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賻儀紙燭代金貳圓也庚辰五月二十六日李起澔謹呈【피봉】日谷蘇海亭 護喪所社町李起澔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從兄世國氏室內夫人河東鄭氏以老患累日呻吟不幸於今月十七日午時棄世專人訃告辛巳十月十七日護喪 奇世豊 上【피봉】〈前面〉答 日谷里盧軫永氏〈後面〉孝?里訃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道光十七年 月 日羅州牧考丁酉成籍戶口帳內荷衣島於㤙村住第一統第二戶閑良金聖仁年六十九己丑 本金海父閑良 弼奉祖閑良 尙巾曾祖閑良 延伯外祖閑良 金節順 本金海妻朴姓年六十二丙申 本密陽父閑良 得大祖閑良 敬漢曾祖閑良 桂春外祖閑良 林春逢 本羅州率子達五年二十九己巳等甲午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906년 나도신(羅燾臣) 처(妻) 유인정씨(孺人鄭氏) 칙명(勅命) 고문서-교령류-칙명 高宗 羅燾臣 妻 孺人鄭氏 施命之寶(10.0x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17_001 1906년(고종43) 2월에 중학교 교관에 증직된 나도신의 처 유인 정씨를 의인에 봉작한 임명장 1906년(고종43) 2월에 중학교 교관에 증직된 나도신(羅燾臣)의 처 유인(孺人) 정씨(鄭氏)를 의인(宜人)에 봉작하는 임명문서이다. 의인은 조선시대 정·종6품의 문무관 부인 및 1865년(고종 2) 이후 정·종6품 종친 부인의 봉작에 사용한 칭호이다. 발급일자 좌방으로 '중학교 교관에 증직된 나도신의 처를 법전에 따라 종부직(從夫職)한다'라고 적혀 있다. 인장으로는 어보인 '칙명지보(勅命之寶)'가 안보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勅命孺人鄭氏封宜人者光武十年二月 日贈中學校敎官羅燾臣依法典從夫職[勅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9년 나도일(羅燾溢)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燾溢 羅州牧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79년(고종16)에 나도일(羅燾溢, 27세)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나주목(羅州牧)에 제출한 호구단자 1879년(고종16) 나도일(羅燾溢)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나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도일은 33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후집(羅厚集)이고, 조부는 나시완(羅時完)이며, 증조부는 나성채(羅聖采)이다. 외조부는 이현빈(李顯彬)이고, 본관은 함풍(咸豊)이다. 아내는 정씨(鄭氏)로, 33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아버지는 정인혁(鄭仁赫)이고, 조부는 정기표(鄭基杓)이며, 증조부는 정인운(鄭麟運)이다. 외조부는 양석포(梁錫圃)이고, 본관은 제주이다. 어머니는 이씨(李氏)로, 나이는 56세이고, 갑신년(1824)생이며, 본관은 함풍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갑진년 한공기(韓公琦)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韓公琦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8월 20일에 학정 한공기가 장산서원에서 재계 중인 상대방에게 서원의 재석에 참석하고 싶지만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해서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기약은 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갑진년 8월 20일에 학정(鶴亭) 한공기가 장산서원(章山書院)에서 재계(齋戒) 중인 상대방에게 장산서원의 재석(齋席)에 참석하고 싶지만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해서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뜻밖에 멀리 궁벽한 산골 적막한 