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이 글은 통지하기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효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 되고 삼강(三綱)의 첫째가 되니, 어찌 아름답고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귀 읍의 고 사인(士人)은 허관(許寬)은 세덕(世德)을 논한다면, 문경공(文敬公) 휘 공(珙)의 14대손·대제학 휘 부(富)의 12대손·진사공 휘 창(淐)의 증손입니다. 공은 명가의 후손으로 품성이 순수하고 효성스럽고 집안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한데 숙수(菽水)를 계속 대기가 어렵게 되자 산에서 땔나무를 하고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맛있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뜻을 봉양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 드리고 새벽에는 안부 인사를 올림으로써 예법을 부지런히 힘썼으니, 누군들 공경하지 않고 탄복하지 않겠습니까.부친이 연로하고 편찮으셔서 목숨이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허벅지살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서 부친께 먹여 며칠간 다시 살 수 있게 하였지만, 천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갑자기 숨을 거두자 슬퍼하고 몸을 상한 정상과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는 애통함은 듣는 이들이 감동하고 보는 이들이 탄복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송하는 절차는 고례를 준수하고, 시묘살이한 삼 년 남짓 동안 가래나무를 붙잡고 통곡하여 나무가 말라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매번 밤이 되면 어떤 범이 찾아와 그 곁에 머무르며 호위하듯 지켰는데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삼 년간 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까닭은 타고난 천성이 사물에 감응한 효성 때문일 것입니다. 아, 허관이여. 이 어찌 아름답고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까.더구나 다시 그 아내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남편의 효행을 준수하여 품팔이하여 부모님께 이바지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음이 없었고, 죽은 이를 장송하는 절차에서는 슬퍼하고 몸을 상한 정상과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는 애통함이 끝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시묘살이할 때 아무리 모진 추위와 심한 더위에도 날마다 반드시 한 번 찾아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옛날에도 드문 가정의 행실이니, 사림의 공의에 있어 어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러러 통지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여러 군자께서는 법사(法司)에 품달하여 서둘러 정려문을 세울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몹시 바랍니다.이 글은 광주향교에 공경히 통지하는 것입니다.1873년 5월 모일에 나주향교 발문(發文) 유학 양시모(梁時模)·류기진(柳基鎭)·오승룡(吳承龍)·임유상(林有祥)·나군집(羅群集)·박기석(朴箕錫)·오응휴(吳應休)·송내옥(宋乃玉) 등 通文右文爲通諭事 夫孝者百行之源 三網之首也 豈非美且大哉 貴邑故士人許 寬論其世德則文敬公諱 珙之十四代孫大提學諱 富之十二代孫進士公諱淐之曾孫也 以名家后裔稟性純孝 家貧親老 菽水難繼 山而樵焉 水而漁焉 甘旨之供 以養志爲先務 晨昏定省之節以禮法爲勤務 孰不欽仰 孰不歎服乎 其父親以老病 命在幾絶 割股斷指 飼之而迴甦數日 天命奈何 奄及屬纊 哀毁之狀 擗踊之痛 聞者感見者服 送終之節 克遵古禮 居廬三年 攀楸痛哭 至於樹爲之枯 每有夜虎來到身傍 有若護衛 而少無畏忌 如是至於三年 此出天感物之孝也 嗟哉 許 寬豈非美且大哉 况復其妻光山金氏克遵其夫之孝行 傭以供父母也 甘旨之供 無不適志 至於送終之境 哀毁之狀 擗踊之痛 罔有紀極 其夫㞐廬之時 雖祈寒盛暑 日必一往 終始不怠 此實自古罕有之行家也 其在士林之公議 未可以含嘿在之 故仰諭 伏願僉君子稟達法司 急爲棹楔之地千萬幸甚右敬通于光州鄕校癸酉五月 日羅州鄕校發文幼學 梁時模柳基鎭吳承龍林有祥羅群集朴箕錫吳應休宋乃玉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