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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狀月前奉別之後未聞聲華懷悵之情與日無時謹未審肇夏重侍餘做味萬相慰溯區區之至兒省事依前幸何盡喩就日前下托紙屨趁不推送還爲愧悶然此非情薄之致而實是貿之不貿也則勿咎情薄之致切仰切仰而第因酒店李春三便全恃付送以此知之奈何餘不備禮若有人便莫惜玉音似好似好耳 戊戌四月初四日 兒李昌浩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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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狀近阻悵結之懷何可少弛謹未審日來重侍餘做味萬康慰溯區區之至情童省事依昨外何盡喩就拱日前君之所托麻鞋二配貿之留置適無信便趁不推送還切悶然一二日間惠然賁臨推尋之地似好似好耳餘不備候禮戊戌潤月十七日情童李昌浩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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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狀相別頗久書面積阻耿悵之懷與時蘊結謹未審萬和之暢重侍下做候萬康遠慰溯區區之至情弟省狀姑依幸何盡喩就拱第日當溫和之時一者枉駕以敍積月之懷千萬仰望餘不備狀禮 己亥三月晦日 情弟李昌浩 謹拜上【京中僉君子與秀童近間善課否 忙未各狀 以此輪照奈何】(뒷면)張文壽 雅兄 侍案入納薪金谷古上亭謹候狀恪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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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書接面稍久 耿耿何極 卽惟仲冬待中做味連得萬安而閣節亦爲太平否並仰溸區區憧憧情弟任味姑一餘無足耿就拱近聞三冬工夫則兄之課工至於如琢如磨之境而我之拙工未免伐齊之名是悶奈何餘不備禮庚子十一月日 情弟朴甫奎【小名致殷】謹書(뒷면)張碩士文垂甫 侍案入納薪智道復興謹封…□六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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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박덕봉(朴德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河赫 朴德奉 河赫<押>, 梁仲伊<着名>, 李東瓚<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6년 11월 24일에 유학 하혁이 박덕봉에게 목산면 도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6년(순조 26) 11월 24일에 유학 하혁이 박덕봉에게 목산면 도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하혁은 쓸 곳이 있어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짓고 살던 논을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박덕봉에게 팔았다. 논의 위치는 담양 목산면(木山面) 도고리(都庫里) 좌평(左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자자(玆字)이다. 논의 면적은 6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34짐 3뭇으로, 논값으로 33냥을 받았다. 명문 본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자제들 사이에 이 매매에 대해 서로 다투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면 이 명문으로 관(官)에 고하여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하혁, 이 매매의 증인(證人) 양중이(梁仲伊), 이 명문을 작성한 필집(筆執) 유학 이동찬(李東瓉)이 각각 착명(着名)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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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六年丙戌十一月卄四日朴德夆處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勢不得已要用所致木山面都庫里左坪玆字畓六斗落只卜數三十四負三束庫乙價折錢文三十三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弟間相爭雜談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河赫[着名]證人 梁仲伊[着名]筆執 幼斈李東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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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鎭里己酉式戶籍單子戶鰥夫張至誠年六十一己酉本仁同父學生 大運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二十三出嫁戊申九月日[帖][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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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南道 莞島郡薪智面大坪里第 統第 戶戶籍表 第戶主 黃順周 年三十八 本長水 職業農 前居父 生父敬顯 祖貴善 曾祖聖達 外祖崔貴福同居親屬 妻張氏本仁同長子石圭年十三次子石允年九子石君年五寄口 男 女雇傭 男 女現存人口 男四口 女一口 共合五口家宅 已有 瓦無 草家二間借有 無光武十一年三月 日 郡守金商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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標右標事譜冊價五十五兩捧上印辛丑八月十四日 標主■■志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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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城書院道內執綱 望李鍾聲 執綱[武城書院]原 居康津郡鵲川面內基里己巳十一月 日[武城書院]儒林道會所(피봉)望武城書院道內執綱己巳十一月 日[武城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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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城書院道內訓長 望李鍾聲薦[武城書院]原 居康津辛未十一月 日[武城書院]儒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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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城書院道內儒林齋長 望李太玉原 薦[武城書院]居康津郡鵲川面內基甲戌三月 日[武城書院]道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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標右標事段右人禁護私養山所在泥土以中路西便限界若有日後越限以此標憑信事辛丑八月卄二日標主李良都[着名]梁大兼[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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薪湖新里單錢拾壹兩宗人蔓涉便捧上印辛丑二月二十日譜廳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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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강련(姜鍊)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鍊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8년 2월 24일에 법전에 사는 강련이 옥산의 이 생원에게 상대방의 묏자리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아 걱정되고, 부탁한 일은 자신이 도와줄 수 없어 한탄스러우며, 보내준 안경은 자신에게 맞지 않아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1848년(헌종 14) 2월 24일에 법전(法田)에 사는 강련(姜鍊, 1800~1853)이 옥산(玉山)의 이 생원(李生員)에게 상대방의 묏자리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아 걱정되고, 