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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대왕 만장 宣宗大王輓章 큰 덕은 분명코 큰 명에 응하니구오의 비룡에서 때로 용을 타는 것331)을 보누나.크고 어려운 선대의 업 물려준 것332)을 참으로 알아초기부터 더욱 전전긍긍하였어라.몸소 만기를 다스려 한가로운 때가 없고구중궁궐에 거처하며 봄날의 얼음을 걷는 듯하였네.333)충성을 다한 진언을 받아들여 유악에서 도움을 받았고도를 논하여 나라를 다스림은 고굉의 신하에 책임 지웠네.다스림을 지극히 하면서도 온화함에 힘썼고때에 맞는 정사하여 태평성대 기약하였어라.임금의 정성 영토의 한계에 막히지 않아황제의 돌아봄을 많이 받아 하사함이 많았네.열 줄의 조서에서 보전334)을 겸하여 선포하였고아홉 층의 하늘에서 용포를 또 내려주었어라.삼한이 모두 인륜이 펼쳐진 것을 경하하였으며만 백성이 함께 고귀한 호칭 칭송함을 기뻐하였네.길흉은 다만 자신이 초래하는 것335)이라 누가 말하였는가어찌 막힘과 형통함이 서로 갈마드는 것과 같겠는가.고래336) 헤엄쳐 풍파가 일어나니 잠시 놀랐지만번개 후려쳐 우주가 맑아짐을 곧바로 보았어라.성덕을 옥처럼 다듬어서 아름다움이 이에 이르고황은이 하늘처럼 덮어주니 감사함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오직 대의 따라 중하를 높이더니마침내 커다란 토대로 중흥의 기틀 마련하였어라.봉황 수레는 창오의 들판337)을 순수(巡狩)하지 못하고용의 누대에서 기나라 하늘이 무너진 것338)을 통곡하누나.어떤 신하가 금등의 점339)을 본받을 것인가유명은 옥궤340)에 기대어 밝게 드리우셨네.비전341)으로 창덕궁을 중수하였고유궁은 건원릉342)의 옆에 두었어라.천박하고 미천한 신하가 지우를 받아예전 궁궐에서 벼슬살이 하였었지.늙고 병듦을 속이고 동패를 몇 년 찼었던가중년에 은혜로운 부름에 은대로 달려갔었네.변부의 영광을 내려줌도 참으로 분수 넘치는 일이라초상에 달려가 통곡하여도 애통을 풀길이 없어라.대전에서 새로운 해와 달을 처음 보았을 때안중에 오히려 옛날의 법도인가 하였네.다행이 지금 성상의 효도가 전대 왕보다 빛나니다만 영령께선 만만대 이어질 걸 도모해주길 바라네. 大德端宜景命膺飛龍九五睹時乘迪知先業投艱大粤自初年倍戰兢躬御萬機無暇日身居九闕若春氷盡忠納誨資帷幄論道經邦責股肱致理務令和氣在措時期見大猷升宸誠不隔封疆限帝眷偏承錫賚增寶典兼宣十行詔龍袍又下九霄層三韓均慶彝倫敍萬姓同欣顯號稱誰道吉凶惟所召爭如否泰有相仍鯨奔暫駭風波動電掣旋看宇宙澄聖德玉成休式至皇恩天覆感何勝只緣大義尊中夏竟致丕基有再興鳳駕不因梧野狩龍樓已哭杞天崩有臣誰效金縢卜遺命昭垂玉几憑閟殿重修昌德闕幽宮側近健元陵微臣譾薄承知遇禁闥趨蹌記昔曾銅佩幾年欺老病銀臺中歲赴恩徵紆榮邊府誠非分奔哭初哀痛未能殿上載瞻新日月眼中猶是舊觚棱幸今聖孝光前烈惟祝靈圖萬萬承 구오의……것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오(九五)〉에서 "나는 용이 하늘에 있는 것이니, 대인을 만남이 이로우니라.[飛龍在天 利見大人]"라 하였고, 그 〈단사(彖辭)〉에서 "때로 여섯 용을 타고서 천도를 운행하나니라.[時乘六龍, 以御天.]"라고 하였다. 선조가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을 말한다. 크고……것 《서경》 〈대고(大誥)〉의 "짐에게 크고 어려운 짐을 맡긴다.[遺大投艱于朕身]"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왕위를 잇는 것을 가리킨다. 봄날의……듯하였네 《서경》 〈군아(君牙)〉에 "내 마음의 근심되고 위태로운 것이 마치 범의 꼬리를 밟은 듯, 봄날의 얼음 위를 걷는 듯하다.[心之憂危 若蹈虎尾 涉于春氷]"라는 말이 나온다. 보전 종계변무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즉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명에서 고쳐준 것을 가리킨다. 길흉은……것 《춘추좌전》 양공(襄公) 23년조에 "화와 복은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르는 대로 온다.[禍福無門, 惟人所召.]"라고 하였다. 고래 흉포한 왜구를 비유한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임강왕절사가(臨江王節士歌)〉에 "장사는 분노하는데 큰 바람이 일어난다. 어이하면 의천검(倚天劍)을 얻어서 바다 건너 큰 고래를 벨거나.[壯士憤 雄風生 安得倚天劍 跨海斬長鯨]"라고 하였다. 창오의 들판 '창오(蒼梧)'는 순(舜) 임금이 승하한 곳이다. 《사기(史記)》 〈오제기(五帝本紀)〉에 "순이 제위(帝位)에 오른 지 39년에 남쪽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었으므로 강의 남쪽 구의산(九疑山)에 장사 지냈다."라고 하였다. 기나라……것 원래는 기우(杞憂)의 의미였는데, 여기서는 임금이 죽은 것을 가리킨다.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기나라의 사람 중에 천지가 무너져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질까 걱정하여 침식을 폐한 사람이 있었다.[杞國有人 憂天地崩墜 身亡所寄 廢寢食者]"라고 하였다. 금등의 점 금등은 《서경(書經)》의 편명(篇名)이다. 《서경》 〈금등〉에 의하면, 무왕(武王)이 일찍이 병들어 위독했을 때, 주공(周公)이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선왕(先王)께 기도할 적에 먼저 남향으로 세 단(壇)을 만들고, 세 단의 남쪽에 또 단 하나를 만들어 주공이 여기에 북향하고 서서 손수 규(珪)를 잡고 태왕(太王), 왕계(王季), 문왕(文王)에게 기도를 마친 다음, 세 거북으로 점을 쳐 보니 길하여, 바로 그다음 날에 무왕의 병이 나았던 바, 사관(史官)이 그 축책(祝冊)을 쇠사슬로 동여맨 궤(匱)에 넣어 두었던 데서 이 글의 편명을 〈금등〉이라 했다고 한다. 옥궤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임종(臨終)할 때 옥궤(玉几)에 기대어 강왕(康王)에게 유명(遺命)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비전 원래 깊은 궁궐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왕의 궤연(几筵)을 뜻한다. 