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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강홍제(姜弘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齊 行郡守<押> □…□ (7.5×7.5), 周挾字改印 2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1_001 1768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제(姜弘齊, 30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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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강홍제(姜弘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齊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1_001 1771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제(姜弘齊, 3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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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강홍제(姜弘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齊 行郡守<押> □…□ , 周挾改字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1_001 1813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제(姜弘齊, 7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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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邑面傍村〔山底〕里 第二統一戶幼學魏永植 年四十三癸卯 本長興父 學生 喆基祖 學生 榮滉曾祖 通德郞 道僩外祖 學生 金洙澤 本金海妻 安氏 齡三十三壬子 籍竹山父 學生 萬鉉祖 學生 時表外祖 學生 金贊斗 本金海壬午戶口相準 印[周挾 字改印][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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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위영식(魏永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長興府使 魏永植 <押> □…□ (7.5×7.5),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0년에 장흥도호부 관아에서 위영식에게 발급한 준호구. 長興都護府 관아에서 호주인 魏永植에게 발급한 1890년의 준호구이다. 본 준호구는 편제된 統戶를 비워둔 상태에 제출되어 나중에 붉은 먹으로 숫자를 채워 넣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애초에 호구단자 형식으로 작성하여 호주가 제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주협자 개인], 관인, 수령의 서압 등이 적혀 있고, '戊子戶口相準 印'라고 적혀 있다. 이는 호주가 제출한 호구단자를 접수한 고을 관아에서 추후에 기입한 부분으로, 준호구의 기능을 부가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호적 작성 행정의 간소화로 인하여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호주에게 1통의 호구단자를 제출하게 하여 그것에 수정 내역을 표기하고 착압·날인하여 되돌려줌으로써 준호구 역할을 겸하게 하거나, 처음부터 호주가 준호구 형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면 관아에서 날인·착압하여 돌려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본 준호구는 전자에 해당한다. 위영식은 古邑面 傍村里에 거주하고 있으며 제1통 2호에 편재되었다. 호주의 직역은 幼學이고, 나이는 4▣(8)세로 계묘년생이다. 본관은 長興이다. 같은 문서군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작성 연대의 서기 연도가 드러난 준호구와 비교하여 본 준호구의 작성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 위영식의 四祖를 보면, 父는 學生 喆基, 祖父는 學生 榮滉, 曾祖父는 通德郞 道僩이며 外祖는 學生 金洙澤(본관 金海)이다. 처 安氏는 39세 임자년생이며 본적은 竹山이다. 1881년의 준호구에는 처 안씨의 생년이 신해년으로 본 준호구와 차이가 있다. 처의 사조를 보면, 父는 學生 萬鉉, 祖父는 學生 時表이며 외조부는 學生 金贊斗(본관 金海)이다. 증조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함께 살고있는 아들로 啓寬(18세, 계유년생)이 기재되어 있다. 노비 소유사항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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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邑面傍村里 第一統二戶幼學魏永植 年四十▣癸卯 本長興父 學生 喆基祖 學生 榮滉曾祖 通德郞 道僩外祖 學生 金洙澤 本金海率婦 安氏 齡三十九壬子 籍竹山父 學生 萬鉉祖 學生 時表外祖 學生 金贊斗 本金海率子 幼學 啓寬 年十八癸酉戊子戶口相準 印[周挾 字改印][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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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이종관(李宗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光郡守 李宗寬 行郡守<押> 靈光郡戶口, 靈光郡守之印(7.5×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82_001 1852년에 영광군(靈光郡)에서 유학(幼學) 이종관(李宗寬, 4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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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이종관(李宗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光郡守 李宗寬 行郡守<押> 靈光郡戶口, 靈光郡守之印(7.5×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82_001 1855년에 영광군(靈光郡)에서 유학(幼學) 이종관(李宗寬, 