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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이종건(李鍾健)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玉堤祠 李鍾健 玉堤祠(흑색, 5.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묘년 9월 27일에 옥제사에서 이종건을 제관으로 추천하여 선정한 망기. 계묘년 9월 27일에 玉堤祠에서 李鍾健를 10월 8일에 행하는 釋菜禮의 祭官으로 선정하였음을 알린 望記이다. 衆望에 따라 선정하였음을 언급하고 있고 掌議와 色掌 명의로 보냈다. 그리고 전날에 재계를 위해 들어와야 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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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배진만(裵鎭萬)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春山壇 裵鎭萬 春山壇章(5.0×4.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2년 2월에 춘산단에서 배진만을 제관으로 추천하여 선정한 망기. 1962년 2월 20일에 春山壇에서 裵鎭萬를 3월 3일에 행하는 釋菜禮의 祭官으로 추천하여 선정한 결과를 알린 望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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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배석지(裵錫祉)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綾州鄕校 裵錫祉 綾州鄕校之印(6.5×5.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3년 9월 21일에 능주향교에서 배석지를 향교의 장의로 추천하여 선정한 망기. 1963년 9월 21일에 綾州鄕校에서 裵錫祉를 鄕校의 掌議로 추천여 선정하였음을 알린 望記이다. 유림의 중망에 따라 선정하였음을 언급하고, 연도를 공자 탄신 2514년으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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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흥림(李興林)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海南鄕校 李興林 □…□ 1顆(6.0x5.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7월 15일에 해남향교에서 유학 이흥림을 삼상원(三相院) 추향헌관(秋享獻官)에 선정하는 망기 1925년 7월 15일에 해남향교에서 유학 이흥림(1857~?)을 삼상원(三相院) 추향헌관(秋享獻官)에 선정하는 망기이다. 이흥림은 이동흠(李東欽, 1829~?)의 손자로 해남현 마포면 냉천동에 거주해 왔다. 삼상원은 세 명의 재상(宰相)을 모시는 공간으로 보이나 정확하지 않다. 망기는 해당 직임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다. 일반적으로 3명의 후보자를 적었으나[三望] 1명만을 적는 경우도 빈번하였다[單望]. 후보자를 적어 올리면 임명자가 이를 확인한 뒤 적합한 후보자의 이름 위아래에 낙점(落點)하고 인장을 찍어 선정하였는데, 이 문서의 경우 후보자가 1명이므로 따로 낙점하지 않았다. 망기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용어로는 망단자(望單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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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영광군수(靈光郡守) 전령(傳令) 3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靈光郡守 使[印] 大3顆(4.2×4.2)小1顆(2.4×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69_001 1902년(고종39) 8월에 영광군수가 관찰부에서 온 훈령에 따라 도로와 교량을 보수하는데 있어 자신이 맡은 면을 잘 담당하도록 지시한 전령. 1902년(고종39) 8월에 영광군수가 농사가 한가한 때에 도로와 교량을 보수하도록 지시한 관찰부의 훈령에 따라 담당 면(面)의 보수를 잘 담당하라고 지시한 전령(傳令)이다. 관찰부(觀察府)에서 온 훈령(訓令)에 영광군 경내의 크고 작은 도로와 교량을 훈령이 도착하고 10일 안으로 공력을 더욱 들여 새롭게 수보(修補)하고 일을 마친 후에 치보(馳報)하도록 지시하였으므로 이에 별도로 너를 정하여 내보내니 맡은 면(面) 내의 도로와 교량을 잘 닦고 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동네의 두민과 농사짓는 자 중에서 이를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이름을 적어 보고하면 엄히 징계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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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令觀察府訓令內 槩道路橋梁之修治之節 卽大政 而現今農務稍歇 玆以令飭本郡 境內巨細之道路 大小之橋梁 訓到十日內 倍加功力 一新修補 俾無後日岐廉生梗之弊爲旀 了役後隨卽馳報 以爲別遣摘奸之地爲宜事亦敎是 故別定汝矣黜送 所掌面內治道修橋之節 各別申飭 毋或致責於別摘奸之下爲旀 洞頭民與田夫輩中 如有施頑者 指名馳報 俾爲嚴懲之地 宜當向事壬寅 八月 日兼使 [靈光郡守之章][靈光郡印] 3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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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영광군수(靈光郡守) 전령(傳令) 1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靈光郡守 南竹外面 治道色吏 兼官[印] 大3顆(4.2×4.2)小1顆(2.8×2.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969_001 1902년(고종39) 7월 15일에 영광군수가 남죽면과 외간면의 치도색리에게 비로 무너진 도로를 수리하고 잘 닦을 것을 지시한 전령. 1902년(고종39) 7월 15일에 영광군수가 남죽면(南竹面)과 외간면(外間面)의 치도색리(治道色吏)에게 여름의 비로 무너진 두 면의 도로를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다시 수축하도록 지시한 전령(傳令)이다. 외간면과 남죽면의 역정(役丁)들을 데리고 길을 잘 닦아 이달 20일 내로 일을 마치고 그 상황을 보고할 것과 각 마을의 역정 중에서 일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름을 적어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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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令 南竹外間 治道色吏 文萬▣今夏雨水 惟獨兩面道路 尤有潰缺 故別定汝矣出送 罔夜▣委於各田夫 一新修治 務從▣坦爲旀 外間面東邊前路 ▣且荒蕪 至有病涉之歎 領▣該面及南竹各村役丁 修治▣(是)矣 路廣段 依一把見樣 平坦修治是遣 今二十日內竣役 形止報來 而各村役丁中 頑拒者 指名馳告 俾爲捉致嚴懲之地宜當者壬寅 七月 十五日兼官 [靈光郡守之章][靈光郡印] 3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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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나채성(羅綵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綵成 □…□(7.0×7.0),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79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79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채성이 70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아들 한규(漢珪)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이때 처(妻) 임씨(林氏)는 사망하여 '고(故)'로 표기하였고, 나채성은 환부(鰥夫)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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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나채성(羅綵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綵成 行縣監<押> □…□(7.0×7.0), 周挾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82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82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환부(鰥夫) 나채성이 73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아들 한규(漢珪)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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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4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병술년 2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병술년 2월 