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행정사묘정비문(杏亭祠廟亭碑文) 성균관 통장(成均館通章)성균관 통장이 글은 회유(回諭)하는 것이다. 귀 사우에 배향한 유항재 선생의 크고 넓은 학문과 밝게 나타난 덕행, 그 증손 절효공이 갑자년 이괄의 난에서 24세에 순국하여 하사받은 진무원종일등공신녹권, 행정공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호종의 공과 심기원(沈器遠) 등의 역모를 막은 공으로 받은 영국원종일등공신녹권 등의 공적은 연대가 점차 멀어질수록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새로워진다. 이에 다음과 같이 비문을 짓는다.행정사묘정비명(杏亭祠廟亭碑銘) 【서문 병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 인륜이 넘어지는 것을 붙잡아 일으켰고, 하늘이 사문(斯文)을 망하지 않게 하였기에 묘우(廟宇)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공손히 상고해 보건대, 여기 행정사는 김 유항재(金有恒齋)·김 절효(金節孝)·김 행정(金杏亭) 세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유항재 선생은 출생 때부터 기이한 조짐을 보였다. 어머니가 무후(武侯, 제갈량(諸葛亮))가 나타나는 꿈을 꾼 뒤에 선생이 태어나서 선생의 이름을 량이라고 지었다. 타고난 자질이 영민하고 성품이 순수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자제를 가르치되 엄격하게 하셨다. 어릴 적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 같은 명사 석학들과 종유하면서 날마다 강석에서 성리의 학설을 토론하고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을 손에서 놓지 않고 강마하였으며, 언제나 침착하고 마음이 담박하여 세상의 명리와 화려하고 사치한 것에는 욕심이 없었다.일찍이 사마시에 참방하여 음사로서 차례로 올라가 내자시 직장에 이르렀으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낙향하여 이청련·최고죽 등과 함께 공부하였던 박산(博山)의 이순당(邇順堂)에서 후학들을 계도하는 한편 위기(爲己)의 학문에 더욱 정진하였으니 행의가 드러나고 언제나 한결같아서 세상에서 유항재 선생이라 하였다.인조 2년 갑자년(1624)에 이괄(李适)이 병란을 일으키자 선생의 증손 김호광(金好光)이 분연히 일어나서 금남군(錦南君) 정충신(鄭忠信)의 막하에 종군하여 저탄(猪灘)에서 싸우다가 군량이 떨어지자 여기저기 주선하여 쌀을 모아 먹었으며, 싸움터에 나가 적을 꾸짖고 적진에 뛰어들어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적에게 결박되었다. 이괄의 무리가 동참을 종용하자 호통치며 "신하는 충절을 위해 죽는 것이 떳떳한 일인데, 너희 역적들은 부끄럽지도 않으냐!" 하고 꾸짖다가 적들에게 난자를 당하여 장렬하게 죽었으니 당시 나이는 24세였다. 이듬해 7월 26일에 김류(金瑬) 등과 함께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으로 책록되었는데, 공은 효자로서도 이름나서 절효공(節孝公)이라 하였다.