물가에 특별히 보낸 심부름꾼을 통해 편지를 받아보고 깊어가는 가을에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상대방과 여러분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간절히 위로되는 마음 참으로 빈 말이 아니라는 내용, 자신은 산골짜기에 사는 풍미가 갈수록 더 무료하던 중에 며늘아기의 병 때문에 염려가 깊다는 내용, 상대방의 장산서원의 재석에 참석하여 쌓인 회포도 함께 풀려고 하지만 쇠약하고 병든 다리로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하므로 반드시 참석한다는 기약은 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상대방의 맏형은 근래 산장(山庄)에 있는지 묻고, 각각 안부 편지를 써야하지만 바빠서 뜻대로 하지 못해 매우 안타까우니 이 심정을 전달하여 편지를 함께 읽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장산서원(章山書院)은 현재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1780년(정조 4)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 1516~156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 수성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후손들이 2006년 11월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이전인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서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簡札)日長如少年 政是吾儒做業之辰也 謹詢此際堂上鼎茵 神佑康泰 侍中棣履 一衛崇寧 區區慰祝 聞以雇奴見闕 躬執來鋤 夙夜靡懈云 此乃吾們活生涯也 尤庸健艶 大堯之黝瘦 神禹之胼胝 周公之旡逸 是皆聖人之代天理物 至誠無息 與太和元炁 同其流行 此乃天理在吾 吾不得不然者也 如吾蠢蠢者視聖人 不啻鳳鷟之蠛蠓耳 雖千吾齡而萬吾力猶恐不逮其萬一 況偸逸肆妄 餒其炁而死其心 自陷於暴棄之科乎 故曰 人勞則思 思則善心生 逸則淫 淫則忘善 沃土之民 不材 淫也 瘠土之民 莫不嚮義 勞也 敬姜此言 實千古閨房之冠冕也座右之服勤習勞 其亦有服於斯訓也歟尊先祖考滴翠公手墨朱子語二十四字 示警者至矣 夫大而天下之存亡 小而一身之得失 何莫不由一■(身)〔心〕之操舍哉 試將斯訓 以觀今日變怪 可謂有先見之智矣 窃有所傷感者 叵耐五神之抑欝而噴薄爲一語 以控之○覧之酬應 怡渙于○雅衷也 中暑呌囈 去閻府才一髮間耳 然篤保斯心 守死善道毋負四大生成之重 此乃蓋棺前 心切切也苟非同志 安能吹吷乃爾乎哉 餘不備戊申七夕 老弟 安曅 二拜陽叔兄所遭 不勝悼䀌 而中阜老少候 大都平安否(皮封)萬吾 侍棣史 敬展凡儂候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기유년 안엽(安曅)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16_001 기유년 11월 25일에 금당에 머물고 있는 범농 안엽이 옥산에 사는 상대방 형제들에게 방지(芳旨) 마을의 벗 최 씨의 변고를 언급하고, 보내준 남쪽 차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전한 답장 기유년 11월 25일에 금당(襟堂)에 머물고 있는 범농 안엽이 옥산(玉山)의 상대방 형제들에게 방지(芳旨) 마을의 벗 최 씨의 변고를 언급하고, 보내준 남쪽 차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전한 답장이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만나지 못한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리운 상대방을 만날 길이 없어 두보의 「비 내리는 강가에서 전설 정박을 생각하며[江雨有懷鄭典設]」 시의 '언덕은 높고 양수(瀼水)는 흘러내려 동서를 가로막고 있네'라는 싯구만 읊조리며 탄식하였다는 내용, 뜻밖에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받고 손을 들어 반복해서 읽다 보니 직접 만난 것과 다름 없다는 내용, 11월 추운 날씨에 상대방 부친의 병환이 한 달이 넘도록 완쾌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걱정스럽다는 