尺量按圖爲之豈有越境之理旣爲報府則官難擅便事初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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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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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8년 류기(柳記) 등 단자(單子)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戌九月 日 化民 柳記 柳浡 柳讙 城主 戊戌九月 日 柳記 全州府尹 전라북도 전주시 官[着押] 2개(적색, 정방형)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3_01_A00012_001 1898년(광무 2) 9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기(柳記) 등 전주류씨(全州柳氏) 종중의 유생 8명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단자. 1898년(광무 2) 9월에 전주에 사는 류기(柳記) 등 전주류씨(全州柳氏) 종중의 유생 8명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단자이다. 이들은 관의 측량 결과 전주 건지산(乾止山)에 있는 시조비(始祖妣)의 묘답(墓畓) 1석 7두락이 건지산 경내(境內)로 들어간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같은 달 수령에게 단자를 올려 고치기 어렵다는 제사[題辭]를 받자, 전라도관찰사에게 다시 소지를 올려 재조사하라는 판결을 얻어냈었다. 이들 유생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다시한번 전주부윤에게 단자를 올려, 공정한 결정을 해주기를 탄원하고 있다. 그리고 전주류씨 시조비의 제삿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묘답의 도조(賭租)를 거두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거듭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전주부윤은 이 사안이 상부(上府)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임의로 허락할 수 없다는 내용의 제사를 내렸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같은 달 전주류씨 종중이 관에 올린 문서들이 이 문서를 포함하여 4건이 전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무술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연명자의 한 사람인 진사(進士) 류호양(柳浩養)이 1849년생으로, 1882년(고종 19)의 증광진사시에 합격한 점으로 미루어, 무술년을 1898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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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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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903년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 공명첩(空名帖) 1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고신 光武七年十月二日 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金嘉鎭 光武七年十月二日 金嘉鎭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Z019_01_A00017_001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를 정3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공명첩.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의정부찬정대신훈일등(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를 정3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공명첩이다. 조선 후기에 국가의 재정이 궁핍해지자 정부에서는 백성들로부터 돈이나 쌀 등을 받고서 사령장을 발급하였다. 이 사령장을 납속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첩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채 발급한 사령장이 있는데 이를 공명첩이라고 한다. 공명첩을 받은 경우, 그 첩에 기재된 관직에 실제로 나아가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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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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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계

