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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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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에 오르다 萬鏡登高 가파른 봉우리 하늘 높이 솟았으니산꼭대기에서 별도 딸 수 있겠네백 걸음에 아홉 번 꺾인 산길한 길을 굽혀 한 자를 펴네 危峰高揷天頭上星堪摘百步九回折枉尋方直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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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권응인 附次韻 權應寅 산꼭대기 위는 광한궁178)이니계수나무 꽃 꺾을 만하네가파른 암석을 기어오르니한 치 나가면 오히려 한 척 물러나네 頭上廣寒宮桂花堪可摘攀緣石磴危進寸退猶尺 광한궁(廣寒宮) 달 속에 있다는 선궁(仙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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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룡재전 이견대인' 의 見龍在田利見大人義 내가 일찍이 《주역》을 읽다가 〈건괘(乾卦〉 이효(二爻)의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 봄이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라는 설에 이르러서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자가 이 세상에 태어남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천하의 큰 운수와 관계되어 청명한 지기(至氣)를 부여받고 천하의 큰 뜻을 경륜하여 우주의 원대한 계략을 움켜쥐며, 하늘의 기둥이 기우려하면 그 몸으로 받들고 창생들이 도탄에 빠지면 그 몸으로 구원할 수 있다. 그 포부가 이와 같다면 군주가 현자(賢者)를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겠는가? 진실로 국가의 기용(器用)일 것이다.비록 그렇지만 좋은 값을 기다려127) 저절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현자의 일이고, 몸을 굽혀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은 군주의 도리이다. 동기(同氣)가 서로 찾는128) 일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름을 팔고 저절로 이르게 할 수 있겠는가? 윗사람이 진실로 목마르듯 바라는 정성으로 대하고 사제(思齊)129)의 마음을 보인다면, 인재를 구하는 노고는 악발(握髮)130)보다 심하고 예우 또한 설례(設醴)131)보다 융숭할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행실을 본받는 것은 어쩌면 풀이 바람에 눕는132) 것처럼 빠를 것이요, 그림자가 형체의 움직임을 따르는 것은 북채와 북이 서로 호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다. 그러니 저 산림의 초가에 사는 무리와 영해의 먼 구석에 사는 무리 중에 누가 밭 갈기를 그만두고 번연히 마음을 고쳐먹지 않겠으며, 모두 낚시질을 그치고 귀의해 오지 않겠는가? 이에 봉궐(鳳闕)로 날아오르고 용문(龍門)으로 치달려, 명군(明君)을 만나서 재주를 펼치고 성주(聖主)를 만나서 능력을 베풀면, 책략이 부합하고 간쟁이 받아들여져서 "직무를 맡아 저토록 전담하는구나."라고 할 것이다.이 때문에 군주는 현자를 소홀히 하는 잘못이 없고 신하는 멀리 떠나려는 뜻이 없게 되니 용이 나타난 날에 구름이 따르고 범이 포효하는 때에 바람이 맹렬한 것이요, 기러기 날개가 순풍을 타고 큰 물고기가 바다에서 마음껏 노니는 듯 하는 것이다.133) 때를 만남이 이와 같으니 어찌 품은 바를 다 펴지 못할까 걱정하리오? 군주의 신임을 얻음이 저와 같으니 혹시라도 배운 바를 펼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 세상을 태평성대134)에 가져다 놓고 만백성을 수역(壽域)135)에 올려놓을 것이다. 문물은 당우(唐虞)136)의 시대이니 훌륭하도다! 