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憲搆 旅案昨見抵允弘書略聞時中動靜慰可知也夜來旅節一如都事丈同留否馳溯無已族叔間遭從叔母喪事自邑奔哭治喪將以來三日疾葬計而昨又聞鰲山圖形不爲徐漢以今前出他稱托而退且論報停止將以明日狎上云云彼隻昨夜有故如是云而明事亦難必若然則吾與筆巖從常去矣都事丈其前姑留勿動之矣飭告爲好諸般說兒書必盡之不疊暫此不宣元月卄九日 服從鶴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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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潭陽 長田 本第李進士宅入納草洞留 上平書父主前 上白是七月七日三川高參奉便上書未及於十三日下書中未知緣何滯留卽其轉達否伏未審氣軆候一向萬安大小家太平伏慕區區不任下誠之至子入此月以來歸覲伏計而又未果凡事都不入料也世路至此仕宦不足貴入於民團社會有爲事業則此是好目的而經濟硏究會快爲成立於共衆大事業也於私計大利益也而此會成立後反面以來者至于今日姑不組織晦初間可以完成見此而起則九日前似可反面耳雲老日前使還而別無可聞首揆不在他早晩未可知也心台近日來親誼益篤語無所不到月前悶窮而語曰以吾一言之薦可以圖君之宰諒爲之也答曰此首相下豈可屈首乎厚意雖感其於義之不可何窃爲待後日而不敢從也曰善觀其辭色則雖有驚聽敬示之意於身分何益古來淸寒良以此也削令朝野同然而日就於削想不强迫若不强迫則姑爲保髮伏計似不能久保也璿譜到卽納府改張以來適有新安洞金友便付送而所費葉十五兩使之覓去耳季叔晦初間先於不肖而下去伏計以此下諒伏望餘不備上白是戊申八月二十一日子光秀上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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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이광수(李光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十一月初八日 子 光秀 父主前 上白是 戊申十一月初八日 李光秀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11월에 이광수(李光秀)가 아버지 이승학(李承鶴)께 안부와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간찰. 1908년 11월에 이광수(李光秀)가 아버지 이승학(李承鶴)께 안부와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편지이다. 먼저 창평군(昌平郡)의 거원(擧員, 과거에 응시하는 인원) 편으로 편지를 받아 안부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전하고 아버지와 식구들의 안부를 두루 물으며 편지를 열었다. 이어 본인의 안부 및 조정과 관련된 소식을 알렸다. 자신이 맡은 일이 기포(飢飽)와 관련된 것이라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일을 지루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하고, 직을 내려놓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고 하였다. 이어 양원(陽園) 신기선(申箕善)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언급했다. 즉 회의의 총재(摠裁)인 신기선과 간동(諫洞, 현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일원) 대감의 말은 헛된 것이 아닌 믿을 만한 것이라고 하는 등 조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논한 구절이 보이나 사건이나 이름 등이 생략되어 있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이어 이광수는 과거 시험과 관련된 담양군(潭陽郡)과 창평군(昌平郡)의 갈등에 대해 대략적으로 언급하며 자기 생각을 전했다. 창평군(昌平郡) 거원(擧員, 과거에 응시하는 인원)들이 하방(下房, 곁채)으로 옮겨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들의 시험과 관직의 주선 문제, 고향의 중론(衆論)이 모이지 않고 있다는 내용, 담양과 창평 사이의 갈등이 있다는 내용, 우리 전주이씨 가문의 뜻은 모두 창평군에 있다는 내용, 아버지 이승학과 소파(小坡)ㆍ죽오(竹塢) 숙부 사이의 감정이 있다는 내용, 시비를 다투지 말고 담양과 창평을 각자 인정해 달라는 내용 등이 보인다. 