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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조성민(曺聖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聖民 墨印(17.0×5.3)朱印(6.8×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765년(영조 41), 무장현(茂長縣)에서 유학(幼學) 조성민(曺聖民, 3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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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貳年 壬辰 十二月 二十一日 庇仁宗人前 手記右手記事段 藍浦熊川面看入里先山下家垈田庄 旣是宗中之土也自宗中或相買賣 而不可他人買賣者也 或有不肖孫 放賣於他人 則諸宗幷起 呈 官 還推 其所賣之土 而賣之者 則別加討罪事手記主 藍浦宗人 金錫朋 [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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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標右手標事段 先塚在於南原圓山基洞 而禁養則前後盡是乎矣 李進士世葬之地也 昨年二月良中 進士山入葬於先塚之上 理雖當禁 而自先世已賣之地到今禁葬 體禮不當 故來言恳狀右宅 矜此無依 優惠十五兩錢 故以同山之意 成手標以給 日後子孫中 如有異論是去等 以此標卞正事辛卯二月二十一日 標主 金相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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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김상후(金相壽)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1891.2.21] 金相壽 李學鎬 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48_001 1891년(고종28) 2월 21일에 표주 김상수가 남원부에 사는 이학호에게 자신의 선산에 이진사공의 산소 입장을 허락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해 준 수표. 1891년(고종28) 2월 21일에 표주(標主) 김상수(金相壽)가 남원부에 사는 이학호(李學鎬)에게 자신의 선산에 이진사공의 산소 입장을 허락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해 준 수표이다. 자신측의 선대 무덤이 남원(南原) 원산(圓山) 기동(基洞)에 있는 전체 땅인데 이 진사공의 무덤이 입장하였으니 특별히 15냥을 받고 함께 산을 수호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수표을 작성하며 이후 후손들의 이론이 있을 경우 이 수표로써 바름을 가리라고 명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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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조성민(曺聖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聖民 墨印(17.3×5.2)朱印(6.5×6.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777년(정조 1), 무장현(茂長縣)에서 유학(幼學) 조성민(曺聖民, 4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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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예식원(禮式院) 입안(立案) 2 고문서-증빙류-입안 禮式院 曺萬承 妻 慶州鄭氏 家 禮式院掌禮卿印(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76_001 1905년(광무9) 12월, 예식원에서 전라북도 무장군의 조만승 처 경주정씨에 대한 정려와 증포를 허락하고 정문을 조성하며 그 집에 연호잡역을 물침하도록 완문을 성급해 주도록 한 입안. 1905년(광무9) 12월, 예식원(禮式院)에서 전라북도 무장군(茂長郡)의 조만승(曺萬承) 처(妻) 경주정씨(慶州鄭氏)에 대한 정려와 증포를 허락하고 정문(旌門)을 조성하며 그 집에 연호잡역(烟戶雜役)을 물침(勿侵)하도록 완문(完文)을 성급해 주도록 한 입안(立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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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案禮式院爲相考事 夫孝烈爲百行之源 而爲人子止於孝 爲人婦克於烈 而若有卓行異烈褒闡揚㫌 朝家之盛典耶 於全羅道茂長郡故通政臣曺萬承之妻慶州鄭氏 以簪纓世族 生而質淳 孝於父母 愛其兄弟 結縭於曺門 竭誠養舅姑 事君子一心 及喪其舅姑 倚廬無憾 其夫罹于毒疾 每夜致誠 祝天願代 止於危劇刲股 和血於未飮 以甦數日之命 夫歿撫養遺孤 不墜家聲 如此婦德 可謂烈孝兩全彛 天所覆 孰不欽服哉 玆擧懿行實蹟啓聞後 特蒙旌閭贈秩之典 自本府 轉飭于該道該郡該面 據義指揮材瓦木石 另別輸運 旌閭不日造成 烟戶雜役 一並勿侵之意 成完文 以給永久遵行爲宜事光武九月十二月 日掌禮卿 [禮式院掌禮卿之章] 稽制課長 主事主事主事[禮式院掌禮卿之印] 7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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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조성민(曺聖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聖民 墨印(18.1×4.8)朱印(6.8×6.