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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조봉환(曺鳳煥)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24일 曺鳳煥 等 和順郡守 <書押> 1顆(7.2×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62_001 1896년(고종33) 9월에 운곡정사 죄민 조봉환과 강생 장원주·권정진 등이 운곡정사의 호역 면제 건으로 화순군수에게 올린 상서 1896년(고종33) 9월에 운곡정사(雲谷精舍) 죄민(罪民) 조봉환(曺鳳煥)과 강생(講生) 장원주(張源柱)·권정진(權正植) 등이 화순군수(和順郡守)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운곡정사(雲谷精舍)의 호역(戶役)을 면제해주는 일은 예조(禮曺)의 입안(立案)과 수의사또의 제음(題音)과 본읍(本邑)의 입지(立旨)·완문(完文)이 있어서 응당 면제되었는데, 작년에 축호(逐戶)가 신식(新式)이 되고부터는 말이 있어서 정단(呈單)하여 제사를 받았고, 이번 가을에도 정단하여 '탈급해주라'는 제사를 받았는데, 해당 서리가 관령(官令)을 따르지 않는다며 이 점을 통촉하시어 예에 따라 탈급해 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화순군수는 24일에 두민(頭民)에게 해당 동의 장부를 정정하고 탈급해 주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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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福內西面學堂里張起文張東植張▣…▣謹泣血原情于繡衣道閤下伏以疾之至痛必呼其慈母事▣…▣必訴於明司者人情之常而自 閤下奉 命南來執法嚴明聼理公▣無罪不戢無寃不伸而何幸 賁臨於本縣則可謂生等鳴寃之有日故玆敢不避猥越具申▣…▣是白齊生等之五代祖父母與曾祖父母山在於本邑內北面熊谷而定山宜守護者百有餘年四山禁養內無一杯他塚矣去癸亥年分上多村居宋榮國爲名漢偸葬其外祖▣於生之曾祖山二十步之地故自官即爲圖尺督掘矣其後丁亥年分熊谷居曺敬源偸葬其父於同宋榮國曾掘之地是如乎生之亡父累度呈官每承督掘之題敎而上項敬源素以頑㐫狡惡之人恃其挾富閥閱侮蔑殘民恬視官令一不同庭對卞則累度掘移之題敎便爲空言無施是乎旀且有一段奸巧事渠之同里有金哥爲姓者遭其親喪而同敬源指點生之五代祖山階下擲斧之地使之偸葬是遣生等責掘於金哥則憑藉於曺塚責掘於曺哥則憑藉於金塚曺金兩人互相延拖■(玆)〔自〕以爲得妙計是乎所旣掘之地斷案尙在則■(故)〔固〕當掘移之不暇而又况指嗾他人葬共爲蜃〖唇〗齒之勢者極涉無嚴無法而子孫之憤恨愈久而愈深是如乎玆以前呈文狀牒連仰籲於公明按法之下上項曺金兩人捉致 法庭嚴治其偸葬之罪是白遣所謂偸塚即刻掘移更無呼寃事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繡衣道 處分戊午三月 日〈題辭〉依法典公決以給事十六 山在官[馬牌]御史[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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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谷精舍罪民曺鳳煥 化民講生張源柱權正植等 謹齋沐百拜上書恐鑑伏以雲谷精舍頉役事 禮曺立案 繡衣題音 本邑立旨完文前後來歷昭昭 依 例應頉矣至於昨年逐戶新式後 有說而 呈單則 題音內 雲谷精舍所重自別 本洞及該吏相議通變以慕 尊師 以敬 列聖朝 御筆 以鳳萬年可也向事 敎是乎所 依例頉給矣 况今秋幾許戶蠲减之地有說 故向者 呈單則 題內有曰 詳査依古例頉給向事敎是乎所 該吏不遵官令 是豈爲 官令之下道理 緣由更以帖連仰訴爲去乎 伏乞仔細洞燭敎是後 特爲頉給 俾無該吏與本洞相持之地 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 丙申九月日行官[署押](題辭)該洞裁正 頉給向事卄四日 頭民[官印] 1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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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조병규(曺秉圭) 등 보장(報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曺秉圭 等 和順郡守 行和順使<書押> *和順郡印(4.1×4.1)*和順郡守之章(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고종42) 11월에 유생 조병규 등 23인이 화순군수에게 계전을 받아내 줄 것을 청원한 보장 1905년(고종42) 11월에 유생(儒生) 조병규(曺秉圭) 등 23인이 화순군수(和順郡守)에게 올린 보장(報狀)이다. 지역의 명망 있는 스승인 회계공(晦溪公) 조병만(曺秉萬)의 남긴 글들을 사라지게 할 수 없어서 간역을 시작하였다는 것, 일을 크고 힘은 미력하여 이뤄내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문생(門生) 중에 계전(契錢)을 범용(犯用)한 자가 몇 사람 있다는 것, 그들에게 개인적인 힘으로 돈을 받아내기가 어려우니 관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후록에 적은 목록을 받아내 주어 일을 완수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후록에는 계전을 범용한 2인의 이름과 약 259냥에 이르는 금액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11월 17일에 독촉하여 받아내기 위하여 모두 잡아들이라고 차사(差使)에게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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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生等爲稟報事 伏以褒贒尙德 朝家之盛典 尊師懋功 士林之公議也 惟我 函丈晦溪公諱秉萬 才器卓犖 文章宏博 爲一省士林之推崇者久矣 去乙亥年 以布依叫 閽 至有四判堂及大臣之聯箚伸救 至有島配之 恩命 絶地風霜八經年而 