부탁한 일은 자신이 도와줄 수 없어 한탄스러우며, 보내준 안경은 자신에게 맞지 않아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지난해 겨울에 상대방을 만나서 정담을 나눈 일은 해가 지나도록 위안되고 감사했는데 인편으로 또 편지를 받고서 상 중인 상대방이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위안된다는 내용, 자신은 어버이의 근력이 항상 병이 많아 애가 타며, 과거 시험 기일이 점점 닥쳐오니 갈수록 머리털이 모두 희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내용, 상대방의 묏자리 관련 소송 일은 아직까지 결말이 나지 않아 걱정스러우며, 상대방이 간접적으로 부탁한 일은 자신이 부응하기 어려우니 도리어 말씀을 받들지 않음만 못해 그지없이 탄식스럽다는 내용, 상대방이 보낸 안경은 귀한 물건을 주신 친절함에 감사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맞지 않아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달성(達城)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만 줄인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법전은 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으로, 진주강씨 법전문중의 세거지이다. 법전이라는 지명은 법흥사라는 사찰 앞에 있던 큰 밭을 지칭한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법전천의 옛 이름인 유계(柳溪)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진주강씨 법전문중의 파조(派祖)인 홍문관 응교 강덕서(1540~1614)의 아들 의금부 도사 강윤조(1568~1643)와 그의 두 아들인 잠은 강흡(姜恰, 1602~1671)과 도은 강각(姜恪, 1620~1657)이 병자호란을 피해 법전리로 입향하였다. 이후 노론의 당색을 띤 강흡의 후손들은 음지마을에, 소론색을 띤 강각의 후손들은 양지마을에 집성촌을 형성하였으며, 문과 급제자 25명, 무과 급제자 2명, 소과 급제자 31명 등을 배출하였다. 발신자 련은 거주지가 법전인 것을 볼 때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련(姜鍊, 1800~1853)으로 추정되며, 발신년도 무신년은 1848년로 추정된다. 강련의 자(字)는 성백(成百)이고, 강흡(姜恰)의 후손으로, 법전에 거주하였다. 1850년(철종 1)에 증광시(增廣試) 을과 4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修撰)‧교리(校理)‧부안현감(扶安縣監) 등을 지냈다. 그의 부친은 1809년(순조 9)에 별시(別試)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병조참판(兵曹參判) 등을 지낸 류하(柳下) 강태중(姜泰重, 1778~186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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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近阻悵仰 卽拜○惠書 仍審此時慈闈患候 以感嗽多日欠安 仰慮不任區區 弟家信之阻 已隔一朔 多少關心 皺眉難展 奈何奈何 東閣所愼今卽快可 寢進如常 是幸是幸示此還上 依敎言告 則孔等之已受到今還收之意傳令 有難事體 此等則因爲受食之外 更無他策云奈何 三種山菜 不近之地 鱗次遠饋 正甚不安 第以五斤肉 忘略分味以此○領情之意爲敎耳 營門之行 姑未知在於何間 而雖欲作之 行期自多牽掣 那邊玩景 恐未可必也 餘適因擾擾 姑不備謝禮丁未三月望日 弟 敦源 拜(皮封)章山○齋中執事 回敬中坪謹謝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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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五年 月 日羅州牧▣(考)乙酉成籍戶口帳內荷衣於恩村住第二統第六戶閑良金聖仁年五十八己丑本金海▣(父)閑良 弼逢祖閑良 尙巾曾祖閑良 延伯外祖閑良金節順 本金海妻朴氏年五十丙申 本密陽父閑良 得大祖閑良 敬漢曾祖閑良 桂春外祖閑良林春逢 本羅州率子達五年十七己巳等壬午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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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명학(金明學)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70 羅州牧使 金明學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2x7.5),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70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명학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70년(고종 7)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명학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준호구 발급년, 호주 김명학의 주소와 인적사항, 아버지의 인적사항 부분이 결락되었다. 김명학의 사조(四祖) 중 할아버지는 한량 필봉(弼奉),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이숙문(李淑文)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명학의 아내 박씨는 나이 67세 갑자생(甲子生)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고올(高兀), 할아버지 한량 치울(致欝), 증조(曾祖) 한량 창옥(昌屋), 외조 한량 최부지(崔扶智) 본관은 밀양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승록(昇祿)이 있으며, 나이 45세 병술생(丙戌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6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묘호구상준(丁卯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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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閒良 弼奉曾祖閒良 尙巾外祖閒良李淑文 本慶州妻朴姓年六十七甲子本密陽父閒良 高兀祖閒良 致欝曾祖閒良 昌屋外祖閒良崔扶智 本密陽卛子昇祿年四十五丙戌等丁卯戶口相凖者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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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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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나시완(羅時完)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時完 牧使<押>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61년(철종12)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시완(羅時完, 5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61년(철종12)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시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시호(羅時縞)는 나시완(羅時完)으로 개명하였으며, 나이는 54세이고, 무진년(1808)생으로,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성채(羅聖采)이고, 조부는 나언회(羅彦晦)이며, 증조부는 나종유(羅宗維)이다. 외조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아내는 최씨(崔氏)로, 나이는 41세이고, 신사년(1821)생이며, 본관은 해주이다. 최씨의 아버지는 최환일(崔煥日)이고, 조부는 최수정(崔守正)이며, 증조부는 최승렬(崔承烈)이다. 외조부는 이행윤(李行潤)이고, 본관은 양성(陽城, 현 경기도 안성)이다. 아들은 나운집(羅雲集)이고, 나이는 36세이며, 병술년(1826)생이다. 며느리는 이씨(李氏)로, 나이는 38세이고, 갑신년(1824)생이며, 본관은 함평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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