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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辰七月卄七日 病生 奇宇萬 丙辰七月卄七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7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원문: 不見故人殆數年望之如雲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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化民儒學李溎等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伏以本州地擅南鄕人多俊異其間忠義節行之彬彬輩出豈特歷數而 後知耶所以表忠㫌節前後相望亦豈非 朝家激勸襃揚之遺也耶然貳因雲仍之殘替或因世代之緬遠至今數百載之間終未蒙昭代之晠典則其於公議之憫鬱當如何哉故兼司僕內乘李公止得抗義討賊募粟餉師赴戰甘死等事其忠矣哉而口碑家乘果非誣也盖李公平日志節俊邁以別薦授兼司僕內乘壬辰方家居聞大駕播遷遂慟哭曰此豈人臣保妻子之日哉卽馳赴 行在時糧艱乏李公自請南下募穀餉師其時相臣聞而奇之遂行關于兩湖曰焚蕩殺戮之餘兵無數日之糧一國臣民但費揮灑唐兵自天而下粮蒭不繼大事將去苟有血氣孰不傾財破産以助 綴旒之急哉內乘李止得見 國家急急之勢懷斷斷急病之心願下本道募粟于同志以助 國家萬一之用其誠可嘉各道各官勿以啇賈而有禁畧于船隻蠲稅許載亦勿阻遏使卽上來以助軍兵之需云云李公卽促鞭還家盡傾私儲雲納于餽餉廳尺文有曰羅州前內乘李止得領進義穀白米一百四十二石九斗五升赤豆一石以天兵粮依數納上云云此實 萬曆二十一年之三月六日也李公復還船南下聞倭賊潛遣船隻先探我國水路犯長興界卽募義旅與張景弘等數百人奮擊大破追及長興界促櫓而行遇一大船直超而登先斬石綻等數級忽有一倭放丸中公左脅落水奴金同者善於泅負公還船自是病不能視軍顧謂張景弘曰一丸殞我 國憂將何生不斬倭酋死不杇義骨天長地久此恨何極言未訖而絶焉其貞忠大節如是炳烺而旣無大人君子爲之表章故本州諸忠臣褒㫌之日不敢幷擬矣以言于世德則咸平君克明以後世有忠節焉以全羅水使討平倭寇 陞北兵使宗仁乃公之曾祖以學行世稱蒿菴先生惟誨卽公之考而莊襄公襄翼公是公之族高曾祖 贈刑曹判書忠臣㫌閭止孝亦公之從兄也公之忠烈有所自來鄕人之欽艶匪今斯今而如許至行韙躅終至於泯豈不慨然乎哉鄕儒及道儒屢度呈書尙未蒙褒㫌之典玆以去月念間道內儒生齊龥於 巡使道觀風採詢之下而 題音內誠如狀辭卓異之節令人欽歎狀 聞體重大邑報當摭實量處事爲敎則其摭實轉報之道惟望於我 閤下崇仁尙節之下故敢此營題帖聯齊龥故內乘李公止得實蹟礿以抗義討賊再爲募粟餉師末乃殺身成仁如許堂堂卓節之狀據實薦報俾以爲伸此輿情鬱結之寃千萬幸甚行下 向敎是事癸亥八月 日化民幼學 李溎 羅景弼 李希文 崔昌民 洪益淵 羅爀采 林就鎭 崔光朝 柳文榮 金聲漢 李洙進 羅元弼 金錫海 崔元之 鄭希喆 張齊甲 李儒聖 洪翼謨 林厚鎭寄允謨 李鳳運 金斗臣 吳相宇 李之晶 羅基弼 李永默 林正鎭 李儒信 崔翼之 柳錫夏 高山斗 崔昌業 柳堜 李邦臣 柳時春 柳錫良 奇泰運金器周 柳璟 崔逸東 李儒德 柳錫冑 金錫文 等使[着押](題辭)李公鄙義尙未褒揚極爲欠事是矣年久之事 猝難轉報事十六日[官印] 3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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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박재홍(朴載弘) 산도(山圖)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卄五日 卄五日 朴載弘[着名] □…□ 5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재홍(朴載弘)의 10대조 산소 내 산송(山訟) 관련 산도(山圖). 박재홍(朴載弘)의 10대조 산소 내 산송(山訟) 관련 산도(山圖)이다. 산도에는 박재홍의 10대 조부모 무덤과 그 위쪽에 평장총(平葬塚)이 표시되어 있고, 아랫부분에 평장총과의 거리와 기송자(起訟者)인 박재홍의 서명이 있다. 박재홍 10대 조부모 무덤에서 평장총(平葬塚)까지 보수(步數)가 1척(一尺) 5촌(五村)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도형의 뒷면에는 25일자 뎨김(題音)인 판결문이 있다. 판결문에 도형을 보면 타인의 무덤이 머리에 자리하고 있어 장사를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저들이 내현(來現)하는 것을 기다려 잡아들이라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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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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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自朴載弘十代祖父母塚至平葬塚步數爲一尺五村是向齊起送朴載弘[着名](題辭)觀此圖形他人憤腦人餘地永非可葬之處故凶如彼漢者平葬卽掩踰今日孤狸掘破其塚此可謂天誘而神告也然骨節散換衣衾剝落若於此隙輕先犯手則恐爲塚主籍姑觀數日動靜彼當來現待來現卽爲捉納事卄五日[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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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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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614년 광주목(光州牧) 입안(立案) 고문서-증빙류-입안 법제-소송/판결/공증-입안 萬曆四十二年八月二十一日 光州牧師 僧 法融 萬曆四十二年八月二十一日 光州牧師 法融 行牧師[着押] 光州牧師之印 5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14년 8월에 광주목사(光州牧師)가 승려 법융(法融)에게 발급한 입안(立案). 