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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大正町 同福藥房 內▣▣(盧軫)永氏親展(피봉_뒷면)…▣州面 元地里…▣ 梁會澤(簡紙)謹未審老炎侍體度晏重, 都節均休, 仰溸願祝. 弟向者還庭, 慈省依昔, 諸眷無頉, 私幸私幸. 就向日面晤時, 不忍開口而歸. 所謂家事, 不可成言中, 惟獨今年春舍弟分家, 麥作幾斗落收入分去七八月麥窘, 何可曰爲生也.冒廉仰呈, 米麥一石二十圓惠借, 以免葛藤之地, 千萬千萬. 惠蒙累累赧騂赧騂. 餘未暇提他說. 不備, 謹候禮.乙亥六月念七日, 弟 梁會澤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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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伍年 月 日和順縣考乙酉成籍戶口帳內東面住第十水冷川里第二綂第一戶幼學金啓鉉年六十六庚辰本光山父學生 日海祖學生錫三曾祖學生 自光外祖學生朴仁森本密陽奉母朴氏齡八十五辛酉妻李氏齡六十六庚辰籍全州父學生 萬榮祖學生 遇春曾祖成均進士 旭外祖學生金大白本義城子在宇年二十八戊午婦金氏齡二十八戊午籍慶州賤口婢惡春年二十四壬戌 壬午戶口相凖印 [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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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八年 月 日和順縣考戊子成籍戶口帳內東面住第十水冷川里第二統第三戶幼學金啓鉉故代子幼學在宇年三十一戊午本光山父學生啓鉉祖學生日海曾祖學生錫三外祖學生李萬榮本全州母李氏歲六十九庚辰妻金氏歲三十一戊午本慶州父幼學光浹祖學生鼎元曾祖學生重鎰外祖學生李命奎本光山弟在仁年十八辛未婢惡春年二十七壬戌 乙酉戶口相凖印 [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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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面雲臥里甲午戶口單子 六統一戶戶 寡婦朴氏歲六十二癸巳籍密城父學生 光旭祖學生 璟曾祖學生 茂春外祖學生張時燁本安東率子幼學鰥夫崔宗得年三十八丁巳本全州賤口奴尙元年甲辰辛卯式相凖者 [周挾無改印][谷城縣監之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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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신국보(辛國輔)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辛國輔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년 9월 16일에 신부측 신국보가 신랑측 이생원 집에 보낸 혼서 계미년 9월 16일에 신부측 신국보(辛國輔)가 신랑측 이생원 집에 보낸 혼서이다. 자신의 딸 혼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전에 연길(涓吉)을 받아 매우 기쁘다는 인사와 함께 의제(衣製)를 적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의제(衣製)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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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안효각(安孝珏)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安孝珏 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자년 2월 6일에 신랑측인 안효각이 신부측인 정생원 댁에 보낸 혼서 갑자년 2월 6일에 신랑측인 안효각이 신부측인 정생원 댁에 보낸 혼서이다. 주요내용은 성첩(星帖)을 보낸다는 내용인데, 성첩은 사주단자를 말한다. 혼인하기로 결정하면 신랑측에서 사주와 예단을 신부 집에 보내는데 이를 납채(納采)라고 한다. 성첩, 즉 사주단자는 신랑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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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김성인(金聖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聖仁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19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성인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19년(순조 19)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성인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성인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魚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2통 6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52세 기축생(己丑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성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필봉(弼逢), 할아버지 한량 상건(尙巾), 증조(曾祖) 한량 연백(延伯), 외조(外祖) 한량 김절순(金節順) 본관은 김해이다. 