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에 공경히 회답합니다.이 글은 통문에 회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찍이 듣건대, 군자서원이 어진 이를 존중하고 선비를 양성하는 유풍(儒風)이 세상에 나타나게 하고 나쁜 풍속을 좋은 풍속으로 바꾸는 교화가 고을에 드러나게 하였으니, 이는 사도(斯道)의 성대하고 지극한 일입니다. 시운이 불행하여 훼철되는 시기를 맞아서 유항재(有恒齋) 김 선생·절효(節孝) 김공·행정(杏亭) 김공 세 선생의 제단을 설치하고 제수를 올려 제사를 지냈습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지난 경자년(1900)에 본손(本孫)의 정성과 노력으로 도내의 사림이 성균관에서 서로 모여서 유장(儒章)이 겨우 완성되어 행정사를 다시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세 현인을 제향하는 의식만 치러지고 서원을 다시 설립하지는 못했으니, 사림들이 탄식하고 자손들이 한탄하였습니다. 귀 군(郡)의 여러 군자께서 학교를 일으켜 풍속을 돈독하게 다지는 데 뜻을 두었으니, 이러한 훌륭한 거사가 있었습니다. 이전 성인의 관복을 입고서 이전 성인의 도를 강마하고 이전 성인의 예를 행하여 도성의 인사들이 보고 느껴서 분발하게 하였습니다.말장(末章)에서 다 말하였으니, 더는 첨언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 공의 이러한 거사가 어찌 숨은 것을 밝히고 은미한 것을 드러내는 매우 유쾌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원근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기운이 백배나 솟을 것입니다. 이 어지러운 시대를 맞아 기존의 시설은 오히려 버티기가 어려울 것인데 추후에 강당과 동재·서재를 건립하여 강학하고 장수(藏修)하며 재숙(齊宿)하게 한다면 서원의 규모가 얼마나 심히 장엄하고 장렬해지겠습니까.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비바람 몰아쳐 어둑한데 닭 울음소리 그치지 않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혹 선비를 숭상하고 도를 높여서 학교를 일으키는 단서가 거의 여기에서 힘입어서 나타날 것이니, 이 날 이러한 거사는 단지 강진 한 고을을 위한 축하가 될 뿐만 아니라 세도를 위한 축하가 될 것입니다.원하건대, 정채(精彩)를 더욱 진작시켜 세 선생의 아름다운 혼백을 사당에 영원토록 모시고, 또 선생의 높은 풍모와 깊은 학식에 힘쓰고 그 가르침을 강마하여 유풍과 여운을 영원토록 변치 않게 한다면 하늘에 계신 선생의 영령이 어찌 너풀너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이 땅에 내려오시지 않겠습니까.1)저희는 어진 이를 존중하는 관점에서 의당 함께 계획하고 함께 힘을 합쳐 미연에 꼼꼼이 대비하는 말도(末道)를 외람되이 맡았지만, 길은 몹시 멀고 자질은 부족하고 어리석어 그저 어진 이를을 존숭하는 마음만 있고 어진 이를을 존숭하는 도는 펴지 못하고 있으니, 묵묵히 이해하고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이상은 강진향교 유림 여러 좌하께 공경히 답통한 것입니다.