蒙宥 自後文益愽而義益明矣 所著遺集十餘卷 可以瞭人耳目開陳後生矣 天不假人 安仰之痛 倘復如何哉 函丈遺蹟 終不可泯黙 故方設榟役 事鉅力綿 猝難就緖 而所謂門生中契錢犯用者數人 不顧師生間義理 專事冒沒 難以私力捧出 故玆敢齊聲仰籲 伏乞 參商敎是後 依後錄一一捉致督捧推給 以助不逮 俾完大事之地 千萬幸甚 伏惟藻鑑和順令監 閣下 處分 乙巳十一月 日 儒生等 曺秉圭 曺秉俶 李在九 曺允煥 徐在瑛 曺鼎煥 曺秉會 朴相來 曺中煥 文載弘 曺錫柱 禹宅庸孫永模 鄭淑鉉 具敎文 權春植 朴一柄 高南柱 張源柱 曺基周 等 韓奎東 曺秉膺 崔平宇後錄瑞巖張炳彩 錢壹百三十壹兩二戔三分加林曺英煥 錢壹百二十四兩四戔三分行和順官[和順郡守之章](題辭)慕師之道 義當捐助 還以契錢犯用之致 至登呈單 究其■(士)士習甚痛駭 督捧次 幷卽捉待事十一月十七日差使[和順郡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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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민영기(閔泳琪) 품목(稟目)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閔泳琪 海南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1년 2월 27일에 마포면 집강 민영기가 해남현감에게 올린 품목의 초본 1871년 2월 27일에 마포면 집강 민영기가 해남현감에게 올린 품목의 초본이다. 산이면(山二面) 신농(新農)에 사는 강유갑(姜有甲)은 본래 마병(馬兵) 담당군인데 이도인(李道仁)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군적을 마포면 산막리(山幕里)에 옮겼고, 이 때문에 산막리에 거주하는 이동흠(李東欽, 1829~?)이 군역과 관련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동흠이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관에 정소하였고 관의 처분에 따라 자세히 탐문해 보니 강유갑이 이도인이라는 허명(虛名)을 가지고 간사한 꾀를 낸 것이었다. 그러므로 강유갑을 벌하고 그의 소속을 신농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품목은 유향소 및 서원과 향교의 임원이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청원하거나 자문을 구할 때 작성하던 문서이다. 일반적으로 향촌의 하급 관원이 수령에게 보고할 때, 혹은 수령이 관찰사 등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는 첩정(牒呈)이라는 문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유향소·서원·향교의 구성원들은 법전에 규정된 정규 관원이 아니었기에 원칙적으로 첩정을 작성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품목이라는 문서의 양식을 빌려 수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짐작된다. 품목은 서원이나 향교의 제반 문제와 관련하여 수령에게 요청하여 도움을 얻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므로 백성이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해결해야 할 분쟁이 있거나 여러 사안으로 청원할 때 올리는 소지와 양식이 비슷하다. 품목에는 서원과 향교의 운영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어 조선후기 서원과 향교의 운영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된다. 또한 유향소에서는 지방민의 행정과 관련하여 해당 백성으로부터 청원을 받으면 이를 수령에게 보고하여 처분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때에 품목을 사용하였다.1)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문서 입문 2?, 민속원, 2021, 435~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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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장윤문(張允文)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允文 同福縣監 官[着押]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25_001 1828년 1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윤문이 동복현감에게 봄이 되었으니 자신의 선산에 조경원이 투장한 묘를 파 내게 할 것을 청원한 소지 1828년(순조 28) 1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윤문(張允文)이 동복현감에게 봄이 되었으니 자신의 선산에 조경원(曺敬源)이 투장(偸葬)한 묘를 파 가게 할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윤문이 소지를 올린 이유는 지난 1826년 11월에 자신이 산송(山訟)으로 내북면(內北面) 웅곡(熊谷)에 살고 있는 조경원과 송사(訟事)하였는데 현령의 판결문에 '똑같이 양반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장 씨 양반이 3대 대대로 묘를 쓴 땅에 느닷없이 장사를 지냈으니 매우 교활하고 악랄하다. 게다가 금양(禁養)을 뺏고자 하니 엄하게 형문하여 징계해야 하지만 삼령오신(三令五申)의 도리에 있어 우선 앞으로의 상황을 보고 봄이 화창한 때를 기다려 속히 파서 옮기도록 하라'는 수령의 공정한 처분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감히 다시 번거롭게 소송하지 못하고 우선 해가 바뀌기를 기다렸는데 지금 봄이 시작되었으므로 앞 1826년의 소지를 점련하여 청원한 것이다. 