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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서면(西面) 천포리(泉浦里) 상임(上任)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上任 李 慶州郡守 上任[署押] 墨印(5.4×3.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6월 27일에 경주군 서면 천포리 상임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 1903년 6월 27일에 경주군 서면(西面) 천포리(泉浦里) 상임(上任)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이다. 결호전(結戶錢)을 8월 보름 이후로 기한을 정해 그때까지 정봉(停捧)하고, 구황에 대해서도 서로 구제하는 뜻을 민인(民人)들에게 잘 알리라는 전령(傳令)을 접수하였으니 잘 알아 시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끝부분에 이 첩정을 7월 초1일에 접수했다는 내용이 제사(題辭)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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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03년 서면(西面) 아화리(阿火里) 상임(上任)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上任 黃 慶州郡守 上任[署押] 墨印(5.2×3.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6월 26일에 경주군 서면 아화리 상임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 1903년 6월 26일에 경주군 서면(西面) 아화리(阿火里) 상임(上任)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이다. 결호전(結戶錢)을 8월 보름 이후로 기한을 정해 그때까지 정봉(停捧)하고, 구황에 대해서도 서로 구제하는 뜻을 민인(民人)들에게 잘 알리라는 전령(傳令)을 접수하였으니 잘 알아 시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끝부분에 이 첩정을 7월 초1일에 접수했다는 내용이 제사(題辭)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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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面阿火里上任爲牒報事 卽到付 傳令內 諸般民弊 槩已領略 結戶布錢 八月望後停捧之意是遣救荒一節 至情族戚間 互相出義之意 一一知委於大小民處爲臥乎事是良厼 合行牒呈 伏請照驗施行 須至牒呈者右 牒 呈郡 官癸卯 六月 二十七日 上任 黃[署押]到付七月 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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營奇一 嶺南右漕倉稅船一隻 爲風所逐 到泊於古羣山鎭內矣 該鎭吏民等 所載穀物 私自派食後 今方收刷 未卽限內收捧是如 今月十六日 該僉使捉上營庭 嚴棍三度後不日督捧之意 分付放還是白齊一 益山倅主在京 今月初十日 遭內艱喪敎是如 該邑公兄文狀報來是白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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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박용서(朴龍緖) 고시(告示) 고문서-첩관통보류-고시 朴龍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4월 6일에 박용서가 수산리의 각 작인에게 함부로 이작, 탈작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내린 고시 1912년 4월 6일에 박용서(朴龍緖)가 수산리(水山里)의 각 작인(作人)에게 내린 고시(告示)이다. 박용서는 서울에서 어제저녁에 내려와 보니 수산리의 작인들이 사전 협의 없이 경쟁적으로 이작(移作)을 도모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로 인해 실농(失農)하는 폐해가 없도록 하며, 완강히 거부하면 이 고시를 가지고 정소(呈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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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나주임씨보소(羅州林氏譜所) 보사절목(譜事節目) 고문서-첩관통보류-절목 羅州林氏譜所 羅州林氏譜所 3顆(적색,정방형,3.5×3.5cm)5顆(적색,원형,1.2cm)2顆(적색,원형,0.5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11월 7일에 족인들이 합심하여 보사를 완결하기 위하여 나주임씨보소에서 만든 7조항의 절목 1912년 11월 7일에 족인들이 합심하여 족보에 관련된 일을 완결하기 위하여 나주임씨보소(羅州林氏譜所)에서 만든 7조항의 절목이다. 