건원릉 태조 이성계의 왕릉으로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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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의 회계 備邊司回啓 임진왜란 때 북방 사람들이 나라를 배반하고 왜적을 맞이하였는데, 왕자가 사로잡히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당시 의병을 일으켜 토벌하고 평정하는데, 평사(評事) 정문부(鄭文孚)의 공이 으뜸이었습니다. 본도에서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충성을 바친 인사들이 비록 국가에서 포상하는 은전을 입었지만, 어떤 이는 공은 큰데 상은 가볍고 어떤 이는 누락되어 은혜를 받지 못한 자도 있기에 조정의 관료 사이에서도 이것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감사가 변방을 순행할 때 공론을 채방하여 이렇게 계문 하고서 그들을 뒤미처 포상하여 이곳 민심을 고무시키려 하니, 그 의도가 참 훌륭합니다.뒤에 기록한 내용 가운데 감찰(監察)에 추증된 이붕수(李鵬壽) 등 일곱 사람과 참판(參判)에 추증된 유응수(柳應秀) 등 세 사람은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증직(贈職)14)하도록 하고, 그 봉사(奉祀) 자손 가운데 기용할 만 한 자를 지명하여 계문하라고 하였습니다. 유생 김려광(金麗光) 등 다섯 사람과 출신 주응무(朱應武) 등 다섯 사람의 집에 세금을 면해 주는 일은 본도에서 거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자손 가운데 천역을 하는 중에 봉사하는 한 사람은 또한 지명하여 계문한 뒤에 품의하여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으로써 이문(移文)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아뢴 대로 윤허한다.을사년 12월 20일. 壬辰倭亂時, 北邊之人, 背國迎賊, 至於王子被執, 其時倡義討平, 評事鄭文孚爲首功, 而本道同事效忠之士, 雖蒙國家褒賞之典, 或有功鉅而賞輕者, 或有見漏而未霑者, 朝紳之間, 亦多以此爲言。監司巡歷邊上, 採訪公論, 有此啓聞, 欲爲追奬激勸之擧, 其意有在。後錄中贈監察李鵬壽等七人, 贈參判柳應秀等三人, 令該曹贈職, 其奉祀子孫可用者, 指名啓聞, 儒生金麗光等五人及出身朱應武等五人復戶事, 自本道擧行, 其子孫之爲賤役中奉祀一人, 亦爲指名啓聞後, 稟處宜當。以此回移何如。啓依允。乙巳十二月二十日。 증직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부친, 조부, 증조부나 또는 충신, 효자 및 학행이 높은 사람에게 사후에 벼슬과 품계를 추증하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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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가 있어 有感 농 땅 위의 늙은 제갈량9) 隴上老諸葛위수 가의 젊은 강태공10) 渭濱少太公호랑이처럼 한번 휘파람을 부니 如令虎能嘯차가운 긴 바람이 일어났네11) 冽冽起長風 隴上老諸葛, 渭濱少太公.如令虎能嘯, 冽冽起長風. 농 땅 …… 제갈량 〈출사표(出師表)〉에 "5월에 노수(瀘水)를 건너 깊이 불모의 땅으로 들어갔다.[五月渡瀘, 深入不毛.]"라고 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농(隴) 땅으로 제갈량이 위나라를 북벌하면서 농에서 출병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 위수 …… 강태공 위수는 섬서성(陝西省) 대려현(大荔縣)에 있는 강으로 태공(姜太公)이 낚시질하던 곳이다. 강 태공의 이름은 상(尙)인데, 위수 가에서 낚시질하다가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사부(師傅)로 기용되고, 문왕이 별세한 뒤에는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천자국으로 만들었다. 호랑이처럼 …… 일어났네 호랑이가 한 번 으르렁거리면 바람이 일고 한기(寒氣)가 생긴다는 뜻으로, 전하여 영웅이 때를 만나서 분기(奮起)하는 것을 비유한다. 왕포(王褒)의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에 "호랑이가 울부짖자 골짜기에 찬 바람이 일어난다.〔虎嘯而谷風冽〕"는 표현이 나오고, 이백(李白)의 시에 "호랑이가 골짜기에서 포효하자 바람이 일어난다.〔虎嘯谷而生風〕"는 표현이 나온다. 《李太白詩集 卷6 鳴皐歌送岑徵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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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추증할 당시의 경연 대화 贈職時筵說 을사년(1665년) 12월 27일 인견할 때 영의정 정태화(鄭太和)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수찬(修撰) 이단하(李端夏)의 상소 가운데 정문부(鄭文孚)의 일은 문자로 전례에 따라 회계(回啓)22)할 수 없으니, 지금 마땅히 어탑 앞에서 아뢰겠습니다. 일찍이 함경도 감사(咸鏡道監司) 민정중(閔鼎重)의 장계로 인하여 정문부와 함께 의병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벼슬이 추증되었고 어떤 이는 그 자손을 녹용하였으며, 그 가운데 천역에 종사하는 자손들은 면천하라는 것은 이미 전하께서 결정을 내리셨는데, 정문부만은 유독 융숭히 장려하는 은전을 베풀지 않았으니 전하의 어진 정치에 흠결인 듯합니다.임진왜란 때 북도의 백성들이 왕자와 대신을 붙잡아 왜적에게 내어준 뒤에 주군(州郡)을 장악하였는데, 그 당시 정문부는 북평사(北評事)로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고 그 군현을 수복하였으니 그 공이 큽니다. 그러나 실권을 잡은 사람에게 미움을 당하여 공이 크게 드러나지 못하였습니다. 혼조(昏朝, 광해군)에 이르러 향촌에서 한가롭게 지내다가 반정한 이후에 곧바로 전주 부윤(全州府尹)에 제수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상을 당하였습니다. 