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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三鉉 金三鉉印 3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음4월 모일에 김삼현이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7,6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9년 음4월 모일에 김삼현(金三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흥덕면(興德面) 사포평(沙浦坪)이고, 자호는 시자(詩字) 지번은 111답, 면적은 파종량 기준 9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 49부(負) 9속(束)이며, 매매가는 7,650냥이다. 신문기 1장과 소유권보존증명도 같이 넘겨주며 영구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김삼현의 주소지는 흥덕면 교운리(校雲里)이다. 논의 면적과 매매가를 기재한 부분에 김삼현의 도장을 날인하여 위조를 방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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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년 김맹호(金孟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斗碩 金孟好 金斗碩<着名>金斗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1년 3월 21일에 김맹호가 김두석으로부터 1마지기의 논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71년 3월 21일에 김맹호(金孟好)가 김두석(金斗碩)으로부터 논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두석은 자신의 매부(妹夫)인 정남채(丁南彩)로부터 자신이 매득하여 소유하게 되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신덕원(德新員)이고 자호는 견자(堅字), 지번은 48답,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5부(負) 8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시종(時種) 1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7냥이다. 김두석의 동생인 김두재(金斗載)가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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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백순(金栢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均賢 金栢淳 安均賢<着名>安一文<着名>安啓默<着名>安仲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1_001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이 안균현과 안일문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金栢淳)이 안균현(安均賢)과 안일문(安一文)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이다. 안균현은 자신의 선산 터를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山直]를 두고 금양(禁養)해 왔는데 사는 형편이 어려워진 가운데 송비(頌費)로 지게 된 빚을 청산하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산지의 소재지는 이로면(二老面) 자봉산(紫鳳山)이고 자봉산 아래 덕정(德亭) 뒤쪽 산기슭을 전문(錢文) 150냥을 받고 김백순에게 영구히 방매하는 내용이다. 산지의 동서남북 사방 경계를 자세하게 기술하였는데, 동쪽은 과협처(過峽處)로 넘어가는 길을 한계로 하고, 남쪽은 최가의 무덤 용미(龍尾) 위쪽의 야트막한 언덕을 한계로 하며, 서쪽은 김가의 무덤 뒤로부터 시등(市嶝) 뒤쪽 밭 위까지를 한계로 하고 북쪽으로 연접해 있는 밭 위로부터 돌아서 과협처를 넘어가는 길까지를 한계로 하는 한 국내(局內)이다. 이 거래에 문장(門長)인 안계묵(安啓黙)이 참여하고 증인으로 안중진(安仲辰)이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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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윤상흥(尹相興) 토지매매증서(土地賣買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禾壽 尹相興 南禾壽 1顆(적색,타원형,1.2cm)崔鉉東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2월 15일에 남화수가 윤상흥에게 2마지기의 논을 134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증서 1928년 2월 15일에 남화수(南禾壽)가 윤상흥(尹相興)에게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증서이다. 