보규(譜規), 보소(譜所), 명전(名錢), 수단유사(收單有司) 등에 관한 항목으로 나누어 내용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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派系難詳 鄧薛爭長 宗支難辨 忝先辱祖 不可正視 嗚呼 是豈可忍之事乎 甚於作俑者矣 然而一正本則末自理 正本至道 非譜則莫可 而正譜行則僞譜廢者 元吾宗前鑑也 然則譜事之不可緩也如此 且渠輩之窩窟 已成黨歎 寔繁慾竇利穴 未易剖破隱然有角立之勢 則合族同譜 非可論也 念我祖宗 一視之意 不覺痛傷于中也 載念其人不可化 而人之其書 不可收而火之 則修正原譜 遵古懲今 卽今日急務也 欲遲一日 有一日之害 二日則有二日之害 故玆以火通告 幷開節目于後 伏願僉宗 深明乎公私義利之分 必察乎盛衰存亡之機 齊心一力 俾完譜事 千萬幸甚譜事節目一. 譜規 一遵丁卯舊例 無或小改事一. 譜所 定于忠淸南道 恩津郡 大鳥谷面 閑谷炳熙家事一. 名錢 冠六拾戔 童四拾戔 磨鍊事一. 收單有司 定二人 畿鄕各一人式 派遣事一. 收單有司旅費 自譜廳 計程道 劃給事一. 旣往投入僞譜者 無過是暗昧所致 今若悔悟而願入者 則勿以前過排斥事一. 諸族之散在各處者 不可一一通告 以修譜事 揭載新聞 俾無不聞不知之弊事大正元年 十一月 七日 (陰 九月 三十日) [羅州林氏譜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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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천북면(川北面) 동산리(東山里) 상임(上任)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上任 崔 慶州郡守 上任[署押] 墨印(5.4×3.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6월 27일에 경주군 천북면 동산리 상임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 1903년 6월 27일에 경주군 천북면(川北面) 동산리(東山里) 상임(上任)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이다. 결호전(結戶錢)을 8월 보름 이후로 기한을 정해 그때까지 정봉(停捧)하고, 구황에 대해서도 서로 구제하는 뜻을 민인(民人)들에게 잘 알리라는 전령(傳令)을 접수하였으니 잘 알아 시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끝부분에 이 첩정을 7월 초1일에 접수했다는 내용이 제사(題辭)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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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北面東山里上任爲牒報事 卽到付 官令內開今玆再莅 雖未周察 而虛標勒懲 僞券盜賣 劃計技債 俾校猾吏 以私幻公指 不勝縷結戶錢 急於火色 然民情至此 八月望後 停捧爲旀 自各其洞 稍饒之民 互相出義是遣 或有寃懲者 卽爲訴令飭是乎故 一一知委於大小民處爲臥乎事是良厼 合行牒呈 伏請照驗施行 須至牒呈者右 牒 呈郡 官癸卯 六月 二十七日 上任 崔[署押]到付七月 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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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서면(西面) 집강(執綱) 첩정(牒呈)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執綱 金 慶州郡守 執綱[署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6월 28일에 경주군 서면 집강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 1903년 6월 28일에 경주군 서면(西面) 아화리(阿火里) 상임(上任)이 경주군수에게 올린 첩정이다. 전령이 내려왔는데 결호전(結戶錢)을 8월 보름 이후로 기한을 정해 그때까지 정봉(停捧)하고, 구황에 대해서도 서로 구제하는 뜻을 민인(民人)들에게 잘 알리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각 리에 내린 전령에 대해 각 리 상임의 도부장(到付狀)을 취합해 올리라는 내용으로, 잘 알아 시행하겠다고 올린 첩정이다. 끝부분에 이 첩정을 7월 초1일에 접수했다는 내용이 제사(題辭)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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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面執綱爲牒報事 卽到付 傳令內開 今玆再莅 諸般民弊 雖未周察 而虛標勒懲 僞券盜賣 劃計技債 俾校猾吏 以私幻公結戶錢 八月望後 停捧救荒一節 自各其洞 稍饒之民 互相出義 或有寃懲之民 卽爲來訴之意 一一知委於大小民處爲旀 各里上任到付狀 都聚上送爲臥乎事是良厼 合行牒呈 伏請照驗施行 須至牒呈者右 牒 呈郡 官癸卯 六月 二十八日 執綱 金[署押]到付七月 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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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文完文▣(右)完文爲後考事 