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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庾錫鉉 柳永善 庾錫鉉信 1顆(적색, 원형,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2월 29일에 유석현이 류영선에게 고창군 오산면 소재 논 4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16년 2월 29일에 유석현(庾錫鉉)이 류영선(柳永善)에게 고창군에 있는 논 4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는 유석현이 매득하여 경작해 온 것으로,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오산면(五山面) 학산리(鶴山里)이다. 자호는 여자(與字)이며, 부수(負數)는 16부 6속이다. 가격은 전문 36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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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光洙 安光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고종7) 2월 3일에 유학 안광수가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7) 2월 3일에 유학(幼學) 안광수(安光洙)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안광수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수곡면(水谷面) 칠암촌(七巖村) 앞이고 자호는 형자(形字)이며 면적은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2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28냥이다. 구문기는 없이 신문기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삼득(金三得)이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고 문서는 안광수가 자필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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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在臣 尹在臣<着名>鄭在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2년(고종9) 12월 19일에 윤재신이 누군가에게 논 1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2년(고종9) 12월 19일에 윤재신(尹在臣)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윤재신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보성군 백야면(白也面) 가전평(柯田坪)이고 자호는 주자(主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 1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 5복(卜) 5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하였다. 정재규(鄭在珪)가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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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應悟 金應悟<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고종12) 1월 29일에 전응오가 누군가에게 논 12마지기를 16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5년(고종12) 1월 29일에 전응오(全應悟)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전응오가 스스로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아면(大雅面) 내독전평(內篤前坪)이고, 자호가 취자(吹字)인 3마지기[斗落只] 1배미 논과 자호가 전자(轉字)인 5마지기 3배미 논, 자호가 전자인 4마지기 3배미 논으로 모두 세 곳인데 각각의 매매가를 적었다. 취자답 3마지기는 53냥, 전자답 5마지기는 65냥, 전자답 4마지기는 40냥으로 거래가는 모두 168냥이다. 이들 논을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하였고,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출급할 수 없다는 문구를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전응오가 자필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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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德之 全德之<着名>金允澤<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고종28) 9월 20일에 전덕지가 논 18마지기를 8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1년(고종28) 9월 20일에 전덕지(全德之)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덕지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에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내독평(內篤坪)이다. 의자(疑字) 자호의 세 군데 논과 변자(弁字) 자호의 한 군데 논을 한꺼번에 전문 800냥을 받고 파는 내용이다. 논의 면적은 모두 합해서 18마지기이고 각각의 논마다 구획상의 배미[夜味]와 파종량 기준의 두락(斗落) 수와 수확량 기준의 결부(結負) 수를 적었다. 이들 토지의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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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德之 全德之<着名>金允澤<着名>田雨溢<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고종28) 9월 20일에 전덕지가 누군가에게 논 6마지기를6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1년(고종28) 9월 20일에 전덕지(全德之)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덕지는 부득이한 형편에 팔게 되었다고 간단하게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독곡 전평(篤谷前坪)이고 자호는 의자(疑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6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20부(負)인 논이다. 이 논을 올해 수확하게 될 곡식을 포함하여 전문(錢文) 65냥에 영구 방매하였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김윤택(金允澤)이 증인으로 전우일(田雨溢)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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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重熙 金海運<着名> 柳重熙信 3顆(흑색,정방형,2×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1월 20일에 유중희가 누군가에게 논 18마지기를 7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1월 20일에 유중희(柳重凞)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유중희는 계답(契畓)을 빚을 갚기 위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蜂山村) 전평(前坪) 진정동(眞井洞)이고, 자호는 훈자(訓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14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18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57부(負) 2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 700냥이다.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출급할 수 없다는 문구를 추기하였다. 