여막에 거처할 때 어떤 훈신이 그를 찾아갔다가 일찍이 정문부가 읊었던 〈영사시(詠史詩)〉가 벽 위에 도배된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가 역옥에 연루되어 잡혀 들어갔다가 장차 풀려날 때 대간이 그 시의 의미가 가리킨 저의가 있다고 하여 다시 신문할 것을 논하여 장형(杖刑)을 맞다가 죽었습니다. 고 상신(相臣) 조익(趙翼)23)이 당시 문사낭청(問事郞廳)으로 있었기에, 일찍이 그 억울한 상황을 잘 알고서 자주 언급하였습니다.'부제학(副提學) 조복양(趙復陽)24)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신의 부친이 자주 그 억울한 상황을 말하였기에 신 또한 익히 들었습니다. 정문부의 이름이 역적의 공초(供招)에서 나와 체포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박홍구(朴弘耇)의 옥사입니다. 그의 아들 박지장(朴知章) 등의 공초에서 또한 '정문부가 장수의 재목이기에 뜻을 두고 찾아가 만났으나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부친이 문사낭청으로 있었기에 또한 그 억울한 상황을 국청 당상관(鞫廳堂上官)에게 말하였는데, 끝내 혼조(昏朝) 때 지은 시로써 대간에서 계를 올려 억울하게 죽었습니다."우의정 허적(許積)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정문부의 임진년 공적은 혁혁하게 사람들의 이목에 남아 있으며 자신의 죄가 아닌 것으로 죽은 정상(情狀)을 또한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설령 그 시가 반정 이후에 지어졌다고 하더라도 다만 역사를 읊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은밀히 내포하는 뜻이 있겠습니까. 특별히 벼슬을 추증하여 북방 사람들을 격려하시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영의정 정태화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정문부는 장형을 받다가 죽었을 뿐 죄적(罪籍) 가운데에 이름이 있지 않는데 별도로 신원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같이 의거하였던 사람은 이미 판서 급에 추증되었으니, 그렇다면 정문부의 첫 번째 가는 공은 더욱 마땅히 관직을 추증하고 자손은 녹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이에 주상께서 "품계를 뛰어넘어 관직을 추증하고 그 자손을 녹용하는 것이 좋겠다."라 전교하였다. 乙巳十二月二十七日引見時, 領相鄭太和所啓, '修撰李端夏上疏中鄭文孚事, 不可以文字循例回啓, 今當陳達於榻前矣。曾因咸鏡監司閔鼎重狀啓, 與鄭文孚同事諸人, 或贈職, 或錄用其子孫, 其中子孫之爲賤役者, 免賤等事, 已爲定奪, 則文孚獨無崇奬之典, 果似欠缺。壬辰之亂, 北道之民, 執王子大臣, 投賊之後, 因據州郡, 其時文孚以北評事, 倡義討賊, 復其郡縣, 其功大矣, 而見忤於當路之人, 而功不大顯。及至昏朝, 棲遲州縣, 反正之後, 卽除全州府尹, 未幾遭其母喪。居廬之時, 有一勳臣, 往見其壁間所塗文孚曾所賦〈詠史詩〉, 傳說於人矣。及其被逮逆獄, 將釋之時, 臺諫以其詩意有所指, 論啓刑訊, 死於杖下。故相臣趙翼爲問事郞廳, 嘗知其冤枉之狀, 常常言之矣。' 副提學趙復陽曰: "臣父常言其冤狀, 臣亦聞之矣。文孚名出賊招, 不免被逮, 此是朴弘耇獄事也。朴知章等招辭中, 亦言'知文孚之有將材, 故有意往見, 而不得發言云云。' 臣父爲問事郞廳, 亦言其冤狀於鞫廳堂上, 而竟以昏朝時所賦之詩, 因臺啓冤死矣。" 右相許積曰: "文孚壬辰之功, 赫赫在人耳目, 死於非罪之狀, 亦人所共知也。設令其詩作於反正之後, 不過詠史而已, 有何指斥之意乎。特爲贈職, 激勸北路之人, 似不可已也。" 領相曰: "文孚死於杖下而已, 不在罪籍中, 別無伸冤之事。但同事之人, 旣贈判書, 則文孚以首功, 尤當贈職, 子孫亦宜錄用矣。" 上曰: "超品贈職, 錄用其子孫, 可也。" 회계(回啓) 임금의 물음에 대(對)하여 신하(臣下)들이 심의하여 대답(對答)하는 것을 이른다. 조익(趙翼) 1579~1655.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존재(存齋),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611년(광해군 3) 수찬(修撰)으로 있을 때 이황(李滉) 등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한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다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으로 좌천, 이듬해 사직하였다. 1649년 좌의정이 되어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를 상소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사직하였다. 김육(金堉)의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적극 주장하였고, 성리학의 대가로서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음률·병법·복서(卜筮)에도 능하였다. 조복양(趙復陽) 1609~1671.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조익의 아들이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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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을 추증하는 교지 贈職敎旨 가선 대부 전주 부윤 전주진 병마 절제사(嘉善大夫全州府尹全州鎭兵馬節制使) 정문부(鄭文孚)에게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판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 성균관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오위도총부 도총관(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에 추증한다.병오년(1666년) 정월 23일 품계를 뛰어 넘어 증직하라는 승전(承傳)을 받았다. 嘉善大夫全州府尹全州鎭兵馬節制使鄭文孚, 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者。