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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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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26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4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十五年二月八日 潭陽郡大德面會計員 金永龜 潭陽郡 昌平面 長華里 李承鶴宗弟納 十五年二月八日 金永龜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李彦秀 2顆(1.0×1.0)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에 이승학이 담양군 대덕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6년 2월 8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종재(宗才)의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대덕면(大德面) 회계원(會計員) 김영구(金永龜)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5년도 제2기 지세 11원(圓) 96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3원 22전, 지세할(地稅割) 5원 50전, 지세부가금 3원 58전으로 총 24원 26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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虞龍兒 依依在眼念念不忘忍哀治具送爾歸葬盈尺之墳足安爾魄仰依先靈有若顧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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奠舜兒 爾去何忙爾叔何催天道無徵我心如摧略具飯餠以酹汝魄與叔共享倘如平昔彭殤等耳脩短何關我亦從逝與汝同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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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공명첩(空名帖)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공명첩 光緖二十年四月日 光緖二十年四月日 高宗 施命之寶(10.5×10.2)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孺人을 貞夫人으로 추증한다는 내용으로 발급된 空名帖. *상태: 증직을 받은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음 *左傍書: 嘉善大夫兵曹參判依法典司憲府監察 祖妣 妻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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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弟奉今初吉淵洞去書卽到否栢洞族叔繼卽下去則諸般此中事伏聞之矣春又晩鄕思尤自不禁也卽日慈候無損省狀安過諸節俱無故耶惠需憧憧舍兄旅節依前而梁奇兩兄尙今同處可叔氏亦安耳永珍日前入來卽見而卜軍尙不來到故無傳書而今明間入到云矣永珍處所付條貳首云卽覓而果如是耶亦爲害也換錢事未知卽尋於諸處耶過期不來南望苦待使人難堪客況甚苦其間發程在道耶尙未發耶大二首自此區處而三者無欠則亦自此區劃計而每鄭氏邊爲言而無一毫私情甚是薄俗此事究竟後卽爲下去過夏于家爲料矣今番出脚都無好況不利奈何龍國兄下去云故付此數字傳于龍臺則卽抵云故忙草如是何日入抵耶不拕長辛卯三月卄六日舍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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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五月卄日 舍兄 寄舍弟 辛卯五月卄日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안부와 과거를 준비하는 서울의 생활에 대해 전한 내용의 간찰. 1891년 5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보낸 간찰이다. 동생은 이승학이 서울에 있는 동안 집안일을 맡고 있었던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를 지칭한 듯하다. 이승학은 편지 머리에서 편지의 전달 여부를 전했다. 광주(光州)의 인편에 편지를 보냈는데 담양(潭陽) 백동(栢洞)의 족숙(族叔)으로 마침 편지가 도착했다며 기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아들 광수(光秀)의 공부를 점검했다. 