그의 아우 김신광(金伸光)도 타고난 효자로 남다른 공적이 있었고 이괄의 난에서는 17세의 소년으로 형을 따라 정충신(鄭忠信)의 막하에 들어가 저탄에서의 싸움과 경도(京都) 수복 등 많은 공을 쌓았다. 병자호란에서는 인조대왕이 남한산성으로 몽진하실 때 겸사복(兼司僕)의 벼슬을 띠고 호종하였다. 인조 22년 갑신년에는 심기원(沈器遠) 등의 역모를 미연에 막은 공으로 영국원종일등공신(寧國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어 녹권을 받았고, 박천·희천·충주·영천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베풀어 도처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만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은행나무 아래에 정자를 짓고 망북정(望北亭)이라고 하였으니, 사람들이 공의 호를 행정(杏亭)이라 하였다.아, 사람이 충과 효를 겸하기는 지극히 어려운데, 양산 김씨의 삼현(三賢)이 이토록 우뚝하니 모두가 함께 제향하여 남국의 토기(土氣)를 진작시키는 것이 합당하다. 순조 9년 기사년(1809)에 유림에서 발의하자 이론이 없었고 여러 고을의 유림이 메아리처럼 호응하니 강진군 작천면 군자리 행정에 사우를 세워 향사를 지내왔다. 이제 그 묘정비를 세우려고 원임 류한상(柳漢相)과 임원 정길태(丁吉泰)·공련웅(孔鍊雄), 본손 철순(哲淳)·중환(重煥) 군이 나를 찾아와 글을 청하였는데, 나는 그 재목이 아니라며 거듭 사양하다가 간략히 서술하고 이어서 명을 쓴다.명사 석학들과 종유하던 유항재 선생 마음이 맑아서 물욕을 멀리했네.학문에 정진하니 행의는 따라 드높았고 만사에 자강하여 종시 한결같았네.절효공이 의리를 떨쳐 역적을 꾸짖다가 죽음이 오히려 영원한 삶 되었어라.슬프다, 오직 공은 힘이 부족하여 잡혔어도 당당한 그 지조 꺾이지 않았었네.행정공이 뒤를 이어 삼란에 공이 높았고 거쳐 간 고을마다 송덕비 빛이 났도다.행정사묘정비를 세워서 이와 같은 학행과 충성과 효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 어찌 우리 사림들의 책무가 아니리오. 오직 원하노니, 여러 후손과 많은 선비가 본받고 교화되면 몹시 다행이겠다.이상은 양산 김씨 대종회에 공경히 회답하였습니다.신사년 서기 2001년 12월 모일에 성균관장 최창규(崔昌圭)양산 김씨 대종회 귀중에 成均館通章右回諭하는 것은 貴祠宇에配享하신有恒齋선생의 크고넓은學問과밝게나타난德行그孫節孝公의甲子李适의亂에서二十四歲에殉國하사받은振武原從一等功臣錄卷과杏亭公의丙子胡亂때南漢山城에扈從의功과沈器遠等의 逆謀를막은功으로받은寧國原從一等功臣錄券等의功蹟은年代가점차멀어질수록 우러러思慕하는마음은 더욱새로워집니다이때 다음 碑文과 같이杏亭祠廟亭碑銘 幷序道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 人倫이넘어지는 것을 붙잡아 이르켰고 하늘이 斯文을 亡하지 않게 하였기에 廟宇가 빛나는 것을 보겠다 恭遜히 詳考하건데 여기杏亭祠는 金有恒齋金節孝金杏亭세先生을 모신祠宇로서 有恒先生은出生時부터 奇異한 조짐이 있어서 어머니가 武侯를 現夢하시고 태어나니 이름을 亮이라 하였거니와 天資가英敏하고 稟質이純粹하여 父母를 섬김에 精誠을 다하고 子弟를 가르치되 嚴하게하였다 少時적부터 學問에뜻을두고李靑蓮後白崔孤竹慶昌白玉峯光勳같은名士碩儒들과從遊하면서날마다講席에서 性理의學說을討論하고 心經近思錄을손에서 놓지않고 講磨하였으며 언제나沈着하고 