매매부동산의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거무곡(巨舞谷)이고, 지목은 답(畓),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대금은 134원이다. 이 토지에 대한 이전(移轉)과 분할 및 보존증명 비용을 매수인이 부담하기로 하며 훗날 피차간에 이의가 없기로 증서를 작성한다는 것을 약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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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俊安 姜俊安<着名>張時洪<着名>姜秉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2년(고종29) 11월 6일에 강준안이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4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29) 11월 6일에 강준안(姜俊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준안은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자신의 논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서상림리(西上林里) 불당동(彿堂洞)이고 자호는 일자(日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4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장싱홍(張時洪)이 증인으로, 강병문(姜秉文)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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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泰折 金瓊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고종31) 3월 1일에 김태석이 누군가에게 논 1마지기 3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4년(고종31) 3월 1일에 김태석(金泰析)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태석은 자신이 기경(起耕)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흉년을 당하여 살 방도가 어려워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분방상원(分房上員)이고 자호는 신자(新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4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1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35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은 전날 화재로 불타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알도록 하라는 문구가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훗날 구문기가 없는 것으로 인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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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7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文永 全文永<着名>朴允化<着名>高光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12월 말일에 전문영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224냥 2전 5푼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12월 말일에 전문영(全文永)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문영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서면(五西面) 대천평(大川坪)이고 자호는 빈칸으로 두어 적지 않았으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7부(負) 8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24냥 2전 5푼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박윤화(朴允化)가 증인으로, 고광영(高光永)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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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박건중(朴建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謙 