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생(文生)145)【사고(師古)】에게 주는 편지 與文生【師古】書 눈 속을 헤치고 찾아와 주신 일이 마치 어제의 일과 같습니다. 가르쳐 주시고 돌아봐 주시는 사이에 봄날이 이미 화창해졌는데, 이러한 때에 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받고서 산 위의 높은 재(齋)에서 날마다 맑은 수양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저로 하여금 머리를 들고 정신이 향하도록 합니다.말씀하신 성복(成服)146)하였을 때의 제사는 예(禮)에 비록 별도로 마련된 글이 없기는 하나 조전(朝奠)은 습속을 따라 설행하더라도 정리(情理)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듯합니다.어육(魚肉)을 날것으로 쓰는 문제는 아마도 율곡(栗谷)을 따르는 것이 옛 뜻에 부합하는 것일 듯한데, 사계(沙溪)147)와 같은 분께서도 또한 습속이 오래되어 바꾸기 어렵다는 뜻을 면치 못하셨으니,148) 하물며 그 아래에 있는 자에 있어서이겠습니까?기름으로 지진 음식은 예를 따라야 함을 의심할 것이 없으니149) 예를 좋아하는 선비가 속세의 논의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시비하겠습니까?홀(笏)을 잡는 예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옛날에 선비는 대나무 홀을 사용하였으니 임금과 어른을 섬길 때 항상 이를 사용하였습니다.150) 지금 세속에서는 부모를 섬길 때 살아계실 적에 이미 이러한 의절(儀節)이 없으므로 율곡께서 간략함을 따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축문(祝文)을 사르는 문제는 마땅히 주자(朱子)를 따르는 것이 옳으니, 《집설(集說)》을 따라서는 안 될 듯합니다.151)어제 선친의 기일에 곡을 하였기에 병든 정신이 다 소모되고 마음이 아득합니다. 급하게 쓰느라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雪裏來訪。如昨日事。指顧之間。春日已和。此時又承存問。知山上高齋。日有淸修。令人首擡而神馳也。所喩成服之奠。禮雖無別設之文。仍朝奠從俗設行。似無大妨於情理耶。魚肉生用。恐從栗谷。爲得古意。而以沙溪亦未免習久難變之意。况出其下者耶。膏煎之物。從禮無疑。好禮之士。砥柱於俗論。則誰敢非是哉。執笏之禮。古者士用竹笏。事君事長之常用也。今俗事親。生旣無此節。故栗谷從簡耶。焚祝當從朱子爲正。集說恐不可從矣。昨哭先忌。病神頓喪。志意茫然。走草不一。 문생(文生) 문사고(文師古, 1637~1701)를 가리킨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부모의 상(喪)에 효성을 다하였으므로 효자로 이름이 났으며, 학문에도 힘을 쏟았다. 성복(成服) 상례에 있어서 대렴(大斂)을 마친 다음 날 복(服)에 따라 상복(喪服)을 입는 것을 말한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을 가리킨다. 사계(沙溪)는 그의 호.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78년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창릉 참봉(昌陵參奉)이 된 뒤 정산 현감(定山縣監), 호조 정랑, 안성 군수(安城郡守), 형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집람(家禮輯覽)》,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례문해(疑禮問解)》 등의 저술을 남겼다. 어육(魚肉)을……못하셨으니 《사계전서(沙溪全書)》 〈의례문해(疑禮問解)‧시제(時祭)〉에, "《주자가례(朱子家禮)》에서 말한 어육(魚肉)은 생어육입니까? 율곡(栗谷)은 생어육을 썼는데, 이를 따라서 행해도 무방합니까?[家禮 魚肉是生魚肉否 栗谷用生 遵此行之 無妨否]"라는 송준길(宋浚吉)의 물음에 대해, 김장생이 "《주자가례》에서 이른바 어육은 생어육이 아니라 바로 어탕(魚湯)과 육탕(肉湯)이네. 율곡이 생어육을 쓴 것은 비록 《서의(書儀)》에 근거한 것이지만, 《의례》 궤식례(饋食禮)와 다르기에 일찍이 집안 어른께 질문하고 우계(牛溪)께도 질문하였더니, 답하기를, '생어육과 숙어육(熟魚肉)을 함께 섞어 쓰는 것이 비록 고례이기는 하지만, 《주자가례》에 이르러서는 주자께서, 「연기(燕器)로써 제기(祭器)를 대신하고, 상찬(常饌)으로써 조육(俎肉)을 대신한다.」라 하셨으니, 생어육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였네.[家禮所謂魚肉 非生魚肉也 乃魚湯肉湯也 栗谷之用生 雖本於書儀 與儀禮饋食禮不同 嘗質于家庭 問于牛溪 答曰 參用生熟 雖是古禮 至於家禮 則朱子曰 以燕器代祭器 常饌代俎肉 則不用生 明矣]"라 하여, 제사에서는 생어육을 쓰지 않는다고 답한 내용이 보인다. 다만 그가 생어육을 쓰는 문제에 대해 습속이 오래되어 바꾸기 어렵다고 한 내용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기름으로……없으니 《의례주소(儀禮注疏)》 〈기석례(旣夕禮)〉에, "전물(奠物)로 쓰는 가루음식[糗]은 모두 기름으로 지지지 않는다.[凡糗不煎]"라 하였고, 이에 대한 주에 "기름으로 지지면 지저분하게 되므로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以膏煎之 則褻非敬]"라 한 내용이 보인다. 홀(笏)을……사용하였습니다 '홀(笏)'은 천자 이하 제후‧대부‧사가 조복을 입거나 제례 등을 올릴 때 손에 드는 판이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홀의 제도를 말하면서 "천자는 옥을 사용하고, 제후는 상아를 사용하며, 대부는 물고기 수염으로 꾸민 대나무를 사용하고, 사(士)는 밑을 상아로 꾸민 대나무를 사용한다.[天子以球玉 諸侯以象 大夫以魚須文竹 士竹本象 可也]"라 하였다. 축문(祝文)을……듯합니다 《주자가례(朱子家禮)》 〈통례(通禮)‧사당(祠堂)〉에, "무릇 축판은 길이가 1척, 높이가 5촌 되는 판을 사용해 만드는데, 종이에 글을 써서 그 위에 붙이고, 의식이 끝나면 떼어 내어 불에 태운다.[凡言祝版者 用版長一尺 高五寸 以紙書文 黏於其上 畢則揭而焚之]"라 하였다. '집설(集說)'은 명나라 풍선(馮善)이 지은 《가례집설(家禮集說)》을 가리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