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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冬饕風虐雪可謂滋甚而向北啓駕能無勞攘利稅耶追後區阻歲又換矣起居伏惟萬旺 覃節俱思於新舊之際益不勝遠溸憧憧少弟省節印昔而正初以感冒作幾日叫苦尙此圉圉耳今年南中毒感無異運氣而在在皆然亦甚苦悶處也居時所關零數以此處慕爲參緡而漁洞亦欲便未付故當五六兩文今纔備呈代領仰念春間又有增廣云果然耶不日非遠書可旣惟烱亮不備候禮戊子正月卄三日 少弟李承鶴拜手票紙還送爲好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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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疏上城主 座前稽顙謹封稽顙再拜言秋初返旆後窃欲以數字書疏伏探近候而家憂私撓滾汨無時未遂素忱罪悚罪悚每因族兄問候伏聞必致厚念於無告之罪民尤何等惶恐哀感也伏問比來篆軆度萬相區區伏遡下忱罪民奉筵之外僅保頑喘餘復何達此時伏有切急事情不得已仰達于城主未知如何而罪悚極矣在夾告千萬荒迷不次謹再拜疏上城主 下鑑甲申八月十七日夕罪民李承鶴疏上[別紙]洪雅士鍾轍居靈光卽今上試之同宗也罪民之切戚也得茂長倅書簡欲納于三試長水而有晩時之歎要于中路不得納則且明日試日也若入于試所則閽禁至嚴尤不可爲矣聞今夜宿所于本府方且前進而使罪民請于城主前此科事也何忍强恝乎城主亦爲下諒矣幷爲封納卽使通引輩傳于三試則非徒罪民之生光科士之不狼貝大矣渠亦知感矣千望萬望恃愛妄讀尤極惶恐惶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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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書前日末始自金剛入京卄六日郵遞付書入抵否其間經過略悉或無洪喬否間來家中皆無故所農若何否傳聞南來之言頗有豐登之望云果然乎父留京五日再昨夜宿桃洞參隋城府夫人忌祀以兩諸族會無幾人矣吾家雪寃事累累說及而觀其意向今不過却且有機會難失之慮然吾下去後當門議矣至德誌已覓來耳昨日向果川之路入宮邨遇雨止宿而適聞有便小山似先我而去故暫付數字之路資葛藤不少江華則不得前進今日向果川省墳明日則直下爲計望前必入門矣綾州丈左遷非但爲自家之不幸也今將勸赴新郡云吾去前似發矣數數問安也暫此不一一七月初吉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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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歷史記錄) 고문서-치부기록류-역사기록 사회-역사-역사기록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 9월에 이양선 침범 등을 기술한 書目 등 抄本. 중국 恭親王이 서양 세력과 강화를 맺었으나 그 때문에 위기에 놓였다는 내용, 1866년 9월에 이양선이 강화도 등지에 출몰하는 상황을 기술한 狀啓와 書目 내용, 召募使 등을 임명하는 과정 등에 관한 내용 등 *원문: 謹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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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移館門外非不意也見各處諸族收單而來吾順城派尙不齊會然扶安與公州新昌稷山等地所居族方來到而單寒心矣且以大君派言之無不知吾派之寃而今番不可失時云者一口然矣此順城派無人之譏必將難免吾之所行者亦忍痛含寃迫不得已八字耳吾必出入日使栢叔動得桃台似過三四分然前日多來之爲害不少下稍姑不知而苐觀動靜耳此紙勿煩人付丙也今逢順城派各處人廣詢其烏川伊山兄弟分間之說探得則皆云各家文蹟初無是事云云但文岡所持文蹟有之而此則自天齡氏家無后後得來云然亦諱而不發云耳此事則不足爲憂初以此等爲慮者今幸無事矣勿煩勿煩苐待下回但此字經過日用甚歎可歎不用下換者每致家中爾輩之撓故耳驢子尙不喜借于桃洞騎而食之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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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별지(簡札別紙)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들에게 족보 편찬 중에 제기된 양녕대군(讓寧大君) 순성파(順城派) 문제를 전한 내용의 간찰별지. 이승학(李承鶴)이 창평(昌平)에 있는 동생들에게 ?선원보(璿源譜)? 편찬 중에 제기된 양녕대군(讓寧大君) 순성파(順城派) 문제를 전한 내용의 간찰 별지이다. 이승학이 한양에 있으면서 알게 된 족보 관련 소식을 자세히 전한 것인데, 별지 중간에 '불에 태우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민한 사항이기 때문에 별지로 따로 적어 집으로 보낸 듯하다. 본 편지가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99년에 작성된 이승학의 편지에 족보를 자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 해에 작성된 별지로 추정된다. 별지는 오늘 (한양의) 문밖으로 숙소를 옮겼다는 소식으로 시작하여, ?선원보(璿源譜)? 편찬의 진행을 상세히 전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각처에서 족인들의 수단(收單)이 오는데, 순성파(順城派)는 아직도 다 모이지 않고 있으며 부안(扶安)과 공주(公州), 신창(新昌), 직산(稷山) 등지에 사는 족인들이 이제 도착했는데, 그 수단이 매우 한심하다고 표하기도 했다. 이어 순성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두루 전했다. 양녕대군파가 우리 순성파의 원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원보? 편찬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고, 또 순성파는 인재가 없다는 기롱이 있어서 반드시 면하기 어렵겠다는 말도 있으니,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은 '통분을 참고 원한을 품는 것은 절박하여 그러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忍痛含冤迫不得已]'는 이 여덟 글자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순성파 문제는 이승학 자신이 관여하기보다는 족숙인 백동(栢洞) 대감과 도동(桃洞) 대감이 중재하여 처리할 것이기에 자신은 일의 추이를 살펴보겠다고 하였다. 