편지는 이승학의 서울살이로 이어진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며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보내는 생활과 과거 날짜 등을 자세히 전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또 편지에 정형(鄭兄)이나 김희안(金喜晏) 등 이승학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승학이 동생에게 자세한 본인의 상황을 알려 주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이승학 형제간의 깊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 남은 얘기는 별지(別紙)에 썼다고 했는데, 본 편지에서도 제법 길게 얘기했는데도 또 자세히 얘기했다는 점에서 이승학이 집안일을 상세히 단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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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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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63년 기계상(奇繼商)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羅州儒生進士奇繼商 等 135名 巡相閤下 [1863] 奇繼商 巡相閤下 巡使[着押] □…□ 5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 유생 기계상(奇繼商) 등 135명이 순사또(巡相)에게 이지득(李止得)의 충절을 표창해 주길 청하는 상서(上書). 나주 유생 기계상(奇繼商, 1710~?) 등 135명이 순사또(巡相)에게 이지득(李止得)의 충절 행적에 대한 표창을 청하며 올린 상서(上書)이다. 기계상 등 나주 유생들은 새로 부임한 순사또께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절한 나주 사복(司僕) 이지득(李止得)의 의병활동 사실을 등을 서술하고, 여기에 의정부(議政府) 관문(關文)과 의곡자문(義穀尺文)을 덧붙여 다시 올리니 자세히 살펴보시고 임금께 알리어 수백 년 동안 쌓인 억울함을 펼 수 있도록 해달라며 요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요청에 순사또(巡相)는 효열장계(孝烈狀啓)를 지금 이미 봉진(封進)하였으니 기다리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 외에도 이지득의 충절 표창과 관련한 문서로는 1781년과 1863년에 올린 상서가 있다. 이지득(李止得, 1555~1594)의 자는 덕보(德甫), 본관은 함평, 함풍군 극명(克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유회(李惟誨)이다.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 별천(別薦)으로 겸사복(兼司僕) 내승(內乘)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량을 모아 행재소로 가서 남으로 내려오기를 청하고 돌아왔다. 1594년(선조 27)에 사재를 털어 군량미로 공급하였고, 장경홍(張景弘)ㆍ장경남(張景男) 형제와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흥양포(興陽浦)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892년(고종 29)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리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현재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마을에 이지득의 정려각인 포충각(褒忠閣)이 있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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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寄兒書欲作家書意萬重古人先知否數旬來大聲免何奇室與林叔俱蘇耶更無繼痛否父在道以是爲慮而已路中事同行甚多無事抵達而自靑陽等地逶路他書必詳矣吾門大事初不出吾料而已與諸公畫宵相確者此也桃台終難挑却入京日齊進相議外若專恃而冷落莫甚至再至三然後庶有解惑之望事若自此解得則甚無事而且不知末梢如何但行中所畏者異日生硬也台來聞則近日有奉專管勑旨云而究其裏面則卽未安之敎也北邨所聞也宗正院卿時始通謁而近封完順君酬酌之隥如前冀想必自桃洞有通矣請見文蹟已有宿諾而不卽尋覓未知何故也然自桃洞上言則吾常上聞云云姑不知裏許也行中之議每多相左甚是可慮且各派人尙無來到果川則數員來修人事而已意其中不無武備細作者人心果難測而桃台指吾爲首魁云云傍人亦有怵之以禍福然吾爲吾事未嘗有所動矣大抵伸雪與否亦云在天果川派聞有家乘分間以此就疑面質則無是云云矣今旬墓祀日則各派必來而常有作定辦斷矣右說皆先見而言也吾行遲逮姑不指的家中事須與汝諸父十分着念勿至狼狽也此中朝夕待食姑無見憂然本自手赤而來些用頗艱且名錢中百餘金按常心來畢境自此區別則此數家中常預備而待之可也見今無可措手苐待水到渠來初無他下北山條妥帖否昌倅終如前執一難必奈何竹田下手否爲先計推過收捧花租勿失時鄭門數次進拜而姑不聞明言見今昨色薰門耳光述在攄以便上書而逢其京主聞其搬移定山果然而今月內爲之云耳沙曲姑不去而日間將爲之計眩甚不一一己亥陽月二日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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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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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0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子至月卄七日 父 庚子至月卄七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편지 전달의 문제를 상세히 알리고 여러 가지 소식 등을 전한 내용의 간찰. 1900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편지 전달의 문제를 상세히 알리고 여러 가지 소식 등을 전한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 상단에는 최근 오고 간 편지를 확인하고 그동안 잘못 전달되거나 위작(僞作) 편지가 왔다는 내용 등을 자세히 적었다. 