1614년(광해군 6) 8월 21일에 광주목사(光州牧師)가 승려 법융(法融)에게 발급한 입안(立案)이다. 입안의 내용에 따르면 광주목사는 향교 당장유사(堂長有司)의 첩정(牒呈)에 난 이후에 향교의 서적이 엉망이 되어 달리 판출(辦出)할 수 없을 때 본 고을의 승려 법륭이 타례(他例)에 따라 책지(冊紙) 90권을 원납(願納)하였기에 본 고을의 승역(僧役) 및 승군(僧軍)의 초발(抄發)을 일체 감해주기를 요청하여 이에 따라 역을 감해주는 입안을 성급(成給)해 주었다. 또한 승려 법륭이 포충사(褒忠祠) 옆 서재(書齋)에 머물고 있고, 포충사에는 사액 받은 땅뿐 아니라 1구(口)의 노비도 없어서 수호하고 쇄소(灑掃)하는 일을 오직 법륭에게만 맡겨서 하였는데, 본 고을의 승려 일응(一應)의 역 및 승군 초발(僧軍抄發), 사찰제역(寺刹除役)을 함께 면제하라는 입안을 발급하였다. 당시 광주목사는 박경신(朴敬新)으로 1612년부터 1615년까지 근무하였다. 이 밖에 포충사와 관련한 문서로 1622년 광주목 입안, 1627년 광산현 입안, 1633년 토지매매명문이 있다. 포충사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1533~1592)과 고종후(高從厚, 1554~1593)·고인후(高因厚, 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1544~1592), 안영(安瑛, 1564∼1592) 등 5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1601년(선조 34) 호남 유생들이 광주 제봉산(霽峯山) 아래에 사당을 건립했고, 1603년(선조 36)에 박지효(朴之孝) 등 문인과 후손들이 사액을 청해 '포충(褒忠)'이란 액호를 받았다. 포충사는 사액 사당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았던 사우이다. 입안(立案)은 관에서 발급한 일종의 공증서(公證書)이다. 조선시대에는 가옥이나 토지 및 노비 등을 매매하거나 양자(養子)를 들일 때 원칙상 관에 신고하여 공증을 받아야 했는데 이때 관에서 발급한 공증서가 바로 입안이다. 이외에 효자와 열녀 및 충신에게 정려를 내어줄 때 그리고 백성들이 청원한 사실을 공증해 줄 때에도 이를 발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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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辰臘月三日 弟 李承鶴 庚辰臘月三日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 12월에 李承鶴이 지인에게 안부를 전한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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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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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종(李宅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丁酉九月初二日 宗下 宅鐘 靑皐宗氏 丁酉九月初二日 李宅鐘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승학(李承鶴)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승학(李承鶴)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이다. '청고(靑皐) 종씨(宗氏)에게 화답하며'라는 시 제목이 나오고, 이어 긴 장시가 적혔다. 시의 대략적인 내용은 능성(綾城)에서 지난날 있었던 화수(花樹) 모임을 생각하니 꿈만 같다는 내용, 점차 서리가 내리는 9월의 계절에 그리움이 깊어간다는 내용, 창평(昌平) 장전(長田)에 사는 이승학의 세속을 초월한 풍모 등을 찬탄하여 묘사한 내용, 단란하게 모여 수창(酬唱)하여 자리를 함께하자는 내용 등을 담았다. 서문에는 청고에게 서 온 글을 받고 감사하다는 내용과 시에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표했다. 이택종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창평 현령(昌平縣令)을 지낸 이범학(李範學)의 아들이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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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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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이택종(李宅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歲在丁酉重九月 綾留 宗人 宅鐘 玉山宗氏 歲在丁酉重九月 李宅鐘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광수(李光秀)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광수(李光秀)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이다. '옥산(玉山) 종씨(宗氏)에게 화답하며'라는 시 제목이 나오고, 이어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의 서문이 자세히 실렸다. 