김성인의 아내 박씨는 나이 44세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득대(得大), 할아버지 한량 경한(敬漢), 외조 한량 임춘봉(林春逢) 본관은 나주이며, 증조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가족 구성원으로 아들 달오(達五)가 있으며, 나이 11세 기사생(己巳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개자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16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병자호구상준(丙子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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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承華翰謹審菊秋尊體動止萬安仰慰區區親事旣承月日欣幸衣製依敎錄呈耳餘謹狀伏惟尊察 謹拜謝上狀癸未九月十六日寧越辛國輔 再拜(皮封)謹拜謝上狀李生員 執事 [着名]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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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曳山靣居幼學徐永修右謹陳所志事段民之前後原情已悉於議送中更不必煩達是在出於爲先塋入葬之計而及夫柴塲屬公也民之給價買得山地所謂氷丁価段乃是四靣輪回之役而稱謂民饒居氷丁租六十石及 進上所用蔵氷価一百二十両納是遣又称罰贖錢六十両亦爲空然責徵故不勝嚴督三名色在七斗畓土文券及先山松楸禁养之地終不决定出給故舊 官城主許題所志尙未推尋?除良既納土山地空然屬公不爲出給者門承 題音粘連仰訴爲去乎本縣留鄕所良中嚴 分付査實使此殘民俾免冤枉之地 處分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壬申六月 日〈題辭〉狀內辭意一一詳査逐條報來爲矣■官題之從中操縱民畓之無端屬公實所罕聞依營題另飭擧行宜當事卄九日留鄕所告朴文煥[官印]兼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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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서영수(徐永修) 의송(議送)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永修 御使道 御使道<着名> 馬牌 3顆(적색, 원형, 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69_001 계유년 3월에 곡성현 북면에 사는 유학 서영수가 암행어사에게 관에서 받은 완문을 영구히 실행되도록 처분해줄 것을 청원한 의송 계유년 3월에 곡성현(谷城縣) 북면(北面)에 사는 유학 서영수가 암행어사에게 관에서 받은 완문(完文)을 영구히 실행되도록 재차 처분해줄 것을 청원한 의송이다. 이 문서는 서영수가 임신년 6월과 11월, 계유년 3월 등 여러 차례 도순찰사와 암행어사 및 곡성 현감 등에게 청원한 뒤에 다시 청원한 것이다. 서영수가 예산면에 선산(先山)의 산소를 살 때 값으로 지불한 논이 이미 고마청(雇馬廳)에 속공(屬公)됐는데 부당하게도 산지(山地)도 거기에 섞여서 함께 속공되었다. 게다가 유사(有司) 5, 6인 중에서 서영수만 홀로 간교한 향리들의 무고(誣告)를 당하여 진상에 쓰는 빙정전(氷丁錢) 120냥과 빙정조(氷丁租) 60섬 그리고 속전(贖錢) 60냥을 까닭 없이 징수하였다. 이에 너무 원통하여 순영(巡營)에 청원하여 '추급(推給)할 만한 것은 추급하고 징급(徵給)할 것은 징급하라'는 도순찰사의 처분을 받았는데 여기에서 징급이라는 것은 돈과 곡식을 가리키고 추급이라는 것은 산지를 가리킨다. 작년 겨울에 또 어사또께 청원하여 '과연 호소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인국(鄭仁國)과 장계우(張啓宇) 등의 일은 매우 통악(痛惡)스럽다. 여선묵(呂善黙)은 전에 이 일로 이미 안렴사(按廉使)가 징계하였으므로 사실의 곡절을 상세히 조사하고 본 문서를 상고하여 하나하나 추급할 것'이라는 처분을 받았다. 이 처결문을 새로 부임한 곡성 현감에게 올려 현감이 앞뒤 내역을 상고하였는데 서영수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으나 서영수에게 징수한 돈과 곡식은 이미 민고(民庫, 관청의 임시 비용으로 쓰기 위해 매년 백성에게 징수한 곡식과 돈을 보관하던 창고)로 들어가 추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용호육곡의 산지는 당초 매입할 때 작성한 명문에 따라 영구히 실행한다는 내용의 완문을 발급해 주었다. 이에 서영수는 산지의 소유권에 대한 완문의 효력을 더욱 확고히 하고자 암행어사에게 이 완문의 내용에 따라 영구히 실행하라는 처분을 내려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의송에 대해 암행어사는 3월 11일에 '곡성 수령이 이미 완문을 발급해 주었다. 이번에 올린 소장(訴狀)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할만하다'라고 처분하고, 제사(題辭) 위에 관인(官印) 대신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馬牌)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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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八年 月 日羅州牧考戊子成籍戶口帳內荷衣於㤙村住第二統第六戶閑良金聖仁年六十一己丑▣▣▣(本金海)父閑良 弼逢祖閑良 尙巾曾祖閑良 延伯外祖閑良 金節順 本金海妻朴姓年五十三丙申 本密陽父閑良 得大祖閑良 敬漢曾祖閑良 桂春外祖閑良 林春逢 本羅州率子達五年二十己巳等乙酉戶口相凖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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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김승록(金昇祿)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昇祿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周俠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승록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76년(고종 13)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승록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호주 김명학이 작고하여 아들 김승록이 호주가 되었다. 