또한 순성파 각 지역 사람들에게 오천군(烏川君, 이사종(李嗣宗))과 이산부정(伊山副正, 이사성(李嗣盛)) 형제의 분파에 대한 설을 널리 물었더니 모두 각 집안의 문적(文蹟)에 애초부터 이 일이 없었고, 다만 문강공(文岡公) 집안의 문적 중에 이 일이 보이는데, 천령씨(天齡氏) 집안에 후손이 없어 나중에 얻게 되었는데 이 일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 등은 크게 근심할 것이 없고 다만 돌아가는 상황을 기다릴 뿐이라고 집안 식구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 단락에서 언급한 오천군과 이산부정의 분파나 문강공 가문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편지는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비용 때문에 매번 동생들에게 혼란을 일으킨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 내용과 나귀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도동에서 탈 것을 빌렸다는 말을 끝으로 편지를 마쳤다. 별지에서 언급된 순성군 문제는, 순성군 이개(李?)의 배우자와 관련된 것을 말한 듯하다. 1899년에 종정원경(宗正院卿) 이재완(李載完)이 고종에게 요청하여 ?선원보?를 수정하고자 했다. 이때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전주이씨 양녕대군 계열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이전에 만들어진 ?선원가현록(璿源加現錄)?에서 양녕대군 이제(李禔)의 아래에 '순성군 이개의 첩(妾)의 맏아들 오천군 이사종'이 라고 기재되어 있고, ?선원속보(璿源續譜)?에는 오천군 이사종의 기사 옆에 주석(註釋)을 달기를, '어머니인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참의(參議) 정종성(鄭宗誠)의 서녀(庶女)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천군 후손들은 나라의 문헌과 개인 문헌들을 통해 연일 정씨가 서녀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종성의 아들 정보(鄭保)가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모두 반역자로 몰리자 순성군의 처도 첩으로 강등(降等)되었다는 것이다. 옛 ?선원록(璿源錄)』에 순성군이 연일 정씨에게 정식으로 장가들었으며, 또 순성군은 첫 부인 신씨(申氏)와 같은 산기슭에 따로 장사지내고, 후실인 정씨는 순성군과 함께 나란히 쌍무덤으로 장사지냈다고 씌어 있으니 정씨가 순성군의 첩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순성군파 사람들은 당시 ?선원보? 편찬을 계기로 연일 정씨가 정식 처(妻)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억울함을 씻고자 했다. 참고로 순성군과 연일 정씨 사이에 4남을 두었는데, 오천군 사종(嗣宗), 차남은 헌양군(巘陽君) 사조(嗣祖), 3남은 포산부정(苞山副正) 사원(嗣源), 4남은 이산부정(伊山副正) 사성(嗣盛)이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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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혁(李爀) 독촉장(督促狀)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매매/교역-관계 大正拾五年九月拾五日 谷城郡農會長 兪鎭昌 潭陽郡 昌平面 長華里 李爀 大正拾五年九月拾五日 兪鎭昌 李爀 전남남도 담양군 □…□(2.3×2.4)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9월에 곡성군농회장 兪鎭昌가 李爀에게 보낸 독촉장. 곡성군농회장에 밀린 체납금 25전을 1926년 9월 30일까지 납부해 달라고 하는 독촉 내용 *상태: 독촉장 왼편에 送達書가 부착 *원문: 第一二一八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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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1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1,25 潭陽郡昌平面會計員 高光直 長華里 李承鶴納 1,25 高光直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朴烋汶(1.1×1.1)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에 이승학이 담양군 창평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7년 1월 25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회계원(會計員) 고광직(高光直)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6년도 제2기 지세 45원(圓) 12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13원 53전, 지세할(地稅割) 20원 75전, 지세부가금 13원 53전으로 총 92원 93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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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丁卯年 丁卯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에 이승학가문에서 작성한 추수기. 담양에 있는 소작지 29석 4두에서 걷어 들인 소작료를 기입 문서에는 해당 토지와 걷은 소작료, 총면적, 소작인 등이 표기, 9개 토지의 11명의 소작인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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