동종(同宗)을 화수(花樹)라고 하는 이유는 한 뿌리에서 나와서 번성하여 천 개의 가지와 만 개의 잎이 되기에 뿌리로 말하면 본(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지와 잎으로 말하면 말(末)이 된다고 하고, 역(易)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동종의 일체성을 강조한 내용이 나온다. 이어 전주이씨(全州李氏) 사람들이 경향(京鄕)에 흩어져 살아 각기 빈부(貧富)와 궁통(窮通)의 차이는 있지만 대대로 화목한 것은 장공예(張公藝)의 구세동거(九世同居)와 같고, 범중엄(范仲淹)이 의전(義田)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장공예는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9대가 함께 동거하여 북제(北齊), 수(隋), 당(唐) 등 세 왕조에서 그 집에 정표(旌表)를 내렸다. 당나라 고종이 친족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묻자, 그가 지필묵을 꺼내어 참을 인(忍) 자 100여 자를 써서 올렸더니, 고종이 훌륭히 여겨 비단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범중엄은 송나라 명재상으로 고향인 오중(吳中)에 좋은 전지(田地) 수천 묘(畝)를 사들여 그 조를 거두어 저축해 두었다가 족인 중에 혼가(婚嫁)나 상장(喪葬)을 치르지 못하는 자에게 공급해 주었다. 서문에서 계속해서 말하기를, 지난번 부친 이범학(李範學)이 창평 현령(昌平縣令)으로 계실 때 담양(潭陽)의 제종(諸宗)과 이웃하였는데 그동안 경향으로 멀리 떨어져 모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하였다. 1896년에 이택종이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부친과 담소를 나누는 이를 보았는데, 그가 이광수였다는 것이다. 이광수의 논의는 정확했으며, 식견이 넓은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하였다. 이 만남으로 한편으로는 이백(李白)이 화창한 봄날 형제들과 복사꽃 오얏꽃이 핀 정원에서 술자리를 벌이며 즐겁게 놀았던 것처럼 종족 간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주는 이택(麗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이후 올해 5월에 부친께서 능성(綾城)으로 임지를 옮겨와 서로 이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열흘 안에 오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그 서글픔은 멀리 떨어진 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 이광수로부터 서문(序文)과 시(詩)를 받아 매우 감동했고 감사함을 전하며 창화(唱和)가 없을 수 없다면서 시를 함께 보낸다고 하였다. 이광수에게 부친 칠언율시(七言律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대한 재덕(才德)을 지닌 이광수의 명성은 간담(肝膽)을 기울이게 하고, 중양절(重陽節)의 약속을 꿈속에서도 그리워한다고 하며 만남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이어 깊어가는 가을밤에 풀벌레 소리 들리고 찬 하늘에 성(城) 위로 솟은 달빛을 보며 다시금 그리움이 깊어짐을 전했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매번 화수(花樹)를 말하며 그 뿌리를 떠올리는데 높은 북두성에서 기러기 소리 들려온다고 하며 이광수가 전해 온 편지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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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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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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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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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23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7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十二年十二月十八日 大德面森林組合長代 昌平面 長華里 李承鶴納 大正十二年十二月十八日 大德面森林組合長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朴在昊 2顆(타원형)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에 대덕면삼림조합에서 이승학에게 발급한 삼림조합비 영수증. 1923년 12월 18일에 대덕면삼림조합(大德面森林組合)에서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에게 발급한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대덕면삼림조합장 