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24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8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十三年十月二十九日 潭陽郡昌平面會計員 朴在昊 長華里 李承鶴納 大正十三年十月二十九日 朴在昊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柳炳吉(타원형), 潭陽郡昌平面長之印(1.8×1.8)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에 이승학이 담양군 창평면에 주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4년 10월 29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주세(酒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창평면 회계원(會計員) 박재호(朴在昊)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4년도 주세 3원(円) 50전(錢)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담양(潭陽) 지명록(地名錄) 고문서-치부기록류-역사기록 사회-역사-역사기록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담양의 각 면과 리, 동을 표기한 문서. *원문: 貞面 德谷 瑞興洞…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齊官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東西從享分獻官【各一】 執禮 大祝奉香 奉爐 司尊 奠酌 掌饌 陳設 滌器 贊者謁者 贊引【亞終獻官分獻官以佐貳官敎授訓導及本邑閑散文官差祝以下諸執事皆以學生克】祝版【祝版以松木爲之長一尺二寸廣八寸厚六分尺用造禮器尺】維某年歲次某甲某月某朔某日某甲某縣官姓名【州府郡同】敢昭告于先聖大成至聖文宣王伏以道冠百王萬世之師玆値上丁精禋是宜謹以牲幣醴齊粢盛庶品式陳明薦以先師兗國復聖公顔氏郕國宗聖公曾氏沂國述聖公孔氏鄒國亞聖公孟氏配 尙饗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23년 이혁(李爀) 영수증(領收證)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十二年十二月十八日 潭陽郡大德面會計員 金永龜 長華里 李爀 大正十二年十二月十八日 金永龜 李爀 전남남도 담양군 □…□ 2顆(타원형)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에 이혁이 담양군 대덕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3년 12월 18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혁(李爀)이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대덕면(大德面) 회계원(會計員) 김영구(金永龜) 명의로 발행했다. 이혁이 납부한 금액은 1923년도 제1기 지세 3원(円) 13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84전, 지세할(地稅割) 1원 43전, 지세부가금 93전으로 총 6원 33전이다. 영수증을 수령한 이혁(1898∼1977)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아명은 병로(丙老), 자는 진명(進明)이다. 초대 전남대학교 법대 학장을 역임했다. 이혁의 아버지는 을사늑약 이후 5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을 암살하고자 했고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광수(李光秀)이다. 할아버지는 을미사변 이후 창의(倡義)하여 활동한 이승학(李承鶴)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24년 이혁(李爀) 영수증(領收證) 4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13年8月25日 昌平面森林組合長 潭陽郡 昌平面 長華里 李爀 大正13年8月25日 昌平面森林組合長 李爀 전남남도 담양군 □…□(타원형)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에 창평면삼림조합에서 이혁에게 발급한 삼림조합비 영수증. 1924년 8월 25일에 창평면삼림조합(昌平面森林組合)에서 담양군(潭陽郡) 창평면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혁(李爀)에게 발급한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창평면삼림조합장 명의로 발행했다. 이혁이 납부한 금액은 1924년도 삼림조합비 30전(錢)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26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3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十五年二月八日 潭陽郡大德面會計員 金永龜 潭陽郡 昌平面 長華里 李承鶴納 十五年二月八日 金永龜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李彦秀 2顆(1.0×1.0)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에 이승학이 담양군 대덕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6년 2월 8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대덕면(大德面) 회계원(會計員) 김영구(金永龜)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5년도 제2기 지세 7원(圓) 48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2원 1전, 지세할(地稅割) 3원 44전, 지세부가금 2원 24전으로 총 15원 17전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二月十四日 舍伯 舍弟 辛卯二月十四日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 2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여러 집안 사정을 묻고 과거 시험 중인 본인의 사정을 전한 간찰. 1891년 2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 등을 전한 간찰이다. 