장윤문은 이 소송에서 '조경원을 법정으로 잡아와서 그가 투장한 묘를 기한을 정해 파 옮겨 자신이 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1월 26일에 '봄이 화창해진 뒤에 투총(偸塚)을 파 갈 것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소송하지 말 것'이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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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居化民張允文右謹言所志事段去年至月良中民以山訟事與內北靣熊谷居曺敬源就訟是乎則城主題音內均有班名而居然入葬於張班三代世葬之地極爲狡惡而又欲奪禁養尤爲無去所當嚴刑懲勵而其在三令之道姑觀來頭其待春和之時斯速掘移俾無刑憲之地云云是乎所 城主執公處分之下民等不敢更爲煩訴而姑待歲換矣今方同春故前所志貼連仰訴伏乞參商敎是後同曺敬源捉致法庭渠矣偸葬葬塚刻期掘移俾此殘民更無呼寃之地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正月 日〈題辭〉春和後■(從)〔事〕當掘去勿復煩訴事卄六日[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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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장윤문(張允文)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允文 同福縣監 官[着押] 4顆(6.4×6.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25_001 1828년 1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윤문이 동복현감에게 2월이 다가오므로 지금 자신의 선산에 조경원이 투장한 묘를 파 내게 할 것을 청원한 소지 1828년(순조 28) 1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윤문(張允文)이 동복현감에게 2월이 다가오므로 지금 자신의 선산에 조경원(曺敬源)이 투장(偸葬)한 묘를 파 옮길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윤문이 자신의 선산 금양(先山禁養) 안의 산송(山訟)에 관한 일로 승소(勝訴)한 뒤에 다시 1월 초에 기한을 정해 파서 옮길 것을 청원하였는데 '봄이 화창해진 뒤에 투총(偸塚)을 파 갈 것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소송하지 말라'는 뎨김이 내려졌다. 장윤문은 심정이 비록 절박하더라도 이러한 판결문이 내려진 상황에서 지금 다시 이렇게 송사(訟事)하게 되어 매우 황송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논밭을 갈아야 할 2월이 점점 가까워졌으므로 화창한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으니 이때에 소송한 산소에서 투총(偸塚)을 파 옮기지 않는다면 자신과 조경원 모두 농사철이 점점 급해질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의 기일 또한 가까워진다. 과거볼 때와 농사 지을 때에 다시 산송으로 법정에 서는 일은 양쪽 모두 편한 방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감히 하소연하니 자신의 사정을 잘 살펴서 즉각 조경원의 투총을 파 옮기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1월 28일 장윤문에게 '이미 바친 다짐이 있으니 비록 4, 5십 보를 옮기더라도 묘를 옮겨야 하는데 아직도 옮길 뜻이 없으니 이는 참으로 매우 놀랍다. 얼음이 녹는 때를 기다렸다가 바로 묘를 옮기고 와서 보고하라는 뜻을 피고 조경원에게 분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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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浦面執綱稟目伏以 山二面新農所居姜有甲爲名漢 素來馬兵擔當之軍以虛名李道仁 暗自移錄於本面山幕里 而山幕卽李東欽一家座里名 而李東欽不勝憤嘆緣由仰訴 則題音內 査實報來向事 故詳探所由 則李道仁虛名作奸 而姜有甲本軍匿名之罪 別段徵治 移於新農本在處 緣由敢稟辛未二月二十七日 執綱閔泳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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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예조(禮曹) 정려입안(旌閭立案)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禮曹 朴東翊 判書<押> 禮曹之印 13顆(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 5월에 예조에서 고(故) 유학 박동익(朴東翊)과 박예빈(朴禮彬)을 정려(旌閭)하기 위해 발급한 입안. 1875년 5월에 예조에서 고(故) 박동익(朴東翊)과 박예빈(朴禮彬)을 정려(旌閭)하기 위해 발급한 입안이다. 입안 속에는 정려가 시행되기까지의 과정이 인용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동익과 박예빈은 증조부와 증손자의 관계로 모두 흥양(興陽) 지역에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들의 효행을 조정에 알리고 정려받기 위하여 1874년 8월 전라도 유학 신희모(申曦模) 등이 어가 앞에서 상언(上言)을 올렸고, 예조에서는 상언의 내용을 살펴본 뒤 1875년 5월 27일에 박동익과 박예빈의 정려를 요청하는 계목(啓目)을 작성하였다. 이 계목은 같은 날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원일(李源逸)에 의해 국왕에게 보고되었고 아뢴 대로 시행하라는 판부(判付)를 받았다. 