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한 뒤로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아쉽고 한탄한 심정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삼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형제가 지내는 생활은 두루 평안하십니까? 우러러 위로되는 심정을 마지않습니다.저희는 우선 이전처럼 지내고 있지만 신운(身運)이 불행히도 감영 공문에 들어갔는데, 순창에서부터 담양까지 이르러 겨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이에 백여 냥을 지출하였습니다. 모두 이 일에 구애되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전편전(專便錢) 15량을 시변전(市邊錢)을 막론하고 힘써 주선해서 이 인편에 보내어 화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어찌 무척이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추후에 진곡(鎭谷) 세찬(歲饌)은 하인 편에 보낼 계획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타고 다니는 망아지를 방매하여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나머지는 추후 만나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문안 편지를 올립니다.경오년 12월 초 4일에 이주정(李周正)·박태동(朴台東)·남찬(南鑽)·이승호(李承灝)·이봉신(李鳳信)이 절하고 올림. 捧別後多日 悵歎何極 謹詢侍中棣履連得平迪 仰慰區區之至 弟等姑保態 而身運不幸入於營關中 自淳昌終至于潭陽 僅爲脫危 而這間費百餘兩也 都拘於此 進退維谷 故玆以專便錢十五兩無論市过錢宣力周旋 此便惠送 以免禍網豈非萬丈生色耶 追後鎭谷歲饌下人便備報爲計耳 若不然則不可不行駒拔賣 以爲回程 如何餘在後捧討 不備候狀庚午十二月初四日 李周正 朴台東 南 鑽 李承灝 李鳳信 拜上[皮封] (背面) 海山 考岩書院 員儒 謹候狀許 生員 道邑長 宅 入納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