朴建中 李錫謙<着名>朴蓍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 1월 26일에 박건중이 이석겸으로부터 부모 산소 주변 시장을 매입하는 토지매매명문 1801년 1월 26일에 박건중(朴建中)이 이석겸(李錫謙)으로부터 시장(柴場)을 매입하는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석겸은 자신이 매득하여 장막을 설치한 산의 남쪽 옛길이 있는 작은 고개 남쪽이 박건중의 부모 산소의 주맥(主脈)인 까닭에 그가 사기를 원하였으므로 전문(錢文) 2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에 배탈(背頉)을 한 뒤에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본문기는 구문기(舊文記)라고도 하는데 이는 현재의 거래 이전에 해당 매물에 관해 작성된 매매명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사항 즉 문서에 적힌 토지 등의 목적물에 변동이 발생한 경우 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이석겸이 본문기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건네지 않고 배탈을 했다는 것은 본문기에 이 시장 외에도 다른 전답 등이 기재되어 있고 그 중에 일부를 방매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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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백순(金栢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振圭 金栢淳 安振圭<着名>安仲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1_001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이 안진규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金栢淳)이 안진규(安振圭)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안진규는 자신의 선산 터를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山直]를 두고 금양(禁養)해 왔는데 사는 형편이 어려워져서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산지의 소재지는 무안군(務安郡) 이로면(二老面) 자봉산(紫鳳山)이고 자봉산 아래 덕정(德亭) 뒤쪽 산기슭을 전문(錢文) 150냥을 받고 김백순에게 영구히 방매하는 내용이다. 산지의 동서남북 사방 경계를 자세하게 기술하였는데, 동쪽은 과협처(過峽處)로 넘어가는 길을 한계로 하고, 남쪽은 최가의 무덤 용미(龍尾) 위쪽의 야트막한 언덕을 한계로 하며, 서쪽은 김가의 무덤 뒤로부터 시등(市嶝) 뒤쪽 밭 위까지를 한계로 하고 북쪽으로 연접해 있는 밭까지를 돌아서 과협처를 넘어가는 길까지를 한계로 한다는 내용이다. 안중진(安仲辰)이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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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김후철(金后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甘彔 金后哲 金甘彔[着命]張賓錫[着命]金啓根[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 9) 2월 3일에 김감록이 김후철에게 논 4두락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2월 3일에 김감록(金甘彔)이 김후철(金后哲)에게 논을 방매하며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방매자 김감록 측에 전해 내려온 논으로, 포양면(布陽面)에 있는 여자정(女字丁) 4두락지이다. 방매 사유는 이매(移買)이며, 가격은 전문 4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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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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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김택림(金澤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光勳 金澤臨 金光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99년(정조23) 10월에 재종형 김광훈이 재종제 김택림에게 20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99년(정조23) 10월에 재종형(再從兄) 김광훈(金光勳)이 재종제(再從弟) 김택림(金澤臨)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광훈은 자신이 매득한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방매 경위는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즉 이곳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의 남문(南門) 밖이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0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20부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55냥이다. 