김승록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2호이다. 올해 나이는 51세 병술생(丙戌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승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명학(明學), 할아버지 한량 성광(聖光), 증조(曾祖) 한량 필봉(弼奉), 외조(外祖) 한량 박고울(朴高兀)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승록의 아내 김씨는 나이 42세 을미생(乙未生)이고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독몽(秃蒙), 할아버지 한량 진언(眞言), 증조(曾祖) 한량 수봉(守封), 외조 한량 이인후(李仁厚)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중석(重碩)이 있으며, 나이 20세 정사생(丁巳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무개인(周俠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7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호구상준(癸酉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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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二年 月 日 羅州考丙子成籍戶口帳內荷衣島於㤙村住第 統第二戶閒良金明學故代昇祿年五十一丙戌本 金海父閒良 明學祖閒良 聖光曾祖閒良 弼奉外祖閒良 朴高兀 本密陽妻金姓年四十二乙未 本光山父閒良 秃蒙祖閒良 眞言曾祖閒良 守封外祖閒良 李仁厚 本慶州卛子重碩年二十丁巳等癸酉戶口相凖 [周俠無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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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燾溢 牧使<押> □…□ 2顆(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72년(고종9)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도일(羅燾溢, 2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72년(고종9)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도일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도일(羅燾溢)은 27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후집(羅厚集)이고, 조부는 나시완(羅時完)이며, 증조부는 나성채(羅聖采)이다. 외조부는 이현빈(李顯彬)이고, 본관은 함풍(咸豊)이다. 아내는 정씨(鄭氏)로, 27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아버지는 정인혁(鄭仁赫)이고, 조부는 정기표(鄭基杓)이며, 증조부는 정인운(鄭麟運)이다. 외조부는 양석포(梁錫圃)이고, 본관은 제주이다. 어머니는 이씨(李氏)로, 나이는 50세이고, 갑신년(1824)생이며, 본관은 함풍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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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謝候上阻久常悵 書到稍慰 况審維夏靜體萬護 伏慰區區 語失先後令從叔母夫人喪事 出於夢外 而且貴嬌之慘 尤不勝驚愕 衰境逆理之慟 實所難堪 寸寸猿腸 可想穿斷爲之悲溸切切 弟慈省長時欠損 焦灼難道 而且室憂婦病 鱗生不絶 還用懊惱 只爲促老 悶憐奈何 茅坪之說 係在緣數 何以强合也 示說此處所貴 百信於那邊 且弟之出入甚狹有何開喙處耶 秖切遠莫之歎而已 星從徒涉遠訪 欣握之餘 留且無幾 遽作把別 悵黯倍耳 餘擾不備謝禮己未四月十四日 弟金極永拜拜【피봉】仁叟兄執事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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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隔一嶺, 歲又迫新,久未承顔, 瞻仰與時俱深矣. 謹未審新元侍餘體候隨序萬旺,寶眷均迪, 幷溯仰慰祝.弟姑依前樣, 是爲私幸耳. 就悚風聞則潭陽水北面所有土地, 因於小作人過失, 今年度小作地移定云云, 是果的然耶?此去高君之父兄, 則水北面開東里年旧居住中, 曾得世界固眞補号也. 而年來至願 貴小作地, 故玆以替恳, 參酌形便, 期於多小間特以鄙私情勿恝, 千萬大望耳.餘日後面叙, 不備禮.再昨年夏間, 不肖家豚의 所關条을 尙今未呈, 未安莫甚者也로다.兄倘照省, 如何如何.乙亥元月念三日, 弟 李㝢老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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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里盧軫永 氏親展(피봉_뒷면)蓮堤里李㝢老謹.(簡紙)懸際, 便人忽到, 袖致 惠存, 新年喜消息, 孰過於此. 