이승학이 1890년 11월 이후로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에게 편지를 보내 지속적으로 집안 사정 등을 당부한 것으로 미뤄봤을 때 이 편지 역시 이승구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승구는 이승학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간 둘째 동생이다. 이승학은 그간의 인편을 통해 편지가 전해진 사정 등을 먼저 언급하며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집안의 세세한 일들로 관심 쏟을 곳이 많은데도 이승학 자신의 우려가 커 피하기만 하고 해결하지 못해 우습고도 가련하다고 한탄했다. 이어 가족들의 안부와 누이동생의 혼사에 관해 언급했는데, 누이의 혼사가 어떠한 일로 갈등을 겪고 잘 성사되지 않은 듯하다. 이승학이 편지에서 이러한 갈등은 본인이 자초한 것이며, 또 애초부터 근실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고 하면서 이 통한 세상의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는 길이라고 동생을 달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이승학은 과거 시험의 상황에 대해 전했다. 과거 시험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본인이 오활한 서생(書生)이라 그런지 자책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번 향시(鄕試)가 여의치 않아 아직도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과 세력가에게 분주히 달려 다니지 못해 시험이 풀리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은 예를 따라 과거 시험에 응시할 것이라는 점을 전했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지난번 동생의 편지에 광수(光秀)가 서울로 올라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절대 올려 보내지 말 것과 함께 자세한 말은 별지(別紙)에 썼다는 말로 편지를 마쳤다. 이를 보았을 때 별지에 중요한 내용 등을 전한 듯 한데 별지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三月卄六日 舍兄 舍弟 辛卯三月卄六日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여러 집안 사정을 묻고 과거 시험 준비 중인 본인의 안부를 전한 간찰. 189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여러 집안 사정을 묻고 과거 시험 준비 중인 본인의 안부를 전한 간찰이다. 동생은 이승학이 서울에 있는 동안 집안일을 주관하고 있었던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를 지칭한 듯하다. 이승구는 이승학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간 둘째 동생이다. 이달 초에 담양(潭陽) 연동(淵洞) 인편으로 편지를 전했으며, 담양 백동(栢洞)의 족숙(族叔)이 곧바로 내려가 그간 사정을 자세히 알려줄 것이라는 말로 편지를 열었다. 이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 등이 이어졌다. 또 이승학 자신의 사정을 전했는데, 현재 양씨(梁氏)와 기씨(奇氏) 두 분과 함께 기거하고 있으며, 숙씨(叔氏)도 잘 지낸다는 말을 하였다. 숙씨가 가까이 살거나 함께 지내기 때문에 숙씨도 안부도 알린 듯하다. 이어 영진(永珍)과 만난 사정, 환전(換錢)에 관한 내용 등을 언급했는데, 영진과 관련된 일이 꽤 언급되나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환전의 일은 1890년 11월 이후 편지에서 계속 보이는 담양읍(潭陽邑)의 상인 국영진(鞠永趁)이 이승구 집안에 갚아야 하는 돈을 말한 듯하다. 편지 끝에서 이승학은 여름은 고향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번 서울 행차는 좋은 상황도 아니고 불리한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용국(龍國)이 내려간다고 하여 이편에 편지를 부치는데, 용국이 용대(龍臺)에 전달한다고 하였다고 당부했다. 이를 보면 이승학은 가까운 주변 인물을 통해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光兒見三朔間重侍狀安過讀字旣與乃範諸友同處則庶無浪過時日否遠在旅館寂寞夜每側耳如聞咿唔聲焂覺非聽也此吾之心馳而然也汝能無間단知此乃父心而不懈耶徒悠泛而已耶吾未知也雖然乃父之望於汝者幸其自成立庶不爲人下之歸耳乃父平生立心立脚不得定牢作事每如捕風人所爲自娛而見笑於人無非此豁汝不必遠求而以吾爲前車則亦知自謀矣西遊之計是吾快心經營而無事之不從心久矣竟歸馬有停罷在趁而無便寄書徒使家中空生離遠之懷思之可悶而聞此不去如死者之生還在於漢城不足論也到此進退亦難留俟開正浩然而所謂得失喜付於一一有何人力可及也家間事汝叔父旣看則汝之所業專意而外內細瑣勤勤奉承也吾之出家後宿疴稍減委或添或歇而近日毒感在身亦可以行氣餘外勿慮但費用每關念如家務世念之逐人困甚若是爲甚可苦可苦歲內衣服一襲付送然後可以卒歲矣若無信便可付則送于下沙可也此兄方同處而龍成歲內又上來云耳餘難一一庚寅至月念五 父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정묘년 임삼택(林三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卯三月二十一日 侍生 林三澤 丁卯三月二十一日 林三澤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묘년 3월에 임삼택(林三澤)이 안부를 전하면서 고풍시(古風詩)를 부탁한 내용의 간찰. 