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丑九月十八日 生 李承鶴 己丑九月十八日 李承鶴 節山 僉座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에 이승학(李承鶴)이 절산(節山)의 유림에게 산송(山訟) 문제로 보낸 간찰. 1889년 9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담양부(潭陽府) 절산(節山)의 유림에게 산송(山訟) 문제로 보낸 간찰이다. 간찰 피봉에 수신인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절산(節山)'밖에 없는데, 이는 담양의 창평에 있는 절산인지 화순군(和順郡)에 있는 절산인지 불분명하다. 편지 본문에서 산송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담양은 본래 미암(眉庵) 유희춘(柳希春, 1513 ~ 1577)의 묘소가 있는 곳인데, 담양의 하리(下吏)가 미암 선생의 묘소 가까운 곳에 범장(犯葬)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승학을 포함한 유사(儒士)들이 이 범장(犯葬) 일을 나서서 문제 삼지 않고 미뤄두고 있어서 죄송하다는 전했다. 범장 일은 장성(長城) 유림에서 나서서 여러 읍에 통지하여 모레 미암 선생의 묘소에 열읍의 장보(章甫)와 원근의 지구(知舊)들이 다 모이고 했다고 내용을 덧붙였다. 이어 이 회동은 한편으로는 범장한 묘를 파내게 할 목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장에 대한 죄를 물을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또 이 일이 성사되지 않을 때는 대궐 문 앞에 가서 호소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전하며 귀하의 문중 어른 중에 몇 분이라도 참석해 달라고 당부했다. 모임 날짜가 급해 이승학이 직접 편지를 통해 알린다고 하며 다시 한 번 참석을 촉구했다. 유희춘의 본관 선산(善山), 자 인중(仁仲), 호 미암(眉巖), 시호가 문절(文節)이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집 뒤의 바위가 눈썹의 모양이라고 해서 호를 미암(眉巖)이라고 지었다. 최산두(崔山斗) ·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해 대사성 · 부제학 · 전라도관찰사 ·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