단군 기원 4341년 무자(2008) 12월 모일에 재단법인 전라남도 향교재단 이사회 이사장 임원택(林元澤), 상무이사(常務理事) 김정진(金丁鎭), 이사 이병기(李秉璣)·허동열(許同烈)·이규형(李圭珩)·기완서(奇梡舒)·박종상(朴宗相)·김욱현(金旭鉉)·박덕재(朴德載)·선창규(宣昶奎)·송종묵(宋鍾默)·정수길(丁壽吉)·최철환(崔喆煥)·박문수(朴文洙), 감사 김정수(金正洙)·정영준(丁永埈), 사무국장 박영욱(朴榮昱), 각 향교 전교 나주 임호순(林昊淳)·남평(南平) 홍석종(洪錫宗)·순천 장영봉(張泳峯)·낙안(樂安) 황재현(黃在鉉)·여영(麗永) 정병화(鄭炳和)·돌산(突山) 문두환(文斗煥)·해남 김금수(金錦洙)·무안 배석오(裵錫五)·지도(智島) 이현웅(李鉉雄)·담양 최낙현(崔洛鉉)·창평(昌平) 조인진(曺仁鎭)·화순 류기모(柳基謨)·능주 홍기평(洪起平)·동복(同福) 정채호(丁彩鎬)· 영광 정대성(丁大聲)·곡성 허진(許津)·옥과(玉果) 한규환(韓圭煥)·광양 정현무(鄭鉉武)·구례 이강한(李康漢)·보성 손동일(孫東逸)·영암 김연채(金然采)·강진 윤기봉(尹奇奉)·함평 김규채(金圭埰)·고흥 손종주(朴從柱)·장흥 김재열(金在烈)·장성 기우천(奇宇天)·진도 박종화(朴鐘華)·완도 박정필(朴正必) 너풀너풀……않겠습니까 세 현인의 영령이 사당으로 내려와서 제수를 흠향함을 말한 것이다.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공께서 잠시도 머물지 않으시어 우리는 눈물 줄줄 흘리오니, 너풀너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이 땅으로 내려오소서.[公不少留我涕滂, 翩然被髮下大荒.]"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古文眞寶後集』 卷8) 敬答通右文爲回通事 曾聞君子書院 卽尊賢養士之儒風顯于世 移風易俗之敎化著於鄕 斯道之盛至矣 時運不幸 當毁撤之際 有恒齋金先生節孝金公杏亭金公三先生設壇妥侑 而祭之何幸 去{迋/山}庚子本孫之誠力道內士林泮館相交 儒章纔成 復設杏亭祠 只爲三賢籩豆之儀未遑書院復設 士林之興歎 子姓之齎恨 貴郡 僉君子有意於興學敦俗樹風 有此盛擧 以先聖冠服講先聖之道 行先聖之禮 伸城內人士有觀感於聳動而已 悉於末章 則不復更贅焉 諸公此擧豈非闡幽發微之大快報也耶 使遠近者不覺增氣百倍耳 當此搶攘 旣存施設猶難支撑 而追建講堂及東西兩齋 而講學藏修齊宿 書院規模何甚壯矣 何其烈也 詩云風雨如晦 鷄鳴不已 或有崇儒尊道興學之端 庶幾賴此而發 則此日此擧非直康津一鄕之賀 乃敢爲世道賀 惟願益振精彩 伸三先生芳魂懿魄 永有妥靈 又勉先生之其高風邃學 講其教 而使其遺風餘韻 永世勿替 則先生在天之靈豈不翩然被髮 而下於大荒也耶 鄙等其於尊賢之地宜乎協謀齊力 忝聽綢繆之末道 而途修夐 蹇拙庸愚 只有尊尙之心未伸 尊尙之道 倘可默會 而恕侑否右敬答通于康津鄕校 儒林 僉尊座下奪君紀元四千三百四十一年戌子除月[財團法人 全羅南道鄕校財團之印]財團法人 全羅南道鄕校財團理事會 理事長 林元澤[全羅鄕校財團理事長]常務理事 金丁鎭理事 李秉璣 許同烈 李圭珩 奇梡舒 朴宗相 金旭鉉 朴德載 宣昶奎宋鍾默 丁壽吉 崔喆煥 朴文洙監事 金正洙 丁永埈事務局長 朴榮昱各鄕校 典校羅州 林昊淳 南平 洪錫宗 順天 張泳峯 樂安 黃在鉉 麗永 鄭炳和 突山 文斗 煥海南 金錦洙 務安 裵錫五 智島 李鉉雄 潭陽 崔洛鉉 昌平 曺仁鎭 和順 柳基 謨綾州 洪起平 同福 丁彩鎬 靈光 丁大聲 谷城 許 津 玉果 韓圭煥 光陽 鄭鉉武 求禮 李康漢 寶城 孫東逸 靈巖 金然采 康津 尹奇奉 咸平 金圭埰 高興 朴從 柱長興 金在烈 長城 奇宇天 珍島 朴鐘華 莞島 朴正必[皮封](前面) 康津鄕校儒林 僉尊下(背面) 財團法人全羅南道鄕校財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