이 편지 내용으로 보았을 때 국가가 주체하는 시험에서 지역 배분에 대한 갈등이 있었던 듯하나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편지 끝에 교사를 구하고 있으나 월급이 30원이라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날을 헤아려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추신으로 ?지지(地誌)? 상ㆍ하권, ?사략(史略)? 단권, ?옥편(玉篇)? 단권을 살펴서 받아주시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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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開城府 崧陽書院內 杜門洞祠院刱建事務所內李博士光秀氏旅鑒南原社洞面嶺邨里金在漢夏間路下馮行巖途而返玉山之駕發龍湖已有日矣抑想弟未忘紅塵 兄獨動靑山而然歟只自咄咄而已謂外拜承大緘滿幅淸凉帶來金剛氣味昔年我亦遊此山只以俗眼觀今兄以仙眼視仙山拔得來眞髓後之遊此山者得無憾於 玉山耶自箕城歷覽松京風物感古愴今之懷尤切於胸襟否 敎意謹悉而在弟則爲先一款亦在其中然顧此漢於此等事以不參斷厥案久矣此鄙先祖表節祠七賢之一也自掇享後爲後仍者孰不齎恨今於新設之享有何輕重而奔走於下風哉但 尊敎之鄭重一出於爲賢之誠一出於家我之深則弟豈敢以尺紙例辞而不躬進攄蘊哉方以足瘇叫?差完似在日間來初發程爲計幸須亮俟如何餘敬頌旅安兼乞靑眼癸酉梧秋念七服弟金在漢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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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응도(奇應度)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復之卄八日 弟 奇應度 玉山山房讀書榥 復之卄八日 奇應度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1월에 기응도(奇應度)가 인척(姻戚)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년 3월의 만남을 기약한 내용의 간찰. 모년 11월에 기응도(奇應度)가 인척(姻戚)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년 3월의 만남을 기약한 내용의 편지이다. 한 달 전 하인이 가져온 편지로 그간에 편지가 잘 전달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기응도 본인의 안부를 전하기를, 자신은 집으로 돌아와 차를 다려 마시며 날을 보내고 있는데, 매번 눈이 개고 새벽달이 밝을 때 형이 준 시(詩)를 읽다가, '지금 세상에서 지사(志士)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 이르면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어느 때나 이광수가 거처하는 매오당(梅五堂)에서 마음껏 술 마시며 놀 수 있느냐고 하며 만남을 고대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기를, 이광수가 요사이 은거하는 동지 6~7명과 함께 산방(山房)에서 고인의 책 천만 권을 읽고 있으며, 때때로 담양(潭陽)의 빼어난 명산을 소요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장성(長城) 하사(河沙)에 사는 기원직(奇元直)이 함께하지 못함이 한이 되진 않느냐며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이광수에 대한 그리움으로 좋은 술 만곡(萬斛)을 먹어도 더운 배 속을 채울 수 없다고 하며 재차 만남을 기원하는 뜻을 전하며, 내년 봄 3월에 봄풀이 우거지고 강 버들 가늘어지면 한번 만나자고 청했다. 이광수에게 약속을 어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자신은 날마다 이 만남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고서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 독서 하며 아프지 말라고 염려하였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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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장복규(張復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午三月五日 生 張復圭 李進士宅 丙午三月五日 張復圭 李進士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3월에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담양 장전(長田) 이진사(李進士) 댁에 신문과 채급전(債給錢)의 일에 관해 전한 간찰. 1906년 3월에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담양 장전(長田) 이진사(李進士) 댁에 신문과 채급(債給錢)의 일에 관해 전한 편지이다. 