【任實郡】李光現下雲面書記ヲ命ス大正元年八月二十一日任實郡廳[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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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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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신사년 전주부(全州府) 북일면(北一面) 도윤(都尹)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정치/행정-보고-첩정 辛巳三月 北一面 都尹 官 辛巳三月 北一面 都尹 全州府 전라북도 전주시 李[着名] 1개(적색, 정방형)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2_01_A00006_001 신사년 3월에 북일면(北一面) 도윤(都尹)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첩정(牒呈)으로 김백수(金百秀)의 산송의 사건의 관련자인 김관서(金寬瑞)·박구례(朴求禮)가 도피하였다고 보고한 내용이다. 신사년 3월에 북일면(北一面) 도윤(都尹)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첩정(牒呈)이다. 도윤 이씨(李氏)는 김백수(金百秀)의 산송의 일로 관련자인 김관서(金寬瑞)·박구례(朴求禮)를 잡아 들여 사건의 진상을 엄히 조사하고자 했으나 이들이 관의 명을 어기고 도피하여 나타나지 않아 압부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사정을 문서로 보고한다고 하였다. 첩정을 받아든 전주부사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은 이들을 속히 잡아들이라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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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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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모년 전주유학(全州幼學) 김근배(金根培) 시권(試券) 1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幼學金根培 金根培 전라북도 전주시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2_01_A00014_001 모년에 전주(全州)에 사는 김근배(金根培)가 백일장(白日場)에 참여하여 작성한 시권(試券). 전주(全州)에 거주하는 김근배(金根培)가 작성한 시권(試券)으로, 백일장(白日場)에 참여하여 작성한 시(詩) 답안지로 추정된다. 김근배의 본관은 김해(金海)로, 당시 47세였다. 시권의 오른쪽 하단에는 김근배의 성명과 나이, 본관, 거주지 및 부친의 신분과 성명이 적혀 있다. 부친은 유학(幼學) 김현교(金顯敎)였다. 오치학은 이 시험에서 '三下'의 성적을 얻었다. 김근배의 시권으로는 같은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답안지가 또 하나 전하고 있다. 이때 시의 시제(試題)는 "酒肆傍舍有淡粧素服一美人出來"로, "주막집의 옆집에 옅게 화장을 하고 소복을 입은 미인이 나와서 영접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수(隋) 나라 사람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羅浮山)에 갔는데 해가 저물 무렵에 숲 사이에 있는 어느 집에서 한 미인이 소복담장(素服淡粧)으로 나와 영접을 하였는데 그 향기가 사람의 정신을 황홀케 하였다. 조사웅이 그 미인과 함께 술집에 가서 즐겨 놀았는데 옆에 푸른 옷을 입은 동자(童子)가 노래를 불렀다. 조사웅이 취하여 자다가 새벽에 깨어 보니 매화나무에 푸른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미인은 바로 화신(花神)이었다는 설화이다. 7언 절구의 형식으로 작성된 시이다. 이 답안지의 앞부분에는 '十地'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응시자가 답안지를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받은 일종의 접수번호이다. 그 밑에 '謹封'이라는 글자는, 아래의 응시자 이름이 적혀 있는 부분을 돌돌 말아 봉한 다음에 적은 것이다. 채점시의 부정을 막기 위하여 이름을 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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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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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幼學金根培年四十七本金海居全州父幼學 顯敎謹封十地酒肆傍舍有淡粧素服一美人出來 詩白玉爲骨氷作腮 巡簷意思笑巴溪 沈沈酒暈上玉肥暗香浮動殘月晨 弄珠精神開漢濱 縞衣輕裙花影繽羅山謫客醉雪月 粧成㺚髓已返魂 芳緣若短玉人夜人似其梅梅似人 香吐龍涎先得春 萼綠華朱超俗塵遊山醉夢臥酒肆 光寒橋上詠詩孟 林間獨酌太無味微雪黃昏明月新 影到窓前相思陳 靑鳥江南秋隔津輕衣素服餙淡粧 西方詠入每思日 淸樽語舞宿緣重有一佳人相近親 南國歌登遅暮辰 一点芳心朱綻唇輕盈玉珮爲誰觧 藍橋玉杵客待僊 鮫綃轉碎玉簪香疑是仙娥來傍頻 巫峽雲衫誰夢神 談笑天然輕拂巾空山酒氣漸覺冷 多情洛妃珮欲觧 伊人不見但見梅雪痕飄飄花作隣 爬肯麻姑盃幾巡 月落參橫懷思眞三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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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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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계

