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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十四年 月日羅州牧考己卯成籍戶口帳內荷衣魚㤙住第二統第六戶閑良金聖仁年五十二己丑本金海父閑良 弼逢祖閑良 尙巾曾祖閑良 延伯外祖閑良 金節順 本金海妻朴氏年四十四本密陽父閑良 得大祖閑良 敬漢外祖閑良林春逢 本羅州率子達五年十一己巳等丙子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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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김의두(金宜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88 羅州牧使 金宜斗 牧使<押> 周俠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88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88년(고종 25)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준호구 발급년, 호주 김의두의 주소와 인적사항, 아버지부터 증조까지의 인적사항 부분이 결락되었다. 김의두의 외조(外祖)는 한량 박득대(朴得大)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의두의 아내 정씨(丁氏)는 나이 50세 경자생(庚子生)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맹득(孟得), 할아버지 한량 상문(尙文), 증조(曾祖) 한량 봉업(奉業), 외조 한량 문덕화(文德化)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정규(正奎)가 있으며, 나이 24세 을축생(乙丑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서압(署押)과 주협무개인(周俠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85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을유호구상준(乙酉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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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祖閒良朴得大本密陽妻丁姓年五十庚子本羅州父閒良 孟得祖閒良 尙文曾祖閒良 奉業外祖閒良文德化本南平卛子正奎年二十四乙丑等乙酉戶口相凖 [周俠無改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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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계유년 서영수(徐永修) 의송(議送)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永修 <着名> □…□ 3顆(적색, 정방형, 8.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69_001 계유년 3월에 곡성현 북면에 사는 서영수가 이미 판결 난 자신의 산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처분해줄 것을 청원한 의송 계유년 3월에 곡성현(谷城縣) 북면(北面)에 사는 서영수가 이미 판결 난 자신의 산지(山地)를 빼앗기지 않도록 처분해줄 것을 청원한 의송이다. 문서의 일부가 훼손되어 어디에 정소(呈訴)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제사의 시행자가 본관(本官)이라는 점과 서압(署押)을 볼 때 감영(監營)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서영수가 임신년 6월과 11월 등 여러 차례 도순찰사와 암행어사 및 겸관 등에게 청원한 뒤에 재차 청원한 것이다. 임자년부터 나뭇갓[柴場]의 순산(巡山)을 정하여 땔나무를 파는 등 서영수가 북면에 큰 공이 있었는데 작년 겨울에 간악한 향리 정인국(鄭仁國) 무리가 무고(誣告)하여 나뭇갓과 면 안에 사놓은 전답을 모두 빼앗아 민고(民庫)에 속공(屬公) 시키고, 나뭇갓의 유사(有司) 중 한 사람인 서영수를 요민(饒民)이라고 하여 빙정조(氷丁租) 60섬과 진상에 쓰는 장빙전(藏氷錢) 120냥 및 속전(贖錢) 60냥을 까닭 없이 책납(責納)하게 하였다. 또한 5년 전인 지난 기사년에 서영수가 아버지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30냥을 면에 지불하고 명문을 작성하여 순산 안에 있는 산지를 매입한 후 금양(禁養)하였는데 그들이 이 산지를 또 법외로 광점(廣占)하고 값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빼앗아 고마청(雇馬廳)에 속공시켰다. 이에 서영수는 이유 없이 징수한 많은 전곡(錢穀)과 산지를 돌려받기 위해 순찰사와 암행어사 등에게 청원하여 결국 완문(完文)을 발급받고 빼앗긴 용호육곡(龍虎六谷)의 산지도 내어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이 호랑이처럼 두려워하는 조삽(趙鈒) 등이 서영수의 산지를 고마청에 속공하고자 계획하였다. 