정묘년 3월에 임삼택(林三澤)이 안부를 전하면서 고풍시(古風詩)를 부탁한 내용의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에게 지난번 헤어진 후로 건강은 좋으신지, 무사히 돌아갔는지를 묻고, 이어 본인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어 시(詩)를 부탁하기를, 지난번 고풍시를 지어 주겠다고 승낙하셨는데, 이번에 감히 청하건대, 가는 인편에 시를 써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편지 발신자인 임삼택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어서 간지의 연도를 잘 알 수 없다. 다만 이 편지가 이승학(李承鶴) 가문에서 나온 문서라는 것으로 미루어 수신인을 이승학으로 추정했을 때, 편지에 적힌 정묘년은 1927년일 가능성이 크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27년 장화리(長華里) 호수등급표(戶數等級表) 고문서-치부기록류-역사기록 사회-역사-역사기록 昭和貳年貳月十六日 昌平面長 昭和貳年貳月十六日 昌平面長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昌平面長에게 보낸 장화리 111호에 대한 戶數等級表. 호수마다 등급을 매기고 그 아래 호주를 기입, 장화리는 5등급을 받은 李光秀를 비롯하여 20등급까지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음 *상태: 2장의 노트에 紙繩으로 假綴, 중간에 지운 흔적 종종 보임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西二化民朴慶赫朴慶潗朴慶淵等右謹言伏以民等八九代山所在於西一月谷而山下上下左右光子陳地再去戊申年分成文記買得於李曾齊處入山直禁養矣山下村居右延爲名者以最下麓古塚指謂渠矣祖墓是如其上民之陳地稍稍犯削或起耕其土或刈取其草而民等所居相左不能種種禁斷則此漢無厭之心將不知至於何境玆以緣由仰訴伏乞參商敎是後兩班山所有文券陳地乙不復侵犯之意同右延處嚴明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丑正月 日使[着押](題辭)他葬丘墓咫尺之地犯境刈草極爲無據形止摘奸後果如狀辭爲飭禁致向事卄日 面任摘奸時公平定界是如兩隻?已對造細告則各守界內俾無日後紛紜之弊宜爲向事二月十五日背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경신년 박명환(朴明煥)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庚申八月日 道莊面壁池洞居 化民 朴明煥 等 3名 城主 庚申八月日 朴明煥 使[着押] [綾州牧之印] 1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신년에 박명환(朴明煥) 등 3명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 경신년 8월에 화민(化民) 박명환(朴明煥) 등 3명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에서 박명환 등은 자신을 화민(化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화민은 자신이 사는 고장의 수령이나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고장의 수령에게 일컫는 자칭이다. 소지의 내용에 따르면 능주목 도장면(道莊面) 벽지동(壁池洞)에 사는 박명환, 박재두(朴在斗), 박형진(朴亨鎭)은 자신들의 7대조 감찰공(監察公)의 산소가 대곡면(大谷面) 모산촌(茅山村) 뒤 기슭에 있어 수백 년 동안 이곳을 금양(禁養)하는 땅으로 지켜오고 있었다. 을사년에 산 아랫마을에 사는 민두용(閔斗用)이 자신들 땅의 송추(松楸)를 함부로 베어가자 관에 소장을 올려 이후에 침작(侵斫)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기(手記)로 작성하여 받았다. 그럼에도 민두용(閔斗用)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송추(松楸)를 작벌(斫伐)하였으니 그를 잡아다가 투작송추(偸斫松楸)의 죄(罪)를 엄히 처벌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능주목사는 장민(狀民: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민두용(閔斗用)을 기어이 잡아 오라는 처분을 내렸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무오년 박세장(朴世章)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午十一月日 靈巖居前海南朴世章 等 2名 兼城主 戊午十一月日 朴世章 兼城主 ▣▣[着押] □…□ 3顆(6.0x6.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자년에 박세장(朴世章) 등이 겸성주(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무자년 11월에 박세장(朴世章) 등이 겸성주(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소지 내용에 따르면 영암에 사는 박세장과 능주에 사는 출신(出身:과거급제자) 박태빈(朴泰彬)은 능주(綾州) 서일면(西一面) 월곡촌(月谷村) 뒤에 자신들의 선산이 있는데, 자신들은 서이면(西二面)이나 영암(靈巖)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였다. 