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戌八月卄四日 生 李承鶴 戊戌八月卄四日 李承鶴 崔斯文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에 이승학(李承鶴)이 최사문(崔斯文)에게 최익현(崔益鉉)의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 등을 전한 간찰. 1898년 8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최사문(崔斯文)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 등을 전한 간찰이다. 수신인은 최사문으로 되어있는데, 최사문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아들 최영조(崔永祚)로 추정된다. 사문(斯文)은 유학, 특히 성리학을 업으로 삼는 유생(儒生)을 지칭한 말이다. 이승학은 최사문에게 지난번 서울 여관에서 만났는데 아직도 기억하는지 묻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이 같은 통탄의 세상에서 다행히 춘부장(春府丈, 최익현)이 계셔서 엄숙히 모범이 되어 주어 세상이 유지된다는 말을 하였다. 또 매번 춘부장을 찾아뵙고 문후를 여쭈고 배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세상이 험하고 이승학 자신도 병이 많아 서글픔만 더해간다고 토로했다. 재작년에 춘부장께서 호남의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산재(山齋)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이승학이 궁벽한 곳에 있다 보니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아서 찾아뵐 기회를 놓쳐 한이 된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계속해서 춘부장 최익현의 근래 안부를 묻고서 이승학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이승학은 요사이 쇠약하고 병이 많아 대장부의 뜻을 이루지 못해 근심인데, 최근 4살 된 손자를 잃어 더욱 슬프다고 전했다. 이제 문중의 두 아이를 시켜 춘부장을 뵙게 하면서 편지를 함께 보낸다는 말을 하였다. 이승학(1857∼1928)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로, 그의 손자 기우만과도 같은 문하이면서 사돈 사이이다. 같은 위정척사(衛正斥邪) 기치를 내세웠던 최익현과도 친밀한 사이라, 이승학의 문집인 ?청고집(靑皋集)?에도 최익현에 올린 편지가 실려 있기도 하다. 이 편지로 최익현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과도 교유를 이어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