이에 서용수는 앞뒤로 올렸던 소지와 의송 완문 등 9장을 점련(帖連)하여 이미 판결이 내려진 자신의 산지를 멋대로 침탈하지 못하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의송에 대해 순찰사는 3월 4일에 곡성 현감에게 '본읍(本邑)에서 사실을 조사하여 의견을 첨부해 보고하여 처리하라'는 처분을 내리고, 제사(題辭) 위에 관인(官印)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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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1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領議政 領議政 <着名> □…□ 3顆(적색, 정방형, 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1년 10월에 곡성현에 사는 유생 천일관·천일권·천일표 등이 영의정에게 전라도 곡성현에 관문을 보내 전교에 따라 잡역을 면제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1년(고종 28) 10월에 곡성현(谷城縣)에 사는 유생(儒生) 천일관·천일권(千鎰權)·천일표(千鎰杓) 등이 영의정(領議政)에게 전라도 곡성현에 관문(關文)을 보내 전교(傳敎)에 따라 잡역(雜役)을 면제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명장(名將)으로 임진왜란 때 많은 전공을 세우고 조선에 귀화하여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진 천만리(千萬里, 1543~?)의 후손이다. 화산군의 후손은 종손(宗孫)·지손(支孫)·천얼(賤孽)을 막론하고 잡역을 면제하라는 전교와 완문(完文)을 내려 폐단 없이 잘 지켜지고 있었으나 근래 잡역과 여러 징구토색(徵求討索)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전교와 완문 및 앞뒤 문적(文蹟)을 점련하여 곡성 현감에게 청원하였다. 곡성 현감은 수교(受敎)와 완문이 명백하므로 정소(呈訴)에 따라 잡역을 면제해주고 침탈하지 말 것을 처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처분에 불과하므로 영의정에게 전라도 곡성현에 관문을 보내 전교의 뜻을 받들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영의정은 10월 16일에 전라감영(全羅監營)과 곡성 현감에게 '완문에 따라 잡역을 면제해주어서 원통함을 호소하게 하지 말도록 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당시 영의정은 문충(文忠) 심순택(沈舜澤, 1824~1906)이다. 문서 배면에 적힌 '경술(庚戌) 십일월(十一月) 십삼일(十三日) 진시(辰時)'는 후대에 문서의 훼손된 부분에 종이를 덧대어 손질하면서 기록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만리의 본관은 중국 영양(穎陽), 자는 원지(遠之), 호는 사암(思庵)으로 명나라에서 귀화하였다. 1571년(선조 4) 무과에 급제한 뒤 1575년에 총절사(總節使)가 되어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원병(援兵)으로 조병영량사(調兵領糧使)가 되어 아들 천상(千祥)과 함께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조선에 왔다. 평양 전투와 곽산·동래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울산에서 전공을 세웠다. 왜란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서 살았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생각하여 화산군에 봉하고 전(田) 30결(結)을 급복(給復) 하였으며, 그의 아들 천상도 한성윤에 승진시켰다. 저서로 『사암천문집』이 있으며, 고성 호암사(虎巖祠)와 청도 황강사(皇岡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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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 月 日羅州牧考壬申成籍戶口帳內 新村面龍頭里住第一統第一戶幼學羅燾溢 年二十七丁未 本羅州父學生厚集祖幼學時完曾祖學生聖采外祖學生李顯彬 本咸豊妻鄭氏齡二十七丁未 籍羅州父幼學仁赫祖學生基杓曾祖學生麟運外祖學生梁錫圃 本濟州奉母李氏齡五十甲申 籍咸豊仰役 婢永德甲寅生等壬申戶口自首者牧使[署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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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己卯式戶籍單子戶得哲無亡代同姓四寸張指誠年三十一己酉本仁同父閑良 大運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阿只年五等印戊寅九月日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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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1 고문서-기타-서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50_001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의 제8곡(曲)을 쓴 유묵(遺墨) 주희(朱熹)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의 제8곡(曲)을 쓴 유묵(遺墨)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이 자료는 제9곡과 함께 2점이 남아있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 남쪽에 있는데, 일찍이 주자(朱子)가 이곳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지내면서 학문을 강론하였으며 구곡의 경치를 따라 지은 시가 〈무이구곡가〉로, 10수(首)의 칠언시이다. 내용은 "팔곡이라 바람과 안개가 열릴 듯한 형세이니, 고루암 아래 물이 굽이쳐 도네. 