이달 십 일 사이에 우체국으로 보낸 편지는 받았는지, 근래에는 다른 편지를 쓴 적이 없는지 묻고, 지난번에 네가 그믐쯤에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했다. 또 본군(本郡)의 수리(首吏, 향리의 우두머리) 편에 윤달 8월에 편지를 보냈는데 9월에 보았느냐고 묻고 그 편지 이후 9월에 편지를 보냈는데 부쳤다는 말은 들었으나 답장을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하였다. 이렇듯 편지의 전달이 문제가 계속되자 이승학은 편지 전달자로 보이는 경홍(景弘)을 만나 그 연유를 물어 확인하여 편지가 잘못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알렸다. 소산(小山) 측으로 보낸 편지와 백동(栢洞) 편으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도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서 중간에 다른 곡절이 있었는지 아니면 아들이 잘못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를 확인하면서 믿을 만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게다가 경지(敬之) 편으로 보내온 답장은 봉투가 열린 채 왔고, 월평(月坪)의 김장수(金長水)가 전해준 편지는 위작(僞作)이었다고 탄식했다. 이 편지를 보면 일부는 아들의 필적이 맞으나 다른 사람의 필적이 들어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아들의 부주의함을 탓하였다. 이승학은 아들이 세인(世人)들의 구설을 받고 있지 않은지 걱정하기도 하면서 '아들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가장 잘 안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아들을 다 알 수 있겠느냐며 걱정하는 한편, 인심이 효박(淆薄)하고 변괴(變怪)가 여러 가지로 발생한다고 하며 윤리와 강상(綱常)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기도 했다. 또 연평(延平) 이귀(李貴)와 연양(延陽) 이시백(李時白) 부자(父子)의 예와 같이 서로를 알아주는 부자지간이 되기를 기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간 이승학이 겪은 여러 가지 소식을 전했다. 본관(本官)이 행한 수접례(酬接禮)와 회사례(回謝禮)에서 겪은 일, 남찰(南察)이 갑자기 떠나 작별하지 못했다는 내용, 새로 부임한 관찰사(觀察使)가 그믐 전에 영(營)에 간다고 하는데 혹시 찾아뵐지 묻는 내용, 난세에서 영달(榮達)을 구하는 것보다는 성명(性命)을 온전히 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내용, 문중의 일은 대종(大宗)에서 맡아 할 것이라는 내용, 서당계(書堂契)가 문제가 많으니 차라리 분파(分破)하는 것이 낫다는 내용 등 이승학에게 있었던 일과 당부할 일을 낱낱이 알렸다. 또 위정척사(衛正斥邪) 의식을 지닌 인물 등의 근황을 전한 내용도 확인된다. 여름에 사문(斯文) 박정수(朴貞洙)가 의암(義庵) 유인석(柳麟錫)이 지은 서찰을 보여 주었다고 전했다. 유인석은 요동(遼東)에서 ?동국풍화록(東國風化錄)?을 지어 발행할 계획이라고 하였는데, 이승학은 그 책에서 충(忠), 효(孝), 열(烈), 도덕(道德), 절의(節義), 사업(事業)의 내용을 다루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방대하게 하면 마무리가 잘 될지 걱정이고 이를 따르는 자가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호서(湖西)의 송병직(宋秉稷)이 ?존화록(尊華錄)?을 엮는다고 했는데, 일전에 평동(平洞) 대감의 친척인 무주(茂朱) 이승덕(李承德)이 3책을 가지고 왔다고 전했다. 아들 이광수가 준비하는 과거 시험에 관한 내용이 보인다. 이광수는 1901년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선발되어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가 되었다. 경의문대는 갑오개혁 이후로 만든 시험 제도로, 성균관 대사성이 문제를 내어 각 도(道)에 하달함으로써 관찰사로 하여금 전국의 유생에게 그에 대한 문대(問對)를 해 올리도록 하고, 그중에서 일정한 수를 뽑아 한성에 소집하여 재차 시험을 치고 최종 합격자에게 직함을 주는 제도이다. 