아름다운 징조가 모두 이르고, 예악은 상주(商周)137)의 시대이니 찬란하도다! 좋은 상서가 다투어 오리라.강구(康衢)의 연월(烟月)138)을 구가하니 어찌 방패와 창이 햇빛에 번쩍거릴 날139)이 있겠는가? 나라의 형세가 반석처럼 편안할 것이니 이 무궁한 즐거움을 헤아린다면 《주역》에서 이른 바 '이견대인(利見大人)'의 공효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아! 현룡(見龍)의 재주를 가지고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운 자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솥을 지던 이윤(伊尹)이 성탕(成湯)을 찾아갔으니140) 성탕은 600년 푸른 역사를 수립하였고, 칼을 두드리던 태공(太公)이 주 문왕(周文王)을 받들었으니141) 주 문왕은 800년 희업(姬業)142)을 이었도다. 백리(百里)는 자신을 팔았고143) 영자(寗子)는 소를 먹이다가144) 진(秦)나라에서 제(齊)나라에서 이룬 공업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견대인(利見大人)'의 공효이니 또 어찌 낱낱이 사례를 들겠는가?옛일을 논하는 것이 무익하다면 이것은 접어두자. 해동(海東) 천년에 삼한(三韓)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성명(聖明)한 군주는 자궁(紫宮)에서 팔짱을 높이 끼고 있고145) 현명한 인재들이 청괴(靑槐)146)에 진열해 있었다. 그런데 다스림은 소강(小康)147)에 지나지 않았고 때가 대도(大道)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원대한 계모와 큰 덕을 지닌 선비가 암혈(巖穴)에 능력을 숨기고 종적을 감추는데, 위에서는 불러주는 군주가 없고 아래에서는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 재능을 펴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현자를 구하는 정성이 미진하여 그러한 것이고, 제회(際會)148)의 기약이 막연하여 그러한 것이다. 내가 어찌하여 오늘날에 '이견(利見)'이 되지 않고 있음을 의심하는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 성은 모(某), 이름은 모(某)이다. 그의 거처는 강호(江湖)이다. 나의 남은 뜻은 이와 같다. 삼가 의(義)를 쓴다. 余嘗讀易。 至于乾之二爻。 有曰: "見龍在田。 利見大人"之說。 未嘗不揜卷而嘆。 君子之於斯世也。 豈偶然哉? 關天下之大數。 稟淸明之至氣。 經綸天下之巨志。 挹握宇宙之遠略。 天柱將傾則可以此身而擎之。 蒼生塗炭則可以此身而援之。 其爲抱負之如斯。 則人君之於賢者也。 顧不重歟? 信乎國家之器用也。 雖然待價自顯。 乃賢者之事。 側身旁求。 是人君之道。 不有同氣之相求。 焉得以致其鬻名而自臻乎? 爲人上者。 苟能推如渴之誠。 示思齊之心。 勞已甚於握髮。 禮亦隆於設醴。 下效上行。 豈能風草之斯速。 影隨形行。 甚於桴鼔之相應。 彼山林草屋之徒。 嶺海遐陬之輩。 孰不輟耕而幡然。 皆爲罷釣而歸來? 於是翺翔乎鳳闕。 駿奔乎龍門。 遇明君而展才。 遭聖主而施能。 運籌之合。 諫諍之聽。 可謂任職之如彼其專也。 是以君無慢賢之失。 臣無長往之意。 而雲從於龍見之日。 風烈於虎嘯之秋。 鴻毛順風。 巨魚縱壑。 逢時如此。 何患所懷之不盡? 得君如彼。 無或所學之不布。 措一世於熙皡。 躋萬姓於壽域。 文物唐虞。 猗歟休徵之畢至。 禮樂商周。 煥乎嘉瑞之爭臻。 謳歌康衢之烟月。 詎有干戈之耀日? 國勢如盤石之安。 擬此樂之無竆。 則易所謂利見大人之功效。 不在玆乎? 嗚呼! 以見龍之才而利見於大人者。 往古來今。 有幾人哉? 負鼎之伊尹聘成湯。 而成湯樹六百之蒼籙。 鼔刀之太公載周文。 而周文綿八百之姬業。 百里之自鬻也。 寗子之飯牛也。 於秦於齊。 功業可想。 其爲利見大人之效。 又何能枚擧乎? 談古無益。 請舍是矣。 海東千載。 國有三韓。 聖明高拱於紫宮。 賢材布列於靑槐。 治不過於小康。 時不升於大猷者。 愚未知何故而至於斯乎? 抑無乃宏猷碩德之士。 鞱光晦迹於巖穴。 而上無聘招之君。 下無援引之人。 而未展其才能耶? 然則求賢之誠。 未盡而然也。 際會之期。 邈爾而然也。 愚何有疑於今日之未爲利見乎? 其人爲誰? 某姓某名。 其居則江湖矣。 愚之餘意如是夫。 謹義。 