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丑三月望 父書 子 辛丑三月望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과거(科擧) 합격 여부를 묻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간찰. 190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과거(科擧) 합격 여부를 묻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편지이다. 소식이 막히고 서로 멀리 떨어져 그리움이 깊어간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또 이승학이 처한 현실을 한탄하며 옛사람들이 공을 세우고 일을 함을 사사로움에 연연하겠느냐며 당시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당시 이광수가 경의문대(經學問對) 시험을 치르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승학은 이에 대해 자세히 물은 내용이 보인다. 아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 이미 지났고 확실한 합격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풍문으로만 듣고 있다고 하였다. 소문으로는 어떤 이는 아들이 과거에 낙방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달 2일로 합격이 미뤄졌다고 말하고, 혹은 이달에 합격 여부가 결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승학은 아들에게 합격 여부는 하늘에 맡기고 양심을 잃지 말고 본원의 자리를 닦으라고 당부하는 등 침착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 세상에서 명리(名利)를 구함은 쉽게 헛된 욕심이 생겨나 갈등을 일으키게 되니 마음을 잘 보존해서 기다려야만 복덕이 있을 것이라고 침착하게 과거 합격 여부를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지금쯤 합격의 당락이 나왔을 것인데 합격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낙방했다고 해도 낙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이전처럼 공부에 힘쓰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어 이승학은 문중 일 등의 관심사 및 여러 가지 일등을 낱낱이 전하여 아들에게 알렸다. 시호(諡號)의 일은 이달에 개좌(開座, 관리들이 모여 사무를 봄)하여 명을 받들었는지 물으면서 이 일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며 근심을 드러냈다. 이승학은 이 일이 결말이 나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시호 문제는 그가 속한 전주이씨 양녕 대군(讓寧大君)과 관련된 인물의 시호를 받는 문제인 듯하다. 또 도시에 여러 가지가 풍파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인지 묻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개화 및 외세의 난입으로 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이어 집안 식구들은 무고하다는 내용, 윤홍(允弘)은 그간에 승중자(承重子)의 상을 당했는데 이달 18일에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 옥과(玉果)의 김명오(金明五)가 편지를 전했는지 아닌지를 묻는 내용, 이달 2일에 우편으로 보낸 편지는 받았는지 묻는 내용, 이번에 서울로 올라간 조우(曺友)에 관한 내용, 성범(聖範)이라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갔는데 낭패를 당하고 비웃음을 받고 있으니 자주 찾아가 보라는 내용, 시리(柿里)에서 편지가 도착했는데 네가 관여한 일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니 이는 인정(人情)상 옳지 않다고 비난한 내용, 하촌(下邨)과 율동(栗洞)의 두 족숙(族叔)이 20일쯤에 길을 나선다는 내용, 성균관(成均館) 학도(學徒) 한 자리를 잃지 말라는 내용, 시호 문제가 연기되면 우선 집에 돌아올 계획이라는 내용, 본관(本官)이 아직 가지 않았으나 우리 문중 일이 뜻대로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전한 내용, 시회(詩會)는 장례 등으로 이달 26일로 연기됐다는 내용, 어암(漁岩)의 김씨(金氏)에게 시집간 딸이 산후 통증이 있어 집에 와있다는 말 등을 두루 전했다. 어암의 김씨에게 시집간 이는 이승학의 누이일 가능성도 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