유중희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김해운(金海運)이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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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노 차월(次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卜用 奴 次月 奴 次月<手寸>奴 卜禮<手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11월 3일 노 복용이 상전 홍씨를 대신하여 최씨의 노 차월에게 1섬 5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6년(고종13) 11월 3일 노(奴) 복용(卜用)이 상전 홍씨(洪氏)를 대신하여 최씨의 노 차월(次月)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자신의 상전댁이 매득한 밭을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미상이고 자호는 아자(阿字), 지번은 118전,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섬[石] 5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00냥이다. 본문기(本文記) 2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기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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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伏錄 金伏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2년(고종29) 8월 10일에 김복록이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29) 8월 10일에 김복록(金伏錄)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복록은 자신을 소인(小人)이라 적고 매수인은 댁(宅)이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신분상의 차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복록은 긴급하게 쓸 곳이 있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군개평과 사부평 두 곳이고 각각 군개평의 4마지기, 사부평의 1마지기 논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그리고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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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蘇輝宅 蘇輝宅<着名>蘇輝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64_001 1892년(고종29) 10월 2일에 소휘택이 누군가에게 논 4말 5되지기를 17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29) 10월 2일에 소휘택(蘇輝宅)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소휘택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남원 지사방(只沙坊) 옥산촌(玉山村) 율야미평(栗野味坪)이고 자호는 비자(悲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 18부(負) 5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 17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답주(畓主) 소휘택과 나란히 이름을 적은 방매(放賣) 소휘영(蘇輝永)은 격식에 맞지 않는다. 다만 소휘택과 형제관계의 인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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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云金 奴 云金<着名>李洛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15일에 최의관댁 노 운금이 누군가에게 논 1말 5되지기를 4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4월 15일에 최의관댁(崔議官宅) 노(奴) 운금(云金)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운금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추산평(秋山坪)이고 자호는 충자(忠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1말[斗] 5되지기[升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 5부(負)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48냥이다. 운금은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낙구(李洛九)가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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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正煥 南正煥 1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3월 18일에 남정환이 누군가에게 4칸 가옥과 논 2되지기를 1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4년 3월 18일에 남정환(南正煥)이 누군가에게 가옥 및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정환은 상속을 통해 이 가옥을 소유하게 되었고, 수년 동안 살아왔는데 빚이 너무 많아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화순군 송석면(松石面) 용암리(龍岩里)이고 자호는 수자(水字)이며, 가대(家垈)는 체사(體舍)가 4칸, 행랑(行廊)이 2칸 규모이고, 여기에 어대동(御待洞)에 있는 옥자(玉字) 자호의 논 1배미[夜味] 2되지기[升落只]를 포함하여 매매가 100냥을 받고 거래하는 내용이다. 보증인은 갖추지 못하였고 마지막에 이장(里長) 조오승(曺五承)이 참여하였고 희미하지만 이장의 직인이 찍힌 흔적이 보인다. 이 당시에 이장이 매매명문에 등장하는 것은 1906년과 1907년에 공포한 토지가옥증명규칙과 토지가옥증명사무처리순서와 관련된 것으로, 이 증명 규칙에 의하면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뒤에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의 '인증'과 군수(郡守) 또는 부윤(府尹)의 '증명'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였는데, 지방의 경우는 이장이 매매명문에 서명 날인함으로써 인증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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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寬裕 崔寬裕<着名>李洛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8월 16일에 최관유가 누군가에게 세 곳의 논 10마지기를 9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8월 16일에 최관유(崔寬裕)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관유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많은 빚 때문에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수곡면(水谷面) 칠암촌(七岩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형자(形字)이며, 문문배미(門問夜味) 3마지기[斗落只]와 연안배미(連安夜味) 4마지기, 맥답(麥畓) 3마지기를 모두 합한 10마지기가 매매대상이다. 지금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추수를 하기 전인 8월이므로 이들 논에서 올해 거두게 될 곡식을 포함하여 전문(錢文) 980냥에 거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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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6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龜錫 韓龜錫<着名>李在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10월 20일에 한귀석이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10월 20일에 한귀석(韓龜錫)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한귀석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왔다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사유는 적지 않았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앞이고 자호는 우자(友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7부(負) 7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9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증인으로 이재룡(李在龍)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나 답주와 마찬가지로 착명하지 않은 점이 문서의 격식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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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炳善 柳炳善信 3顆(적색,원형,1.3cm)柳忠熙信 1顆(적색,원형,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1월 20일에 유병선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가옥과 대전을 이봉애와 서로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명문 1916년 1월 20일에 유병선(柳炳善)이 이봉애(李鳳涯)와 빚을 탕감하기 위해 가옥과 대전을 서로 상환하는 명문이다. 