마음이淡泊하여世上의名利와華麗하고奢侈한것에는慾心이없었다일찍이司馬試에參榜하여蔭士로서차례로올라가內資寺直長에이르렀으나 벼슬에연연하지아니하시고 落鄕하여 어릴때李靑蓮崔孤竹등과함께공부하였든 博山의邇順堂에서 後學들을啓導하는한편 爲己의學問에더욱精進하니 行義가드러났고 언제나한결같으매 世上에서有恒先生이라하였다仁朝二年甲子에李适이兵亂을이르킴에先生의曾孫金好光이奮然히이러나 錦南君鄭忠信의幕下에從軍하여猪灘에서 싸우다가 軍糧이 떨어지자 여기저기周旋하여 쌀을모아먹였으며 싸움터에나가 賊을꾸짓고 敵陣에뛰어들어힘을다해 싸우다가 賊에게 結縛되었는데 李适의 무리가 同參을종용하자 호통치며 臣子는忠節을위해 죽는 것이 떳떳한 일이거늘 너희逆賊들은부끄럽지도 않느냐하고꾸짓다가 賊들에게 亂刺當하여 壯烈하게죽으니 當時의 나이는二十四歲였다 이듬해 七月二十六日金瑬등과함께 振武原從一等功臣으로 策錄되었거니와 公은孝子로서도 이름나서 節孝公이라하였다그의 아우 金伸光도出天의孝로異蹟이있었고 李适의亂에는 十七歲의 少年으로 兄을따라 鄭忠信의幕下에들어가 猪灘에서의싸움과 京都收復등에많은功을쌓았다 丙子胡亂에는 仁祖大王이南漢山城으로蒙塵하심에兼司僕의 벼슬을띠고 扈從하였고 仁祖二十二年甲申에는 沈器遠등의 逆謀를未然에막은功으로 寧國原從一等功臣에策錄되여 錄券을받았으며博川煕川忠州永川의守令을歷任하면서 愛民善政을배풀어 到處에頌德碑가새워젔다 晩年에는 故鄕으로내려와 은행나무아래亭子를짖고 이름을望北亭이라 하니 사람들이 公의 號를 杏亭이라 하였다嗚呼라 사람이 忠과孝를 兼하기는 至極히 어려운 바이거늘 梁山金氏의 三賢이저토록卓然하니 一體同享하여南國의士氣를 振作시킴이 合當하다하고 純祖九年己巳에 儒林에서 發議하자 異論이없었고 列郡의儒林들이響應하니 康津郡鵲川面君子里杏亭에祠宇를새워 享祀하여왔다 이제 그廟宇碑를새우려고 院任柳漢相과任員丁吉泰孔鍊雄本孫哲淳重煥甫가나를 찾아와 글을 請하매 나는 그材木이아니라고 거듭辭讓하다가 簡略히敍述하고 이어서 銘을 하니名士碩儒들과從遊하던有恒先生마음이 맑아서 物慾을 멀리했네 學問에 精進하니 行義는따라드높았고萬事에自强하여 終始한결같았네節孝公이奮義하여 逆賊을꾸짖다가죽음이 오히려永遠한 삶되었어라슲으다 오직공은 힘이 부처잡혔어도堂堂한 그志操꺾이지 않았었네 杏亭公이 뒤를 이어 三亂에功이높았고거처가신고을마다 頌德碑빛이난다杏亭祠廟庭碑를새워서 이같은學行과忠誠과孝誠이 世上에널리알려지도록하는 것은 어찌우리士林들의責務가않이리오오즉願하노니 여러後孫과多士들이본받고敎化되면 幸甚이겠나이다右는梁山金氏大宗會敬答합니다辛巳年 西紀二千一年 十二月 日成均館長崔昌圭[成均館長之印]梁山金氏大宗會 貴中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58~1960년 행정사(杏亭祠) 의연록(義捐錄) 고문서-치부기록류-원납기 杏亭祠 강진 군자서원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8~1960년에 작성한 杏亭祠 建築時 기부금 내역인 義捐錄. *표제지: 自戊戌九月日至己亥月日 杏亭祠建築時 *張數: 15張 *표제지나 문서 시작부분에는 기해년까지라고 기록되었지만 실제 기록은 경자년 정월까지 되어 있음. *무술년은 1958년, 경자년은 1960년으로 확인. *형태사항: 성책(假綴)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58~1959년 의연록(義捐錄) 고문서-치부기록류-원납기 杏亭祠 강진 군자서원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8~1959년에 작성한 기부금 내역인 義捐錄. *1958~1960년 杏亭祠 義捐錄(고문서ID69)의 초반부 일부 내용 일치함. *문서명: 