좋은 값을 기다려 자신의 뜻을 알아줄 군주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論語 子罕》 동기(同氣)가 서로 찾는 뜻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周易 乾卦 文言》 사제(思齊) 《논어》 〈이인(里仁)〉의 "현인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보면 안으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악발(握髮) 주공이 천하의 인재를 선발하는데 전념하여 "머리를 한 번 감는 사이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갔고, 밥 한 끼를 먹는 사이 세 번이나 입 속의 음식을 뱉어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라는 고사를 가리킨다. 《史記 권33 魯周公世家》 설례(設醴) 현사(賢士)를 후한 예로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전한(前漢)의 초 원왕(楚元王)이 빈객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 적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 목생(穆生)을 위하여 항상 단술을 마련하여[常爲穆生設醴]' 예우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漢書 楚元王傳》 풀이 바람에 눕는 원문의 '풍초(風草)'로, 바람이 불면 풀이 쓸리듯이 윗사람이 인도하면 아랫사람이 따른다는 말이다.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하였다. 《論語 顔淵》 기러기……것이다 왕포(王褒)의 〈성군이 어진 신하를 얻음에 대하여[聖主得賢臣頌]〉에 "마치 큰 기러기 깃이 순풍을 만난 듯이 순조롭고 신속하며, 마치 큰 물고기를 큰 바다에 풀어놓은 듯이 거침없을 것이다.[翼乎如鴻毛遇順風, 沛乎若巨魚縱大壑.]"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1》 태평성대 원문의 '희호(熙皥)'는 화락(和樂)하고 자득(自得)한 모양을 말하는데,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노자(老子)》 제20장에 "세속의 중인들이 희희낙락하여,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듯, 봄날의 누대에 오른 듯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고 하였고,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성왕의 백성은 스스로 만족해한다.[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다. 수역(壽域) 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준말로, 태평성대를 뜻한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구례를 찬술하고 왕제를 밝혀서 온 세상의 백성들을 이끌어 인수의 지역에 오르게 하면, 풍속이 어찌 주나라 성왕과 강왕 때의 태평 시절 같지 않겠으며 수명이 어찌 은나라 고종 때와 같지 않겠습니까.[述舊禮明王制, 驅一世之民, 躋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 하였다. 당우(唐虞)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시대로, 곧 요순(堯舜) 시대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상주(商周) 상주는 상(殷)나라와 주(周)나라 시대로, 예악이 정비된 때를 말한다. 강구(康衢)의 연월(烟月) 강구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사통팔달의 큰길을 이르고, 연월은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추는 모습으로 태평성대의 평화로운 풍경을 말한다. 방패와……날 전란(戰亂)을 말한다. 솥을……찾아갔으니 불우했던 인물이 성군을 만났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 "이윤은 이름은 아형이다. 아형이 탕을 만나고자 했으나 길이 없자 유신씨의 잉신이 되어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맛난 음식으로 탕에게 유세하여 왕도를 이루었다.[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以滋味說湯, 致于王道.]"라고 하였다. '이윤(伊尹)'은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의 대신이다. '성탕(成湯)'은 탕왕을 말한다. 