48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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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강홍복(姜弘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福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0_001 1786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복(姜弘福, 4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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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위영식(魏永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長興郡守 魏永植 □…□ (7.5×7.5),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장흥군 관아에서 위영식에게 발급한 준호구. 長興郡 관아에서 호주인 魏泳植에게 발급한 1897년의 준호구이다. 본 준호구는 편제된 統戶를 비워둔 상태에 제출되어 나중에 붉은 먹으로 숫자를 채워 넣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애초에 호구단자 형식으로 작성하여 호주가 제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주협자 개인], 관인, 수령의 서압 등이 적혀 있고, '甲午戶口相準 印'라고 적혀 있다. 이는 호주가 제출한 호구단자를 접수한 고을 관아에서 추후에 기입한 부분으로, 준호구의 기능을 부가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호적 작성 행정의 간소화로 인하여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호주에게 1통의 호구단자를 제출하게 하여 그것에 수정 내역을 표기하고 착압·날인하여 되돌려줌으로써 준호구 역할을 겸하게 하거나, 처음부터 호주가 준호구 형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면 관아에서 날인·착압하여 돌려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본 준호구는 전자에 해당한다. 위영식은 古邑面 山底里에 거주하고 있으며 제1통 1호에 편재되었다. 거주지는 원래 傍村里로 기재하여 제출했지만, 관아에서 추후에 山底里로 수정한 흔적을 볼 수 있다. 호주의 이름인 '魏泳植'은 같은 문서군의 다른 준호구에는 '魏永植'으로 적혀 있다. 호주의 직역은 幼學이고, 나이는 55세로 계묘년생이다. 본관은 長興이다. 같은 문서군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작성 연대의 서기 연도가 드러난 준호구와 비교하여 본 준호구의 작성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 위영식의 四祖를 보면, 父는 學生 喆基, 祖父는 學生 榮滉, 曾祖父는 通德郞 道僩이며 外祖는 學生 金洙澤(본관 金海)이다. 처 安氏는 47세 경자년생이며 본적은 竹山이다. 1890년의 준호구에는 처 안씨의 생년이 임자년으로 본 준호구와 차이가 있다. 처의 사조를 보면, 父는 學生 萬鉉, 祖父는 學生 時表, 증조부는 學生 仁煥이며 외조부는 學生 金贊斗(본관 金海)이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아들 啓寬(25세, 갑술년생)과 며느리 金氏(26세, 임신년생, 본관 光山)이 기재되어 있다. 아들 계관의 출생년도는 1890년 준호구에는 계유년으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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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邑面傍村〔山底〕里 第一統一戶幼學魏泳植 年五十五癸卯 本長興父 學生 喆基祖 學生 榮滉曾祖 通德郞 道僩外祖 學生 金洙澤 本金海妻 安氏 齡四十七庚子 籍竹山父 學生 萬鉉祖 學生 時表曾祖 學生 仁煥外祖 學生 金贊斗 本金海率子 幼學 啓寬 年二十五甲戌婦 金氏 齡二十六壬申 籍光山丁酉式甲午戶口相準 印[周挾 字改印]行郡守[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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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위진식(魏震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長興郡守 魏震植 行郡守<押> □…□ (4.5×4.5),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에 장흥군 관아에서 위진식에게 발급한 준호구. 長興郡 관아에서 호주인 魏震植에게 발급한 1898년의 준호구이다. 본 준호구는 편제된 統戶를 비워둔 상태에 제출되어 나중에 붉은 먹으로 숫자를 채워 넣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애초에 호구단자 형식으로 작성하여 호주가 제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주협자 개인], 관인, 수령의 서압 등이 적혀 있고, '丁酉戶口相準 印'라고 적혀 있다. 이는 호주가 제출한 호구단자를 접수한 고을 관아에서 추후에 기입한 부분으로, 준호구의 기능을 부가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호적 작성 행정의 간소화로 인하여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호주에게 1통의 호구단자를 제출하게 하여 그것에 수정 내역을 표기하고 착압·날인하여 되돌려줌으로써 준호구 역할을 겸하게 하거나, 처음부터 호주가 준호구 형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면 관아에서 날인·착압하여 돌려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본 준호구는 전자에 해당한다. 위진식은 古邑面 山底里에 거주하고 있으며 제1통 1호에 편재되었다. 호주의 직역은 幼學이고, 나이는 66세로 계사년생이다. 본관은 長興이다. 같은 문서군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작성 연대의 서기 연도가 드러난 준호구와 비교하여 본 준호구의 작성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 위영식의 四祖를 보면, 父는 學生 洪基, 祖父는 學生 榮啓, 曾祖父는 通德郞 道運이며 外祖는 學生 金琢(본관 靈光)이다. 처 文氏는 68세 기축년생이며 본적은 南平이다. 처의 사조를 보면, 父는 學生 在黙, 祖父는 學生 達觀, 증조부는 學生 亨光이며 외조부는 學生 張宗憲(본관 仁同)이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아들 幼學 啓漢(45세, 계축년생)과 며느리 李氏(40세, 무오년생, 본관 仁川)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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