2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2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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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2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官<押> □…□ (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11월 1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11월 14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2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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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나순좌(羅舜佐)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舜佐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77_001 1786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786년 나순좌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순좌와 처(妻) 방씨(房氏), 아들 나득검이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순좌의 거주지는 동면 삼지천리로 되어 있으며, 나이는 56세이다. 나순좌의 사조(四祖)와 처 방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나순좌의 사조에는 생부(生父)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유노비는 앙역비(仰役婢)와 각거질(各居秩)로 나누어 기재하였는데, 앙역비는 1구(口)이고 각거질은 3구이다. 각거(各居)는 외거(外居) 노비를 가리키는데, 6년 전인 나순좌 50세 때에 작성된 호구단자에는 외거노비가 5구였는데 그 사이에 2구가 줄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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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나수성(羅綏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綏成 □…□(6.5×6.7),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70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70년 나수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제5보암리에 거주하는 나수성이 52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의 사조, 아우 채신(埰臣)과 현성(鉉成)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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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나채성(羅綵成)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綵成 □…□(6.5×6.5),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002_001 1873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 1873년 나채성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동복현 내서면 제5보암리에 거주하는 나채성이 64세 때에 작성한 것으로, 자신의 사조(四祖)와 처(妻) 임씨(林氏)의 사조, 아우 현성(鉉成)과 아들 한규(漢珪) 그리고 도망 노비 1구(口)가 등재되어 있다. 나채성은 나수성의 개명한 이름이다. 나채성의 3년 전 호구문서에는 나이가 52세로 되어 있으므로 55세여야 하는데, 이때 개명하면서 나이가 64세로 되어 있어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들 한규는 나채성의 이전 호구문서에는 등재되지 않다가 이 문서에 처음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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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이동흠(李東欽)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東欽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7.0x7.0),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67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출신(出身) 이동흠(李東欽, 3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문서 기재사항을 봤을 때 이태흠(李台欽)이 이동흠(李東欽)으로 개명한 것으로 짐작되며, 직역도 유학(幼學)에서 출신(出身)으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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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박준학(朴準學)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綾州牧使 朴準學 牧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24_001 1888년에 능주목에서 박준학에게 발급한 준호구 이 문서는 1888년에 박준학이 능주목(綾州牧)으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의 등본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면, 준호구는 신분 증명 이외에도 소송관련 사건이 있을 때나 도망간 노비를 찾을 때, 부역을 부과할 때에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준호구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담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관에 먼저 제출해야 했다. 관에서는 호구단자를 살펴본 뒤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경우 새로운 종이에 준호구를 작성하여 신청인에게 발급하였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작성하는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용문자식(用文字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절차가 점차 간소화되어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인이 준호구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살펴본 뒤 수령의 서명과 관인을 찍어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준호구에 따르면 박준학의 주소는 능주목 오도면(吾道面) 오도곡(吾道谷) 1통 4호이다. 박준학의 현재 나이는 49세이고 처 이씨(李氏, 50세)를 가족으로 두었다. 이밖에 귀매(貴每, 18세)라는 이름의 비(婢)를 소유하고 있다. 준호구에 답인한 [周挾無改印]은 삭제[周挾]하거나 수정[改]한 글자가 없다는 의미인데,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周挾改幾字]를 답인하고 '幾'부분에 변경된 사항이 몇 개인지 숫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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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이동흠(李東欽)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海南縣監 李東欽 行縣監<押> 海南縣監之印 (6.5x6.5), 周挾無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44_001 1870년 1월에 해남현(海南縣)에서 출신(出身) 이동흠(李東欽, 4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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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6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89_001 을유년 1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1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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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북창색(北倉色) 정(鄭)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色 鄭<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79_001 정유년 1월 28일에 북창색 정(鄭)이 발급한 자문 정유년 1월 28일에 북창색 정이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1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다른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으나, 여기서는 도감관 대신 실무자인 북창색이 착압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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