국왕의 승인이 내려졌으므로 예조에서는 박동익과 박예빈의 정문(旌門)을 건설하되, 건설에 드는 재목과 장인은 지역 관아에서 담당하며 박씨 자손들의 잡역을 면제하라는 내용의 입안을 작성하였다. 입안은 민원인의 요청에 의해 관청에서 어떠한 사실을 확인하고 증빙해주는 문서이다. 주로 토지와 노비의 매매 및 양도, 즉 소유재산의 변동을 인증받기 위한 경우[斜給]가 많았지만 이밖에도 소송에서 승소하였을때[決訟], 양자 입적[立後·繼後], 신분의 변동[從良] 등 무엇을 증빙받고자 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존재했다. 입안을 발급하는 관청에서는 문서의 공증력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였다. 첫 번째는 입안을 발급하기까지의 과정, 즉 청원을 접수한 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검토한 내용을 입안에 모두 기재하는 것이다. 이때 사안과 관련이 있는 문서들을 입안에 점련(粘連)하기도 하였다. 두 번째는 문서의 마지막 부분에 담당 관원의 관직명을 적고 아래에 서명한 뒤 관인을 날인하여 문서의 위조를 방지하였다. 마지막으로 입안을 발급할 때 2건을 작성하여 1건은 신청자에게 주고 1건은 관에 보관하여 훗날 증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입안은 법적 효력을 지닌 공증서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나, 점차 발급 절차의 번거로움과 발급 수수료의 과징 등으로 인하여 그 기능이 쇠퇴하였다. 입지(立旨)는 이러한 입안의 자리를 대체한 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해당 사실의 공증을 신청한 청원자의 소지(所志)에 해당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내용의 처결 표시와 관인(官印) 날인을 통해 입안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입지의 경우 입안에 비해 그 효력이 한시적이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1)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문서 입문 2?, 민속원, 2021, 473~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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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居化民張允文右謹言所志事段民與內北靣熊谷居曺敬原累次山訟是乎所 城主以其元元之訟理四五次嚴題待氷觧掘去曺塚之意 分付是白去乙同曺敬原〖源〗素以狡頑之民不有 官令而蔑視民之單弱之狀方此春和頓無遵 令移塚之意彼何人斯居於 治下而拒逆 官題違粤訟理而如許頑倨是喩民不勝憤欝玆敢緣由仰訴伏乞參商敎是後同曺敬原〖源〗捉致法庭治其拒逆 官題之罪而限掘移嚴囚俾此殘民保存先壠禁養之地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三月 日〈題辭〉曺敬源亦民也以民而不遵官令乎十日內移葬是矣若又如前頑拒則斷當自官嚴刑督掘事 十一日[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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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장윤문(張允文) 소지(所志) 4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允文 同福縣監 官[着押] 3顆(6.5×6.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25_001 1828년 12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윤문이 동복현감에게 관령을 피하고 있는 조경원의 죄를 징계하고, 투총을 독굴해줄 것을 청원한 소지 1828년(순조 28) 12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윤문(張允文)이 동복현감에게 관령(官令)을 피하고 있는 조경원(曺敬源)의 죄를 징계하고, 투총(偸塚)을 독굴(督掘)해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윤문이 12월 1일에 산송(山訟)으로 고소하니 동복현감이 뎨김에 '가을에 다짐을 바쳤는데 겨울에도 투총을 파 옮기지 않았으니 조 가(曺哥)의 소행을 매우 엄하게 징계한 다음 독굴하기 위해 잡아 올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뎨김을 바로 조경원 집에 알렸더니 그의 당숙 조한현(曺漢鉉)이 '당질이 외출했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 핑계를 대며 관령을 도피하였다. 장윤문은 입을 다물고 속임을 당할 수는 없어서 동복현감에게 '참작하신 뒤에 조경원을 발패(發牌)하여 잡아와서 관령을 꾀를 내어 피한 죄를 엄히 징계하고, 소송한 투총을 독굴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12월 11일 장윤문에게 '어디로 도망가 있는지, 이 고을에 있다는 것을 아니 즉시 잡아 오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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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3년 구상봉(具相鳳)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具相鳳 綾州牧使 使<押> □…□(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3년(계묘년) 11월에 대곡리 백성들이 연명하여 배이인 형제의 효행에 대해 포상을 내리게끔 조치해 달라고 능주목사에게 요청하는 상서. 1723년(계묘년) 11월에 綾州 大谷面 大谷里에 사는 具相鳳, 金始五, 洪彦宗 등 20명이 연명하여 牧使에게 올린 上書이다. 