丙午正月二十三日, 超品贈職事, 承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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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에 참배하다 신우상 謁彰烈祠【申禹相】 풍성에 힘써 북방 장엄하게 하려토착민들 강가에 사당 세웠네수택 굴혈의 어룡도 이름 아니모래사장의 원학107) 뼈 절로 향기롭네바쳤던 정충 일월과 빛 다투고혼백 아직 남아 관방 지키네성조의 높은 충절 지금 어떠한가심상한 나그네도 술잔을 올리네 從事風聲壯北方土人江上立祠堂魚龍澤窟名猶識猿鶴沙場骨自香已遣精忠爭日月尙留魂魄鎭關防聖朝崇節今何似行客尋常亦薦觴 원학(猿鶴) 원숭이와 학으로, 전사한 일반 장사(將士)들을 말한다. 《예문유취(藝文類聚)》 권93 주에 "주 목왕(周穆王)이 남정(南征)했을 때 군대가 전멸했는데, 장사들은 원숭이와 학이 되고 일반 백성들은 벌레와 모래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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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에서 옛일을 생각하다 김시걸 彰烈祠感古【金時傑】 강개하게 슬피 노래하는 나그네바로 여기 창렬사에 찾아왔네변민은 의리 사모할 줄 알고학사는 거의한 사실 기억하네몸은 장성의 태양이 되었으니당시 절막108)에서 넋 불러오네제향109)하는 이곳이 고향이니노송은 세한의 자태 갖고 있네 慷慨悲歌客來尋彰烈祠邊民知慕義學士記興師身作長城日魂招絶漠時苾芬仍故里松老歲寒姿 절막(絶漠) 극변(極邊)으로, 삭막한 북쪽 변방을 말한다. 필분(苾芬) 향기 나는 제수(祭需)로써 제향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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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생각 秋思 가을 나뭇잎에 한밤의 원한 깃드는데 夜怨生秋葉쓸쓸하게 달이 높이 솟으려 하네 蕭蕭月欲高서로 그리워하며 만나지 못하니 相思不相見거울 속 터럭이 온통 하얗게 세었네 白盡鏡中毛 夜怨生秋葉, 蕭蕭月欲高.相思不相見, 白盡鏡中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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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려록 초 【전적 박흥종】 義旅錄抄 【典籍 朴興宗】 대략 다음과 같다."계사년(1593) 1월 26일에 단천(端川) 지역 마흘(馬屹) 경계9)에서 전투를 할 때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이겼다. 마침내 길주(吉州)로 군대를 돌려 병사들과 말을 쉬게 하였다. 잠시 후 왜장이 많은 병사를 보낸다는 소식을 접하여 길주에서 그들을 맞닥뜨리니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이 남도로 철수하여 돌아갔다. 대장수의 군대가 한편으로는 싸우고 한편으로는 추격하여 백탑교(白塔郊) 남쪽 칠목(滾木) 아래에 이르렀다. 별장(別將) 이붕수(李鵬壽)가 하나의 활을 왜장에게 쐈는데 활시위가 울리자마자 왜장이 쓰러졌으나 붕수는 대장의 말 앞에 나와 서 있다가 갑자기 날아온 탄환에 맞아 죽었다. 주을온(朱乙溫)과 만호(萬戶) 이희당(李希唐) 역시 같은 날 죽었으니 이날은 바로 28일이었다." 【본주(本註) 여섯 명의 대장과 나덕명(羅德明)이 함께 시를 지어 애도하였다.】 略曰 : "癸巳正月二十六日, 戰于端川地馬屹境, 三戰三勝, 遂還軍吉州, 休其士馬. 俄聞倭將, 遣大兵, 迎吉州, 所駐倭撤還南道. 大將帥師, 且戰且追, 至白塔郊南潻木下. 別將李鵬壽射一倭將, 應弦而倒. 鵬壽卽挺出大將馬前, 而立忽中丸死. 朱乙溫 萬戶李希唐, 亦同日死, 時則二十八日也. 【本註 六大將及羅德明, 幷爲詩以哀.】"云. 단천(端川) …… 경계 함경남도(咸鏡南道) 동북부(東北部) 지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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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에서 나극지의 시에 차운하여 증별하다 【정문부】 永興次羅克之韻因贈別 한 번 만나 마음을 알고 일산도 이미 기울였으니10) 一見知心蓋已傾재상과 장군 같은 귀한 모습이 온 성에 가득하네 相將玉貌在圍城털을 불어 도처에서 사람들은 잘못을 찾지만11) 吹毛到處人求過화살이 바위를 뚫음에 어찌 감복하지 않을까12) 沒羽如何石感誠삼천의 귀밑머리는 백발 되어 깜짝 놀라나 鬂上三千驚白髮십만의 가슴은 귀신같은 병술에 의지하네13) 胸中十萬杖神兵중흥한 이후로부터는 몸에 병이 많아 自中興後身多病돌아와 임원에 누웠자니 이런 품행 괜찮을까 歸臥林園羨此行【소포공(嘯浦公)이 애초부터 정문부(鄭文孚), 서성(徐渻), 한백겸(韓百謙) 등과 거사하여 전장을 오간 것이 전후로 거의 2년이나 되었다. 박공의 《의려록(義旅錄)》과 정공의 증별시를 보니 그의 대략을 알 수 있다. 당시 일을 도운 것이 바야흐로 소략하여 전할 만한 사람들이 있었을 터이나 세월이 오래되어 증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전쟁에서 사망한 이붕수(李鵬壽)과 이희당(李希唐)의 애사(哀詞)와 함께 이 시의 원시는 잃어버려 기록할 수 없다.】 【鄭文孚, 嘯浦公始與鄭公文孚 徐公渻 韓公百謙等, 起事出入兵間, 首尾幾二載. 觀朴公義旅錄及鄭公贈別詩, 可知其梗槪. 其時, 協贊方略, 宜有可傳者, 而久遠無徵. 戰亡人李鵬壽 李希唐哀詞幷, 此詩原韻逸不錄.】一見知心蓋已傾, 相將玉貌在圍城.吹毛到處人求過, 沒羽如何石感誠.鬂上三千驚白髮, 胸中十萬杖神兵.自中興後身多病, 歸臥林園羨此行. 일산도 …… 기울였으니 원문 '개경(蓋傾)'은 타고 가던 수레의 일산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길을 가다가 벗을 만난 기쁨을 말한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털을 …… 찾지만 원문 '취모(吹毛)'는 '터럭을 불어 헤쳐서 흉터를 찾아낸다.〔吹毛求庛〕'의 준말로, 즉 남의 사소한 허물까지 각박하게 들춰내는 것을 말한다. 《漢書 卷53 景十三王傳》 따라서 여기서는 사람들이 공을 비난함을 뜻한다. 화살이 …… 않을까 원문 '몰우(沒羽)'는 화살을 말한다. 