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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나득검(羅得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得儉 [同福縣監之印](7.2×7.5),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6_001 1798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798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행현감의 서압이 있다. 나득검과 어머니 방씨(房氏), 처(妻) 김씨(金氏)가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30세이다. 아버지 나순좌의 사망 이후 처음 호주가 되었기 때문에 '신호(新戶)'라고 표시하였다. 나득검의 사조(四祖)와 처(妻) 김씨(金氏)의 사조를 기재하였고, 높이를 낮추어 천구질(賤口秩)을 기재하여 소유 노비를 적었다. 천구질에 다른 곳에 나가 사는 외거노비를 각거질(各居秩)로 표시하였다. 노비 1구는 앙역노비이고, 각거질 다음에 적은 3구는 외거노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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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2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4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계유년 2월 7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계유년 2월 7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이 문서는 1건의 징세목록과 1건의 자문이 점련되어 있는 형태이나 자문의 경우 전면부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결락된 상태이다. 남아있는 전면부를 살펴본 결과 결락된 나머지 부분이 별개의 문서로 정리되어 있으므로 관련 문서에 표시하였다. 징세목록은 해남현 마포면(馬浦面)과 청계면(淸溪面)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북창에 세미를 납부해야 할 17명의 명단과 결복(結卜)을 표시한 문서이다. 결복은 토지에 매기는 목[結], 짐[負·卜], 뭇[束]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곧 전답의 면적 단위나 여기에 부과된 전세(田稅)를 의미한다. 나머지 자문은 계유년 2월 7일에 작성된 것인데, 해남현 청계면(淸溪面) 대운동(大云洞)에 사는 대봉(大奉)이 세미를 납부하고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자문의 형태로 미루어 보아 자문의 말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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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조계묵(曺季默)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季默 墨印(14.7×4.8)朱印(6.2×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825년(순조 25), 무장현(茂長縣)에서 환부(鰥夫) 유학(幼學) 조계묵(曺季默, 6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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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조관묵(曺觀默)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茂長縣監 曺觀默 墨印(14.8×4.4)朱印(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881_001 1831년(순조 31), 무장현(茂長縣)에서 환부(鰥夫) 유학(幼學) 조계묵(曺季默, 7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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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정석인(鄭錫仁)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鄭錫仁 沃溝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12_001 1861년에 환부(鰥夫) 한량(閑良) 정석인(鄭石仁, 70세)이 옥구현(沃溝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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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정정만(鄭正萬)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鄭正萬 沃溝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16_001 1855년에 환부(鰥夫) 한량(閑良) 정정만(鄭正萬, 35세)이 옥구현(沃溝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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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나득검(羅得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得儉 [同福縣監之印],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6_001 1804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04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나득검과 어머니 방씨(房氏), 처(妻) 김씨(金氏)와 아들 정권(廷權)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36세이다. 나득검의 사조(四祖)와 처(妻) 김씨(金氏)의 사조를 기재하였고, 높이를 낮추어 천구질(賤口秩)을 기재하여 소유 노비 4구(口)를 적었다. 이 문서는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주묵(朱墨)으로 통호(統戶)가 적혀 있고, 동복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날인되어 있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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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나득검(羅得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得儉 [同福縣監之印](7.0×7.0),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6_001 1807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07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나득검과 어머니 방씨(房氏), 처(妻) 김씨(金氏)와 아들 정권(廷權)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정권의 개명한 이름은 정열(廷說)이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39세이다. 나득검의 사조(四祖)와 처(妻) 김씨(金氏)의 사조를 기재하였고, 높이를 낮추어 천구질(賤口秩)을 기재하였다. 소유 노비는 모두 4구(口)인데 이 가운데 1구는 도망노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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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나대운(羅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大運 同福郡印(4.0×4.0), 同福郡守之印(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3_001 1904년 나대운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 1904년 동복군 외남면 석복리에 거주하는 나대운이 39세 때에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호구단자는 기존 조선시대 구호적의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나 세부 내용은 신호적(新戶籍)의 기재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896년 「호구조사규칙」과 「호구조사세칙」이 시행된 이후, 인쇄된 호적표에 기입하여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문서는 신호적의 기재요소는 기입하되 작성방식은 구 호구단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열서(列書)로 작성한 것은 구 호구단자의 방식이지만, 신호적의 기입 요소를 충실히 기재하고 있다. 