상서를 올려 요청하는 사항은 西一面 大谷里에 사는 裵以仁 네 형제가 효성이 지극하니 이들이 褒賞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상서 본문 서두에서 먼저 국가가 부모에게 효도한 백성을 포상하는 이유에 대하여, "누가 부모가 없어서 부모에게 효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예로부터 거의 없는 일입니다.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은 진실로 하늘과 감응하는 天性이고 사람이 행하는 도리의 大綱입니다. 이를 표창하여 상을 주고 아름다움을 정려하는 일은 국가가 항상 해오던 규정이고, 이를 뭇 백성에게 베풂으로써 맑은 교화가 행하게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하지만 특별히 포상받아야 하는 지극한 효자가 表揚하는 은전을 받지 못한다면, 士林의 公議가 애석해할 뿐만 아니라 실로 태평성대의 흠이 되는 일입니다."라고 하며 효도로 포상받을 사람이 빠지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그 포상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효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본 里의 士人인 裵以仁은 太師 武烈公, 太師 密直公, 개국 원훈 貞節公의 후손이며, 효행으로 추천받아 참봉을 지낸 裵允德의 5세손입니다. 그의 어머니 光山 金氏는 임진왜란 공신인 忠壯公의 후손이고, 경신년생으로 올해 향년이 104세입니다. 말과 정신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채로 부여된 수명을 오래도록 보전하며 게다가 몸에 탈도 없으니, 예부터 희귀한 일이라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어찌 고금의 매우 드문 어르신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들인 배이인은 나이가 9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안은 비록 가난하지만 그 동생인 裵以發, 裵以赫, 裵以斗와 더불어 정성을 다해 봉양하며, 어렸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昏定晨省의 예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아침 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바치기를 입맛에 꼭 맞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양과 곡진한 용모와 표정으로 그 도리는 끝까지 다했습니다. 그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자 온갖 방도를 다함이 실로 王延의 色養1)1) 왕연(王延, ?~318)의 색양(色養) : 왕연은 중국 前趙 시대의 효자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얼굴 빛을 헤아려 지극히 모셨고, 겨울철에 계모가 잉어를 먹고 싶어하자, 얼음을 깨고 잡아다 바쳤다는 일화가 있다. 이이가 지은 『擊蒙要訣』에 "왕연이 추운 겨울에 몸에 걸칠 옷도 없으면서, 어버이께 맛있는 음식을 극진히 마련해 드렸음을 늘 생각하라.[每念王延 隆冬盛寒 體無全衣 而親極滋味]"라는 구절이 있다. 보다 빼어났고, 효성은 老萊子가 병아리를 가지고 노는 것2)2) 노자(老子)의 농추(弄雛) : 노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老萊子를 가리키는데, 『小學』에 그의 효행이 실려 있다. 그는 나이 70살이 되어서도 오색 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리고, 일부러 마루에서 넘어저 아이처럼 울기도 하고 부모님 옆에서 병아리를 가지고 놀면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다. 보다 더했습니다. 김씨가 104세를 향년하고 있는 것은 천성이고 인성에 당연함이어서, 효성은 하늘에 감응하고 효성은 誠에 감응하였습니다. 그 모친의 장수가 끝이 없는 것은 전부 그 자식들이 효성으로 봉양함에 말미암았습니다. 이 어찌 고금에 매우 드물게 듣는 효성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裵以仁 형제의 효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저희는 이웃에 같이 살면서 이미 오래도록 듣고 보면서 흠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기에, 매번 대궐에 진달하려 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4명의 효성과 우애에 대해 임금께 보고함으로써 褒賞을 받은 은전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처결을 25일에 내리길, "듣자 하니 심히 가상하다."라고 하였다. 이는 단지 가상하다고만 처결을 내리고, 상부에 보고하는 조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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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 박도한(朴道漢)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朴道漢 全羅道觀察使 巡使<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30년(경술년) 9월에 능주 고을의 백성들이 연명하여 배이인과 남평 문씨의 효행이 포상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관찰사에게 요청한 상서. 1730년(경술년) 9월에 朴道漢, 尹再衡, 金遇喆 등 25명이 연명하여 전라감영에 올린 上書이다. 