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고문이 글은 통지하여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부인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길 때, 어찌 기이한 일과 남다른 행적의 효행이 있고 난 뒤에야 효부(孝婦)라 일컫고,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목숨을 버리고 뒤를 따르는 열행(烈行)이 있고 난 뒤에야 열부라고 일컫겠습니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위해서 그 뜻을 봉양하고 몸을 봉양하는 효행과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며 과부로서 살아가는 열행을 갖추면 또한 효열부(孝㤠婦)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입니다.양산(梁山)의 김씨 가문에 명국(明國)의 어머니인 청주 김정임(金貞任) 여사는 호남의 별열 가문인 득현(得炫)의 둘째 딸로 집안에서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시집갈 나이가 되어서는 김계철(金桂喆)과 혼인하여 남편을 공경히 대우하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잘 섬겨서 사덕(四德)1)을 갖춘 부인이라고 고을과 이웃 고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남편이 경인년의 난(6·25사변)으로 불행히 1950년 10월 21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25세였고 여사는 방년 23세였습니다. 뜻밖에 청상과부가 된 비통함을 맞아 창졸간에 어떻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땅을 치고 하늘에 울부짖고 곧장 뒤를 따라 죽으려고 하였지만 늙으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당에 계시고 어린 고아는 포대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만약 처음 뜻을 수행한다면 집안일을 의탁할 곳이 없다고 번뜩 깨달아 마음을 고쳐먹고, 남편의 초상, 장례, 제례 절차를 의례대로 준행하고 시부모 봉양하기, 고아 기르기, 집안 지키기의 세 가지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습니다. 혹 품팔이를 하기도 하고 혹 장사를 하기도 하며 노모를 봉양하고 고아를 기르는 자본을 마련하여 가계를 부지하였으니, 그간의 생활 고초는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정절을 지키고 과부로서 삶을 살면서 노모를 봉양하고 고아를 기르는 효열부가 아닐 수 없었기에 향로(鄕老)와 족당(族黨) 사이에서 그 효열의 행실을 표창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고자(孤子)인 명국이 그 어머니의 의로운 방식의 교육을 받아 사회인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두 손자가 연대(延大)와 전대(全大)에 재학 중이니, 모두 부인이 선을 행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기강과 인륜이 무너진 오늘날에 부인의 효열의 행실은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균관에 계신 성균관장님께서는 부인에 대한 효열부를 포창(褒彰)하여 선을 권면하고 인을 흥기하는 도를 널리 전파해 주시기를 몹시 바랍니다.공부자(孔夫子) 탄강 2553년(2002) 모월 모일에 광주향교 전교 오인균 사덕(四德) 옛날 여자들이 지녀야 할 네 가지 덕행을 말한다. 사덕에는 곧고 유순한 덕인 부덕(婦德), 온순한 말씨인 부언(婦言), 공순한 몸가짐인 부용(婦容), 길쌈과 음식 조리 등 부인의 일인 부공(婦功)을 가리킨다.(『周禮』 「天官·九嬪」) 通告文右文爲通告事는 婦人이舅姑를섬김에있어 어찌奇事異跡의孝行이있는然後에孝婦라稱하고 夫君을死別함에있서 棄命下從의㤠行이있는然後에㤠婦라稱하리오 舅姑에게 養志養軆의孝行과부군에게 全節寡居의㤠行을갖추면 또한孝㤠婦라稱할수있는것입니다 梁山金門에明國의慈堂인淸州金貞任女史는湖南華閥인 得炫의二女로在家에孝誠이地極하였고 及筓의나이에金桂喆에게于歸後로敬待夫君하고 善事舅姑하여 四德을갖춘婦人으로鄕隣의稱讚이藉藉하였다 夫君이庚寅之亂으로因하여 不幸히一九五0年十月二十一日卒하니 得年이二十五이오 女史의芳年은二十三이라 不意에靑孀이된悲痛을當하여 倉卒無奈라 叩地叫天하고 卽欲下從하였으나 老舅姑在堂하고幼孤兒在襁褓하니 若遂初志 則家事를無依托이라幡然改悟하고 夫君의喪葬祭節을依禮遵行하고以奉舅姑와育孤兒와保家戶의三事로爲己任하여或賃傭或行商으로以做奉老育孤之資하여家計를扶持하니 其間의生活苦焦는難以形言이라 實로全節寡居로奉老育孤한孝㤠婦가아닐수없는故로鄕老族黨間에서그孝烈之行을表彰한바있습니다또한孤子인明國이그慈堂의義方敎育을받아 社會人들로부터信望을받고 두孫子가延大와全大에在學中이니 모두婦人의爲善之福이아니할수없습니다綱倫이斁敗된오늘에있서 婦人의孝烈之行은 世人들의模範이될수있으므로 首善之地에게신成均館長任께서婦人에對한孝烈婦褒彰을하시어勸善興仁之道廣布하여주시기千萬伏望하니이다孔夫子誕降二千五百辛五十三年 月 日光州鄕校典校 吳仁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