【任實郡】李光現雲岩面書記ヲ命ス但給月七円大正四年十二月十七日任實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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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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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2년 전주부(全州府) 부남면(府南面) 귀석리(龜石利) 민인(民人) 등장(等狀)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辰六月 日 全州府南面龜石里民人 柳道煥 金定哲 金正赫 巡使道 壬辰六月 日 柳道煥 全羅監司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1개(적색, 정방형)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1_01_A00005_001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부 부남면(府南面) 귀석리(龜石里)에 사는 유도환(柳道煥) 등 90 여 명의 민인(民人)이 순사도(巡使道)에게 올린 등장(等狀).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부(全州府) 부남면(府南面) 귀석리(龜石里)에 사는 유도환(柳道煥) 등 90 여명의 민인(民人)이 순사도(巡使道)에게 올린 등장(等狀)이다. 이 순사도는 전라감사(全羅監司)를 가리킨다. 연명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문서의 오른쪽 끝 부분이 약간 훼손되어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똑같은 제목으로 전주의 유생들이 수령에게 올린 등장이 있는데, 그 내용은 거의 같다. 전주의 민인들은 이 등장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등장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비록 한미한 집안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 성행이 범상치 않았으며, 단정하고 정숙한 덕을 지녀 그 이름이 마을에 널리 알려졌으며, 모두가 탄복해마지 않았다. 나이 스물이 채 안되어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일심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집안을 잘 다스렸다. 그러나 박복(薄福)하여 불행하게도 금년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씨는 애통한 나머지 남편을 따라 순절하고 싶었지만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구씨는 쑥대처럼 된 머리를 빗질조차 하지 않았으며, 새까만 얼굴도 씻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순간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남편이 죽은 직후부터 이미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죽기로 맹서하였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리고 예에 맞추어 곡을 하며 집안일을 처리하였고, 평상시처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시집과 친정식구들은 그녀가 결국에는 반드시 순절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흔히 열부(烈婦)가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것은, 상을 당하여 급박한 때이거나 형편이 어쩔 수 없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구씨의 경우처럼 살아서는 지아비를 섬기는데 정(情)과 예(禮)를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기한을 정하여 남편을 따라 순사하기로 결심하여 마치 죽음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일은 결코 평범한 열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장문택의 며느리 이씨(李氏) 또한 지난 정해년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도(道)에서 조정에 포양을 상신하였지만 아직도 정려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전주부 부남면 귀석리의 민인들은 이 두 사람의 열행을 조정에 계문하여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순사도는 이 정려 요청 건에 대해서는 영문(營門)을 통해서 들었다면서, 이번 소지를 살펴보니 내용이 더욱 상세하며 한미한 가문의 출신으로 그 탁이한 열행이 참으로 가상하지만 정려를 내리는 일은 (조정의 명을) 