칼을……받들었으니 비천한 일을 하다 성군을 만났다는 뜻이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여망이 푸줏간에서 칼을 두드리다 주 문왕을 만나 등용되었네.[呂望之鼓刀兮, 遭周文而得擧.]" 하였다. 희업(姬業) 희성(姬姓)이 왕이 된 주(周)나라의 왕업을 가리킨다. 백리(百里)는 자신을 팔았고 '백리'는 백리해(百里奚)이며, '자육(自鬻)'은 자신의 재능을 파는 것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백리해(百里奚)가 진(秦)나라의 희생을 기르는 자에게 양가죽 다섯 장을 받고 자신을 팔아 그곳에서 소를 먹였다.[百里奚自鬻於秦養牲者五羊之皮, 食牛.]"라고 하였다. 영자(寗子)는 소를 먹이다가 '영자(寗子)'는 영척(甯戚)이며, '반우(飯牛)'는 소를 먹인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이 미천했을 때, 제(齊)나라에 들어가 남의 소를 먹이면서 제 환공의 행차를 바라보고는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하자, 환공이 듣고 그를 현자로 여겨 등용했다. 《呂氏春秋 擧難》 자궁(紫宮)에서……있고 자궁(紫宮)은 제왕의 거처로 궁궐을 말한다. '고공(高拱)'은 성군이 팔짱을 낀 채 아무 하는 일이 없이도 천하를 크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청괴(靑槐) 조정(朝廷)을 비유한 것이다. 《주례(周禮)》 〈추관 조사(秋官 朝士)〉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마주 대하는 곳이 삼공의 자리이다.[面三槐, 三公位焉.]"라고 하였다. 소강(小康) 조금 편안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예기》 〈예운(禮運)〉에 의하면, 유가(儒家)에서 이상(理想)으로 삼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세상이다. 제회(際會) 풍운제회(風雲際會)의 준말로, 임금과 신하가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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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4 卷之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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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 방회연 자리에서 제독 정인귀의 시에 차운하여 장원을 했던 방백 윤두수18)에게 바치다 【정해년(1587) 7월에 쓰다.】 錦城舘榜會宴席次鄭提督仁貴韻呈壯元尹方伯斗壽 【丁亥七月】 상공의 온화한 기운이 사람들 감화시키니 相公和氣便薰人향에 머금고 기쁨 받들자 정신 맑아지도다 飮馥承歡足暢神삼십여 년 만에 이런 모임 이루니 三十年餘成此會백발이 꽃자리 비추는 모습 애틋하구나 各憐華髮照花茵 相公和氣便薰人, 飮馥承歡足暢神.三十年餘成此會, 各憐華髮照花茵. 윤두수 1533~1601. 1590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건저(建儲) 문제로 서인 정철이 화를 입자 이에 연루되어 회령(會寧) 등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기용되어 선조를 호종하여 어영대장이 되었고,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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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 【당시 공의 나이 63세였다.】 遺墨 【時公年六十三】 아들 나덕명(羅德明), 나덕준(羅德峻), 나덕윤(羅德潤) 등은 성현을 사모하고 법으로 삼으며 행실은 세속을 넘어선 진실로 자기를 위한 학문을 하고 실상에 힘쓰는 선비였다. 일찍이 형제들끼리 같이 거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나에게 여러 차례 자문을 구했고, 나 역시도 일찍이 이러한 뜻이 있었으나 실행하지 못하여 매우 감개한 마음이 있은 지 수년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지금 부모형제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고 나만이 홀로 심야에 남아 비통함 또한 이미 지극하다. 