한대(漢代)의 명장 이광(李廣)은 본디 용력(勇力)이 매우 뛰어나, 일찍이 자기가 사는 고을에 호랑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호랑이를 쏘아 잡았고, 또 북평 태수(北平太守)로 있을 적에도 손수 호랑이를 쏘아 잡았으며, 한번은 사냥을 나갔다가 풀 속에 엎드려 있는 돌〔石〕을 보고는 잘못 호랑이로 알고 활을 쏘았더니, 화살이 돌에 꽂혀 파묻혀 버렸는데,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십만의 …… 의지하네 가슴속으로 치밀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이다. 위(魏)의 최호(崔浩)와 송(宋)의 범중엄(范仲淹)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통 "胸中十萬兵", "胸中甲兵"의 숙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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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지1)에게 보낸 편지 【무인년(1578)이다. 곤재 선생2)】 與羅大之書 【戊寅 困齋先生】 봄이 저물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만물은 번창하고 있구나.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그대는 만복을 누리며 학문을 잘하며 지내고 계시는가? 나는 궁벽한 산속에 엎드린 듯 지내고 있어 소원하고 용렬함이 마치 어제처럼 게을리 지내다가 수시로 한두 학도들과 더불어 옛 경서를 강독하고 토론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 날 다시 풍모와 위의를 갖추어 대면하고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상세히 이야기 나눌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 끝이 없다네.근래 손수 쓴 편지를 받아 보니 우리 그대가 뜻은 성현의 공부에 돈독히 하고 오로지 공부하는 것을 덕에 나아가 수양하며 마음을 가라앉혀 경전을 완미하고 일상생활에 실상을 두어야 하는 것으로 성명(性命)의 온전함을 구한다고 하니, 이른바 옛 사람들이 말한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으로, 공경과 감탄을 이길 수가 없겠으며 위로와 기쁨이 지극하네. 이른바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있다.'라고 말한 것은 학문을 하는 방법을 깊이 터득한 것이니 정말 훌륭하고 매우 훌륭한 것이네. 다만 자세히 묻고 밝게 변별하는 것을 벗들과 강론하고 닦지 않는다면 터득할 수가 없네. 때때로 도가 있는 분에게 나아가 질정하는 것 또한 불가한 것은 아니니 경전을 먼저하고 주를 뒤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앞선 스승들이 이미 밝혀 놓은 것으로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대저 그대의 자질은 강직하고 밝으며 보는 바가 날로 발전하니 두렵고 위로가 됨이 모두 지극하구나.나는 보잘 것 없는 사내로서 마음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과 몸으로 행하는 것이 남들에게 구하여 듣고 계획된 삿된 마음 아닌 것이 없었네. 곰곰이 생각하면 일찍이 볼 낯이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적이 없었고 조금도 보통 사람과 비슷한 마음이 없었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우러르고 머리를 숙여 그를 공경하는 모습을 띠었는데 더군다나 자네처럼 고상하고 밝고 두려워할만한 이에게 감히 스스로를 크고 망령되이 높다고 하여 후생이 예의를 지켜 대우하는 것을 기대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예의는 노력해야 하고 말은 공손해야 한다는 것이니, 바라건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게나. 나머지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적기 어려워 다만 이렇게 적는다. 春令迫暮, 物華暢繁. 伏惟侍候萬福, 學履有相. 鄙人跧伏窮山, 疏庸如昨, 而時與一二學徒講討古經, 以度遣日月爾, 不知何日, 更對風儀, 細論心懷, 鬱陶斯極. 近再奉手示, 仰認尊侍, 志篤聖賢, 功專進修, 沈玩經籍, 着實日用, 以求必得, 夫性命之全, 是乃所謂古人爲己之學, 不勝敬歎, 慰悅之至. 所謂關戶端坐云云, 深得爲學之方, 甚善甚善. 但其審問明辨, 非朋友講磨, 不得. 時就有道正焉, 亦未爲不可, 先經後註, 先師之訓已明, 更何疑焉. 大抵賢侍之資稟剛明, 所見日進, 畏慰俱極. 介淸賤丈夫也, 心中所存, 身上所行, 無非求聞計獲之私. 潛思默慮, 未嘗不歉然愧怍, 少無類人之心. 是以稍見賢於己者, 不覺其抑心下首而敬貌之, 況如賢侍之高明可畏, 其敢自大而妄尊, 以待後生之禮待之乎. 此所以禮欲勤辭欲恭也, 幸勿怪焉, 餘懷難盡, 只此. 나대지 나덕준(羅德峻, 1553~1604)을 말한다. 자가 대지(大之)이고, 호는 금암(錦巖)이다. 곤재 선생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을 말한다. 자는 의백(義伯)이고, 호는 곤재(困齋)이며, 나주(羅州) 출신이다. 저서로 《우득록(愚得錄)》이 있다. 일찍이 나덕준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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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사문간찰초) 附錄(師門簡札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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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갑신년(1584)】 又 【甲申】 절하고 답하네. 봄이 저물어 막바지에 이르니 날씨가 화창하구나. 멀리서 생각건대 그대는 관아에서 부모님을 살펴 모시면서 봉양까지 겸비하여 마음으로 이해하며 성정으로 딱 들어맞아 어긋남이 있지 않을 터이니 인간세상의 무슨 즐거움이 이와 같겠는가! 나는 소원하고 용렬함이 어제와 같아 무어라 말할 것이 없네. 