대리인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1년도 삼림조합비 1원(円) 95전(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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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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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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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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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25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1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12,4 潭陽郡昌平面會計員 朴在昊 潭陽郡 昌平面 長華里 李承鶴納 12,4 朴在昊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朴在昊 1顆(1.4×1.4)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에 이승학이 담양군 창평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5년 12월 4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회계원(會計員) 박재호(朴在昊)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5년도 제1기 지세 45원(圓) 12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12원 18전, 지세할(地稅割) 20원 75전, 지세부가금 13원 53전으로 총 91원 58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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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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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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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용하기(用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가문에서 지출 내역을 표기한 用下記. *상태: 지출액수와 사용내역이 표기, 일부 수정한 흔적도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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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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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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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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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18년 이찬수(李燦秀) 임야(林野) 고문서-치부기록류-전답안 경제-농/수산업-전답안 大正七年六月十一日 大正七年六月十一日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8년에 담양 창평면 林野整理調査監督員 朴載魯가 작성한 李燦秀 임야 등록 문서. 토지대장에 기재된 이찬수 소유의 장전리좌록 5204평 등을 포함한 8필지를 임야정리조사감독원 박재노가 1918년 7월 6월 11일에 확인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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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列邑儒生進士吳時裕等謹齋沐上書于巡御使道按節之下伏以褒忠㫌節爲 國先務激勸世道扶植人心苟有可褒之忠㫌之節則豈以世代之久遠置而不論哉竊念羅州節義之鄕也金健齋倡義使父子及梁承旨山濤諸公當壬辰倭寇殉節於晉州之矗石江其偉烈貞忠與星月爭光而 朝家褒寵炳烺於千載之下矣至若羅州故司僕李公止得末宦家食殉 國自誓素所蓄積於中者而逮逢龍蛇之亂兩京旣覆八路俱壞墟里烟絶臣民鳥竄雖 天兵東救住郞開府而十萬軍粮無以供饋上自畿旬下至州縣無現存?師之穀伊時 國勢殆乎汲汲智者束手而汲策 朝野跂足而無計於是乎李公奮袂而起先募義穀於列郡同志之士與奇公孝曾幹當其事載運於千里海路以助軍粮未哉大軍滯陣不進京城危迫迫在朝暮且萬軍頷顑無復進戰之心李公見 國歌急急之勢挺身獨當更募義穀白米一百四十二石九斗五升赤豆一石及期轉運再饋天兵進復京城李公之前後効忠班班可考於兩紙古蹟而且其時右相未知爲何公而成給帖文喪葬運穀之苦忠益勉其更募漕運印踏署押之跡只今未沫則李公之効忠不待卞說而矣及至島夷充斥兩南擰鋒前到興陽等地則李公挺身而出手持長槍胺帶大刀與同志張公景弘搏進賊?