이승학은 편지에서 시험이 아직도 미뤄지고 있느냐고 걱정하면서도 만일 성균관 박사가 된다면 제왕묘(帝王庙)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라고 요청하면서 합격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시험을 통과해 관리가 되었을 때 처신할 도리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당시 이승학의 시대 인식을 볼 수 있는 구절도 편지에서 확인된다. 이승학은 이 세상에 살면서 당대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농아(聾啞)와 같다고 하며 현실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하였다. 지금 해외 신문을 보면 괴탄(怪誕)하다고 하며 그 대략을 보면 남북(南北)의 풍속이 다르고 동서가 숭상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였다. 지금 서울 상황은 이러한 모습들이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외물(外物)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하고 때에 맞게 성찰하도록 당부했다. 이 외에도 문중 사람들과 관련된 일이나 편지의 전달 여부 등을 적은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남평(南平)에서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이는 공전(公錢)이기 때문에 난감하다는 내용, 소산(小山)의 일은 마치 땅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줍는 것처럼 쉬운 일인데도 어찌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내용, 영변찰(寜邊察) 쪽으로 편지를 썼는지, 경재(耕齋) 집안으로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있는지, 완순군(完順君) 이재완(李載完)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 확인한 내용 등이 보인다. 또 족보의 판각 여부를 묻고 족보를 부록(簿錄)할 수 있으면 적어서 알려달라고 한 내용, 150냥에 대한 것은 장수 집안과 의견이 다르다고 내용, 이씨(李氏) 친우 편으로 편지를 부친다는 내용 등이 실렸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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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亥陽月二日 父 寄家兒 己亥陽月二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종실록(高宗實錄)? 전주이씨추성수파중중 편, ?전주이씨추성수파보(全州李氏秋城守派譜)?, 낭주인쇄사, 1990 이승학, ?청고집(靑皐集)? 1899년 10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선원보(璿源譜)? 편찬과 관련된 문중 일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를 전한 내용의 간찰. 1899년 10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선원보(璿源譜)? 편찬과 관련된 문중 일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를 전한 내용의 편지이다. 집안에 편지를 쓰려는 마음은 간절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편지를 열고,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두루 물었다. 특히 기씨(奇氏)에게 시집간 딸과 임씨(林氏)에게 시집간 누이의 건강을 물어 확인한 것이 눈에 띈다. 이어 이승학은 자신의 안부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선원보?와 관련된 문중 문제를 자세히 전했다. 자신은 객지에서 지내고 있으나 동행하는 사람이 많아 무사하다고 하며 이번 행차와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문중 일은 애초에 나의 짐작대로 되지 않았지만 이미 문중 어른들과 밤낮으로 상의하여 확정했는데, 도동(桃洞) 대감과 의견이 일치를 보지 않아 우선 서울로 가서 문중 사람들과 상의한 후에나 의혹이 풀릴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그때 의혹이 풀린다면 별 탈이 없겠지만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는지는 알 수 없다고 걱정했다. 또 근래 ?선원보? 담당자로 완순군(完順君) 종정원경(宗正院卿) 이재완(李載完)이 정해졌는데, 이 사람을 통해 수작(酬酌)해 볼 수 있겠다고 하였다. 이외에 족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 등을 상세히 전함으로써 가문 일에 대해 아들이 알도록 하였다. 이승학이 언급한 문중 일은 ?선원보? 편찬에서 빚어진 계승문제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종의 명으로 왕실 족보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재완(李載完)이 주도하였다. 