상서를 올려 요청하는 사항은 裵以仁과 그의 弟嫂인 南平文氏의 효성이 지극하니 이들이 褒賞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상서 본문 서두에서 먼저 국가가 효도에 모범을 보인 백성을 포상하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孝는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이니 萬代 동안 사그라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반드시 이에 감응하여 얼음 물고기와 눈 속 죽순의 징험이 있는 것이고, 국가는 반드시 이를 포상하여 旌閭하고 贈職하는 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한집안에서 두 효행의 모범이 제수씨와 아제비가 함께 나와서 그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그 포상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효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한 집안의 두 효행이란, 곧 고을의 士人인 裵以仁과 그 弟嫂를 말합니다. 배이인은 太師 武烈公 裵玄慶과 密直公 裵廷芝 및 개국 원훈 貞節公 裵克廉의 후손이며, 효행으로 추천받아 참봉을 지낸 裵允德의 5세손입니다. 그리고 열녀로서 旌閭를 받은 金氏는 그의 고조모이니, 그 집안에서 孝烈은 역시 대대로 전해지는 유풍입니다. 하지만 배이인의 집은 심히 가난했습니다. 이에 그 제수씨 文氏와 함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품을 팔아 쌀을 지고 나름으로써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옷을 온전히 갖추어 입지 못하면서도 부모님께는 좋은 음식이 끊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향년 84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향년 105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고을의 이웃은 모두 그 아들과 며느리의 지극한 효도를 칭송하며 부모의 장수는 이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의 병이 심해져서 의원이 말하길 산삼을 써볼만 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배이인은 동생 裵以潑과 함께 산삼을 구하기 위해 깊은 산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수일이 되어도 끝내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울면서 돌아오는 길에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늙은 산삼이 보였습니다. 이에 바위 아래로 숙여 캐다가 다려서 드시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묵은 병이 모두 나을 수 있었고 피부와 살결이 풍성해졌습니다. 이는 실로 하늘이 감응한 결과이니 얼음 물고기와 눈 속 죽순을 얻은 미담과 견줄만합니다. 그 弟嫂인 文氏는 남평 문씨인데, 江城君 三憂堂1)1) 江城君 三憂堂 : 문익점(文益漸 1329~1398)을 가리킨다. 문익점은 목화씨를 고려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왜구가 창궐하는 와중에 피난을 가지 않고 홀로 부모님 산소를 지켜 왜구를 감동시킨 일화가 알려져 있다. 문익점은 이로 인해 정려를 받았고 그가 살던 마을인 산청의 효자리에는 문익점 효자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의 후예입니다. 본성이 慈孝하여 몸소 나물을 캐고 물을 길어 시부모를 봉양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편안하게 해드릴 물건과 입맛에 맞는 음식을 힘써 구하여 반드시 바쳤으니, 이로 인해 시어머니가 105살의 나이에 이도록 병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의 병이 심해 百味에 입 맛을 모두 잃어버려서 음식 봉양이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야생 메추라기가 부엌에 날아 들어왔고, 문씨가 이를 구워다가 드림으로서 병중에 미음을 먹을 생각이 나게 해드렸습니다. 이 어찌 하늘이 감응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실로 崔山南의 집안에서 시부모에게 젖을 먹인 효성2)2) 崔山南 : 『小學』 善行篇에 최산남의 증조모인 長孫夫人이 시어머니에게 젖을 먹인 일화가 실려 있다. 과 맞먹습니다. 이 때문에 문씨의 효성이 이웃 마을에 알려져 아이들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裵以仁과 그의 동생인 裵以潑의 처 文氏 효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저희는 같은 고을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기에 공경하고 칭찬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이들이 褒賞을 받은 은전을 입을 수 있도록 임금께 轉報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관찰사는 처결을 4일에 내리길, "들으니 극히 가상하다. 하지만 장계를 올려 보고하는 것은 체면이 무거우니 갑자기 명령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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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년 박상요(朴相堯)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朴相堯 綾州牧使 使<押> □…□ 3顆(6.5×6.