斬馘倭酋石綻等十餘級忽有飛丸中傷公左脅落於水奴金同者負公而歸于船公將紀呼張公而訣曰生未斬倭死豈▣▣▣人眷佑廓掃妖氣丈夫雖殞義魂猶幸云而遂絶焉李公之義烈至今尙在口碑嗚呼李公之再募義穀勇斬倭首級夫賊鋒之殉節明白巍卓宜若竝列於金健齋梁承旨諸公㫌褒之日而募穀之尺文無人現告殉身之毅節無人闡揚遂致湮沒而未彰在李公則無憾而 朝家㫌褒之典顧不有欠哉玆乃鄕人聞于官道內章甫爭赴名帖呈于 巡營則題云李公忠節在古亦罕兩紙古蹟宛然可考多士呈單蔚然可見百戰之下令人欽歎但孝烈狀 聞已於歲首封進今無可及留待後日云矣生等生長於李公之隣邑而慣聞李公之殉節目覩其募義尺文 政府帖文不勝其仰鬱泯滅之感更此仰蹟於▣節之下伏▣…▣之再運募穀之忠竟致殉節之義啓達 天門俾蒙褒㫌之澤勿令義烈百代未闡之地千萬祈懇之至巡御使道 處分辛丑十二月 日羅州進士 吳時裕 奇繼商 廉宗愼 廉宗鏶 金之獜 金吉羽 閔邦仁 幼學 柳希顔 洪載淵 柳德漠 金德鼎 李遇臣 金麗臣 羅得敬 洪若洙 張天翰 羅廷瑞 柳文錫 吳時爕 柳德復 崔承烈 林永鎭光州進士 朴徽鎭 金義集 朴聖激 鄭潤吉 朴河鎭 幼學 柳迪 柳光國 奇秉勳 柳逹 金大鳴 崔澐之 李有坤 李實 金孝一 朴爕 高一柱 靈光進士 李以錫 吳先源 李景錫 幼學李國佐 柳元龜 丁友仁 李應台 金必大 金允國綾州進士 文演撲 南熤 幼學 文濬吾 閔奎五 洪永宅 李政垕 崔鳳祉 林泰赫 奇宗喆 宋(氵+喆)梁命龍 咸平幼學 安邦允 李洪心 鄭錫亮 安復允 鄭錫白 金垕錫 李命建 李慶鳳 李廷燦 鄭齊夏 金宅欽 金若欽昌平進士 高時遇 朴虎瑞 吳相鼎 幼學 鄭梓 梁學海 朴瓓 柳震升 羅得奎 潭陽進士 羅得和 南彦夏 幼學 金文達 金虎達 務安幼學 金鎰 金涷 崔致祥 金淑 林東鎭 高載岳 宋之翼 金虎瑞 和順進士 曺翊鉉 幼學 崔孝昌 崔堯昌 曺翊俊 柳涑柳亨運 長城進士 邊得衡 幼學 邊得一 朴成春 金直賢 金益賢 南平進士 洪鳳周 幼學 崔鳴岐 洪憲東 宋相履 李徵福 鄭明欽 任昌福 徐粹貞 等巡撫御使[着押](題辭)李公忠節聞極欽歎但登聞体重更當商量向事卄二[官印] 5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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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병자년 박상언(朴尙彦)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子閏九月日 西二化民 朴尙彦 等 4名 城主 丙子閏九月日 朴尙彦 綾州牧使 使[着押] [綾州牧使之印] 1顆(6.5x6.5)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6년(영조 32) 박상언(朴尙彦) 등 4명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 1756년(영조 32) 윤9월에 화민(化民) 박상언(朴尙彦) 등 4명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이 문서에서 박상언 등은 자신을 화민(化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화민은 자신이 사는 고장의 수령이나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고장의 수령에게 일컫는 자칭이다. 능주목 서이면((西二面)에 사는 박상언, 박상철(朴尙喆), 박필범(朴必範), 박필증(朴必曾)은 자신들의 선산이 능주목 서일면(西一面)에 있는데, 묘 아래 사는 양홍거(梁弘擧)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번 달 초9일에 투장을 하려고 자신들의 선산 주맥(主脈) 가까운 곳에 개토(開土)를 계획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게 일의 낌새를 알아채고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도 투장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이후에 반드시 밤을 타서 투장을 하는 변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하며 이것은 이치에서 벗어나 법에 위배되는 무덤이므로 한편으로는 관지(官旨)에 의거하여 면임(面任)을 데리고 굴거(掘去)의 까닭을 각별히 엄제(嚴題)하시고, 한편으로는 힘을 믿고 법을 업신여기며 마음대로 투장하는 부류를 금하시고, 한편으로는 일후에 관전(官前)에서 쟁송(爭訟)을 벌이는 폐해가 없도록 방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능주목사는 신경보(申經普)로 1755년 2월부터 1757년 2월까지 근무하였다. 능주목사는 이와 같은 요청에 대해 입지(立旨)를 발급해 주라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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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西二化民朴尙彦朴尙喆朴必範朴必曾右謹言所志萬萬無據凶惡情由段大抵遐方人心之不測去去益甚中至於山家之慾則雖甚太重是乎乃近來貪濫凶獰人情乙細細審知則其矣父母生時未得孝子之名者死後則欲蒙其地下陰助之德是乎矣虛多無主空山乙不爲致誠占得安葬是遣他人營求入葬處乙特聞其無欠有吉之言則敢生非理無據之慾而守護山直乙威力結縛是遣暗然偸葬之擧比比有之而因爲成習成風則遐方無勢之人痼弊之慘莫此尤甚是如乎民等先山在於西一面相距遙遠之地則墓下所居梁弘擧亦其矣亡父乙今月初九日分偸葬次民等先山主脉至近處開土設計之際適偶知幾堅守故渠亦今雖理屈見遂偸葬之慾撑中不弛則果如是後必有乘夜偸葬之変是白置偸葬之変實是理外犯科之塚則亦以以惡報惡之例互相對拒次一依 官旨而面任眼同掘去之由乙各別 嚴題爲白良一以禁遐方恃强侮法任意偸葬之類是尔一以杜日後官前爭訟紛紜之弊幷以特爲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子閏九月 日史[着押](題辭)立旨來給事十五日[官印] 1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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