이곳에 아름다운 경치 없다 말하지 말게, 단지 노니는 사람이 올라오지 않을 뿐이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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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八曲風煙勢欲開鼓樓巖下水縈廻莫言此處無佳景自是遊人不上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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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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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서(書) 2 고문서-기타-서화 東□(1.9×1.9), □□□(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50_001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의 제9곡(曲)을 쓴 유묵(遺墨) 주희(朱熹)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의 제9곡(曲)을 쓴 유묵(遺墨)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이 자료는 제8곡과 함께 2점이 남아있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 남쪽에 있는데, 일찍이 주자(朱子)가 이곳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지내면서 학문을 강론하였으며 구곡의 경치를 따라 지은 시가 〈무이구곡가〉로, 10수(首)의 칠언시이다. 내용은 "구곡에 다다르니 눈앞이 훤히 트이는데, 뽕나무 삼나무에 맺힌 이슬 평천을 바라보네. 뱃사공은 다시 무릉도원 가는 길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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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己卯式戶籍單子戶鰥夫張哲奉年四十六甲午本仁同父閑良 大運年七十庚午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奉母秋姓年七十庚午率女阿只■■[出嫁]年十三等印戊寅九月日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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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정도상(鄭燾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燾相 內洞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진년 11월 24일에 수각리에 거주하는 정도상이 내동제 선생에게 타일러주심에 너무 황송하여 사례할 바를 모르겠지만 감히 한말씀 드리겠으니 듣고서 받아들여 주시겠느냐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병진년 11월 24일에 수각리(水閣里)에 거주하는 문하생 정도상이 내동제(內洞齊) 선생에게 타일러주심에 너무 황송하여 사례할 바를 모르겠지만 감히 한말씀 드리겠으니 듣고서 받아들여 주시겠느냐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선생이 이 말할 만한 가치도 없는 자신에게 만나서 타이르고 편지를 통해서도 말씀해주시니 너무 황송하여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선 참람함을 내버려 두고 감히 한마디 올리려고 하니 듣고서 받아들여 주시겠느냐는 내용, 자신은 이런 말세에 반드시 올바른 도리를 지키며 사심을 없애는 경지에 뜻을 두고 선생을 따랐다는 내용, 독서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지만 몰입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정밀하지 못하여 황폐하게 될까 두렵다는 내용, 조부모와 부모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 한편으로는 세상을 근심하는 탄식이 있으나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물 한잔이 있더라도 수레의 뗄감에 붙은 불을 끄는데 하물며 허황된 말인들 못하겠느냐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내일 만나서 말씀 드리겠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 편지와 함께 눈 내리는 밤에 명을 어기고 상대방에게 가지 못하여 섣달 밤에 지은 5언 절구시 한 편을 동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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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種便人 緣於忙擾 一未修候 懷仰益切 春盡夏届 未審此際靜中棣候 連衛萬重允兄安侍篤課 渾節均宜耶 並切溸仰 不任勞祝 朞服弟劣狀依昨 而踽涼之懷 愈久愈深 奈何所幸者兒曹與家內 姑無頉耳 令從彧看益奇愛 頗有大進之望 非但自家之賣 不勝柏悅也 何間或有奉晤之道耶 切企切企餘懮不備書禮星皓家亦平安耶 忙未有書 此意傳致如何癸亥四月初六日 服弟 金極永拜拜【피봉】査丈前謹再拜上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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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白尊伯嫂氏夫人奄忽違世 承訃驚愕不能已已伏惟友愛加隆 悲慟沈痛 何可堪勝 孟春尙寒 不審服體何似 伏乞深自寬抑無至自損也 初終諸節 想已預具 而但荐遭大故 事多罔措 仰爲之悲念不已 從侄女尙支存云幸也 而其光景常在心頭 時時思想 