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4년(갑진년) 12월에 능주 고을의 백성들이 연명하여 배이인과 남평 문씨의 효행이 포상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수령에게 요청한 상서. 1724년(갑진년) 12월에 朴相堯, 文永伯, 李應奎 등 31명이 연명하여 綾州牧使에게 올린 上書이다. 상서를 올려 요청하는 사항은 裵以仁과 그의 弟嫂인 南平文氏의 효성이 지극하니 이들이 褒賞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상서 본문 서두에서 먼저 지방 수령이 효도한 백성을 포상하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董夫子의 뛰어난 행실은 刺史가 천거해 주지 않음으로써 天子가 그 명성을 듣지 못하였고, 東海의 孝婦의 극절한 절개는 于公이 보고하지 않아 太守는 그 실상을 알기 어려웠습니다.1)1) 東海孝婦 : 『說苑』 제5편 貴德에 東海郡에 사는 孝婦의 일화가 실려 있다. 그 효부는 과부가 되어서도 재가하라는 시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성심껏 봉양하였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이것이미안하여 목을 매고 죽었다. 이에 시누이가 송사를 하였는데, 太守의 문초를 이기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하고 사형을 받았다. 고을 獄吏인 于公은 이를 힘써 변명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벼슬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또 정숙함을 되짚어 아름다움을 포상함은 국가의 밝은 법이니, 숨어 있는 바를 밝히고 버려진 바를 드러냄은 곧 합하의 인자한 政事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그 포상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효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본 고을의 士人인 裵以仁은 太師 密直公 裵廷芝(1259~1322) 후손이며, 효행으로 추천받아 참봉을 지낸 裵允德의 5세손입니다. 그리고 忠과 孝烈이 면면히 전해지고 있는 집안입니다. 그의 어머니 光山 金氏는 임진왜란 공신인 忠壯公의 후손이고, 경신년생으로 올해 향년이 105세입니다. 말과 정신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으니 역시 효도로 봉양한 영향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들인 배이인은 나이가 91인데 그 부모를 色養하고 있으니 이 어찌 고금에 드문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임오년 한겨울에 그의 어머니가 불행히도 학질에 걸렸는데, 늘 산삼을 원하면서 그러면 내 병이 잘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생 裵以潑과 더불어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과 서리를 밟으며 찾아다녔으나, 끝내 캐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면서, '내가 정성이 있었으면 하늘이 어찌 감응함이 없겠는가.'라고 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오는 길에 다행히 산삼 한 뿌리를 찾아내었고, 급히 캐서 집으로 돌아와 한 차례 다려 드렸더니, 그 질병이 고쳐졌습니다. 또 경자년 봄에는 癘疫이 막 치성하여 온 집안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의 동생 裵以潑의 처인 文氏은 또한 시어머니를 효도로 봉양하였지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메추라기가 부엌 아궁이에 날아 들어와서, 이를 반찬으로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어찌 하늘이 감응한 정성이 아니겠습니까. 한집안 안에서 효자와 효부가 함께 나왔으니, 누가 감히 흠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裵以仁과 그의 동생인 裵以潑의 처 文氏 효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저희는 같은 고을에 살면서 이미 깊이 심복하고 있습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이들이 褒賞을 받은 은전을 입을 수 있도록 임금께 轉報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처결을 9일에 내리길, "한집안 안에도 효자와 효부가 있으니 더욱 극히 가상하다. 轉報에는 시기가 있으니 물러나 公議를 기다림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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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鄕多士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恭惟我聖朝承周宋文名之治 搜賢於道德之門 尙孔朱彰德之敎 造士於性理之學 程式薦進之路 恐有野遺勤勉揚善之方 開示言路 則徛歟盛矣我聖朝出治之具也 凡冠儒服儒者 敢不揚善以承其至旨哉 大抵本州士人鄭義林 天賦高明 係出光山 故判書公永思堂諱演之十一世孫也 年未冠多稽聖賢之規範 實踐仁義之閫域 其學素有源矣 負笈於石塘鄭先生之門 七書孝經戴經諸賢之書 博通問難 先生無不稱賞 執贄於蘆沙奇先生之門 冠婚喪祭曲禮威儀之篇識發蘊奧 皆致精微 絶意毁譽 名利之場 潛心於格致誠正之工 存養省察 不爲物累 所移造詣成德 惟以扶敎自任 故全齋任先生 世安堂金先生 勉齋崔先生 