내용에 의함. *표제지 없음. *형태사항: 성책(假綴)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晩羲集跋 此綾城故進士晩羲梁公遺稿也公生有異稟聰穎出衆書過目輒成誦經經緯史講究心性羣書旁涉諸子百家晩喜羲易仍以自號寓其志焉其爲文宏贍暢達譬猶源遠瀾盛經學志大衍推策隨錄等書槩可傅後歌吟賦詠全書中居多而燁燁葩藻陶寫性情絶無俗塵羶葷習氣可擅一代偉作之名也懷抱瓌奇僅成小科無所展布齎志而歿信所謂詩能窮人而咳唾明珠落在人間將自此永久而流芳則抑亦詩能達人未見其窮者歟公之從曾孫在慶有志士而纂次公遺稿謀付剞劂命其族姪會一齎書崎嶇訪到坡山徵余有以志之夫以不佞畢生乾沒顧安能爲役於此而請固不獲辭取閱是集竊有所感于中者六書鄭寢郞基軾卽卷中人而余之故友也記曾追隨會賢之社每誦傳公詩往往逼古心焉嚮往而恥不識面者雅矣今以詩文驗之氣象亦略可見而公之逝世三十年餘且六書之墓木已拱獨余寄世年迫古稀悽然振觸山陽之笛並書此于卷末而歸之歲乙未仲夏上澣夏山成大永謹跋吾鄕古稱多文學之士盖其淵源自靜庵趙先生始而靜庵道義之交學圃梁先生得其宗焉家世累仁後昆之名公碩儒指不勝屈近有晩羲先生克趾先美姿稟魁奇德義崇茂菀然爲湖左模楷第其文章造詣固非後生之所敢涯涘嗟乎氣數所關不得蜚英於世固守雲林有畎畝囂囂之樂以訓誨後進爲已任凡我一方之冠儒服儒者孰非擩染我先生之澤哉韓文公曰鄕先生沒可祭於社者其斯之謂乎先生平昔著述甚多其胤子相秉氏收拾若干篇藏之巾衍未及成帙遽已下世今其從曾孫在慶甫編摩全帙辦謀鳩財將付剞劂用壽其傳以詩集屬余刪定自惟孤陋末學何敢贊一辭於其閒乎且況命綴數語于下尤有所萬萬不承當者但今世知先生熟而服先生深者莫余如也余不忍終辭謹書之如右云旃蒙協洽夬之下浣門人延昌安澈煥謹跋在慶嘗恨先世遺蹟多散逸不傳積年搜索得諸先公各項文爲若干篇己丑春又閱晩羲先生舊日巾衍見蠧蝕紙爛頗多散逸不覺嗚咽成泣乃使先生曾孫在天旁求諸家拾其遺補其闕與舎弟在基參互訂裁總爲十二編年譜撰出於先生所著自敍中櫽栝增損遺事追記於父兄師友之遺傳而校書掃塵古人所歎謏聞寡見恐有差誤抱書往松沙奇參奉聽其校勘與門人知舊以爲壽傳之計已有年所一經搶攘大事不可以緩將謀鋟梓以乙未二月設役于雙峯族叔天默氏崔斯文鉉埴終始幹役至五月而訖功此豈一門之計實爲士林之幸噫事巨力綿所著經學志未及倂刊豈非盛事之一欠耶然事之遲速時之早晩亦關氣數則又安知不有待於後人耶敢以是語贅于卷末使知勉焉崇禎後五回乙未仲夏日從曾孫在慶謹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黃鎭環 亭高屹立別開天大義當當瑞氣連愛族精神深似海爲邦思想固如泉遺文歷歷千秋鑑潛德依依一世邊賢仍代代無窮祝繼繼承承幸福傳【善山郡高牙面五老洞一五六】 海隱黃鎭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申基沅 畵棟如飛煥暎天亭名三棣遠方連溫凉均適秋惟夏濕漏何侵雨與泉五代遺基添有色八奇勝勢浩無邊許多槿域樓亭屋福內玆軒信久傳【盈德郡蒼水面仁良洞】 雲谷平山 申基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양산김씨(梁山金氏) 세계(世系)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강진 군자서원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시조부터 40세까지 양산김씨 세계를 정리한 책. *형태사항: 절첩(접은크기: 12.3×8.5) *일부 훼손되어 훼손부위에 흰 종이로 덧댄 상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820~1868년 행정사(杏亭祠) 집강안(執綱案) 사본 고문서-치부기록류-분정기 杏亭祠 강진 군자서원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0~1868에 작성한 杏亭祠 執綱案의 복사본. *형태사항: 