근심스러운 일은 쇠약함이 날로 더해 가고 학업에 뜻을 둔 것이 날로 게으르며 마음을 접촉함이 욕심을 따르는 것인데 스스로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 채 쌓인 기질은 끝내 세속을 벗어날 기약 없이 영리의 향락에 이르렀네. 그렇다면 마음이 비록 바라고 사모한다 한들 천명은 힘쓸 수가 없는 노릇이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어버이를 모시는 도리는 오직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뜻을 따르는 데 있네. 나는 진실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비방과 배척을 스스로 마땅히 감수해야 할 터이니 감히 교묘하게 피하여 바깥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겠는가. 다만 마음속으로 더욱 깊이 반성한다면 보탬이 적지 않을 것이네. 곁에 어버이를 모시고 작은 집을 지었다는 소식을 보여주니 그대가 사랑으로 보호하고 인도하였던 깊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 경복하고 또 경복하네.서울로 가는 일은 내 동생이 막았는데 보내준 편지의 말 또한 이와 같으니 삼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산(邊山)의 행차는 유정언(柳定彦)과 이미 약속한 것이니 사람 일의 좋고 나쁨 또한 기필할 수가 없다네. 인생이 억울하여도 이미 어찌할 수 없으니 바라는 것은 친구 가운데 오직 우리 두 분이 타고난 민첩한 자질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뜻을 정하여 학업에 전일하며 외물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 뿐이네.바라건대 더욱 더 옛사람의 자기를 위하는 학문에 뜻을 두어 우선 거처하는 곳에서 공손하며 일을 집행할 때는 공경히 하고 남을 대할 할 때 충심으로 하는 일에 착수하여 박약으로 나아가고 게으름과 공경 그리고 의리와 욕망의 이기고 지는 것을 깊이 살피며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뜻을 오로지 하며 말세의 의로움과 이로움을 함께 행하고 두 길과 왕도와 패도를 함께 쓰는 무리가 되지 않으며 늘 만 길 높은 곳에서 우뚝 서서 홀로 천 년 전의 성현들을 벗 삼아 이름이 널리 알려 지기를 마음에 비교하며 헤아리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하고도 다행한 일일 것이네. 외로운 처지에 있는 나 또한 이러한 계책으로 힘썼으나 타고난 자질이 우둔하고 어리석어 조금도 변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고 애석하네. 介淸拜覆, 春令迫暮, 風日和淑, 緬惟思吾賢省侍衙庭, 奉養備具, 會心適情, 無有拂違, 人間何樂, 可以如之. 鄙人疏頑如昨, 他無可言者. 所可憂者, 衰邁日臻, 志業目倦. 觸情從欲, 自知而不克, 氣質之累, 終無脫洒之期, 而至榮利之享, 則心雖企慕, 而命不可力, 奈如之何. 事親之道, 唯在樂心順志, 而介淸實不能焉, 人之謗斥, 自當甘受, 敢欲巧避, 以圖外利乎. 伹內省愈深, 爲益不少. 親側作小家之示, 深慰高明愛護噵引之厚意也, 敬服敬服. 京行, 家弟止之, 而來敎亦如之, 敢不敬從. 邊山之行, 與柳定彦已約, 人事好乖, 亦不可必也. 此生之枉了, 已矣無奈何, 所望者, 朋友之中, 唯吾兩賢稟賦通敏, 奉養贍足, 志定業專, 不爲外誘所搖爾. 願深加留意於古人爲已之學, 先以居處恭執事敬與人忠, 爲實下手, 而博約以進, 深察敬怠義欲之勝負, 專意於視聽言動之際, 不爲末俗義利雙行王覇幷用之流, 常伸乎落落萬仞之上, 尙友乎孑孑千載之前, 不以聞達較量心慮, 幸甚幸甚, 孤蹤亦以此策勉, 賦質頑愚, 不能少變, 可惜可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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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유사 錦湖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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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지【훗날 성지라고 자를 고쳤다.】에게 낸 편지 【무인년(1578)이다.】 與羅有之【後改誠之】書 【戊寅】 이별한 뒤로 세 번이나 문안 편지를 받고 보니 글의 뜻이 간절하고 말이 절실하여 마치 아침저녁으로 자주 만나는 날이 많은 것 같네. 이는 자네가 강직하고 우뚝한 지조가 있어 멀고 가까우나 따르고 어기는 것으로 변하는 바가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십분 감탄하고 위로가 되네.보내온 글에 《논어》를 읽고 반드시 마음으로 깨우치고 묵묵히 아는 점이 있어 저절로 가슴 속이 즐겁고 몸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몹시 부러운 마음 이길 수가 없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의 장(章)3)을 매우 깊이 연구하고 완미하여 장래에 자기의 임무로 삼아 굳건하게 정립하여 실천하겠다니 천 리 떨어진 곳에서 쇠약한 채 형구를 차고 있는 나의 바람에 위로가 되었다네. 그대의 타고난 자질은 진실로 강직한 것을 실행하는 데 걱정할 일이 없음을 알고는 있으나 강직함을 실천하는 일을 대단한 힘써야 바야흐로 얻을 수 있네. 대저 《논어》의 글은 성현의 문답으로 수천만의 말이 있지만 그 직접적인 요지를 구한다면 '존심(存心)'에 불과할 뿐이니, 존심이 완성되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네. 대개 존심이라는 것은 마땅히 존재할 곳에서 이 마음을 얻는 데 있으니 다른 사물에게 이끌려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네. 예컨대 '배우고 때로 익힌다.'4)를 읽었다면, 어떻게 해야 배움이 될 것이며 어떻게 해야 때로 익히는 것인지를 생각하여 만약 이를 추론하고 궁구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에 다른 생각의 여지가 없을 것이네. 