이 매물의 본문기(本文記) 8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관련문서인 본문기들을 통해 김광훈이 1774년에 신억복으로부터 매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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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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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義赫 韓義赫<着名>曺慶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1월 20일에 유학 한의혁이 누군가에게 8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40년(헌종6) 1월 20일에 유학(幼學) 한의혁(韓義赫)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한의혁은 자신이 매득한 것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 방매한다고 사유를 적었다. 이매는 이 토지를 팔아서 다른 토지를 사는 것으로, 주로 원거리에 있어 경작에 어려움이 있어 이를 팔고 가까운 거리의 토지를 사들이는 행위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 용전평(龍田坪)이고 자호는 직자(職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31부(負)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10냥이고,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유학 조경현(曺慶鉉)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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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노 원봉(元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秋月 奴 元奉 崔奴 秋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21_001 1877년(고종14) 7월 23일에 최노 추월이 신노 원봉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7년(고종14) 7월 23일에 최씨의 사내종 추월(秋月)이 신생원댁(愼生員宅) 사내종 원봉(元奉)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최씨의 사내종 추월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동안 경작해오다가 올해 큰 흉년으로 인해 세금을 납부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 북일면 시동백정촌(始冬百亭村) 앞 자지평(紫芝坪)이고 자호는 시자(始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升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4복(卜) 9속(束)이다. 거래가가 쓰여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전에 전당(典當)을 잡히고 돈을 가져다 썼다가 이를 갚지 못해 영구히 매수인의 차지로 한다는 의미로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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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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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成澣修 成澣修信 1顆(적색, 0.6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3월 4일에 성한수가 성동면 연동리 소재 3군데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1년 3월 4일에 성한수(成澣修)가 성동면(星洞面) 연동리(蒲洞里) 소재 3군데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모두 논으로 중보평(中堡坪)에 있는 음자답(陰字畓), 방축평(方丑坪) 선자답(善字畓), 토조상평(土造上坪) 보자답(寶字畓) 3군데이며 모두 합해 21마지기이다. 