傷憶欲斷且當此喪變 其痛折想必尤倍 更不欲忍說 弟衰鑠添齒轉深 何足仰塵 餘不備狀禮乙丑正月十五日 弟金極永拜手【피봉】玉山服座執事坪城謹候狀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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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송익로(宋益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益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 6월 22일에 송익로가 안부와 함께 상대방의 친족이 자신을 방문하여 상대방의 근래 안부를 들었으나 만날 기약이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정미년 6월 22일에 송익로가 안부와 함께 상대방의 친족이 자신을 방문하여 상대방의 근래 안부를 들었으나 만날 기약이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들에 서늘한 가을이 오니 이슬맺힌 갈대의 회포가 절실한 중에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 어버이 모시며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되고 축하한다는 내용, 자신의 어버이가 그새 많이 편찮으셔서 말할 수 없이 걱정스러우며, 그밖에 시름겹고 어수선한 일은 들려주고 싶지 않다는 내용, 매번 그립지만 편지로 안부를 묻는 것도 쉽지 않아 매우 참담하다는 내용, 지금 상대방의 친족이 자신을 방문하여 상대방의 근래 안부를 자세히 들었으나 만나 뵐 기약이 없으니 호수와 교산(嶠山)이 막고 있어 한스럽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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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秋涼入郊 方切葭露之懷 卽拜崇翰 就審侍候萬重 何等慰賀之至益老親節 間多愆損 悶何容喩 外它愁擾之端不欲提陳於○崇聽也每有懷仰之心 而以書探候 亦不容易 尤切悵黯 今因○貴族之來訪 細承○近節 我心爲降 而逢際則無期 只恨湖水嶠山 間其間而遏遞也 餘適撓 略伸謝儀 不備 謹候狀丁未流月念二 宋益老 拜(皮封)謹謝上[着名]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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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0년 이낙승(李洛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理洪 李洛丞 金理洪<着名>, 辛大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68_001 1840년 11월 20일에 유학 김이홍이 유학 이낙승에게 갑향면 옥산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40년(헌종 6) 11월 20일에 유학(幼學) 김이홍(金理洪)이 유학 이낙승에게 갑향면 옥산촌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이홍은 갚아야 할 관곡(官穀)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농사짓고 살던 논을 이낙승에게 팔았다. 논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옥산촌(玉山村) 입석평(立石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유자(惟字)이다. 논의 면적은 5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14짐 5뭇이며, 논값으로 50냥을 받았다. 명문 본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유학 김이홍이 이 명문을 직접 작성[自筆]하고 유학 신대옥(辛大玉)이 증인(證人)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 하였다. 문서 끝부분에는 '본문기(本文記)는 도문기(都文記, 상속 내용 전체를 기록한 분재기)에 함께 기록되어 있어 내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추기(追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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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六年 月 日 羅州牧考丙午成籍戶口帳內 新村面內永里住第二統第四戶幼學鰥羅聖采 年六十六辛丑 本羅州父學生彦晦祖學生宗有曾祖學生允命外祖學生鄭益成 本晉州妻金氏 籍金海父學生運興祖學生胤商曾祖通德郞始圭外祖學生金履瑞 本綿城率子時化年三十八戊辰仰役秩 婢永德年甲寅等癸卯戶口相準者行牧使[署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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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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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7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장택기(葬擇記). 葬山 형국, 下棺 시간, 墓穴, 開土 시간, 破墓 일짜, 發引, 停喪 및 取土 방향, 啓殯, 周堂, 呼冲 등 기록 *亡人: 乾仙命辛丑土 *安葬日: 戊午二月二十七日癸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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