내용, 방지 마을의 벗 최 모의 참혹한 소식은 너무 기가 막혀 그 재앙을 뭐라 비유할 수가 없으며, 겨울밤이 긴 요즈음 학문에 몰두하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내용, 늙은 자신은 추위에 신음하며 칩거하고 있으며, 장차 조그만 오막살이를 빌릴 계획인데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다는 내용, 남쪽의 차를 보내주셔서 매우 감사하고 긴 밤을 보낼 매우 좋은 재료이며, 자신은 보답할 물건이 없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임신년 서영수(徐永修) 의송(議送)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永修 巡使道 巡使道 <着名> □…□ 5顆(적색, 정방형, 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69_001 임신년 6월에 곡성현 예산면에 사는 서영수가 도순찰사에게 간교한 향리들에 의해 고마청에 속공된 자신의 산지를 내어 줄 것을 청원한 의송 임신년 6월에 곡성현(谷城縣) 예산면(曳山面)에 사는 서영수가 도순찰사(都巡察使)에게 간교한 향리들에 의해 고마청(雇馬廳)에 속공(屬公)된 자신의 산지를 내어 줄 것을 청원한 의송(議送)이다. 청원한 사건의 경위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산면 연안 십여 리에 있는 나뭇갓[柴塲] 일대는 임자년부터 예산면 내에서 순산(巡山)으로 정하고 힘을 모아 수호하면서 해마다 땔나무를 내다 팔아서 민역(民役)에 보충해서 쓰고 남은 돈으로는 전답 몇 섬지기를 사두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간교한 향리들이 나뭇갓 유사(有司) 몇 사람이 역을 성실히 거행하지 않았다고 관에 고하여 나뭇갓과 전답을 모두 빼앗아 고마청에 속공하고 유사들은 죄를 판결하여 석방하였다. 그런데 서영수를 요호부민(饒戶富民)이라며 갖가지로 위협하며 빙정조(氷丁租) 60섬과 진상에 쓰는 장빙(蔵氷) 값 120냥을 이유 없이 부담하게 하고 또 속전(贖錢) 60냥을 공연히 책납(責納)하게 하였다. 하지만 가장 원통한 것은 서영수의 선영(先塋)이 순산(巡山) 구역 안에 있어 용호육곡(龍虎六谷)에 약간의 송추(松楸)가 심어진 곳을 논 일곱 말과 30냥을 면에 납부하고 명문을 작성하여 사들인 뒤 금양(禁養)하였는데, 이곳까지 모두 속공에 섞여서 귀속된 것이다. 이에 여러 차례 청원하였으나 결정되지 않다가 전임 수령이 돌아갈 때 다시 소지를 올려서 비로소 서영수의 뜻대로 제사(題辭)를 받았는데 소지가 갑자기 사라져 한창 찾고 있을 때 좌수(座首) 정인국(鄭仁國)이 서영수에게 자신이 힘쓰겠다며 70냥을 바로 상납하면 소지를 내주겠다고 하기에 수령을 잘못되게 하고 백성을 좀먹는 습성을 꾸짖은 후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에 병방군관(兵房軍官) 여선묵(吕善黙)이 관의 명령을 칭탁하여 장교를 보내 서영수를 잡아가 소지를 내보이면서 '소지는 내 손에 있으니 30냥을 빨리 가지고 오라'고 하자 서영수가 크게 웃으며 '소지의 제사에 무슨 값이 있느냐'며 꾸짖어 몰아냈다. 전임 수령이 출발한 뒤 가서 소지를 찾으니 여선묵이 전임 수령에게 돌려주었다고 핑계 대고 끝내 내주지 않았다. 이에 서영수는 위 산지는 애당초 매득한 사실이 명백하므로 소지의 유무와는 상관없으니 그 산지에 대한 완문(完文)을 내어 주라는 뜻의 제사를 내려주시고 모두 사실을 조사해 환징(還徵)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의송에 대해 도순찰사는 6월 24일에 '내역을 상세히 조사하고 본 명문을 상고하여 찾아내 줄 수 있는 것은 찾아내 주고 징급(徵給)할 것은 징급하라'는 처분을 곡성 겸관(兼官)에게 내렸다. 도순찰사는 지방에 큰일이 생겼을 때 재상으로서 왕명을 받들어 파견된 임시 관원으로, 『속대전』에 따르면 재상으로서 군무(軍務)를 받으러 사신으로 나간 자가 의정이면 도체찰사, 종1품 이하면 도순찰사, 종2품이면 순찰사, 종3품이면 찰리사(察理使)라고 하였다. 