가격은 전문 1,350냥이며, 매득자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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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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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2년 이승창(李承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鍾湖 李承昌 李鍾湖信 1課(적색, 1.2cm)李承昌信 1課(적색, 1.2cm)李驥秀信 1課(적색, 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12월에 이종호가 이승창에게 밭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2년 12월에 이종호(李鍾湖)가 이승창(李承昌)에게 창평군 대면 사창리에 있는 밭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는 이종호가 매득하여 경작하던 것으로, 그는 부채상환을 위해 토지를 방매하게 되었다. 문기 말미에 매매대상 토지의 사표(四標)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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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三九亭 栗庵李斗永遙憶新亭步出東扶陽一事我心同衣冠彷佛羲皇俗浴詠依然舞雩風群物涵濡春雨裡衆賓絡繹夕陽中靑邱異日看圖史爲此淸庄語不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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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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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文 維年月日後學姓名敢昭告于 大成至聖文宣王伏以道冠百王萬世之師玆値上丁精禋是宜謹以牲幣醴齊粢盛庶品式陳明薦以兗國復聖公顔子郕國宗聖公曾子沂國述聖公子思鄒國亞聖公孟子配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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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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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僖公忘牛堂李先生行狀 公諱芳幹我太祖高皇帝第四男 神懿高皇后韓氏以至正甲辰七月二日寔誕公于咸興歸州洞之第公仕麗朝官至少尹洪武戊辰 太祖以侍中受右軍都摠節鉞師至威島仗義回軍化家爲國以公翊贊功封爲懷安君而錄勳籍及 太祖御極遂加公大君號時太祖大王威望日盛謳歌咸歸而公以虞中延陵之所處微諷其意者屢及 太宗受禪之際有朴苞之獄而公爲飛語所橫罹三司交章請削於 璿籍及勳錄 太宗屢下恩敎必欲全保而爲延臣爭執竟竄免山公以系出全州自願移配未幾 太宗不任鴒原之情 特命賜環公不肯歸屢召及强行至恩津病革卒于旅舍寔永樂庚子三月九日也訃聞于 朝 太宗慟悼掇膳停朝市三日 命復官爵 遣禮官弔祭致賻又遣地師三人禮窆于全之府東龍進面法史山負乙原 太宗之天顯悌友不廢懿親之德意載在獻陵誌 宣祖丁未公之玄孫愈上言請入 璿譜 宣廟敎曰懷安子孫卽我 太祖璿枝今日之君臣當以太祖之心爲心思想當時必不過不自謹愼于今百年之後使其子孫流落不保決非 列聖之意也處分當日太虛之浮雲也事旣過矣天體自然何嘗有跡今日之許錄乃所以仰體 太祖之心恭奉 列聖之意行其所未遑而已其令禮曹議 啓禮曹啓曰議于大臣則鵝城府院君臣李山海完平府院君臣李元翼領中樞府事臣李德馨鰲城府院君臣李恒福行判中樞府事臣尹承勳知中樞府事臣沈喜壽領議政臣柳永慶行中樞府事臣奇自獻左議政臣許頊右議政臣韓應寅以爲 聖敎之意卽天地發生之仁臣不敢更容他議依回 啓施行伏惟 上栽何如遂允廷議仍 命設校正廳卽爲許錄於 璿譜復其子孫君號公之長男義寧君【孟衆】子【溫】 贈永平正子【克宗】 贈完南副正子【世亨】 贈效力副尉二男昌寧君【泰】子【栢】 贈德林正次【檜】 贈湖山正德林子【長孫】 贈瑞寧副正子【愈】迪城副尉次【峻】效力副尉湖山子【哲顯】訓義副正 肅廟庚申因 璿源錄釐正廳稟啓 命議大臣則領議政【臣】金壽恒左議政【臣】閔鼎重右議政【臣】鄭知和以爲考諸 獻陵誌文有云不廢懿親而 宣祖大王又以爲 特命許錄所以恭奉 列聖之意爲 敎則到今仰體太宗之德 宣廟之明敎特許載錄恐不違尊祖合族之道遂如例入錄又於丙戌因公之十世孫縣監【東弼】上言 贈善金城君仲窘金山君卽公三四男金城子【衡】 贈長山正子【思文】 贈完源副正次【思安】 贈完溪副正次【思訥】 贈完安副正金山子【芬】 贈定安正子【枝茂】 贈靑城副正次【阿全】 贈定平正子【銀孫】贈赤城副正次【謁山】 贈南岳副正次【阿全】 贈南溪副正次【明孫】 贈南昌副正竝追 贈焉公才兼文武而孝悌根天地居尊顯而退讓爲心承意順志之行因心則友之德蓋不待勉强而得於性分者然也自遭罪謫以後日夜泣血追訟愆尤屛跡杜門不與人接日飮無何時復北揮涕只恨候班之久曠每撫窮自悼曰此身之復見天日生死肉骨豈非我 聖上孔懷之盛德至意耶一縷未泯之前但當悔過自新而已居處食飮務從菲簿惟以苟全性命檢身飭行尤加於前見者莫不歎服公且以 上王昇遐之時不得奔哭爲沒身之痛生前誓不復渡漢水遺敎子孫仍居於鄕 宥還至半途亦非本意也車雲巖原頫爲鄭道傳咸傳霖所誣陷被殺公聞之不覺失聲長慟適與農夫飮于田舍却忘其騎去之牛而歸時人謂之忘牛子謹按雲巖雪寃錄有云不啻投燈擊案人之感慨亦有忘牛破醪公之恨哀蓋投登者冶隱吉再也擊案者石磵趙云仡也破醪者石灘李養中也夫投登也擊案也破醪也皆出於傷憐車雲巖之意而蓋與公忘牛之擧一般也故曰公以己之所懷傷原頫之冒昧不勝其喪心而自慟語在成三問奉 