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783년(정조 7), 무장현(茂長縣)에서 유학(幼學) 조성민(曺聖民, 5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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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정진문(鄭鎭文)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沃溝縣監 鄭鎭文 1顆(6.7×6.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20_001 1897년(건양 2) 1월, 전라북도 옥구현 장면 오봉리(全羅北道 沃溝縣 長面 五峰里)에 거주하는 호주(戶主) 정진문(鄭鎭文)이 제출하고 발급받은 호적표(戶籍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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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조성민(曺聖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聖民 墨印(18.0×5.0)朱印(6.6×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768년(영조 44), 무장현(茂長縣)에서 유학(幼學) 조성민(曺聖民, 40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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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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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조성민(曺聖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聖民 墨印(17.1×5.1)朱印(6.6×6.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771년(영조 47), 무장현(茂長縣)에서 유학(幼學) 조성민(曺聖民, 4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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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05년 김상일(金商一) 등 상언(上言) 고문서-소차계장류-상언 全羅道 儒生 金商一等 23名 禮曹判書 小1顆(3.4×3.4)大1顆(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76_001 1905년(광무9) 12월, 전라도 유생 김상일 등 23인이 연명하여 예식원 장례경에게 도내 무장군 출신 고 조만승 처 경주정씨에 대한 열녀정려를 내려 줄 것을 청한 상언. 1905년(광무9) 12월, 전라도 유생(儒生) 김상일(金商一) 등 23인이 연명하여 예식원(禮式院) 장례경(掌禮卿)에게 고(故) 조만승(曺萬承)의 처(妻) 경주정씨(慶州鄭氏)에 대한 열녀 정려를 요청한 상언(上言)이다. 이에 대하여 장례원 경은 '이와 같은 부녀자의 덕(德)은 열(烈)과 효(孝)를 모두 온전히 했다고 할 만하고 매우 가상하다. 마땅히 포장을 청하겠다.'고 초7일에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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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儒生 奇景燮 鄭淇朝等 謹齊沐百拜上書于禮式院掌禮卿閤下 孝爲百行之源 而有能行者鮮矣 故一有能行之者 則必有士林之公言也 納公言之實 而闡揚棹稧之褒贈之朝家之盛典也 本道內茂長故士印曺慶三 以簪纓世族 天性純孝 曺襲庭訓 文學夙成 克篤六行 家內規範 一以司馬溫公家法爲師 事父母昏定晨省 肅淸有度 甘旨之供志軆之養 固非天出之誠 不能爲是人之行也 家素淸貧 山海之味 勢不得常継 樵山漁水 手足胼胝 不知風雨寒暑 對人談論 恒時父母之養 惟恐不及勤勤枚枚 盡宵戰兢 如臨深履薄 則是皆一日中節於聖賢之戒惧也 父以老患 爲臥呻吟 身未嘗盥櫛衣服 屎尿汚穢 親手除拭 問於醫家 則曰人之將死 糞有變味云 朝朝嘗之 其父必以天年 至于奄忽 裂指湊口回甦 三日之命 終至奄然候息哀毁痛迫 已無可言 初終凡百 朝夕奠禮 一遵晦庵嘉禮 歠粥疎食 亦如聖訓無違 則是皆人子之疎節也 終三年之喪 魚肉不入口 葬其親於二十里外 雖疾風雷兩省墳之行 不廢於朔望 是亦孝子之疎行也 世皆以曺孝子指名矣 服闋後至老死三十餘年 亦終必不忘三年之內 朔望之例 則眞可謂終身慕父母者非耶 鄒聖之言 必稱大舜 豈欺我哉 如此卓然之行 聞者亦莫不有秉彛之心 而不可泯黙 故玆敢仰達于 孝理明庭之下爲白去乎 以此卓然之孝 特爲 啓達于天陛優下恩侑之典 以表旌孝之地 千萬激切 屛營祈懇之至光武九年十一月 日 請願人 道內儒生 奇景燮 鄭淇朝 崔炳懋 蘇升奎 宋泰浩 李鍾澤 宋元浩吳喆洙 曺錫休 姜晋永 林相鶴 金亨述 李重基 金永述鄭海翊 安秉默 鄭鳳鉉 朴景輔 張奉植 劉秉燮 孫炳植 等大宗伯 閣 [掌禮院卿之章](題辭)若是婦德 可謂烈孝兩全 聞甚嘉尙 當奏褒ᄒᆞᆯ事初七日[掌禮院印] 3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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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06년 안성환(安成煥) 서간(書簡) 고문서-소차계장류-소장 安成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9월 11일에 안성환이 상대방이 보냈던 소장(疏狀)에 대한 답신 성격으로 보낸 서간 1906년 9월 11일에 안성환(安成煥)이 보낸 편지이다. 수취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안성환은 아직 탈상을 하지 않아 자신을 죄제(罪弟)라 쓰고 있다. 올봄 장소(葬所)에서 상대방의 서신을 받았으나 지필(紙筆)을 잡지 못해 답신을 보내지 못했다고 하며, 지금은 궁벽한 산중에서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밝혔다. 상대의 안부를 두루 묻고,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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