禮曹關內▣▣下敎癸巳十月二十日 行禮曹判書請對入 侍時 所 啓 臣於▣▣▣(頃年待)罪禮曹時 考見謄錄 則以書院院生 係是曾前所無之名號 雖入軍役勿爲頉下事 有大臣定奪之事 故外方書院 或有呈單 請爲頉下軍役 已成近例 盖乙亥年間 憲府有論事之箚 請罷院生仍有定額之命 文廟從享先賢書院 則三十人定額 賜額書院 則二十人 未賜額書院 十五人爲定 書院募入 曾以賜額處二十名 未賜額處十五人定式 故院生數額 似倣於此 而募入則無從祀先賢書院加數之事 而獨如此 未知其故矣 大抵朝家事體 當以爲重 若以三十名爲可 則此皆當給三十名 若以二十名爲可 則皆當給二十名 今以從享之先賢 有所優劣差等 實爲未安 當有從一定式之道 故敢此仰達上曰 二十名定額爲宜耶 左議政曰 書院本爲尊奉先賢而設 則似不當以從享未從享有所等分矣上曰 勿從享與未從享 賜額書院與未賜額書院 院生二十名定給 可也傳敎是置 敎命辭意奉審施行 道內各邑良中知委施行事英宗朝下 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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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도(節爾島) 절목(節目) 고문서-첩관통보류-절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절이도의 궁방전 운영과 관련하여 명례궁에 건의하는 내용을 나열하여 적은 절목 절이도(節爾島)는 실록에서는 절이도(折爾島)로 썼다. 절이도는 오늘날 거금도(居金島)로 전남 고흥군 금산면의 주도(主島)이고 고흥반도 남쪽 근해상에 위치한 섬이다. 명례궁은 왕실의 중궁전(中宮殿)에 속하는 내탕(內帑)으로서 궁중의 내소주방(內燒廚房)과 외소주방(外燒廚房)에 각종 식재료의 공급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궁방이었다. 문서는 절이도의 운영과 관련하여 명례궁에 요청하는 내용을 나열하여 적은 형태로 되어 있다. 번역하면 다음의 내용과 같다. "일. 절이도(節爾島)는 명례궁(明禮宮)에 부속된 섬으로, 무자년에 창설되어 묵은 땅을 일일이 개간하였으니 각 영(營)과 읍(邑)과 진(鎭)이 침해하는 단서를 없애주십시오. 일. 본궁의 소금 상납은 봄가을로 300섬[石]이 정식이다. 창설 초기에 도민(島民)의 어려운 정황을 고려하여 700냥만 받고 부족한 1,150냥은 다른 데서 빚을 내어 무탈하게 상납하였는데, 그 뒤에 이 돈을 지금까지 하나도 추심하지 못했다. 금년 봄 상경했다가 돌아올 때 그간 왕래한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미 지급한 1,150냥 가운데 400냥을 가져다 썼다. 그 뒤에 도민 가운데 무뢰배가 못된 짓을 하여 이른바 파원(派員)이 멋대로 거짓을 엮어 소송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운운하니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일. 본도(本島) 파원의 임황(任貺)은 매달 50냥씩인데 그 중 하인 2명을 먹여주고 입혀주면 어떻게 넉넉한 임황이겠습니까. 일. 송속(松贖)으로 말하자면 궁칙(宮飭)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징속(徵贖)하되 이 돈은 땅 33마지기[斗落]를 사서 궁토(宮土)에 부치고 그 나머지는 성책(成冊)해서 명례궁에 보고한 뒤 공용(公用)에 보태도록 해주십시오. 일. 본도에서 생산되는 가사리(加沙里)는 궁(宮)에서 처분하여 민간에 값을 준 뒤에 수합하여 매매하면 남는 이익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둔장(屯長)ㆍ유사(有司)ㆍ간사(看事) 5~6인에게 환급하고, 잉여전(剩餘錢) 가운데 500냥을 파원에게 주고 그 나머지 몫을 그들에게 주는데 이 돈 500냥은 서울을 왕래하는 비용에도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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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丑十月二十六日 畓典當票右票事 先親債錢參百兩 利害不計 一年利条壹百伍十兩 合本錢肆百伍拾兩 同日得用是罪 伏在寶城道村面上道石垈坪廉字畓 十二斗落 右前典當爲遣 限五年流移報上之意 如是成票爲去乎 每年數五石禾条作定 則日後如有爻象 則以此票憑考爲乎事典當票主李周一[着名]訂筆朴邦彦[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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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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標 明治四十三年庚戌 十月二十九日右標事段 錢文四十三兩을 甲辰十二月十五日의 金學仙處 出給是加而並本利ᄒᆞ야 合七十兩으로 受捧ᄒᆞ고 如是給松表事日後若有異說 則以此表로憑告ᄒᆞᆯ事 標主 金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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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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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기해년 전대문(全大文)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全大文 咸安郡守 官[押] □…□ 3顆(4.0×4.