承審春意尙煖體度迓新萬祉, 慰溸滿千. 弟家嚴, 近以老症, 六七日欠攝, 爲子之道,焦煎之心, 以筆難喩. 第 惠書中示意, 滿幅辭意, 無非繾惓, 不覺惺汗也. 已作人中保証者數人, 有脫退之意,拒絶書到此矣. 不得已因於事勢, 有此移定, 以是改作之說紛挐也. 他人則因旧仍置矣. 如是仰 告, 則以是 諒下如何.慙負實多. 餘在便人口悉, 不備謝禮.卽武, 弟 盧軫永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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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진천사(眞泉祠)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眞泉祠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4월 20일, 진천사의 이계종 등 9인이 노진영에게 진천사 유허비 수립 기념식에 참가해 줄 것과 압운대로 시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4월 20일, 진천사(眞泉祠)의 이계종(李啓琮) 등 9인이 노진영에게 진천사 유허비(遺墟碑) 수립 기념식에 참가해 줄 것과 압운대로 시(詩)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4월의 상대방 안부를 간단히 묻고 자신들은 전과 같이 지내어서 분수에 다행이라고 인사했다. 진천사의 유허비 세우는 일이 여러분의 후사(厚賜)에 힙입어 좋은 재료를 얻고 거장(巨匠)의 공역(工役)으로 이제 완성되니 사림의 다행이라고 했다. 다음달 단오날에 옛 터에 유허비를 세울 것이니 광림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 또 '진(眞), 친(親), 신(辰), 린(隣), 신(新)'이란 압운자에 맞추어 시를 지어 투고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발신인으로 적힌 사람은 총9인으로 이계종(李啓琮), 기종섭(奇琮燮), 고유상(高維相), 정우원(鄭友源), 양일묵(梁鎰黙), 김기수(金錡洙), 이재춘(李載春), 고광찬(高光瓚), 유사(有司) 박로선(朴魯宣)이 적혀 있다. 진천사(眞泉祠)는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1655~1723)을 배향하여 세워졌던 사우이다. 박광일은 본관이 순천(順天), 자가 사원(士元), 호가 손재(遜齋), 시호가 문숙(文肅)이며, 송시열(宋時烈)에게 사사하였다. 숙종 때 천거되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翊衛)·왕자사부(王子師傳)·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산수를 즐기다가 영조 때 죽었다. 숙종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광주 진천사에 제향되었다. 진천사의 건립 연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광주읍지』에 의하면 원생(院生) 20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현재는 두 기의 유허비만 남아 있다. 진천사 유허비의 초건 시기는 1635년으로 추정되며, 1935년 김동수가 찬하여 새로 유허비를 세워 옛것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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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春數宵行誨 殆若夢境 而逢秋懷事 尤切耿頌 謹未審比來靜中棣候連護 大都均穩耶 區區溸仰 實勞遠忱 弟省節長時欠寧 焦煎難狀 而兒輩姑無頉是幸 今年農形到處被荒 而聞貴鄕尤甚云 爲之代悶 咸氏兄會事 聞見屈云爲之代憤 而伯氏丈垂暮之境 春秋科事 未見其成 尤爲憤歎而已 從侄婚事 姑無定處 是悶那處云事 已至發說云 近果快諾耶 婚節已届 須更爲通奇以未寒前成事如何 雖留此漢數日 以爲詳探回示 切企切企 令允婚事有定處耶 弟亦發說於一處矣尙無回報 是悶是悶 餘撓甚不備禮戊午陽月初吉 弟金極永拜木花十五斤送上 助用於寒具如何【피봉】玉山 靜座 執事入納坪城謹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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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聖采 行牧使<押> □…□ 2顆(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46년(헌종12)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성채(羅聖采, 6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46년(헌종12)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내영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에 사는 나성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성채는 66세이고, 신축년(1781)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언회(羅彦晦)이고, 조부는 나종유(羅宗有)이며, 증조부는 나윤명(羅允命)이다. 외조부는 정익성(鄭益成)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내는 김씨(金氏)로, 본관은 김해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조부는 김윤상(金胤商)이며, 증조부는 통덕랑(通德郎) 김시규(金始圭)이다. 외조부는 김이서(金履瑞)이고, 본관은 면성(綿城, 현 전라남도 무안)이다. 아들은 나시화(羅時化)으로 나이는 38세이고, 무진년(1808)생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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