지난달에 월곡에 살고 있는 양거익(梁居益)이 동생, 아들, 조카 삼장(三葬)을 자신들의 증조(曾祖) 무덤 가까운 곳에 투장(偸葬)을 하였다고 하면서 양거익으로 하여금 기한을 정해놓고 투장한 무덤을 파서 옮기도록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겸성주(兼城主)는 같은달 30일에 양거익이 사대부가의 산소 가까운 곳에 몰래 투장한 것은 매우 놀라운 죄이므로 적간척량(摘奸尺量)하여 처치하라는 처분을 유향소(留鄕所)로 내렸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新年十三日 奇生宇萬 新年十三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원문: 白君省几回上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기응(奇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臘小望 弟 奇膺 玉山侍經丌 壬臘小望 [1902~1912] 奇膺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2월에 기응(奇膺)이 인척(姻戚)인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년 봄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전한 답장 간찰. 모년 12월 14일에 기응(奇膺)이 인척(姻戚)인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년 봄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전한 답장 편지이다. 편지 첫머리는 인형(姻兄)인 이광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전한 내용이 담겼다. 장성(長城)의 초가집에서 차를 다리며 오롯이 앉아 보내다가 매번 꿈속에서 담양(潭陽)으로 달려가곤 하는데, 이는 담양의 산수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인형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며 그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뜻밖에 보내신 편지를 받아 보니, 편지의 내용이 멀리 70리 밖에 사는 저의 폐부(肺腑)를 울려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의기(意氣)를 차오르게 하며, 말이 모두 향기롭고 상쾌하여 병자가 회생할 듯 하다고 문장 솜씨를 극찬했다. 편지는 이광수의 안부를 확인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광수가 산방(山房)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집 뜰에는 중국 한(漢) 나라 학자인 정현(鄭玄)의 제자들이 책을 맬 때 썼다는 고사로 유명한 서대초(書帶草)가 생겼을 것이라고 하며 이광수의 학자적 면모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또 이광수가 태산(泰山)과 같은 선생 아래 거처를 정했다고 들었는데, 이 결심은 우리 도(道)의 복이 아니겠냐며 축하한다는 말을 한 내용이 보인다. 이 구절은 아마도 이광수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스승으로 받들게 된 일을 두고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는 아버지 이승학과 함께 기우만을 스승으로 모셨다. 계속해서 기응은 그간 자신의 안부를 알렸다. 겨울 동안 기침 소리를 내며 지내다 보니 생인(生人)의 흥취가 모두 사라졌다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근래 고문(古文) 수백 권과 명화(名畫) 수십 본과 함께 썰렁한 집에서 좀벌레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또 능히 일을 마칠 수 있다고 한 구절이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회근(晦根) 또한 별 탈 없느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저를 위해 소식을 전해주기를 청했으나, 회근 역시 누군지 알 수 없다. 이어 이귀동(李龜東)은 우뚝하게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교송(喬松)과 같아서 일찍이 저와 함께하려 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난번 시회(詩會)에 와서 현순(弦旬) 동안 머물다가 금성산(金城山) 아래 영강(靈江) 상인(上人)이 되었다고 하며, 이귀동의 신선과 같은 면모를 칭찬한 내용도 보인다. 끝으로, 답장 편지를 곧바로 전송하지 못해 망망(惘惘, 맥없이 마음을 잃은 모양)하다고 하며 미안함을 표하고, 봄에 만나자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편지를 마쳤다. 편지를 쓴 날짜 부분에 '壬腊小望'으로 표기되어 있어 연도가 불분명한데, 그동안 장성의 인척에게 온 편지들로 미뤄봤을 때 1892년 임진년(壬辰年)으로 추정된다. 장성의 인척인 기중도(奇重度)와 기응도(奇應度)의 편지를 보면, 1893년 봄에 유람 약속을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玉山侍經丌回納沙上奇弟謹上謝白屋煎茗兀坐每夢想馳於秋南者非獨秋南山水好而已我故人玉人其人在意外惠翰同鄙星至抑何神耶字字肺腑能使七十里外人擊節釀淚弟之生平意氣得兄此書盡矣永夕奉玩頰舌盡芬爽然病者有回甦精神故人之賜大矣彿恩可忘伏審早入山房云庭下必生書帶草矣可卜泰山下先生豈非吾道福哉弟三冬雪月色喀喀聲中度了生人之趣都窮矣近以古文數百卷名畫數十本同此愛病一軀置之寒齋上作蠹魚優游其間不死足矣能事畢矣晦根亦無恙否爲我寄聲李龜東屹屹凌宵喬松曾不欲與弟同牕而向者以詩會來留一弦旬內作金城山下靈江上人兄書未卽傳送思極惘惘春約令人沾沾益知不遐萬萬意長神短不能盡傾熱腔不備謝上壬腊小望弟奇膺再拜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