곡성현감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 뒤 후임관이 아직 부임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이웃 고을의 수령이 곡성현의 수령을 겸임[겸관]하고 있어 도순찰사가 겸관에게 제사를 내린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光武六年壬寅十二月 日 右人前明文右明文事段矣自起畓累年耕食是如可所用最急故西面大坪里防下橋伏在麗字畓二斗落價文柒拾兩果同字畓■根伏在二斗落價文參拾兩合壹百代執典是矣報期來明年十二月晦內報給若過此限永爲次知爲遣禾穀以賭租前例與受而日後若有言端以此文記憑考事自筆畓主張明化[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七年癸卯二月日右人前明文右明文事段矣自起畓累年耕食是如可至于今年勢不得島內西面內井洞伏在霜字丁壹斗肆升落折價錢文肆拾壹兩交易依數捧上爲遣右人前以新文一丈永爲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相左之弊則以此文記告 官卞呈事【新里內井洞】畓主張明化[着名]證人金如星[着名]趙元兼[着名]筆執禹仁坪[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曳山面新基里居化民徐璟淳右謹言事民以邑先生之子孫世居玆土門衰祚薄戶不滿十數皆是貧寒僅僅資生矣千萬意外今春正月良中道上面平地村居李基荗〖茂〗爲名人則京債敗家之人也路店酒筵之■(席)〔上〕招引民之堂侄延國酬酌曰今番京試同行云云則民之堂侄言內吾則貧寒無分錢路資未爲同行云則同基荗〖茂〗笑曰男兒出世則多錢與吾上京則得給京債五六百又得給武科先達請路云云而在傍聞人則但知戲謔之言矣至今弄假成眞同心作伴今月十二日豫爲發行是乎所㦖迫緣由仰訴爲去乎 洞燭敎是後 傳令于京主人處以防錢路以爲日後公私間俱便之地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壬戌二月 日〈題辭〉當以此念〖意〗傳令于邸吏向事 十日[官印]官[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술년 이술상(李述祥) 등 3명(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述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10월 9일에 경주 양동 마을에 살고 있는 이술상·이재영·이능섭이 옥계의 친족들에게 그들의 선조 봉사공의 묘도에 비석을 세운 날은 원전에 모여 제사 지내는 날과 겹치고, 이어서 문중 어른의 장례가 있어 참석하지 못하고 부조금으로 돈 한 꿰미만 보낸다는 내용을 전한 답장 임술년 10월 9일에 경주 양동 마을에 살고 있는 이술상·이재영(李在永)·이능섭(李能燮)이 옥계(玉溪)의 친족들에게 그들의 선조 봉사공(奉事公)의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운 날은 원전(達田)에 모여 제사 지내는 날과 겹치고, 이어서 문중 어른의 장례가 있어 참석하지 못하고 부조금으로 돈 한 꿰미만 보낸다는 내용을 전한 답장이다. 그동안 소식이 끊겨 서운했는데 오늘 상대방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여러분 모두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는 내용, 상대방 선조인 봉사공의 묘도에 비석을 세운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정성스러운 뜻을 알 만하니 매우 축하드린다는 내용, 자신들도 마땅히 비석을 세우는 날에 모두 참석해야 하지만 원전에 모여 제사 지내는 날과 서로 겹치고, 이어서 문중 어른의 장례가 앞뒤로 서로 방해가 되어 뜻대로 할 수 없으니 매우 한스럽다는 내용, 돈 한 꿰미를 보내 조금이나마 비용에 돕고자 하니 용서하고 받아 주시라는 내용을 담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기해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해년 4월 13일에 봉곡에 살고 있는 박천흠이 옥계에 사는 사돈 형제들에게 며늘아기의 상을 당한 자신의 상황 등을 전한 간찰 기해년 4월 13일에 봉곡(蓬谷)에 살고 있는 박천흠이 옥계(玉溪)에 사는 사돈 형제들에게 며늘아기의 상을 당한 자신의 비통한 상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 겨울에 달성(達城, 현 대구)에서 잠깐 만났던 일은 한바탕 꿈을 꾼 듯하며, 지금 소식이 끊겨 예전에 비해 곱절로 조바심이 난다는 내용, 초여름에 어버이 모시며 지내시는 상대방 형제들과 식구들은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으며 