또 '자기 몸을 이겨 예를 회복한다.'5)를 읽었다면, 어떻게 해야 자기의 몸을 이기고 어떻게 해야 예를 회복하는지 또 몸에는 무엇이 있는지, 예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끝까지 궁구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에 돌이켜 구한다면 행하는 바와 존재하는 바가 몸이고 예일 것이네. 만약 이르지 못했다면 있는 힘을 다해 장차 나아가 천리에 합치되도록 구해야 한다네. 이와 같은 공(功)이 비록 하루 아침저녁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노력하여 세월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기질이 변화하여 내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천리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니 어찌 크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천지에 사람이 삼재(三才)로 참여하여 오직 이에 대장부가 되었으니 그대는 반드시 힘써야 하네.나의 평소 뜻 또한 다른 데 있지 않으나 타고난 성질이 굳어 변화되기에는 어려워 노쇠한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 애석하다네. 바라는 바는 오직 우리 그대의 강직하고 굳은 뜻으로 천만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네. 화천정(花川正)6)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성이 사랑스럽고 그 지조 또한 속되지 않아 더불어 큰일을 할 만한 사람이네. 자네가 때때로 맞이하여 권면할만하니 권면함이 어떻겠는가. 남과 더불어 선을 행하는 것 또한 군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일이라네. 別後三奉問書, 意懇辭切, 似有深於朝夕亟見之日, 是知賢侍毅貞立之操, 不以遠近從違而有所變易也, 嘆慰十分. 示諭讀論語, 其必有心悟默識, 自樂於胸中而得效於身上, 不勝健羡之至.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章, 切須深究玩味, 將來以爲己任, 立定脚跟做將去, 以慰千里衰朽之望. 賢侍之天資, 固知其不患於做毅, 而於做弘處, 大段着力, 方得. 大抵論語之書, 其聖賢問答幾千萬言, 而求其直指, 則不過曰存心. 存心之熟, 則仁在其中, 蓋存心者, 存得此心於所當存之地而不爲他物引將去之謂也. 如讀學而時習, 如何而可以爲學, 如何而可以時習, 如此推究, 自然心不暇他念. 又讀克己復禮, 如何而可以克己, 如何而可以復禮, 又窮極其己是甚底, 禮是甚底, 反求諸自家身心上, 所行所存, 是己歟禮歟. 如或未至, 則盡力克將去以求合乎天理. 若此之功, 雖非一朝一夕之見效, 循循勉勉, 積至歲月, 自然變化氣質, 從吾心之所欲, 莫非天理, 豈不大快活乎. 參三天地, 唯此爲大丈夫, 賢須勉之, 鄙人平生之志, 亦不在他, 而稟固難化, 至於衰朽, 嗚呼惜哉. 所可望者, 唯如賢侍之剛毅, 千萬努力. 花川正天稟可愛, 其志操亦不俗, 可與有爲者也, 賢侍時有引接可勸則勸之如何, 與人爲善, 亦君子之所當勉也. 선비는 …… 장(章) 원문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은 《논어》 〈자로(子路)〉에 보인다. 배우고 …… 익힌다 원문 '學而時習'은 《논어》 〈학이(學而)〉에 보인다. 자기 …… 회복한다 원문 '克己復禮'는 《논어》 〈안연(顔淵)〉에 보인다. 화천정(花川正) 이수붕(李壽鵬)을 가리킨다. 이수붕은 남이공(南以恭)과 함께 정개청에게 수학하였고, 학봉 김성일(金誠一)과 교유하였다. 또한 윤휴(尹鑴)의 숙조(叔祖) 윤전(尹烇)이 그에게서 수학하였다. 《愚得錄 卷2 論禮 答花川正壽鵬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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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삼고 발문7) 錦城三稿跋 【原無題】 우리 증조부의 형제 6인에게 육룡(六龍)이라는 호칭이 있었다. 첫째는 소포공(嘯浦公)이고, 둘째는 금암공(錦巖公)이며, 금봉공(錦峰公)이 그 다음이다. 모두 성대하게 한 시대에 명성이 있어 담론하는 자들이 영특하고 호걸하며 얽매임이 없는 것으로는 소포공을 추대하고, 독실한 학문과 훌륭한 행실로는 금암공과 금봉공을 추대하니, 아! 성대하였도다.소포공은 일찍이 저술한 것이 있으나 전사(傳寫)한 것에 섞인 글이 많아 나는 이전부터 이것을 근심으로 여겼고 또한 원고가 산실되어 잃어버려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편차하고 베껴 적으니 시와 부와 약간의 편지글과 상소문 총 60여 편이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금암과 금봉 두 분도 모두 약간의 글이 있어 또한 차마 사라지게 할 수가 없으므로 소포공의 글 끝에 모두 부치고 또 〈세계(世系)〉, 〈장(狀)〉, 〈녹(錄)〉 등을 실어 하나의 책으로 합쳤다. 마침내 소포공의 현손 나만운(羅晩運)과 금봉공의 증손 나두흥(羅斗興)과 함께 어떻게 출판할 것인지 협의하고 판각하는 사람에게 부쳐서 없어지지 않기를 도모하였다. 다만 정곤재의 《우득록》을 보면 금암공에게 준 편지가 많아 40여 수에 이르고 그 학문과 예에 대해 논하며 추장한 말들이 공을 예우하여 권면하는 글뿐만이 아니었으니 필시 원고가 사라져 용사(龍蛇)의 병화에서 일실되어 지금 남아있는 것이라곤 이처럼 원고가 소략하니 참으로 애석하다.아! 옛날을 회상하니 어느덧 1백여 년이 지났으나 오직 이 유문(遺文)은 사라지지 않았거늘 이제야 이 일을 실행하여 몇이라도 보존된 것이 있는 듯하니 또한 자손들에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역(工役)이 이미 완성되어 전말을 위와 같이 대략 쓴다.숭정(崇禎) 후(後) 두 번째 신축(1721) 1월 신미에 금암공의 증손인 생원 나두동(羅斗冬)이 삼가 쓰다. 惟我曾王父兄弟六人, 有六龍之稱. 其伯曰嘯浦公也, 其仲曰錦巖公, 而錦峰公又其次也. 皆蔚有聲名一時. 談論者以英傑不羈推伯氏, 以篤學修行, 推仲叔, 吁其盛矣. 嘯浦公嘗有所著而傳寫多 魚魯, 斗冬旣以是病之, 又恐其散失無傳, 爲之編次繕寫摠詩賦若書疏六十餘首也. 仍伏念錦巖 錦峰二公, 俱有若干文字, 亦不忍其湮沒, 幷附諸其下, 且載以世系狀錄合成一冊子. 遂與嘯浦公之玄孫晩運, 錦峰公之曾孫斗興, 協議經紀, 付諸剞劂氏, 以啚不朽, 而第見鄭困齋愚得錄, 則與錦巖公書多, 至四十餘首, 而其所論學論禮, 推獎之語, 不啻勤摯. 