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해년 4월에 상리 장명의 전대문이 함안군수에게 제출한 소지 기해년 4월에 상리(上里) 장명(長命)의 전대문(全大文)이 결세전(結稅錢) 징수와 관련하여 함안군수에게 올린 청원서이다. 전대문이 마땅히 내야 할 결세전을 모두 납부했는데도 다시 세전(稅錢)이 징수되었으니 사실을 조사하여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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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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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上里 長命 全大文右謹陳所志事段 夫稅結錢 莫急之公納也 而民之所當稅錢 旣爲歲前畢納 而今於稅錢出牌 有何事端是喩 莫知事實 故緣由仰訴爲去乎參商敎是后 特軫事狀 上項舊稅出牌 錢二兩六戔五分 本自結卜相關也 該色的只 査實歸正 俾無寃懲之地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己亥 四月 日行官 [押]【題音】急納公錢可爲出牌 是誰之奸 詳査移錄向事奴石乭收錄條中一兩三戔二分 罷還錄於石乭處是在果零數段 卽刻俾納 無至抵?向事卄八日 背題都捧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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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경자년 조성화(趙性和)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趙性和 咸安郡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자년 7월에 장을 맞고 수감 중인 조성화가 함안군수에게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소지 경자년 7월에 장(杖)을 맞고 수감된 조성화(趙性和)가 함안군수에게 올리려고 작성한 소지(所志)이다. 하지만 관인이 없고, 제사(題辭)나 성주(城主)의 압(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제 제출된 것 같지는 않다. 내용은 동두민(洞頭民)이 감당할 결두전(結頭錢) 300냥 중 170냥은 거둬 들였으나 130냥은 걷지 못했는데, 해결 방도가 없으니 매결(每結)마다 결두(結頭) 2냥씩으로 하여 받자고 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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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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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杖房囚 趙性和右謹言 罪在罔死 發明無路爲遣 黑心一顯萬無一白是乎羅 雖賊民之訴狀是羅 另加垂察焉 民之所浦 洞頭民擔當條三百兩 □□無懸報故無一分錢 頭民臆徵 而一一歸劃是白오되 一百七十兩 僅僅辨納是白遣 餘條一百三十兩段 一洞皆會 以結頭條 新尊洞擔當是白加尼 萬萬不意 二等沈文玉 但特世居多族 民之餘逋 獨擔於以柳興渭之心衝激 殘民前日洞會已決之事 至此起鬧 先何心 後何心也 前日等狀內 以無名錢分排云是乎羅 此是結頭錢也 而結頭段 每結二兩式 付捧以用稅納收捧時 各費於乙 此錢何云無名錢乎 每結二兩式付捧 一邑皆然 故緣由仰訴爲去乎參商敎是后 特下嚴題 每結結頭二兩式 依他洞付捧之意 千萬伏祝行下向敎事城主 處分庚子 七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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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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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기해년 이수범(李壽範)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壽範 咸安郡守 官[押] □…□ 4顆(4.0×4.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해년 3월에 함안군 산익면 모동에 사는 이수범이 함안군수에게 제출한 청원서 기해년 3월에 함안군 산익면(山翼面) 모동(茅洞)에 거주하는 이수범(李壽範)이 함안군수에게 청원하기 위해 올린 소지(所志)이다. 본동(本洞)의 존위(尊位)로서 결세전을 대부분 거둬 들였으나, 他里(타리)에서 온 작자(作者)에게는 거둬들이지 못한 것이 있으므로 명단을 후록하며 독촉하여 거둬들일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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