기다리라는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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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府南面龜石里民人等狀右謹陳議送事段伏以孝與烈固皆出於彛性而烈比於孝抑又難矣所以究之往牒孝多而烈稀何哉盖子焉而盡職於▣(事)親倫情之常女焉而盡節於從夫卓行之異也且烈之名不一而烈之實有間若以名實幷行而烈烈於千萬古之前後者今於本州府南本里故同知張文澤妻具氏一婦人獨見焉而已具氏雖長於寒微而自其未笄性行殊凡端儀淑德著聞於隣里皆艶服而年纔二十迨歸張第一心順夫萬福可原而至若宜家宜室盡誠進禮詩之好合庸之造端庶可以盡出此一婦人矣噫天旣降此賢婦賦其懿行而夫何厚於德而薄於命歟今年正月不幸所天奄嬰無妄纔經數日遽爾乘化以若至行之婦當此至慟之變則哀可以崩城殉可以同穴矣然而變出之後一聲號哭移時昏室及夫治喪遠具凡節忍哀自管備遵禮制無一餘憾自殯及襄不梳蓬髮不洗墨面所着喪服未嘗暫觧於晝宵坐臥之間而失天之初指日矢死別無慽色之形於容又無哀辭之發諸口朝夕上食如禮哭止家事措置殆若常時對人酬話無異平居見者聞者反疑其死未必信然媤屬親黨則切於私情知其必死乃已而面面胥勅嚴防其辦死之擧則婉辭輒應曰吾雖愚婦一端常倫三從大義恨結柔腸斷斷無他如是云云了無惴惴初以五月旬五丁寧決死而限及其時適遭媤叔之喪耦臨哭洩哀顧語內外親戚曰今日卽吾決死之期而一家之內此喪已出吾又繼殯則蒼黃情景不可不念吾死之限有何早晩哉再定死期於六月初七日至到是月前於三日汛掃庭宇薰沐潔齋上下衣裳捨舊更新先具酒果祗奠靈座因邀親戚近黨面訣永歸身後凡事次第申託所居寢房明燭{蓻/火}香肆筵設褥務盡淨潔時抵二更卽辦一縷而於其時也先促諸族各歸其家而環座諸族恐其自絶知幾防守不肯旋歸則具氏亦知其必挽之意穩穩酬酢因又如常令人無疑而謂下小便開扄入房居然之頃嘔吐之聲聞於戶外一座驚惶擧皆躍入則藥椀在傍藥汁流口而如縷之語出自喉間曰早知此藥之無靈於卽死而如是嘔逆則恨不隕淵而速死又呼亡夫願言同歸無滯時刻此言訖因忽殊喪據其始終則下從之志已決於夫亡之日而毒藥之具密藏於決死之前此則家人之所不知家人之所未慮也卒乃如期從容就死則雖以剛腸丈夫當之無幾於如此一婦而往古烈女之從夫自處者不爲不多孰有及於此婦人卓節之烈乎凡烈婦之烈死者每出於喪變急遽之時或由於事勢窮迫之際今此具氏之事卽生而盡情禮於事夫死而決期限於殉夫視死如歸言果行必則豈可以尋常烈行同日而言哉遽辦一死驚動一府雖愚夫愚婦莫不聳聽感服且張文澤之子婦李氏粤在丁亥爲其夫殉節至發於道狀已成券軸而尙未蒙褒者實爲士林之抑欝重以其姑有此烈死實蹟凜凜罕古二烈萃於一室豈非是姑是婦相應於前後者乎盖此具氏之節死異於他烈不可以循例並論矣等激感彝情齊聲陳籲節節 鑑過敎是後趂今啓聞㫌褒之地千萬至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巡使道 處分壬辰六月 日▣…▣ 徐▣▣ 柳道煥 金定哲 金正赫 崔鶴哲 崔俊岡 崔俊哲 白來祥 鄭持豊 韓 鏞 金恒柱 徐永福 朴興松 鄭光漢 宋益成 朴萬洙 李濬會 金致裕 白東輝 柳應寬 金萬億 林唐哲 崔洛漢 朴子喜 金萬吉 金三吉 河玄默 金基福 朴文永 金致九 朴在植 丁德汝 金宗仁 張正豊 崔光達 韓 賢 白文淳 徐弘淳 金天敏 金致遠 梁國祿 林時業 吳元哲 ▣…▣ 朴六月金 朴恒成 金光一 金福金 蔡達晩 金賢敬 尹最奉 朴古夫 崔興一 李大元 金得化 崔大文 李貴同 李三金 金成業 朴宗基 李春得 申奉伊 金萬在 閔哲伊 李億石 崔永一 崔昌用 金毛辰 鄭於仁 李耽金 羅占同 金者曷 尹千萬 李東伊 梁仍邑金 李禾里金 金扶安金 吳順福 金福伊 鄭云得 尹達每 韓判同 李判石 李老卽 徐古邑金 韓太仁 金永洙 安道成 徐古邑金 韓判同 ▣(朴)五得 ▣…▣使[着押][題辭]事在營門而有入聞乎今見狀辭尤得其詳卑微之家卓異之行極爲嘉尙待敎▣…之地事 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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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謹陳所志矣段伏以節婦烈女自古何限而其喪葬盡禮從容處義豈有如今日具氏之卓越者乎本州故同知張文澤妻具氏今年▣…▣(不)幸失所天變出之初昏絶移時遠具凡節親自照管乃曰一端常倫三從義重吾雖愚婦指日矢死始以五月旬五丁寧決死而限及其時適遭媤叔之喪耦臨哭洩哀顧語內外親戚曰今日卽吾決死之期而一家之內此喪已出而吾又繼殞則蒼黃情景不可不念吾死之限有何早晩哉再定死期於六月初七日至到是月前於三日汛掃庭宇薰沐潔齋上下衣裳捨舊更新先具酒果祗奠靈座因邀親戚近黨面決永歸身後凡事次第申託所居寢房明燭{蓻/火}香肆筵設褥務盡淨潔時抵二更卽辦一縷而於其時也先促諸族各歸其家而環坐諸族恐其自絶知幾防守不肯旋歸則具氏亦知其必挽之意穩穩酬酢因又如常令人無疑而謂設寢席開扄入房居然之頃嘔吐之聲聞於戶外一座驚惶擧皆躍入則藥椀在傍藥汁流口而如縷之語出自喉間曰早知此藥之無靈於卽死而如是嘔逆則恨不隕淵而速死又呼亡夫願言同歸無滯時刻此言纔訖因忽殊喪據其始終則下從之志已決於夫亡之日而毒藥之具密藏於決死之前此則家人之所不知而衆人所未慮也卒乃如期從容就死則雖以剛腸丈夫當之無幾於如此一婦而凡烈女之烈死者每出於喪變急遽之時或由於事勢窮迫之際而今此具氏之死卽生而盡情禮於事夫死而決期限於殉夫視死如歸言果行必則豈可以尋常烈行同日而言哉遽辦一死驚動一府雖愚夫愚婦莫不聳聽而感服且張文澤之子婦李氏粤在丁亥爲其夫殉節至發於道狀已成券軸而尙未蒙褒者實爲士林之抑欝重以其姑至烈死實蹟凜凜罕古二烈萃於一室豈非是姑是婦相應於前後者乎盖此具氏之節死異於他烈不可以循例並論矣等激感彝情齊聲陳籲伏乞節節鑑過敎是後趂今啓 聞以爲褒㫌之地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兼使主 處分壬辰六月 日使[着押]後 金振玉 鄭有侃 沈相賢 金宗成 金致澤 張持宅 李萬龍 朴重信 姜宗得 鄭在亨 金應祿 崔崙慶 河之性 梁大澣 李源瑞 金載臣 徐榮國 宋載彦 金宗仁 金啓倫 金載孝 申興仁 崔性儀 李文燁 李彦柱 金載文 崔命殷 李道欽 金載泓 丁啓樞 宋益良 張順億 金起赫 宋載華 金尙祿 白民述 鄭寬榮 張信黙 魯漢㱓 金膺永 金寬行 金景祿 金光洽 金一黙 金元爀 金兌鼎 金啓杓 李東錫 李友恭 李文益 白東臣 張師明 李升喆 吳道臣 洪錫寬 梁國祿 金光業 等[題辭]纔因府內儒狀已有所題矣今訴又如此益懇與論之同然其所褒揚自有其時事[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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府內面面長文報事挽近三綱幾頹五倫幾堙豈然豈有如府東外里朴昌俊之母晋州河氏之烈哉厥夫偶羅三年之疾自己能割一塊之肉和糜飮之厥疾則療至今偕老其子昌俊繼以孝一家之孝烈益篤一里之興感益彰庶幾三綱五倫復命於世則一面之議莞興依里報聯牒馳報爲卧乎事合行牒呈伏請照驗施行須至牒呈者右 牒 呈行 郡 守癸卯四月 日 面長朴忠林 朴松林 曺秉浩 朴永培 曺景升 朴元孝 朴根培 蘇輝七 李茂成 曺鳳煥官[着官](題辭)一家孝烈已極欽歎第當有襃揚之日事二十五日[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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