먼저 호주(戶主)의 사조를 적도록 한 것은 구 호적과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기재하였고, 기존 직역을 신호적에서는 '직업(職業)'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나대운은 자신의 직업을 '사업(士業)'이라고 적었다. 처(妻)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은 것은 신호적의 양식대로 따른 것이고, 처 임씨(林氏)와 아우 경운(庚雲)은 실제 '동거친속(同居親屬)'을 기입한 것이다. 신호적에서는 실제 동거하고 있는 사람을 '현존인구(現存人口)' 항목에 남녀로 구분하여 적도록 하였는데 이 문서에서도 그에 따라 남녀를 나누어 남자 둘, 여자 한명으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신호적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택(家宅)이 기유(己有)인지 차유(借有)인지, 그리고 가택의 형태가 기와인지, 초가인지, 또 칸수는 몇 칸인지를 구분 기재하도록 한 점인데, 이 문서에서는 '초가 3칸'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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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로(金永老) 호구단자(戶口單子) 3 고문서-증빙류-호적 金永老 1顆(6.6×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84_001 유학(幼學) 김영로(金永老, 5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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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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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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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로(金永老) 호구단자(戶口單子) 4 고문서-증빙류-호적 金永老 1顆(6.2×6.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84_001 유학(幼學) 김영로(金永老, 5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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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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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圖: 蘭竹圖]六一生朝於焉六甲再回秋,自愧堂染未化頭,一票人情淳若海,三桑世事去如流,痛纏岵樹泉耋隔,恩未萱堂愍感函,幸瀨窮駕同志友,可憐是日作忘祝. 主人.邂逅重逢■■(六一)〔嶽降〕秋,扶桑瑞旭上山頭,心全孝友根源大,樂在今春趣味幽,兩美仙緣偕自老,數叢寶科彩光流,稱觴是席由仁得,五福人間弟一遊德軒光陰如水六旬秋, 正是紅顔白髮頭, 曾照極星眞瑞象, 今開宴席好風流, 子孫彩舞心行孝, 賓友高顔興不幽, 新酒佳肴終日醉, 壽盃之樂其淸遊.安東權泰元.畫面務本夜春秋, 六一光陰緣髮頭, 世業無疆綿綿大, 醴源不息滾滾流, 爛漲彩舞稚兒戱, 偕和墵琴暮境幽, 賴有蘭庭賢孝子, 歡欣永日作淸遊.光山金良鉉.乙巳生逢乙巳秋, 六旬華髮小春頭, 蘭庭彩舞風前起, 琴瑟眞源枕上流, 白日詩登韻絶唱, ■■(菊花)〔碧桃〕酒熟味淸幽, 德翁餘慶將無盡, 松栢悅情一壯遊.後堂朴琪容.華甲六旬又一秋, 韶顔綠髮雪侵頭, 昌寧■■〔古址〕家聲大, 德典賢門世蔭流, 彩舞盈庭盃上畵, 瑶琴八室月中迷,衆賓爭賀無量福, 此日年年願共遊.悔谷 金相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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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나득린(羅得麟)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羅得麟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6년 9월 하순에 택당 선생이 창주 선조와 이별하면서 지어준 시에 나득린이 차운하여 지은 시 1수. 1806년 9월 하순에 택당선생(澤堂先生)이 창주(滄洲) 선조(先祖)와 이별하면서 지어준 시에 나득린(羅得麟)이 차운하여 지은 시 1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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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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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788년 나득주(羅得周) 수연시(壽宴詩) 병서(幷序) 고문서-시문류-시 羅得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8년 7월 24일, 아들 나득주가 아버지께 올린 수연시와 서문. 1788년(정조 12) 7월 24일, 아들 나득주(羅得周)가 아버지께 올린 수연시와 서문이다. 서문에는 무신년 7월에 걸동(傑洞) 일하는 곳에서 19일, 20일 밤에는 경진(京津) 주인가(主人家)에 배알하고, 21일 밤에는 선조의 물염정(勿染亭)에 배알했는데, 반가(泮家)에서는 관패(冠珮)가 위엄 있는 모습이었고, 선정(先亭)에서는 거문고와 글씨, 바둑한판이 완연한 처사의 모습이었다고 수연잔치의 행적을 적었다. 그리고 자신은 옛날 차〔茶〕를 진헌하고, 오호도(五湖圖)를 진헌했던 일에 비추어 이처럼 편집한다고 적었다. 서문 뒤에는 5언 율시 1수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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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 김성률(金聲律)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金聲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유년 2월 상순에 구민 김성률이 귀양지에서 읊은 누군가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 3수. 기유년 2월 상순에 구민(舊民) 김성률(金聲律)이 누군가 귀양지에서 읊은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 3수이다. 5언절구, 7언절구, 7언율시 각 1수로 귀양지로 와서 매우 곤궁하게 지내는 모습과 서울에서 아무 소식 없이 적막하게 1년이 지난 상황을 한탄하고 슬퍼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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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원(權泰元) 등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權泰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권태원 등 6인이 61세 회갑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지은 수연시 축. 권태원(權泰元) 등 6인이 61세 화갑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지은 수연시(壽宴詩) 축(軸)이다. 시축의 맨 앞에는 대나무와 난초를 그리고, '육일생조(六一生朝)'라는 제목을 단 후 6인이 지은 수연시를 연달아 기록하였다. 시를 적고 작자(作者)를 썼는데 작자를 보면 주인(主人), 덕헌(德軒), 안동(安東) 권태원(權泰元), 광산(光山) 김양현(金良鉉), 후당(後堂) 박기용(朴琪容), 회곡(悔谷) 김상오(金相五) 등 6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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