屢有書問敬愛之蔚然 爲南服儒林之矜式 道內文章俊異之士 從遊而莫之先也 可知其師門之首弟也 境內受業漸就之士尊慕 而粹然成德 則亦可謂斯文之導率也 以若良知蘊德之士泯沒無聞於世 則豈不爲聖朝之欠典乎 豈無士論之抑鬱乎 孔子曰 賢者爲國之器用 朱子曰 薦賢爲政之先務 何幸城主閤下承流宣化 下車玆土 禮周公之愛士好吳公之薦誼當 此歲貢賢良之際 撫實行報營司以彰有德 則勵風俗扶世敎 以爲何如哉 民等居同一鄕 欽嘆其才行 故玆敢齊聲仰達 伏俟轉 報營司 特蒙廷楊 則斯文幸甚 世敎幸甚 伏惟藻鑑丁亥十月 日 化民 金鍾常 李致鎬 朴其繪 梁基煥 李贄鎬 文極煥 梁會一 魯錫采 金時豊 吳在鴻 閔致魯 朴海鴻 梁益煥 金鍾浩 尹滋郁 閔泳達 梁相輔 李振燁 文泳祚 安檃 具桂勳 鄭在勳 文弼休 安澈煥 朴麟鎭 洪珽謀 鄭在淑 閔啓浩 金致錫 李之茂 宋錘 金鍾植 文鳳煥 鄭瑛錫 梁時煥 等(題辭)觀此狀內 此時如此文學 非但一邑之衆論 卽當修報是矣 論報之節 待其朝飭(背面)然後 隨學隨擧 已有國例 隨其抄入時 當報營門二十六日使[着押][綾州牧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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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박정근(朴禎根)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朴禎根 全羅都觀察使 都使<押> □…□ 3顆(9.5×9.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8년 2월에 박정근 등 29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 1888년 2월에 박정근 등 29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이다. 능주 송석면(松石面)에 사는 정의림(鄭義林)은 판서공(判書公) 정연(鄭演)의 11세손이다. 이들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다. 이들이 능주목에 청원한 것이 셀 수 없이 많고 능주목에서 전라감영에 정의묵에 대한 사안을 보고한 것이 다섯 번, 전라감영에서 조정에 보고한 것이 두 번이 넘지만 아직까지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박정근 등의 상서에 대하여 전라감영에서는 학행이 이처럼 탁월하니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냐마는 국왕에게 보고하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하므로 갑자기 가볍게 의논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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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儒生金鍾常李致鎬梁其煥 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 伏以文學德行賢能才藝 人事之所當爲 似不當褒而勸之 然民稟不同 人心有蔽 則不可不嘗之勸之 後人有所向賢才蔚興 國以致治矣 固國家有擧賢之詔刺史守相 有薦賢之政 因以成規也 但今之文學賢士 不及於古 而文學賢士之報 猥多於古 其間固不無虛實之可言 在上君子 當察其虛實 公私之分措 其所之擧 其所擧而薦進 則虛僞自戢 實行自著 薦不失當矣 大抵本州士人鄭義林 系出光山古觀察使諱麟晋十八世孫 弘文應敎諱熊十三世孫 戶曹判書諱演十一世孫 完山縣監諱斆七世孫也 素有卓異之行 受學於蘆沙奇先生之門 事親極其孝敬 鄕里稱賞 親沒哭泣哀毁 幾至滅性 而至於樵者不歌 商者撤市 居廬三年 其至行至德 傳爲里巷誦說者多矣 及其從學 四子六經性理群書 貫通浹洽 而深得蘆沙之宗旨樣轍 逍遙林邱 不以貪窮動心易操 惟以義理 自娛自適所講者 孔顔之道 程朱之書 而於天人性命之原 禮義儀則之節 博洽貫通 遠近學者 逐日踵門 問難萬變 酬答如洪鍾之應響 賢愚不齊 敎育如化工之無遺 此非特今日南服之矜式 名聲大著於畿湖嶺海之間 在前石塘鄭先生 世安堂金先生 全齋任先生 相與講論 在今淵齋宋先生 勉庵崔先生 仁山蘇先生 重庵金先生通書相講 而惟朝廷不聞名聲 鄕報道報 及前等城主之薦報頻仍 尙未蒙褒揚之典 其爲士林之抑鬱何如哉 伏願閤下 特採鄭義林之文學實行 薦進朝堂 以蒙褒典 則非特勵風敎勸後學 其爲國家之器用何如哉 生等不避猥越 摭實仰稟爲去乎 伏俟處分 千萬顒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 戊子三月 日 儒生 金鍾常 李致鎬 朴基繪 梁其煥 李贄鎬 文極煥 梁會一 金時豊 鄭在淑 魯錫采 閔致魯 朴海鴻 安澈煥 文永祚 鄭在勳 李文洙 尹滋郁 吳秉祚 安澤煥 金鍾湖 閔啓鎬 崔相翊 文泰煥 朴璟煥 宋錘 洪珽謀 梁在鎬 朴在源 金源錫 安檃 李章茂 李相鎬 具桂勳 金鍾龍 閔泳東 梁益煥 鄭英錫 吳在鴻 等(題辭)若此道義之學非徒一省之華亦是邦國任(背面)道之器 孰不起欽 於此如有獎美之梯 當存念向事十八日都巡使[着押][全羅道觀察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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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양회락(梁會洛)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梁會洛 全羅都觀察使 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8년 4월에 양회락 등 38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 1888년 4월에 양회락 등 38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양회락 등 능주의 유생들은 1885년부터 지난 1888년 3월까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지만, 여전히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김종상 등의 상서에 대하여 능주목에서는 마땅히 전라감영에 보고하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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