公必有所覆而逸於龍蛇病禍, 今其存者, 如是草略, 可勝惜哉. 嗚呼! 感念今昔, 焂已百有餘年, 而惟此遺文不泯, 始擧斯役, 似若有數存焉, 而亦可謂子孫幸也. 工旣訖功, 略敍顚末如右云爾. 崇禎後再辛丑正月辛未, 錦巖公之曾孫生員冬, 謹識. 금성삼고 발문 제목은 없다. 내용상 삼고(三稿)의 발문에 해당되기 때문에 역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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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 錦湖遺事序(2) 우리 선조이신 금호공의 유사 한 권은 대개 말씀과 행실이 없어질까 염려하여 편차한 것이다. 우리 선조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효성을 타고나 일찍이 모친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생명을 살리셨다. 이 때문에 중종과 선조 두 조정에서 세 번의 표창이 있었으니 정려를 표시한 일, 발탁하여 등용한 일, 죄를 용서하여 사면한 일이 그것이다. 또 어진 스승과 벗들과 종유하면서 학문의 단서가 될 의론을 들으니, 송서교[宋贊]가 칭찬하여 “학문과 행실을 갖추었다.”라고 한 것과, 김학봉[金誠一]이 이른 ”학문으로 업을 삼았다.”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끼친 가르침이 자손에게 남아 충(忠), 효(孝), 열(烈)이 한 집 안에서 모두 나왔으니, 어찌 덕을 두텁게 하고 선을 쌓은 군자들이 아니겠는가. 아! 우뚝 솟은 정려문이 옛 마을 길가에 지금도 있어 사대부로서 그 앞을 지나는 자들은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예를 표하니 세상의 부자(父子)들은 반드시 모두 이를 보고 감동하여 권면한다.다만 남은 전적들은 세대가 멀어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실로 훗날의 사람들에게 끝없는 유감으로, 내가 일찍이 들었던 《대기(載記)》에 “선조에게 훌륭한 점이 있어 알고도 전하지 않는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다.” $주 선조에게 …… 것이다 : 《예기》 〈제통(祭統)〉에 보인다.라고 한 것과 같다. 나는 이 점을 두려워하여 이에 뜻을 다하여 수집한 뒤에 〈세계〉를 앞머리에 두고, 각 조목을 〈저술〉, 〈유묵〉, 〈포장〉, 〈사실기〉, 묘도문 순서로 하였다. 또 행적 가운데 선인들의 글에 끼어 나온 것, 여러분들과 수창한 시, 종유했던 스승과 벗들에 대한 기록을 끝에 부록하여 하나의 책자를 이루었다. 우리 선조의 언행 전말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어 장차 판에 새겨 불후하기를 도모하니 감히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손들로 하여금 집에 간직하여 수시로 열람하여 갱장(羹墻)의 사모 $주 갱장(羹墻)의 사모 : 죽은 사람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이나 그를 앙모(仰慕)하여, 앉아서는 요 임금을 담장〔墻〕에서 보고, 밥을 먹을 때면 요 임금을 국〔羹〕에서 보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에 부치고자 하는 것이다.숭정(崇禎) 후(後) 두 번째 을사년(1725) 겨울 11월 하순에 현손 나두동(羅斗冬)이 삼가 쓰다. 吾先祖錦湖公遺事一通, 蓋慮言行之泯沒, 而爲之纂次者也. 吾先祖自在童幼時, 誠孝出天, 嘗値母夫人病篤, 血指蘇命, 此所以中宣兩朝, 有三褒之旨, 而旌表之, 擢用之, 寬宥之也. 且從賢師友, 得聞緖論, 宋西郊所稱學行俱備, 金鶴峯所謂學問爲業者, 有以也. 若其遺敎在子孫, 至使忠孝烈竝生於一家, 豈非厚德積善之君子人耶. 噫! 巍然旌棹之門, 見在故里路傍, 而士大夫過其前者, 咸拱式之, 則世之爲父子者, 必皆觀感激勵于斯, 而第其遺籍, 世遠無存, 實爲後人無窮之憾也. 嘗聞戴記曰 : “先祖有善, 知而不傳, 不仁也.” 斗冬有懼, 於是, 乃極意蒐集, 首錄世系, 此敍各條曰 著述也 遺墨也 襃獎也 事實記也 墓道文也. 又以行蹟之雜出於先輩文字者及諸公之所酬唱詩章, 及所從遊師友, 附諸末端, 仍成一冊子. 吾先祖言行顚末, 於此可徵, 將鋟梓圖不朽, 非敢擬示諸人也, 只欲使子孫, 家藏而時閱之, 以寓羹牆之慕云爾. 崇禎後再乙巳冬十一月下浣, 玄孫 斗冬,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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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집(南崖集) 2권1책 南崖集 南崖集 고서-집부-별집류 문집 표점 南崖集 洪翼鎭 석판본 남애집(南崖集) 1 半郭 有界 11行24字 註雙行 註雙行 미상 미상 조선 후기의 학자 홍익진(1766~1801)의 시문집. 현손 홍복희(洪復憙)와 홍석희(洪錫憙) 등이 편집하여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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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題正祖先皇帝御考南崖洪先生試券後 右正祖宣皇帝庚戌御考南崖洪先生應製試券也竊伏惟正廟聰明睿智廻出百王敷文至治軼漢唐而侔殷周其所以致賢養士之道莫不周到大小會試之外又設賓興之試以敦興起斯文之術巖穴之士抱經綸而望治平者莫不延頸而子來惟時先生以白面寒儒竗年應製獻賦至蒙恩批煌煌合三上之選人之榮之也比登瀛焉于此一券後之人尙可以知上洽躬行心得之餘化下慥切磋琢磨之實工也粤稽古昔韓昭侯藏弊袴以待有功者齊景公賜二桃能 致勇士之憤殞夫君上代天造命者也故有愛一嚬一笑之語以正廟之賢豈不知此道而旣熀雲漢天章於試券繼以寵賜書冊硯墨于無尺寸之功之先生恩數之異豈尋常酬勩之比哉盖睿覽文辭之宏博筆劃之勁麗知有可爲之才學而作興之以待道日益盛德日益立而爲需時之用可知也嗚呼以先生之才學使擧蓮桂榜則拾紅白可如芥易而以是年春歸湖南侍其大人石崖先生癠五六年以餘力深究性理之學及石翁捐館後三年始登才行薦 除寢郞上疏陳農政正廟嘉納優批將措施其策明年正廟賓天又明年公且歿焉道之能行果有數存焉者耶先生後孫敬藏試券者百七十餘年矣今將刊行先生遺集模刻而弁于卷首以爲對揚聖朝之恩寵因於紙面差有異同可爲惺恐者也若其立賢無方之聖德則可見於此矣其可欽敬哉甲辰小春節遺民幸州奇老章稽首拜手敬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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