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41년 이노(李奴) 천봉(天奉) 토지매매 사급입안 점렴문서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陽川縣監 李生員 奴 天奉 上典 李[手決] 11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1년(영조17) 2월에 양현현에서 이생원(李生員) 노(奴) 천봉(天奉)의 전답매매 사실을 관에서 증명해준 토지매매 사급입안과 입안을 꾸미기까지 작성된 문서를 점련한 문서 일괄 1741년(영조17) 2월에 양천현(陽川縣)에서 이생원(李生員) 노(奴) 천봉(天奉)의 전답매매 사실을 관에서 증명해준 토지매매 사급입안과 입안을 꾸미기까지 작성된 문서를 점련한 문서 일괄이다. 그러나 본 문서 중 가장 앞에 위치했어야 하는 입안신청 소지는 떨어져 나가 남아 있지 않다. 점련문서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1. 상전(上典) 이씨가 노(奴) 천봉(天奉)에게 양천(陽川) 신월(新月)에 있는 과거는 정자(政字), 현재는 만자(萬字) 자호인 논 3두락지를 방매해 올 것을 지시하는 배자(牌字), 2. 신유년(1741) 2월 10일에 전답주인 이생원 노 천봉으로부터 받은 전답매매사실이 확실하다고 다짐을 받은 초사(招辭), 3. 신유년 2월 10일에 황정금(黃丁金)과 길자남(吉自男)이 자신들이 노 천봉이 논을 살 때 증필(證筆)로 참여했음을 진술한 초사, 4. 건륭6년(1741) 2월에 양천현(陽川縣)에서 이생원 노가 전답을 매매한 사실이 있음이 적실함을 확인해주는 입안(立案), 5. 1630년(인조8) 3월 8일에 이생원이 산 신월리 논에 대한 이전 거래 명문 구문기(舊文記)로 구성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乾隆十六年壬申 正月 二十一日 幼學 高參瑞前 明文右明文爲事段 移買次 買得畓 大洞員修字五十畓一斗五刀落只 五卜一束㐣 價折錢文柒兩 依數奉上爲遣 本文記一丈幷以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幸有雜談者是去等 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 金自望 [署押]筆 幼學 宋龍達 [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52년 고삼서(高參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自望 高參瑞 金自望[着名]宋龍達[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2년(영조 28) 1월 21일에 김자망이 고삼서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752년(영조 28) 1월 21일에 김자망(金自望)이 고삼서(高參瑞)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문서이다. 김자망이 대동원(大洞員) 소재 수자답(修字畓) 1두 5승락지를 전문 7냥 가격으로 고삼서에게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김자망은 이전에 이 논을 매득하였으나 이매(移買)를 목적으로 다시 방매한다고 쓰여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1년 김재연(金在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性佑 金在年 性佑[着名]太演[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1년(순조 31) 10월 19일에 승 성우가 김재연에게 논 2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1년(순조 31) 10월 19일에 승(僧) 성우(性佑)가 김재연(金在年)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승 성우가 자신이 매득한 논 2두락지를 김재연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계약 문서인데, 매매한 토지는 고읍면(古邑面) 사동평(蛇洞坪)에 있는 논으로, 자호는 부자(婦字)이다. 규모는 2두락지이며, 부수(負數)로는 4복(卜)이다. 가격은 전문 40냥이다. 방매자 성우는 '산인(山人)'이라 쓰고 서압을 하였는데, 곧 승려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인과 필집을 담당한 사람 역시 산인이며 이름은 태연(太演)이다. 이를 통해 승려의 토지 소유와 매매를 엿볼 수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十一年辛卯 十月 十九日 金在年處 明文右明文事段 矣自起買得畓 要用所致伏在於古邑蛇洞坪婦字畓二斗落只負數四卜庫乙 價錢肆拾兩 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永永放賣爲乎矣 本文記三丈幷以爲去乎 日後某同生中 若有雜談 則此文記 告 官卞呈事畓主 山人 性佑 [署押]證人筆 山人 太演 [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0년 김재연(金在淵)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基彦 金在淵 韓基彦[着命]李廷珉[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 6) 2월 6일에 한기언이 김재연에게 고읍면 소재 논 3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40년(헌종 6) 2월 6일에 한기언(韓基彦)이 김재연(金在淵)에게 논 3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논은 고읍면(古邑面) 내 율리평(栗里坪)에 있는 봉자정(奉字丁) 3두락지이며, 위아래 쪽으로 모두 매득자 김재연의 토지가 놓여있는 땅이다. 