어찌 우리 아이들이 옛사람들의 뜻을 두어 이와 같은 미풍양속을 행하고자 하는가. 이에 당(堂)을 같게 하고 실(室)은 다르게 하는 제도에 대해 도안을 하여 그 법규와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올렸더니 진실로 전 현인들이 남긴 뜻을 법으로 삼으로 것이다. 어찌 가상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이 실상을 생각해보면 말세에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록 그 처음에는 힘써 행하더라도 끝까지 잘 할 수 있을 지는 어려운 일이니 두렵다. 그러나 여섯 아들이 한 집안의 사람들을 잘 이끌어 끝내 연익(燕翼)34)의 아름다움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덕명, 나덕준, 나덕윤아! 조심하고 부지런함을 숭상하여 세속의 비웃음을 사지 마라. 나는 지금 늙고 병도 많아 너희들이 함께 살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을까 두렵다. 비록 이러한 뜻을 잘 성취하는 것을 미쳐 볼 수는 없을지라도 또한 지하에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라건대 우리 여섯 아들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깊이 새겨 집안을 욕되게 하지 마라. 男明峻潤等, 慕法聖賢, 行超流俗, 實爲己務實之士也. 曾有兄弟同居之志, 屢稟于余, 余亦曾有是志而未就, 深以爲感慨者, 幾年于玆. 今則父母兄弟已皆辭世, 余獨留在中夜, 悲痛亦旣極矣, 豈意豚犬輩志在古人欲爲此懿美之行耶. 乃圖雁同堂異室之制, 呈之觀其規畵, 實法前賢之遺意也, 豈不爲之嘉歎耶. 第思玆實, 末世所難爲之事, 雖力其始, 恐難善終也. 不知我六男, 其能導率一家之人, 卒收燕翼之美耶. 明乎峻乎潤乎, 尙愼勖哉, 毋爲俗流之譏笑也. 余今老且多病, 恐不及見爾曹同居之美也. 雖未及見如能就此志, 則亦可瞑目於泉下矣. 願吾六男體余至懷, 毋忝爾所生也. 연익(燕翼) 조상이 자손을 위해 세운 계책이나 교훈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에서 주(周)나라 문왕에 대해 "후손에게 계책을 남겨 두어 공경하는 아들을 편안케 하셨다.[詒厥孫謀, 以燕翼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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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에서 스님을 찾아가다 淸溪尋僧 속세 벗어나 교유 맺었으니만나기로 한 약속 오늘 저녁이라한가로이 소나무 지팡이 짚고시냇가 바위에 걸음 옮기네 物外有交遊幽期趁此夕閒拖松下笻徙跂溪邊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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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원에 대한 만사 林德源輓 기억하노니, 일찍이 원산에서 사냥 마치고나는 말 술 마시고 그대는 돼지 다리 뜯었지오늘 문득 먼지 낀 벽을 바라보니아로새긴 활과 흰 깃털 화살에 또 용천검이라208) 憶曾獵罷元山路我飮斗巵君彘肩今日忽看塵壁上雕弓白羽又龍泉 아로새긴……용천검이라 아로새긴 활과 흰 깃털 화살은 무장(武將)을 상징하고, 용천검(龍泉劍)은 장화(張華)가 얻었다고 하는 보검(寶劍)으로 뛰어난 재주를 상징한다. 모두 세상을 떠난 임덕원(林德源) 재능을 상징하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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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령으로 가는 도중에 회포를 읊다 이하 35수는 함경도에서 지은 것이다. 富寧道中述懷【以下三十五首 係北路作。】 