이때 이승학 가문이 속한 양녕 대군(讓寧大君) 계열의 예민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미 만들어진 ?선원가현록(璿源加現錄)?에서 양녕 대군 이제(李禔)의 아래에 '순성군(順城君) 이개(李?)의 첩(妾)의 맏아들 오천군(烏川君) 이사종(李嗣宗)'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선원속보(璿源續譜)?에는 오천군 이사종의 기사 옆에 주석(註釋)을 달기를, '어머니인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참의(參議) 정종성(鄭宗誠)의 서녀(庶女)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천군 후손들은 나라의 문헌과 개인 문헌들을 통해 연일 정씨가 서녀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종성의 아들 정보(鄭保)가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모두 반역자로 몰리자 순성군의 처도 첩으로 강등(降等)되었다는 것이다. 옛 ?선원록(璿源錄)』에 순성군이 연일 정씨에게 정식으로 장가들었으며, 또 순성군은 첫 부인 신씨(申氏)와 같은 산기슭에 따로 장사지내고, 후실인 정씨는 순성군과 함께 나란히 쌍무덤으로 장사지냈다고 씌어 있으니 정씨가 순성군의 첩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연일 정씨 소생인 오천군이 정식 계승자임은 의심할 바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이승학을 포함한 양녕 대군 계열 사람들은 연일 정씨가 정식 처(妻)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 문중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 하단에는 세세한 집안일에 대한 당부가 실렸다. 본인은 언제 집에 돌아갈지 알 수 없으니 제부(諸父)들과 상의하여 처리하여 낭패가 없도록 하라는 말을 시작으로, 명전(名錢)을 구할 방도에 관한 내용, 창평(昌平) 수령에 관한 내용, 죽전(竹田) 문제, 정씨(鄭氏)가에 관한 일, 경주인(京主人)에 관해 묻는 내용 등을 두루 묻고 당부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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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之來槪聞月初信□初去亦知此信矣旬間郵局付書計日可抵得見否近無他付字耶順道而見此晦更發云而更不來矣本郡首吏處閏八付來書九月念間得見其後九月之去又聞有付書云而終不得見今念間本官回謝時見景弘問其由則初若徜怳終云不持來此何故也其時小山則有傳書而汝不及知耶抑有中間委折耶大抵書尺往來審其信實而傳之可也汝不知昨冬吾自京付栢洞書終不得見而中間搔匿乎近者敬之便書雖無緊說話亦開見傳之可怪也人心之多岐也月坪金長水近又抵書于吾橫說竪說皆云汝之常報而又幷裹汝之九月間書送來開見則原幅是汝之筆而但道在京源源與別離之懷而已所謂下方非汝之手跡而不知何人造此僞跡添入於其中也見此則吾心已爽然而非汝之所用明矣然汝何不知中間有此委折而使此汝父之病困者坐受一時憂慮也此則汝之不明也所謂夾錄曰侍下人事恐其有知於本家貽憂于親堂云云則是豈汝之所言乎非汝之所爲吾已知之且驗筆跡與紙樣與原幅相去遠矣吾答以此由且汝書還送使之藏棄雖有卞官當以此相質云云矣都不知誰所作奸而汝則在其間徒取世人之許多唇舌是可歎憤語曰知子莫如父然吾安能知汝也今之世人心淆薄變怪百出不知倫綱爲何等事者在在然矣此所爲夷狄禽獸之域而世不可爲矣然吾於汝應有所見者故勸汝出世矣我國之前賢李延陽獨稱父子知己可謂五百年來惟一而已所以見稱於世矣今吾雖不以此望於汝汝以此自期則吾家其庶幾乎然延平延陽亦何嘗規矩中人也本官來此酬接禮卑辭遜莫此爲甚而及其念間回謝傲禮冷落醴亦不設可知張倉之沮之也南察忽此遞歸昨聞發去而未及作別矣新察晦前上營云或圖進拜耶雖不欲求聞達於諸候苟全惟命於亂世之道亦復奈何門事已爲究結自大門專辦書堂契破碎皆從一邊之願也究厥裏許沒風色豈有如此之甚者大略亦爲之何爲也以楚越肝膽欲作盟誓得乎不如分破之爲逾故耳到今尙以我作服中釘此亦沮戱之一端然吾何求於平原吾何畏彼而乞援也猶恐自强不得而氣色甚慘憺耳夫以今年事論之彼不知根本之祖先而安知枝葉之宗族乎以此推之都無事矣今月病臥客擾轉甚良苦夏間原州朴斯文貞洙持毅菴簡通來傳見在遼上欲爲東國風化錄而發也凡係忠孝烈道德節義事業皆可收入而但此事浩大終不得成又無肯從者耳因朴斯文聞湖西宋斯文秉稷方主尊華錄成冊云云日昨茂朱李斯文承德持三冊來傳其人則平洞台至親其書則自勝國至今凡尊華儒道文字近世義筆始末犂然載錄矣又有請助于門中貳拾兩文區處耳合試間已爲之否尙此遷延乎果如來書而無疑則不得不觀其結梢而此亦鷄肋去留兩難而限歲期於歸家爲料焉博士若爲之則請建帝王庙疏呈納可也旣許身於國而發靷之初苐一舛立論莫如此等之明白着在肚裏諸宰之可不可有不足計較也生此處不識當今之務亦與聾啞一般而今之海外新聞徒是怪誕不經喪吾聰明而已知不知無足關重但驗擧槪南北殊俗東西異尙可也見今洛下滿目皆是汝能久留此免於外物之誘否時時省察焉南平請貸近因達中回見書則此皆公錢歲內還報則許給云云吾豈請貸公錢耶春間狼狽從可知矣如此先諾後悔者是豈道理從今吾欲結舌而亦甚歎恨而已小山事如拾地芥何至此緩云耶寜邊察許又上書否汝旣受知深盡吾誠可矣耕齋家數數付書否完順君前向書必意其吾使汝爲之樣到今思之不諒多矣頻接如前否平洞數進否長水家云云夾錄誰所爲探之區處焉此月不甚寒爲汝旅況幸矣常念加護也譜事今至登板乎亦過支離留京日簿錄爲之乎自汝入京凡得用於譜所者幾許亦錄示焉長水家春間條一百五十兩汝云加計錢而彼云邊錢亦相左何也東里李友今在付此庚子至月卄七日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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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允謂謝見訪袖傳惠書辭指隆重存撫純摯不知疾劣何以得此第切感戢不容名喩仰審比寒精體度旣壽且康曷勝賀祝 