즉, 김재연이 주변 토지를 조금씩 매득하며 집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매한 가격은 전문 72냥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二十年庚子 二月 初六日 幼學 金在淵許 明文右明文事段 矣自己畓 在於古邑面內栗里坪奉字丁 今種三斗落只 上下邊 同人連伏 負數十三負七束 一㐋每三夜味㐣 勢不得已 價折錢文柒拾貳兩 右人處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談是去等將此文 告官憑考事畓主 幼學 韓基彦 [署押]證筆 幼學 李廷珉 [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6년 고생원(高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春錫 高生員 崔致敬[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6년(철종 7) 3월 25일에 동몽 김춘석이 고생원에게 논 2곳을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6년(철종 7) 3월 25일에 동몽 김춘석(金春錫)이 고 생원(高生員)에게 논을 방매하며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방매자 김춘석이 몫으로 받아 수년간 수세(收稅)해 온 곳인데, 갚아야 할 부채가 많아 부득이 방매한다는 경위를 밝혔다. 이 토지는 계촌(桂村) 내동평(內洞坪) 화자답(火字畓) 6두락과 2두락 두 군데의 논으로, 가격은 전문 80냥이다. 구문기 2장을 첨부한다는 사실도 언급되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咸豐陸年丙辰 三月 二十五日 高生員前 明文右明文事 傳來衿得 數年收稅是多可 報債許多 不得已 放賣次 伏在桂村內洞坪火字畓 六斗落 七夜味 負數二十四卜八束庫果 又火字畓二斗落 二夜味 負數十八卜六束庫乙價折錢文捌拾兩 依數捧用是遣 右班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爻象 則以此文記 告官卞呈事 此亦中 旧文二章 倂爲放賣耳畓主 童蒙 金春錫 喪不着證人 幼學 崔致敬 [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0년 장씨(張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桂元 張氏 吳允澤[着名]崔碩厦[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0년(순조 30) 12월 3일에 최계원이 자기 앞으로 전래해 온 논 5두락지를 장씨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0년(순조 30) 12월 3일에 최계원(崔桂元)이 장씨(張氏)에게 논 5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자 최계원이 전래되어 온 논으로 포두면(浦頭面) 봉림동(鳳林洞)에 있는 5두락지를 장씨에게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값은 전문 115냥이며, 본문기 2장을 함께 건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拾年庚寅 十二月 初三日 張氏前 明文右明文事段 矣傳來畓是在 移賣次伏在於浦頭面鳳林洞家前坪 飽字丁上下連伏 合伍斗落只 壹㐋每柒夜味 下邊連伏春伊 上邊貴丹連伏廤乙價折錢文壹佰拾伍兩 依數捧上爲遣 本文記貳丈倂以 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雜談 則此文卞正事畓主 崔桂元 喪不着證人 吳允澤 [署押]筆 幼學 七寸叔 崔碩厦 [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9년 문영직(文永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文永直 文永直[着命]河文哲[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9년(헌종 5) 2월 22일에 문영직이 자신이 매득하여 소유하고 있던 논 2두락을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9년(헌종 5) 2월 22일에 문영직(文永直)이 논 2두락을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인 즉 수취자가 누구인지는 쓰여 있지 않다. 19세기를 전후하여 토지매매명문에 수취자명을 쓰지 않고 공란으로 두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방매한 토지는 문영직이 스스로 매득하여 여러 해 갈아먹던 곳으로, 계촌(界邨) 내동촌(內洞村) 앞들에 있는 화자답(火字畓) 2두락지이다. 값은 전문 35냥이다. 본문기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첨부하지 못한다는 추기(追記)가 쓰여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十九年己亥 二月 二十二日前 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 以要用所致 伏在界邨內洞村前坪 火字畓二斗落 二夜味 負數十三卜五束㐣 價折錢文三十五兩 依數捧上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他端則持此文 卞正事畓主 自筆 文永直訂人 河文哲 [署押]本文記段 失傳未給 依此憑考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4년 김춘금(金春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取福 金春今 朴取福[着名]金振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4년(철종 5) 2월 3일에 학실 창고지기 박취복이 김춘금에게 학실 소유의 논을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4년(철종 5) 2월 3일에 박취복(朴取福)이 김춘금(金春今)에게 논을 방매하며 발급한 토지매매문기이다. 방매자 박취복은 학실(學室) 고자(庫子)로 되어 있고, 방매하는 논 역시 학실에서 매득하여 수년간 갈아 먹던 곳이다. 