성책(복사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三棣亭上樑文 觀夫天下方歸於民主社會而彝倫絶人間急進于科學文明而物質猖地動天靜之學來自歐亞習而爲常女尊男卑之風延蔓朝野行者是法竊惟南平文氏之三兄弟蒙得衣被生靈之特祖先有若雙岩公之積功得吉岡爲千世基業襲承厥顯考之至孝救母病及五年如一義慈門戶成士夫之風和樂且耽永寢食之共際玆世變滋甚日遷月異所以營生不無東住西移回想三昆之長曰友堂與吾一甲之益而同志及其慈母之疴沈而且㞃廣試名醫之術遍或無遺厥兄斫指血灌命門兩弟同心誠透神闕閻王命曰子書傳爾死母甦言冥府送吾以此延命三十年之譚豈非世傳百千代之美嗚呼天錫爾類兒孫承其步武地延福基學仕散在京鄕每當父母生辰披忙咸來至若祖先忌日雖遠必集餘慶之家必有首丘難忘發祥之地豈無遺蹟可觀於是三雁齊翎群鳳隨唱其要在父敬于桑子敬于梓永懷惟兄揷之茱弟揷之萸乃自乙丑始營其謀至于丙寅功迄得吉福內山川元是此家之住圓峰日月特傳斯域之明及其棟樑各稱其謀匠石合發其技乃助六偉而歌曰兒郞偉抛梁東鳳巢臺上日輪紅有人若問誰家物三棣花明百世風兒郞偉抛梁西帽峰蒼翠四時齊巓頭惟有松兼石高節不因霜雪低兒郞偉抛梁南鷰子飛來語喃喃主人完構此堂後福降五兮綱振三兒郞偉抛梁北群雁遙回天塞極假使鳳凰至未期隨時南北惟吾職兒郞偉抛梁上萬物俱涵天地養雖有滄桑變萬千孰非生育因親兩兒郞偉抛梁下行人觀望停其馬歸家式好興仁人取法無非於此者伏願上樑之后乾坤定位日月增輝綱常立而道德整然出處明而災祥不忒夫唱婦隨萬邦取法父慈子孝千代流芳是三棣亭之發英實一槿域之回運安南山人李玟秀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三棣亭記(1) 惟寶城北福內三棣亭云者는文友堂昌植甫와外與弟松窩東植松雲丙植三昆季의式相攸好之所하니取詩小雅常棣之義也라蓋友堂은三憂堂先生之賢孫이오安公晦峰之門人으로慕古好學하고與二弟로惇孝悌之行하야曾於親患之劇에相繼斫指하야甦延天命하고而爲先하야貶衣節食하야置祭田具石儀建齋舍하고其他淳懿德行을不可枚擧而受郡民賞과及泮長表彰하니信無負名祖賢師之訓者也라晚置一亭於舊庄하고立朝夕相會하야講討做人書하니勗率初하고上述先業하며下啟貽謨則亭之命名之義가尤不生新哉아不然則末矣라友堂은余要友也라文忠祠享時에語其事於余어늘余不敢當而心好之러니今丙植君이遠來하야懇屬記하니無已則曰方且世衰道微하야倫理晦塞而自友堂三昆季로孝悌之風이更明則何幸如之오願諸君子는益加勉焉하야至於景勝則不暇及而未知早晚登臨에有浥其清風高節耶아是爲記하노라戊辰端陽節 恩津宋廷憲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16년 김춘봉(金春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金春鳳 長興都護府 강진 군자서원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 16)에 래덕도(來德島) 대평리(大坪里)에 사는 김춘봉이 장흥부에 제출한 호구단자 1813년(순조 13)에 래덕도 대평리 제2통 2호에 사는 환부(鰥夫) 김춘봉이 장흥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호주 김춘봉의 본관은 양산(梁山)이고, 갑인(1734)생이다. 당시의 나이는 84세로 기록되었으나 생년으로 보면 김춘봉의 나이는 83세이다. 가족으로는 아들 김우주(金佑周, 49세)가 있다. 김춘봉의 외가는 해남윤씨이다. 사조(四祖)의 직역을 보면 김춘봉의 아버지와 조부는 유학(幼學)이고, 증조부는 진해 현감을 역임한 김여석(金汝錫)이다. 소유노비는 비(婢) 1구가 있다. 