여기서 이진사는 이최선(李最善)을 말하는데, 그가 진사(進士)에 올랐기 때문에 이최선의 집을 이진사댁으로 불렀다. 이 시기 이진사 댁의 가장(家長)이 이승학(李承鶴)이였기에 수신인은 이승학으로 짐작된다. 편지 앞부분은 신문에 관한 것으로, 신문 몇 장이 왔는데 어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돌려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장복규가 이승학에 신문을 빌려 준 적이 있는데, 편지를 보내 돌라달라는 말을 하여 이렇게 답변한 듯하다. 이어 모씨(某氏)의 채급전과 관련된 내용이 적혔다. 모씨의 일과 빌려준 돈[債給錢]은 다른 일인데, 이승학 같은 고명(高明)께서 어찌 돌려받으려[推還] 하느냐고 하고, 붙잡아 들인 곳에서 그가 곧바로 두 가지 일에 대해 말할 것이기에 해결 방도도 있을 것이라고 하며, 신경 쓰지 말라고 달랬다. 아마도 이승학이 모씨와 갈등을 빚자 창평군수인 장복규가 중간에서 중재하면서 이러한 편지를 보낸 듯하다. 장복규(1869~?)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공삼(公三)이고 호(號)는 학운(鶴雲)이며, 금구(金溝, 현 김제) 출신이다. 1885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창평군수 등을 역임했다. 1905년 1월에 창평군수로 발령받아 1907년 3월에 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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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吉州申使君 自古同宗誼所敦況君高義薄層雲雄州都護官非賤努力分憂答主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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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掌令澂挽 不負名卿鑑榮道屬望新高才嗟未展脩夜竟難晨栢府留遺草桐鄕泣舊民平生傾蓋誼題誄倍沾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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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敬公主賜祭文 惟靈令淑之資柔靜其德不煩姆訓內儀靡忒處謙自持孝敬爲心粤惟先朝鍾愛特深飾館釐降于彼景族有敎公宮無繫車服聲諧瑟琴兆叶鳳凰閨闈肅穆譽洽岐陽婦禮之謹儷美南平處崇思挹居寵戒盈終溫且惠宜介景福天胡不仁而壽之嗇蘭芬易沫婺彩遽沈明徵莫憑玄理難諶痛纏長秋悲動內掖嗟予不造夙遭大慽幸奉慈顏聊以自慰迭侍承驩賴有同氣竭誠無違仰體顧復追承先志恩愛彌篤和樂且湛庶幾百嶺春華纔敷棣萼先零往歲之慘餘痛未制奈何乎天今又降戾一朝永訣奄成千古予懷之悲若割心肚念及後事增予傷衋一女呱呱稚藐莫識新構未完輪奐悽涼草草人間萬事亡羊流光遄邁已涉旬朔沁園春生芳草欲綠天時回斡魂去莫招觸物疚情無樂臨朝替奠菲馨有淚如縻靈如不昧聽此侑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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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尙道觀察使李䎘敎書 王若曰時丁板蕩予無樂乎爲君任重藩維卿豈憚於宣力茲煩周度冀紓殷憂言念比歲大無實是前古罕有環海東數千里隨處皆然顧嶺南七十州比他最酷人煙蕭瑟或絶鷄犬之聲田野荒蕪半作蓬蒿之地孑遺擧呼於庚癸蕩殘無異於壬丁言其物力則倉廥皆空想其民怨則桴鼓將起征徭非不蠲除而惠難遍及貢獻非不停罷而澤未下覃無一事可救之方有萬分難保之勢徊徨丙夜若恫瘝之在躬歎息中朝愍艱虞之溢目矧今蠻情之叵測漸致事機之異常館宇將移公肆恐喝之語民訛互煽咸有荷擔之憂苟非沈幾識務之才曷堪蘇完應變之責惟卿家傳孝謹志篤忠貞始大闡於巍科聲望素蔚遂遍揚於華貫左右咸宜風裁獨持於霜臺確乎難拔之操嘉言屢進於經幄炳然無隱之忱惟其不貳於險夷亦嘗有試於機務視篆畿邑政成期月之間衣繡南藩人頌福星之降而才猷旣絶於流輩故超遷不拘於常規曾分漢南之符壁壘變色旋授湖右之節風化騰謠茂績已著於曩時僉擧又屬於今日茲授卿云云卿其祗膺簡命往布敎條區畫施爲正如救焚而拯溺撫摩安輯必須殫慮而竭誠施以實惠而毋事浮文敷以德意而懋存大體調窮振乏南康之美政可追勸農課桑靑州之故事是法若夫捍禦之方策應之道宜有深思至如稟處之事裁斷之規合遵彝憲予何多誥卿可自知於戲事急時危內輕外重君臣共濟所貴者相與協心否泰迭承莫謂之無可着手故茲敎示想宜知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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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梅澗在京時寄詩韻 