敎註雪寃錄中噫公貴介也得與數子者列爲聞人傳於信史若使公非其處地而遊於布衣間則亦必無此遭罹而所成就豈易量哉不然作雪寃錄者豈肯與數子者竝稱而採入放失舊聞於奉 敎文字中耶其錄之也註之也在公無甚輕重而公之平生所存亦足以觀其一端矣嗚乎蹟公平生勳德之崇廣也志行之卓異也宜有天之所報施而生焉而遭罹非常歿焉而雲仍零替倘所謂天道是耶非耶雖然 列聖朝憫其寃鬱愈久而愈伸許錄 璿譜有 宣祖繼述之 敎追爵曾玄有肅廟合族之 恩此莫非前 聖後 聖睦親敦宗之一揆而公之齎恨於九原者於是乎殆無餘憾則亦豈曰天道之終然無徵乎 配驪興閔氏判書 贈贊成事璿女生一男卽義寧繼配密陽黃氏判書亨女生一男二女男卽昌寧繼配金浦琴氏正郞仁排女生二男卽金城金山女長適縣令趙愼言次適郡守李大成孫曾玄見上義寧之後今居義城昌寧之後今居瑞山金城金山之後今居全州義寧五世孫【恭】監察昌寧六世孫【希春】行奉事九世孫【珪】行監察【璿】行司果聖遵 贈判書十世孫【斗】 行監察金城九世孫【枝興】 贈承旨十世孫【東弼】行縣監【玹】行正郞金山九世孫【天機】行佐郞各派雲仍其麗寔繁不得盡記公之十二世孫全州【啓完】十三世孫瑞山【相楫】一日袖其家乘來言於不佞曰吾先祖雖有所遭於當時官爵之復旣下於 特恩葬埋之禮又出於 優渥 璿譜之還錄也子孫之追封也 朝家所以敦恤者如此其至而只緣後裔之不肖誠薄尙未蒙易名之 典夫以大君而無節惠 國乘以來所未前有也且以吾先祖昆弟言之撫安宜安亦嘗蒙 賜諡之恩況乎吾祖之德之行較諸兩大君尤有所想懸者乎由是而 列聖之恩禮未能對揚先祖之潛光無以發揮此莫非不肖輩之罪也而屢百年抑鬱於幽明之間者容乎旣乎滄桑屢燮兵燹間經文獻之可徵者十不存一而不肖等殫誠竭力博採舊聞掇拾殘缺裏足遠來願得一言之重蓋其向先追遠之誠有足以感人而不佞亦嘗聞公之至行隱德矣未敢終辭然不佞旣非善於辭令者則又何敢贅說只序次其家乘所載者如右以俟當世立言君子之採擇焉通訓大夫前行安義縣監晉州鎭管兵馬節制都尉西原韓啓重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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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寃錄 明宗十七年壬戌九月日呈 上言下該司淸洪道觀察使朴忠元瑞山郡守成應吉帳籍相考以啓下宗簿寺寺回 啓內向前李愈令其道觀察使本官帳籍相考太祖高皇帝五代孫的實承蔭事段寺不得擅 如是回 啓更呈 上言內臣高祖芳幹同生芳蕃芳碩段己身罪死而復職承蔭二去丙子錦城大君和義君漢南君段被罪六十年至子孫禁錮而先王朝特蒙 天恩復職繼後臣曾祖泰非自己之罪以一王孫未蒙承襲悶及蒼天況輿地勝覺獻陵碑銘內云芳幹不廢懿親亦載在前矣 上言內宗簿義禁府罪案有無相考而果無罪案臣等獨未蒙 天恩曖昧情由細細相考芳蕃芳碩錦城子孫例特蒙 天恩 璿源錄施行嘉靖四十二年癸亥九月二十八日 啓從願下宗簿寺 啓目帖連 判下宗簿寺回 啓內自寺相考無據令其道觀察使帳籍相考 啓聞後依 判付施行何如十月三日右承旨臣朴謹元知次 啓達依允牒呈邵上各年帳籍相考謹具 啓聞甲子二月十四日觀察使 朴忠元 啓二月十九日都承旨 李後白 啓下宗簿寺同寺 啓目帖連 啓下 敎淸洪道觀察使 啓本內辭緣相考向前李愈等懷安大君子孫的實今式年 璿源錄追錄何如閏三月十七日都提調臣德陽君提調知中樞府事臣趙彦季 啓依允閏三月十七日都承旨 洪天民 啓下宗簿寺萬曆三十一年甲辰二月二日始設校正廳堂上順寧君順義君箕城君漢陰君義城君永城都正宗簿寺正尹壽民金順命金權安昶朴東望李堉趙鼎立閔汝任睦長欽郞廳琅城正春溪正恩陽守金溪守工曹正郞李春榮副司果李士溫禮賓寺副正許筠前縣監成準司正魚夢龍敦寧主簿李玄聃書寫忠義衛趙大宏李壽鵷具璿李中基安俟中草書寫林德龍李大春韓英書吏李德壽趙順男使令金龍金彦庫直奴壽命廳 啓辭內各派單子使其宗子宗孫門長着名書呈丁未正月二十三日廳 啓曰懷安大君芳幹子孫李愈所納文籍久遠自正德乙亥至萬曆十五年之間或有 璿源錄分明載錄者或有忠勳府忠義衛者故 啓稟錄上而伸雪與否終未考出於實錄中一依容子孫例處分如何 傳曰此人等皆我 太祖璿之枝今日之君臣當以 太祖之心爲心思想當時必不過不自謹愼偶然一時之罪名于今百年之後仍存罪籍使其子孫流落不保決非 列聖之意也予以爲竝 許錄乃所以仰體 太祖之心恭奉 列聖之意行其所未遑而已 處分當日太虛之浮雲事旣過矣天體自然何嘗有跡令禮曹試議啓之禮曹 啓曰議于諸大臣則鵝城府院君臣李山海完平府院君臣李元翼領中樞府事臣李德馨鰲城府院君臣李恒福行判府事臣尹承勳知中樞府事臣沈喜壽以爲 聖敎之意至當不敢更容他議領議政臣柳永慶以爲 聖意至極臣何敢容議伏惟 上裁何如行判官中樞府事臣奇自獻以爲聖敎至當左議政臣許頊以爲聖敎之意卽天地發生之仁不敢容他議依該曹 啓辭施行極爲允當伏惟 上裁右議政臣韓寅以爲 聖敎允當依該曹 啓辭施行伏惟 上裁大臣之意如此 上裁施行如何 傳曰允當依大臣之議判下肅宗丙戌 懷安大君十世孫縣監東弼因上言于朝金城君善金山君【仲窘】兄弟君號及其子若孫竝蒙追贈之恩公有光先庇後之懿績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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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辭(2) 兗國復聖公顔子名回字子淵魯人也其先出自黃帝越八世有曺姓者始國於邾歷唐虞夏商至周武王有天下因封其裔爲邾子又六世而春秋邾武公字伯顔者爲魯附庸有功於齊齊威公命爲小邾子別封其子於郳遂因父子顔爲氏以其附庸於魯故後十四世皆事魯爲卿大夫至爲魯邑宰者生無繇卽顔子父也少孔子六歲孔子始敎闕里而受學焉爲魯卿士娶齊姜氏以周景王三十二年當魯昭公二十九年十一月丙申生顔子少孔子三十八歲幼有異質甫成童孔子不仕而退在魯修詩書禮樂卽從學於孔子之門而從孔子過匡乃與陽虎之難旣解而返魯安貧自樂焉哀公十三年八月丁巳卒孔子哭之慟哀公弔焉葬于魯城東坊山南孔門弟子三千人身通六藝者七十二人而獨得淳和之氣稟上智之資善問好學以德行首稱觀其喟然斂曰仰之彌高鑽之彌堅瞻之在前忽焉在後可謂深得聖人之道者矣後封兗國復聖公今子孫在魯世授五經博士主祀事【孔子統紀】漢高祖十二年東巡狩以太牢祀孔子以顔子配享唐太宗貞觀二年詔稱先師高宗德章元年贈太子少師睿宗太極元年加贈太子太師玄宗開元二十七年追封兗公宋眞宗祥符二年封兗國公元文宗至順元年加贈兗國復聖公明嘉靖九年改稱復聖顔子○我 朝仍稱兗國復聖公【下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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