방매 사유는 이매(移買)이다. 추정컨대 문중 또는 동리에서 운영하던 학실에서 경영하던 논을 매매한 사례로 보인다. 매매한 토지는 대동원(大同員) 소재 우자(祐字) 28번 논으로, 규모는 9두락지이고 값은 65냥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咸豐四年甲寅 二月 初三日 金春今前 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 亦要用所致 學室買得畓 累年耕食是如可 以移買次 伏在於大同員 祐字二十八畓 二十九負六束九斗落只㐣 價折錢文陸拾伍兩乙 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 告官卞正事畓主 學室庫子 朴取福 [署押]證筆 幼學 金振鐸 [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蔡敏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광무2) 10월 20일, 답주 채민수가 임피향교에 임피군에 있는 논 7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8년(광무2) 10월 20일, 답주(畓主) 채민수(蔡敏秀)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서쪽의 9작(作) 사자(斯字) 논 5두락지와 같은 지번의 논 2두락지 합 7마지기 27부2속의 땅을 전문(錢文) 490냥을 받고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줄 수 없다고 적었다. 거래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채민수, 증필(證筆) 이덕화(李德華)와 조윤익(趙允益)이다. 이 명문의 소장처는 임피향교였으므로 임피향교에서 사들인 땅 문서로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二年戊戌十月二十日 右人前 明文右明文事段 伏在西九作斯字畓伍斗落果 同字二斗落 合七斗落 所耕貳拾柒負貳束庫乙 価文肆佰玖拾兩 依數捧上是遣 右前永永放賣 而旧文記中間閪失 故以新文記一丈 如是成文爲去乎 日後若有異說 則持此文憑考事畓主 蔡敏秀[着名]證筆 李德華[着名]頭民 趙允益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69년 김정필(金廷弼)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金廷弼 施命之寶(10.0×10.0)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56_001 1869년에 김정필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경복궁오위장에 임명하는 고신 1869년에 김정필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경복궁오위장에 임명하는 고신 교지이다. 이 고신과 동년 동월에 발급된 처(妻) 김씨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추증교지가 함께 전한다. 오위장은 궁내에 입직하여 5위 소속의 군사를 분정 받아 순시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조정에 연회나 경축행사가 있을 때 소속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마다 정렬하기도 하였다. 오위장은 왕 주변에서 군대를 통솔하는 관직이므로 대군이나 임금의 신임을 받은 관료가 임명되었다. 하루 세 명씩 차례를 나누어 입직하며 3일마다 교대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69년 김정필(金廷弼) 처 김씨(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金廷弼 妻 金氏 施命之寶(10.0×10.0)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56_001 1869년 김정필의 처 김씨를 정부인에 추증하는 교지 1869년 김정필의 처 김씨를 정부인에 추증하는 교지이다. 김정필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경복궁오위장에 임명하는 고신과 함께 전하고 있으며, 발급연도 좌측에 '종부직(從夫職)'이라는 발급사유가 적혀 있다. 즉 남편의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에 맞는 외명부 문무관 처의 품계인 정부인에 추증한 것이고, 이는 법전의 규정대로 '망처(亡妻)의 종부직'이 추증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추증교지와 더불어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추증교지도 함께 전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753년 조후천(曹後天)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英祖 曹後天 科擧之寶(9.5×3.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3년(영조29)에 유학 조후천이 소과에 진사로 입격하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예조에서 담당하여 발급한 백패. 1753년(영조29)에 유학(幼學) 조후천(曹後天)이 소과(小科)의 진사(進士) 부문 3등 제2인으로 입격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백패이다. 백패는 예조에서 담당하여 교지(敎旨)의 형식으로 작성하며, 인장으로 과거지보(科擧之寶)를 찍는다. 조후천(1701~?)의 본관은 창녕, 자는 자윤(子允), 당시 거주지는 고부(古阜)로 아버지는 학생(學生) 조위한(曺緯漢)이다. 『숭정3계유식년사마방목(崇禎三癸酉式年司馬榜目)』에 과거합격사실이 실려 있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