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영(李敦榮) 등 격문(檄文)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격문 사회-조직/운영-격문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발발 때 이돈영(李敦榮) 등이 의병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전주이씨(全州李氏) 제종(諸宗)에게 보낸 통문 2편의 초본(抄本)이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발발 때 이돈영(李敦榮) 등이 의병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전주이씨(全州李氏) 제종(諸宗)에게 보낸 통문 2편의 초본(抄本)이다. 첫 번째 통문은 병인년(1866) 9월에 판종정경(判宗正卿) 이돈영(李敦榮) 외 12명이 의병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주이씨 제종에게 보낸 것이다. 통문의 상단에서는 예부터 국가에 치란(治亂)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와 같아서 잠깐 겪은 위기에 불과했다면 근일의 양이(洋夷, 병인양요(丙寅洋擾))가 국경에 침범한 일은 예부터 없었던 일대 변괴(變怪)라고 하며 병인양요의 위험성을 알렸다. 이어 우리나라는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유풍을 세습하고 논맹(論孟)의 유훈을 외고 예악과 문물은 중화(中華)를 따르는 천하 만방에 떳떳함이 있는 나라인데, 저 양이들이 창궐(猖獗)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저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의기(義氣)를 고취 시켰다. 게다가 우리 전주이씨 제종은 왕실의 후손으로서 임금께서 한 집안과 같이 돈독하게 대해주시는 은혜를 입었으며 흥선대원군께서도 친목과 은택을 내리시어 감복을 받고 있으니, 바로 이때가 은혜를 보답할 시기라고 하며 의병 참여를 촉구했다. 이어 전주이씨 제종께서 일심으로 협력해서 방책을 진달하여 적을 막고 섬멸할 대책을 모색하자고 하면서, 만일 신하 3천명이 일심이 된다면 큰 공훈이 된다고 하였다. 저 양이들이 비록 강하더라도 한 마음으로 맞선다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니 갖자 의기(義氣)를 높여 함께 국사(國事)에 힘쓰기를 바랐다. 통문의 주요 내용이 끝나고, 작성된 시기인 '丙寅九月日'과 발신인인 이돈영 외 12명의 명단이 표기되었다. 또 추가로 의병에 참여코자 하는 이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보내면 곧바로 종친부(宗親府)에 모여 상세히 살펴 별도로 처분할 것이라고 덧붙인 내용이 등사되었다. 두 번째 통문은 전(前) 참지(參知) 이윤수(李潤壽) 등 14명이 의병 참여를 촉구하면서 전주이씨 제종에게 보낸 것이다. 군신(君臣) 관계는 부자(父子) 관계와 같아서 아버지가 위급하면 아들이 보호해주고 아들이 위기에 놓이면 아버지가 막아주는 것이라는 말로 통문을 시작했다. 전주이씨 종파(宗派)는 임금에 대해 공적으로는 군신의 관계이지만 사적으로는 종족이라고 하면서 의병 참여를 독려했다. 게다가 전주이씨 제종은 ?선원보(璿源譜)?에 종인으로 입적되어서 여러 혜택을 받고 있으며, 우리 임금이 등극한 이후로는 지극한 은혜를 받았기에 전주이씨 제종은 양이의 침범으로 위기에 놓인 종묘와 사직을 위해 몸소 의기(義氣)를 실천할 때라고 독려했다. 이 통문 하단에 호남(湖南)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호남은 풍패(灃沛, 임금의 본관이 있는 곳)의 고을로, 논맹의 풍습이 깊어 임진왜란에 진신(縉紳)과 장보(章甫) 등이 일제히 의병에 참여하여 전장으로 나서기도 하고 군량미를 보내주기도 하는 등 큰 절개를 세워 아직도 모범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를 모범으로 하여 전주이씨 제종은 이 통문을 들은 즉시 지체하지 말고 한결같이 임진년(1592)의 예에 따라 병사를 모집하거나 군량미를 모아 이 난리를 말끔하게 이겨내어 종사(宗社)를 안정시켜 조종(祖宗)이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여 신민의 치욕을 씻자고 하였다. 이어 적성 시기인 '丙寅九月十日'이 표기되어 있고 발신인인 이윤수 외 14명의 명단이 표기되었고, 주의할 사항을 조목별로 정리하였다. 조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일은 의기를 모아 거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지 말 것, 각 읍에 도유사(都有司)를 뽑고, 유사(有司)의 명첩(名帖)을 먼저 책으로 만들어 보낼 것, 양이의 강화도 침범은 매우 위급한 사안이기 때문에 시일에 늦지 말 것, 종친들이 먼저 효유(曉諭) 하여 나서되, 성씨를 논하지 말고 모두 함께 일에 참여하도록 할 것, 이 통문을 등사하여 속히 여러 읍에 전달하여서 한 읍도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순상(巡相)에게도 이 통문 내용을 직접 전해 거행하여 흥선대원군의 분부를 받들 것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윤수(李潤壽, 1802~1871)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오(致五), 호는 오소(吾巢)이다. 이이박(李以鎛)의 아들이며 전라도 운봉(雲峰)에서 살았다. 병인양요 때 병조 참지로 있으면서 치밀한 작전을 세워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섭정하던 흥선대원군이 '호남 제1 재상'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