유병선은 자신이 직접 조성하여 수년 동안 살아왔던 가대(家垈)를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상환하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두 상환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봉산리(蜂山里)이고, 상환 대상은 초가(草家)와 그에 딸린 대전(垈田)이다. 유병선 소유의 대전은 자호가 부자(夫字)이고 면적은 1마지기이며, 초가는 2통 3호이고 규모는 초가 2칸과 측실 2칸이다. 이곳을 이봉애 소유의 면적을 적지 않은 대전과 2통 3호의 초가 2칸과 측실 2칸 규모의 가옥과 교환하는 것이다. 교환과 동시에 전에 빚진 전곡(錢穀)을 모두 탕감하고, 추가로 전문(錢文) 30냥을 받으면서 이봉애와 영구 교환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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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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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679년 정석룡(鄭碩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洪乙生 鄭碩龍 朴禮主<着名>洪可民<着名>洪斗緯<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679년 10월 25일에 정석룡이 홍을생에게 10마지기 밭을 사들이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679년 10월 25일에 정석룡(鄭碩龍)이 홍을생(洪乙生)으로부터 10마지기 밭을 사들이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홍을생은 허다한 공채(公債)를 갚을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이 밭은 매득을 통해서 소유하게 되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라고만 적고 자세한 위치는 기재하지 않았다. 자호는 치자(致字)이고 보리 25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의 밭 가운데 남쪽으로 보리 10마지기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이 방매 대상이다. 거래가로 백미(白米) 3섬[石]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되,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넘겨줄 수 없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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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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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聲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61_001 이성진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의 일부 답주 이성진(李聲震)이 자신의 논을 팔면서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준 구문기(舊文記)로 추정된다. 대각선 방향으로 두 번에 걸쳐 오려졌다는 것은 이 문서에 적힌 토지를 2회에 걸쳐 일부 방매하였고, 그때마다 해당 토지가 적힌 부분을 대각선 방향으로 오려서 구문기로 매수인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관련문서로 볼 때 고창군(高敞郡)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에 있는 성자자(性字) 자호의 논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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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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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成泰 李炳禮信 1顆(적색,원형,1.4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음1월 27일에 종손 이성태가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1,0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6년 음1월 27일에 종손(宗孫) 이성태(李成泰)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성태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문중 땅을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비석리(碑石里)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내자(內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1,000냥이다. 이성태의 주소지는 고창군 고수면(古水面) 증산리(曾山里)이고, 같은 마을의 이병례(李炳禮)가 문중의 유사(有司)로서 증인으로 참여하여 도장을 날인하였다. 문서 말미에 소유권보존증명 건은 논 값을 다 받은 뒤에 출급하겠다는 문구가 추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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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小月心 奴 小月心<着名>奴 雲卜<着名>奴 正每<着名>奴 分切<着名>奴 日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11월 9일에 이씨의 노 소월심이 누군가에게 3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11월 9일에 이씨의 노(奴) 소월심(小月心)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씨의 노 소월심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임을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용교동(龍橋洞) 동창원(同窓員)이고 자호는 오자(吳字),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이며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이다. 거래가 120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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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來 李錫來<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1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4월 1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석래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吾里洞面) 사반리(沙盘里) 앞의 중보평(中堡坪)에 있는 호자(戶字) 자호의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 1배미[夜味]와 외서평(外嶼坪)에 있는 호자 자호의 1마지기 1배미 두 곳을 합한 4마지기 논이다. 거래가 270냥을 받고 신문기와 구문기 2장으로 방매하였다. 다만, 이후에 살림이 펴지면 본가(本價)에 환퇴(還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고, 도조(賭租)는 매년 1섬[石] 7말[斗]씩으로 정하였다. 이석래가 자신을 인제(姻弟)라고 하였으므로 인척간에 이루어진 거래이다. 문서 말미에 외서평 1마지기 논의 구문기에는 다른 토지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명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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