우주 사이에 칠척의 몸아득하게 홀로 서서 그림자도 짝이 없네오직 푸른 산만이 내 갈 길 빌려주어석양에 오랫동안 오가는 사람 되었네 宇宙中間七尺身蒼茫獨立影無隣惟有靑山能借路夕陽長作往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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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팔도하261) 追記 八渡河 산세가 구불구불 북쪽에서 내려오니아득한 나그네길 여기서 열리누나팔도하 굽이쳐 흐른다고 말하지 말라이별 슬픔에 아홉 번 뒤틀어진 창자만 못하니 山勢逶迤自北來迢迢客路此中開莫言八渡河流曲不及離腸作九回 팔도하(八渡河) 압록강 서안(西岸) 중국 측 변경지경에 위치한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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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서장관이 요동에서 의주 부윤에게 부친 시에 차운하다 2수 追記 次書狀在遼東寄義尹韻【二首】 삼하262)에 물 불어나 얕은 물굽이 사라지니말안장 풀어놓고 하루종일 배를 저어가네아침에 집에 보내는 편지 부쳤는데오히려 내 가는 길 매우 편하다고 말했노라취중에 용이하게 배 떠나 보냈으니말 타고 길에 올라 다시 채찍 재촉하네술 깬 뒤에 돌아보자 사람들 이미 멀어졌으니모르겠구나, 누가 방긋 웃었는가 積漲三河失淺灣撑舟盡日卸征鞍朝來寄與家書去猶道吾行萬萬安醉中容易解離船跨馬登途更促鞭醒後回頭人已遠不知誰爲作嫣然 삼하(三河) 하북성(河北省)의 삼하현(三河縣)으로 북경의 동쪽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에서 북경으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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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에 복숭아가 떨어지길 바라다 2수 狂風願桃落【二首】 늙은이는 낮은 가지에 달린 풋열매 안타까워하는데아이는 광풍이 땅을 휘말 듯 불기 바라네반쯤 익은 것이 아이들 기호에 딱 맞으니익어 떨어지기 기다리기는 너무 지루하겠지외진 마을에 일찍이 장자가 온 적 없으니한 동이 술을 오늘 그대와 마시리다정하게도 다시 봄 소식 있으니해마다 누추한 집에 아주 일찍 돌아오네 翁憐靑子狎卑枝兒願狂風捲地吹半熟正於髫齒好待他黃落苦遲遲窮巷曾無長者來一尊今日與君開多情更有春風信歲歲寒門早早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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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에 관한 전례 士民典例 상사(上士) : 서울은 성균관 학생, 사학(四學)1) 학생 및 초시(初試)에 입격(試入)한 자를 상사로 삼는다. 지방은 교생(校生) 및 초시에 입격 자를 상사로 삼는다. 성균관 학생의 상사는 50원(員), 사학은 각각 20원, 지방의 주학(州學)은 50원, 부학(府學)은 40원, 군학(郡學)은 30원, 현학(縣學)은 20원으로 정한다.[이상은 서울과 지방의 상사에 관한 규정이다. 초시에 입격한 사람을 제외하고 경서에 밝고 행실이 바른 사족(士族)의 자제로서 문학이 남보다 뛰어나고 재주가 출중한 자를 잘 가려 뽑아 인원수를 채운다. 서울은 대사성(大司成)이 1년에 두 차례 낭속(郞屬)과 회동하여 상사를 대상으로 강(講)을 시험하고, 지방은 각 도의 도사(都事)가 해당 수령, 학관(學官)과 1년에 두 차례 강을 시험한다. 강에서 통효(通曉)하지 못한 자는 강등하여 중사에 예속시킨다. 강에서 비록 통효하였더라도 50세가 넘도록 초시에 입격하지 못한 자는 중사로 강등한다.]중사(中士) : 서울과 지방은 일정한 인원수가 없다. 친가나 외가 쪽으로 결함이 없는 사족(士族)의 자제를 가려 인원수를 채운다. 서울과 지방에서 1년에 두 차례 강(講)을 시험하되 세 차례 강에서 연달아 통효한 자는 상사로 올린다. 두 차례 연달아 불통한 자는 하사로 강등하고, 초시에 입격한 자는 상사로 올린다. 강에서 비록 통효하였더라도 50세가 넘도록 초시에 입격하지 못한 자는 향임(鄕任)에 소속시킨다.【즉 좌수(座首), 별감(別監), 이관(里官)의 자리이다.】하사(下士) : 서울과 지방은 일정한 인원수가 없다. 중사(中士)에 충원되지 않은 양반의 자제와 사대부 서얼(庶孼) 및 일반 백성 가운데 준수하고 학행이 뛰어난 자를 모두 정원에 채운다. 서울과 지방에서 1년에 두 차례 강을 시험하는데 강에서 세 차례 연달아 통효하지 못한 자는 강등하여 군역(軍役)에 충당한다. 초시에 입격한 하사는 중사로 올린다. 초시에 입격한 군인은 하사로 올린다. 