그리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다는 내용, 며느리상 중인 자신은 집안이 불행하여 며늘아기가 요절한 탓에 비통한 심정인데 상대방들도 아마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내용,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서로 아끼는 관계로 자나깨나 며느리가 자녀를 낳아 자신의 가업(家業)을 보존시켜 주기만을 바랐는데 뜻하지 않게 이런 일이 생겼으니 갑자기 지난날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막히고 분통하다는 내용, 불행중 다행으로 어린 손자는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어 위안된다는 내용, 자신의 아들을 만사 제쳐 두고 상대방에게 보내는데 아들이 무슨 면목으로 뵐 수 있을지, 안사돈의 심정은 감당하기 어려울 듯하며, 상대방을 만날 기약이 언제 있을지 모르겠다, 편지를 쓰고 있자니 서글픈 마음만 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簡札)省式 客冬達城蹔奉殆若一夢 阻懷憧憧倍切平昔 不審肇夏侍餘棣中 動止萬衛 諸節均安耶 並切溸仰區區無任 服弟私門不幸子婦夭逝 悲悼之慟彼此一般 舅婦間相愛之情 寤寐致責 惟望生子生女 保我家業矣不意今者人事 遽非撫念疇昔 益不覺臆塞 憤歎奈何 不幸中穉孫 無頉善長 以是爲慰矣 迷兒掃萬起送 渠何面目晉拜○萱堂這間情懷 想難堪抑 奉叙之期 果在於何歲月臨帋只增忡悵 餘萬悲撓姑不備狀式己亥四月十三日 服弟 朴天欽 狀上(皮封)玉溪○棣案○入納蓬谷狀上 省式謹封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簡札)碩基頓首言 不意凶變先妣夫人奄違色养 承訃驚怛 不能已已 伏惟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流邁 奄經大祥 禫祀又隔八日 哀痛沈痛 伏想益復難抑 碩基卽當躬慰之不暇 而連汨憂宂 又係世霧 抽身不得自由 尙未遂誠 而一書替唁 亦稽至此者 每以匍匐爲期之致也 雖緣事勢 撫念疇昔 辜負實多 晝宵誦罪 如物在喉 謂外伏承不較之惠問 以渠無似 何以得此 感悚之極 罔知攸謝 謹伏審炎熱制中棣候 連衛萬支 伏慰區區 實叶願禱 語失先後喪明之慽 是何言也 此何報也 難知者理也 以若尊門之種德○執事之慈仁 豈料今日之所遭也 讀之未半 不勝慘愕而驚倒也 晩境情景 實所悲念 伏願强加寬抑 俾無無益之懷 以損體力 如何 碩基月前遭從祖母喪 離闈之餘 客地承訃 情私痛迫 愈久難遣 且身無健日 長在委席 苦憐奈何 將以旬間 駄病躬○慰 兼謝前日不敏之咎伏計耳 餘萬萬留 不備 伏惟鑑察 答䟽上辛亥六月初五日 服人 李碩基 答䟽上(皮封)竹溪 禮安宅 傳納必洞 族弟 謹候書 謹封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謹候狀面何阻也書何阻也向者修候得見否謹未審辰下靜中棣履連爲萬相仰溸區區且祝宗下還巢以後偶然脚瘇累日呻苦姑未快然自歎奈何月前所營譜冊價錢是何委折終無影響之意譜所所言不好之事爲言聞甚悶迫故蔓遠從弟替送且聞右人言內趂爲措處事理當然此則非楚非爲趙以此勿泛之地仰望仰望餘謹不備候禮辛丑八月■十二日 宗下志喆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光緖五年 月 日 羅州牧考己卯成籍戶口帳內 新村面龍頭里住第 統第 戶幼學羅燾溢年三十三丁未 本羅州父學生厚集祖幼學時完曾祖學生聖采外祖學生李顯彬 本咸豊妻鄭氏齡三十三丁未 籍羅州父幼學仁赫祖學生基杓曾祖學生麟運外祖學生梁錫圃 本濟州奉母李氏齡五十六甲申 籍咸豊仰役婢永德甲寅生等己卯戶口自首者牧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74년 나주나씨대종회찬조기(羅州羅氏大宗會贊助記) 고문서-치부기록류-부조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3년 12월에 나주나씨종중사업추진위원회(羅州羅氏宗中事業推進委員會)에서 의연금을 낸 명단을 작성한 나주나씨(羅州羅氏) 문안(門案). 1973년 12월에 나주나씨종중사업추진위원회(羅州羅氏宗中事業推進委員會)에서 의연금을 낸 명단을 작성한 나주나씨(羅州羅氏) 문안(門案). 나주나씨(羅州羅氏) 유적지인 삼강문(三綱門) 및 금호사(錦湖祠) 개축 등 모선(慕先)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의연금을 걷음 *명단, 금액, 인장, 派別, 주소로 구성 *형태: 성책, 假綴, 9張(인쇄된 發起趣旨文 2장 합철)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