남면 신정리는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대리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來德島大坪里第二統第二戶 幼學鰥夫金春鳳 年八十四甲寅 本梁山父 學生 玧昌祖 學生 有聲曾祖 贈通政大夫行鎭海縣監金海鎭管兵馬節制都尉 汝碭外祖 學生尹弘濟 本海南率子 佑周 年四十九戊子賤口秩 婢雪云德 年五十戊寅丙子式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2008년 문충식(文忠植)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君紀元四千三百四十一年戊子蜡月日 幼學 文忠植 等 15人 康津鄕校 儒林 僉座下 檀君紀元四千三百四十一年戊子蜡月日 文忠植 康津鄕校 儒林 강진 군자서원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B001_01_A00038_001 2008년에 유학(幼學) 문충식(文忠植) 등 15명이 강진향교(康津鄕校) 유림(儒林)들에게 보낸 통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공경히 통지합니다.이 글은 공경히 통지하는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 자는 반드시 선사에게 석전례(釋奠禮)를 드린다."라고 하였습니다. 범문정공(范文正公, 범중엄(范仲淹))의 고소의숙(姑蘇義塾)과 주신재(周愼齋, 주세붕(周世鵬))의 백운서원(白雲書院)이 모두 어진 유자들로 천추에 밝게 빛났던 까닭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본 면에는 군자서원(君子書院) 행정사(杏亭祠)가 있습니다. 양산 사람 김 선생은 휘가 량(亮), 자가 명중(明仲), 호가 유항재(有恒齋)로 문정공 맹(猛)의 후손이고 좌랑 명규(命珪)의 아들입니다. 선조조에 내자시 직장에 제수되었지만 나아가지 않고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습니다. 문장과 도학이 뛰어나서 당시 이름난 석학 이 청련(李靑蓮)·최 고죽(崔孤竹)·백 옥봉(白玉峰)·임 석천(林石川)·기 고봉(奇高峯) 등 여러 공과 날마다 종유하며 경의(經義)를 강마하여 세상에서 중망을 받았습니다.또한 그 증손 호가 절효(節孝)인 호광(好光)은 인조 때 이괄의 변란에 의병을 일으켜서 난리를 진압하다가 끝내 순국하여 진무원종일등(振武原從一等)에 녹훈되었습니다. 그 아우 신광(伸光)은 자가 원숙(願叔)이고 호가 행정입니다. 그는 인조 때 세 변란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는 많은 공훈을 세워서 관직이 충주 목사에 이르렀고 영국원종일등(寧國原從一等)의 공훈에 책록되었습니다. 군자서원 행정사는 이 세 현인을 제향하는 곳입니다. 서원과 사우의 명칭은 지명을 따라 뜻한 것입니다. 마을은 군자리이고 동은 행정동입니다. 유항재 공의 깊은 학식과 높은 식견, 행정공의 위대한 공훈과 절의는 참으로 한 고장의 종주가 됩니다. 그런데 군자리라는 명칭과 행정동이라는 호칭이 만일 진실된 것이 아니라면 명칭과 호칭에 드러나 어찌 리와 동에까지 미쳤겠습니까.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유학을 숭상하고 도를 중시하는 것은 나라의 떳떳한 법이고 사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사림의 공의입니다. 