駿善 獲戻于天近遭毒慽慘不忍言入山之計非直爲潔身地祗爲無可安身處出可不得已者也令 蒙過葬還深歉愧耳 疾病侵尋無由晉軒候而尤不勝悚然餘萬眩甚不備餘謝狀上乙卯十月二十五日生吳駿善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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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88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子臘月卄三日 承鶴 福川侍史 戊子臘月卄三日 李承鶴 福川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 8월에 李承鶴이 福川형께 보낸 간찰. 안부를 묻고, 본인은 先父君의 緬禮를 행할 예정 이라는 소식을 전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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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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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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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福川侍史相識周星矣這間幾面不無頻頻俾也可忘歲且窮天寒若是每念流民之愼□望耿耿心寒未知今世誰能作千家活佛濟此漏舡众生以吾所知福川有福家或庶幾矣臨風遙慰卽玆臘尾省節俱安顯念無斁緬服人今月初親墓緬奉于近地攀和如新之痛益復罔涯荒年百凡難於稱禮徒切傷哉之歎而耳細音緣此有事差池失信亦必有觀過之道矣沒數送去考收可也票紙還付亦如何多少留不宣戊子臘月卄三日 承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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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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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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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26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2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15.2.7 潭陽郡昌平面會計員 朴在昊 長華里 李承鶴納 15.2.7 高光直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高光直(타원형)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에 이승학이 담양군 창평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1926년 2월 7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회계원(會計員) 박재호(朴在昊)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5년도 제2기 지세 45원(圓) 12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12원 18전, 지세할(地稅割) 20원 75전, 지세부가금 13원 53전으로 총 91원 58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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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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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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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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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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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혁(李爀)·이돈수(李敦秀)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담양 창평면 장화리에 사는 李爀과 李敦秀가 걷은 소작료를 기록한 추수기. 이혁 소유의 토지 8개와 이돈수 토지 9개에서 받은 소작료를 기록 해당 토지의 번지와 전답 종류, 평수, 가격, 소작인 등이 표기 *상태: 필사, 공란의 ‘電報賴信紙’ 뒷면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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