서얼 신분인 하사는 곧장 군역에 충당한다. 하사로서 강(講)에서 비록 통효하였더라도 50세가 넘도록 초시에 입격하지 못한 자는 향임(鄕任)에 소속시킨다.【바로 영거 감관(領去監官) 및 당사(黨師)의 자리이다.】삼사(三士)의 공통된 규례[三士通例] : 무릇 학교에 모일 때 및 강관(講官), 학관(學官)에게 배읍(拜揖)할 때 상사(上士)는 동쪽에 서고, 중사(中士)는 서쪽에 서며, 모두 북쪽으로 오른다. 하사(下士)는 남쪽에 서고 동쪽으로 오른다.하사의 경우에는 1년에 7승(升) 면포(綿布) 1필(匹)을 바친다. 수령이 병조에 봉납(捧納)하여 군국(軍國)의 비용으로 쓴다. 초시에 입격하여 중사로 오른 뒤에는 바치지 않는다.삼사가 과거를 보는 공통된 규례[三士科擧通例] : 서울과 각 도(道)는 삼소(三所)2)로 나누어 과장(科場)을 설치한다. 상사(上士)는 일소(一所)에 나아가고, 중사(中士)는 이소(二所)에 나아가고, 하사(下士)는 삼소(三所)에 나아간다. 상사는 50인(人)을, 중사는 25인을, 하사는 15인을 선발한다. 회시(會試)도 삼사를 나누어 삼소에 나아간다. 상사는 생원(生員)˙진사(進士) 100원(員)을, 중사는 60원을, 하사는 40원을 선발한다. 문과와 무과의 급제시(及第試)의 경우에는 초시(初試)는 삼소로 나누고, 삼사가 각각 위의 규례에 따라 시소에 나아간다. 전시(殿試)의 경우에는 삼사가 함께 나아간다. 생원과 진사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은 상사와 같다.신은 삼가 상고하건대, 옛날에 삼명지신(三命之臣)3)을 사(士)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대부(大夫), 낭관(郞官)이 있는데 학교의 생도들을 통틀어 사라고 합니다. 대저 사는 '일삼다[事]'라는 뜻입니다. 집안에서는 부형을 섬기고 출사하여서는 군주를 섬기고, 한가할 때 학문하는 것이 바로 사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로는 관학(館學)으로부터 아래로는 향교(鄕校)와 여항에 이르기까지 귀천과 현부(賢否)를 따지지 않고 갓을 쓰고 띠를 띤 자를 통틀어 사라고 칭합니다. 심지어 군역(軍役)에 양가(良家)의 소생을 모두 교안(校案)에 넣어 사라고 합니다. 이러한 무리는 하도 많아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혹은 이름을 숨기고 안면을 바꾸며 사실을 숨기고 꽁무니를 빼며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무리가 또한 그 사이에서 나오니, 평소 마을에서 고담준론을 하지만 혹 군적(軍籍)에 올라 강무할 일이 있으면 농간을 부려 이름을 지워버리는 자도 모두 사라고 일컫습니다. 명분이 바르지 않고 상하가 법도가 없어서 풍속이 날로 야박해지고 교화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다 말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신이 고심하여 삼가 이상과 같이 사를 세 등급으로 나누자는 설을 주장합니다. 이처럼 한다면 현우(賢愚)에 분별이 있고 귀천(貴賤)에 차례가 있어 혼잡하고 어지러운 풍습이 사라질 것입니다. 과거 시험장을 설치할 때 현우와 귀천이 같은 시험장에 함께 들어가 비천한 도굴꾼과 개백정의 무리가 장보(章甫)와 현단(玄端)의 반열에 섞여 시끄럽게 난동을 부리기까지 하니 너무나도 기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시관은 금지하지 못하니, 가령 세속을 초월한 선비와 우뚝이 절개가 있는 유자가 본다면 어찌 그 사이에 고개를 숙이고 수모를 당하고자 하겠습니까. 과거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본래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때의 제도가 아니고, 과거의 제도도 이처럼 문란하니, 도리에 어긋나는 가운데 또 매우 도리에 어긋난 것입니다. 품행이 단정한 군자가 어떻게 우리 조정에 출사하겠습니까. 품행이 단정한 군자가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는다면 아첨하는 무리와 봉록만 탐하는 무리가 날마다 전하 곁에 있을 것이니, 하·은·주 삼대 때의 지극한 다스림을 또한 어디에서 다시 보겠습니까. 지금 신이 내세운, 삼사(三士)가 각기 삼소(三所)에 나아가는 과거 제도가 비록 하·은·주 삼대 때의 제도는 아니지만 현우와 귀천이 섞여 어지러운 폐단을 조금이나마 저지할 수 있을 듯하고, 예의염치 (禮義廉恥)를 아는 방도가 점차 여기에서 흥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上士 : 京中。 