군자서원은 지난 순조 20년 경진년(1820)에 본 고을의 사론이 제향하자는 뜻으로 엄준히 발의하여 당우가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고종 무진년(1868) 당우가 훼철되었을 때는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다가 이후에 매우 다행스럽게도 경자년(1900)에 본손의 정성과 노력, 도내의 사림과 유생이 함께 유통(儒通)을 계획하여 여러 고을의 향교와 성균관의 회통을 얻어 겨우 신실(神室)을 복원하고 '행정사'라 편액한 이후로는 서원을 복원할 겨를이 없어 후손들이 한탄하고 사림이 탄식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이에 요사이 후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재물을 모았지만 살림은 가난하고 후손은 잔약하며 사업은 거대한데 힘은 부족하여 막대한 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사가 고생스럽게도 여러 차례 관아에 보고하고 요로(要路)에 청원하였습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정부의 지원금을 얻어 방책을 계획하고 중건을 도모하여 당 하나에 재실이 두 개가 되었으니, 당은 의춘당(宜春堂)이라고 하고 동재는 애일재(愛日齋)라고 하고 서재는 망신재(忘身齋)라고 하였습니다. 또 관리사무실과 부속건물을 건립하여 '군자서원'이라고 총칭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선비들이 읍양(揖讓)하고 장수(藏修)하는 장소가 되고 한편으로는 후손들이 만년토록 갱장(羹墻)하는 당실(堂室)이 되었습니다. 그 규모와 시설은 거대하게 갖추어져서 건물은 새롭게 모습을 바꾸고 산천은 더욱 빛이 납니다. 애석하게도 예스럽지 않고 은전은 아직 받지 못했지만 이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니, 명실공히 복원되었다고 할 만합니다.훌륭하고 성대합니다. 참으로 자손으로서 추모하는 정성을 펼칠 뿐만 아니라 유자의 관을 쓰고 유자의 옷을 입은 자 누군들 흠모하고 탄복하여 제사를 받들지 않겠습니까. 노나라의 글 읽는 소리가 오히려 풍진 속에서 다시 들릴 것이고, 우리 도의 한 줄기 양맥(陽脈)이 다시 밝아지는 소식이 앞으로 이곳에서 그 조짐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처럼 서원의 명칭이 복원된다면 진실로 사문(斯文)의 큰 다행일 것입니다. 저희는 본 서원의 말학(末學) 출신으로 머리를 들고 어깨를 곧추세우는 거사를 이에 감히 우러러 청합니다. 여러 군자께서는 더욱 실지를 밝혀서 명칭을 회복하고 현판을 변경해 주기를 몹시 바랍니다.이상은 강진향교 유림 여러 좌하께 공경히 통지하였습니다.단군 기원전 4341년(2008) 무자 12월 모일에 문충식(文忠植)·김권수(金權洙)·마옥남(馬玉南)·박병채(朴炳埰)·김용근(金容根)·김영수(金永壽)·김재익(金在益)·김상열(金相烈)·김권묵(金權黙)·장의수(張義秀)·이근성(李銀性)·김용두(金容斗)·김원선(金元善)·김국현(金國鉉)·김득환(金得煥) 등이 재배합니다.