關河千里惜離情中夜依然夢裏迎怊悵洛東秋事晩不堪新月又回明陽關誰是故人情白眼紛紛替送迎堪笑十年奔走地謾敎霜雪鬢邊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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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定館中不勝無聊仍想練光亭物色使舌官輩把筆口占 華堂銀燭映淸秋風露迢迢夜色悠千里客情何處寫月中高倚浿江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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留別巡相 我度浿江水君留浮碧樓驛程低落日官樹又深秋去住俱爲客閑忙摠是愁何時一尊酒重對白鷗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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練光亭贈方伯 落日吹殘角秋風惜別情臨分多少意都付淺深觥高柳鳴蟬盡孤城夕照明男兒意氣在臨別莫傷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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戲詠酒杯 爾固爲我愛罍傾爾無用我思罍不傾莫如勤耕種顧昧神農術荒彼閒丘隴悄然坐寒齋但使詩肩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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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南 潭陽 長田李進士宅 入納京草洞留 上平書新安洞便付上父主前 上白是本郡擧員便伏承下書伏審從近消息伏幸萬萬伏未審日又多氣軆候一向萬安大小家太平伏慕區區不任下誠之至子所看事飢飽有關故尙此未歸而此事支離雖欲罷歸今亦爲之云所可信者會之摠裁陽園與諫洞台之言有實也事非虛也但物從彼處來而恐彼之食言然交涉鄭重似可有終耳爲先涯過之道極艱邀學徒四人於舍廊徒苦無益也本郡擧員來留他處矣昨日移館于下房族黨與鄕黨但是不妨而但來事雖有善周旋已登官報似難飜覆則不如無事然旣有鄕中衆論則爲三面人道理內雖有不干涉之意外難反對但是王民爲潭爲昌無關去留而非吾意則含默爲上觀衆議則鄕攻可推而以吾李之心皆有昌平故似是紛藤父主與小坡竹塢叔主尤有感情自今以後不是不非伏望望潭可還則爲潭民昌可集則爲昌民而已敎師方求而但月給以三十円不去自校中指數視來爲好耳餘不備上白是戊申十一月初八日子光秀上白地誌上下卷史略單卷玉篇單卷考納伏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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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이광수(李光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八月二十一日 子 光秀 父 李承鶴 戊申八月二十一日 李光秀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8월에 이광수(李光秀)가 아버지 이승학(李承鶴)께 여러 가지 서울 소식과 안부를 전한 간찰. 1908년 8월에 이광수(李光秀)가 아버지 이승학(李承鶴)에게 여러 가지 서울 소식과 안부를 전한 편지이다. 이광수가 서울 초동(草洞, 현재 서울시 중구 초동)에 머물면서 담양 본가에 계신 아버지께 편지를 부쳤다는 것을 피봉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봉에서 담양 본가를 '이진사댁(李進士宅)'이라고 쓴 까닭은 이광수의 조부인 이최선(李最善)이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편지에선 먼저 7월 7일에 창평(昌平)의 삼천리(三川里) 고참봉(高參奉) 편에 편지를 올렸는데,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13일 편지에는 그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다며 편지의 전달되었는지 확인했다. 