뎨김 : 이 통문을 살펴보니, 군자서원의 시설과 규모가 확장되어 장수유식(藏修遊息)하는 서원의 모양새에 합당하니, 명호(名號)에 따라 편액을 변경하는 것이 마땅하다.21일에 전교(典校) 윤기복(尹奇奉) 敬通右文爲敬通事 記曰始立學者必釋奠于先師 所以范文正公之姑蘇義塾周愼齋之白雲書院俱以賢儒炳然千秋 良由以也 本面君子書院杏亭祠則梁山人金先生諱亮字明仲號有恒齋文正公諱猛后佐郞諱命珪之子 宣祖朝除召 而內資寺直長不就 事親至孝 文章道學當時名碩李靑蓮崔孤竹白玉峰林石川奇高峯諸公日常從遊 講磨經義 推重于世 且其曾孫好光號杏亭〔節孝〕仁庙适變仗義撥亂 身竟殉國 振武原從一等勳 其弟伸光李亭字願叔號節孝〔杏亭〕仁庙三亂 屢立戰功 丙胡亂多有勳勞 官至忠州牧使 策錄寧國原從一等勳之三賢尸祝之所也 院祠而名 則因地而義也 里曰君子 洞曰杏亭 有恒齋公之邃學高識杏亭公之偉勳節義實爲一鄕之宗主 而君子里之稱名 杏亭洞之傳號 若非實眞的 則表著于名號 豈及於里與洞也哉 窃念崇儒重道邦家之常典也 建祠腏籩士林之公議也 君子書院則去{迋/山} 純庙二十年庚辰本郡士論峻發以俎豆之意 堂宇俱成 以且丁高庙戊辰毁撤之際設壇之祭後何幸於庚子本孫之誠力 乃道內土林章甫協謀儒通 得列郡鄕校及成均館回通 只以纔復神室而扁云杏亭祠 以來未遑書院復設 雲仍之茹恨士林之齎咨 興歎有年矣 幸玆昨今子姓而鳩財于誠 蓽生孱孫事巨力絀 巨大經費辨出無路 有司賢榮 而累次告官 請願要路 何幸得政府支援金 指劃方畧圖以重建一堂兩齋 堂曰宜春 東曰愛日 西曰忘身 又有管理舍及附屬舍 總顔曰君子書院 一以爲士子揖讓藏修之所 一以爲後仍萬世羹墻之堂室 其規模施設宏且備矣 輪奐改觀 山川增色 惜哉不古 而未蒙恩典 舊貌更覩 可謂名實共而復元矣 猗歟盛哉 寔不翹爲雲仍者伸其追慕之誠 而冠儒服儒者孰不欽服 而裸將矣 魯城絃誦猶可復聞於風塵 而抑吾道一線陽脈重煕之消息將兆朕於此歟 如此書院之名復元 則實斯文之大幸矣 鄙等本書院末學出身 而翹首而聳肩之擧 玆敢仰請 僉君子益加覈實 復名改扁之地千萬幸甚右敬通于康津鄕校 儒林 僉座下檀君紀元四千三百四十一年戊子蜡月 日 幼學 文忠植[文忠植印] 金權洙[金權 洙印] 馬玉南[馬玉南印] 朴炳埰[朴炳埰印] 金容根[金容根印]金永壽[金永壽印] 金在益[金在 益印] 金相烈[金相烈] 金權黙[金權黙] 張義秀[張義秀]李銀性[李銀性] 金容斗[金容斗] 金元善[金元善印] 金國鉉[金國鉉印] 金得煥 等再拜觀此按狀 君子書院施設規模 廣敝藏修 宜合院貌名號改扁 宜當決向事卄一日 典校 尹奇奉[康津鄕校典校之印][皮封](前面) 康津鄕校 儒林僉座下(背面) 發揚文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2008년 신두천(申斗千)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君紀元四千三百四十一年戊子十二月日 成均館儒道會全羅南道支部 會長 申斗千 等 24人 康津鄕校 儒林 僉座下 檀君紀元四千三百四十一年戊子十二月日 申斗千 康津鄕校 儒林 강진 군자서원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B001_01_A00038_001 2008년에 성균관유도회전라남도지부회장(成均館儒道會全羅南道支部會長) 신두천(申斗千) 등 24명이 강진향교(康津鄕校) 유림(儒林)들에게 보낸 통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金炳洙 三棣亭高福內天玲瓏八景保斯連會談餘興圍碁局散策閒情飮藥泉枝葉俱沾甘露裡裔孫序立瑞霞邊弟兄行績誰非羨只祝名聲世世傳【三陟郡三陟市十五統五班】 海隱金海金炳洙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全烘 弟兄同伴湖南天崇祖精神後世連雲外靑山紛散霧石間綠水潺流泉寄生萬物千峰裡別有名區八景邊借問仙遊何處在棣亭歸家奇言傳【旌善郡南面武陵四里一班】 商隱旌善全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기타

高昌柱 棣亭和意已通天天降祥祺代慶連不變勝光兼石榻無窮景色幷林泉場中濶畵仁山下域內淸明樂水邊華閥南平從此赫令名藉藉遠方傳【旌善郡旌善邑鳳陽八里三班】新岡濟州高昌柱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