이승학과 그 아들 광수의 편지에서 항상 편지 전달 여부를 확인하곤 했는데, 당시 인편으로 편지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어 이광수는 가족들의 안부를 두루 묻고 이달 귀가할 계획이었으나 이루지 못했다고 하고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탄식했다. 계속해서 이광수는 서울 상황을 두루 아버지께 알려 드렸다. 지금은 벼슬하는 것이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 회사에 들어가 사업을 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내용과 경제연구회(經濟硏究會)를 세워 이익을 추구한다는 내용, 운노(雲老)와 심재(心齋) 이도재(李道宰) 선생과 관련된 조정 소식 등이 실렸다. 또 단발령(斷髮令)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璿源譜)?에 대한 사항도 적었다. 단별령은 조정이나 재야나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하면서, 아마도 단발령을 강하게 규제하지 않을 듯하나 종국에는 단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당시 정치 분위기와 자기 생각을 전했다. ?선원보(璿源譜)?의 개장본을 신안동(新安洞) 김씨(金氏) 친우 편에 부쳤는데, 엽전 15냥을 주고 찾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막내 숙부께서 그믐이나 초순에 저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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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李進士宅長田侍座回納昌吏上謝緘伏審侍體候萬安伏慰伏慰新聞幾張來到而昨日借於人姑不來耳某事與債給錢有異以尊執高明何如是推還耶捉入之場彼必直說兩事有所如何矣幸忘之若何餘不備上謝候丙午三月五日付生張復圭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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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谷處能師碑銘 往在庚辰春余以童子拜伯父樂全公於白雲庄師方受書於伯父時年纔弱冠疎眉目善談論襟韻不凡與堂兄春沼公揚扢古今事娓娓可聽余雖幼心固已奇之後五年伯父捐館舍師亦雲遊四方不相見殆三十年庚戌夏余銜命南下遇師於廣陵天柱寺越二年余按湖南臬師自頭流來見留宿一宵庬眉雪髭儼然作老宿而余亦兩鬢蒼然已非少年人握手噓嚱相與含涕未幾余解歸與師別又十年辛酉秋其徒懷善來告師示寂且記師平生始卒仍致淸城金相國之言曰師旣受知於外王父樂全公公亦契許不淺銘其藏不可屬他人余心諾而未及文焉今年秋懷善復以狀來謁曰吾師固公家門下僧知吾師宜莫如公況淸城公已作千古其所托公忍負之耶余聞而悲之按其狀師俗姓全法名處能字愼守白谷其號也母金夢梵僧遺二顆珠令呑之覺而有娠以萬曆丁巳五月初三日生法骨奇秀在提孩喜作佛事或遇僧尼輒軒渠欲從之十二投義賢師祝髮十六謁樂全公於雲庄朝夕左右閱四寒暑不怠公憐其誠授以經史語孟及韓蘇李杜等書師遂日夜誦讀咀嚼英華爲詩淸新古健文亦疎宕可觀自是大有聲於薦紳間東溟鄭公斗卿尤歎異之以爲奇才一日忽喟然歎曰手自翦髮而徒遊藝於翰墨間豈不負初心乎往參碧巖覺性師於頭流之雙溪得聞眞乘法旨言下大悟性師期以傳法上足遂與周遊棲息於伽倻寶蓋雪峯諸山幾二十餘歲孝宗在潛邸時答性師書曰見高弟書文甚奇字且疎勁可愛其蒙被睿奬又如此己丑仁廟賓天性師爲設道場薦福命師製疏壬辰入俗離大法住寺重修丈六金身丁酉住錫於大芚山之安心寺開堂講法學徒坌集丙午授南漢僧統不赴庚戌再授亦未久辭去往來於峨嵋聖住之間庚申春移住金山寺作大法會五晝夜六月二十日示微恙秋七月初一日遂就化世壽六十有四禪臘四十有九其夕白氣十二道橫亘半空衆皆嗟異之闍維得靈骨三片分藏於母岳之金山大芚之安心鷄龍之神定師以聰穎夙悟之資早受名師之戒居然作法門世適雖通脫自在不以繩墨爲拘時或酣暢高詠遺棄四大而靈慧洞透之性自有操持至歿而有超骨之異其得於三藏秘奧有非皮相者所可測文集二卷刊行於世淸城東溟作序弁其卷此亦足以不朽師旣化之身耶噫自余識師以來幼而壯壯而衰俯仰朝暮之間人事嬗變感念疇昔依然若一夢而白雲之庄亦成丘墟吾於銘師之葬顧安得不悲哉遂爲之銘曰遺外迹托詩鳴悅靈皎休默之名者耶慕賢德始有終追惠勤秘演之風者耶生稟奇死著異庶可鑱石而無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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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朴和叔晉接口號 旁招異禮及丘園虛席中宵聖意敦太史今朝應有奏少微星入紫微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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