則成均館學生四學學生及初試入格者。 爲上士。 外方。 則校生及初試入格者。 爲上士。 成均館學生上士五十員。 四學各二十員。 外方州學五十員。 府學四十員。 郡學三十員。 縣學二十員。 [右京外上士。 除初試入格外。 極擇經明行修士族子弟。 文藝過人。 而才器出衆者。 充其員額。 京則大司成一年二次會同郞屬。 試講上士。 外則各道都事與其邑守令學官。 一年二次試講。 講不通曉者。 降隷中士。 講雖通曉。 年過五十。 不得初試者。 降中士。]中士: 京中外方。 額無定數。 擇士族子弟內外無疵玷者。 充其員額。 京外一年二次試講。 連三次講得通曉者。 升上士。 連二次不通者。 降下士。 初試入格者。 升上士。 講雖通曉。 年過五十。 而不得初試者。 屬之鄕任。【卽座首別監里官。】下士: 京中外方。 額無定數。 兩班子弟之不得充中士者。 士大夫之庶孼及凡民子弟俊秀有學行者。 皆充其員額。 京外一年二次試講。 連三次講不通曉者。 降充軍役。 下士之初試入格者。 升中士。 軍人之初試者。 升下士。 下士之孼子。 直充軍役。 下士講雖通曉。 年過五十。 不得初試者。 屬之鄕任。【卽領去監官及黨師。】三士通例 : 凡學校聚會時及講官學官拜揖之際。 上士居東。 中士居西。 皆北上。 下士居南。 東上。下士。 則一年貢七升綿布一匹。 守令捧納于兵曹。 以爲軍國之用。 初試入格。 升于中士。 然後否。三士科擧通例 : 京中及各道分三所設場。 上士赴一所。 中士赴二所。 下士赴三所。 上士選五十人。 中士選二十五人。 下士選十五人。 會試亦三士分赴三所。 上士取生進一百員。 中士取六十員。 下士取四十員。 文武及第試。 則初試分三所。 三士各赴如右。 殿試則三士同赴。 生進赴擧。 與上士同。臣謹按。 古者。 三命之臣。 謂之士。 今則有大夫。 有郞官。 而學校諸生。 通謂之士。 夫士之謂言。 事也。 入則事父兄。 出則事君長。 時以暇日事之學問。 乃士之責任也。 今則不然。 上自館學。 下至鄕校及閭巷之間。 不問貴賤賢否。 戴弁束帶者。 通稱曰士。 甚至軍役。 子枝良家所産。 皆屬于校案。 稱之曰士。 其徒寔繁。 不可勝計。 或有隱名換面。 藏頭出尾。 欺蔽巧詐之輩。 亦出於其間。 在於平日。 則高談於閭里。 或有軍籍講閱之事。 則舞奸而脫名者。 亦皆稱之曰士。 名分渾淪。 上下無法。 風俗之日渝。 敎化之難行。 有不可勝言者矣。 臣反復三思。 謹立士分三品之說如右焉。 若此則庶幾賢愚有分。 貴賤有倫。 無渾雜駁亂之風矣。 至於科擧設場之際。 賢愚貴賤。 同入一場。 椎埋狗屠之輩。 相雜於章甫玄端之列。 噪作亂。 罔有紀極。 而考官不能禁斷。 若使高世之士卓立之儒見之。 豈肯低頭就辱於其間哉? 科擧取人。 本非三代之制。 而科擧之制。 又亂雜如是。 則失道之中。 又甚失道焉。 正人君子何從而立於本朝乎? 正人君子不立於朝。 則容悅之徒。 苟祿之輩。 日侍於殿陛矣。 三代至治。 亦何從而復見哉? 今臣三士。 各赴三所之科法。 雖非三代之制。 賢愚貴賤渾淪澆亂之弊。 似可少止。 而禮義廉恥之道。 庶可漸此可興矣。 사학(四學) 서울의 중앙과 동·남·서에 세운 네 학교로, 곧 중학(中學)·동학(東學)·남학(南學)·서학(西學)을 이른다. 삼소(三所) 조선 시대에는 상피제(相避制)가 있어서 가족이 과거 시험의 시험관일 경우 그 시소의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 또 응시자가 많을 경우 한 장소에서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 17년(1435) 7월부터 분소법(分所法)이 실시되었다. 시장(試場)은 생원·진사시의 경우 일소(一所)와 이소(二所), 문과와 무과의 경우 일소, 이소, 삼소가 있었다. 삼명지신(三命之臣) 주대(周代)에 관작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구명(九命)이라 칭했는데, 삼명은 공(公), 후(侯), 백(伯)의 경(卿)에 해당되는 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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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가 시강하는 통례 三士試講通例 상사강(上士講) : 30세 이하는 사서(四書)를 강하고 겸하여 《소학(小學)》,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제비를 뽑아 강한다. 30세 이상은 삼경(三經)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통감(通鑑)》, 《송감(宋鑑)》 가운데에서 원하는 것으로 강한다. 40세 이상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주례(周禮)》, 《예기(禮記)》 가운데에서 제비를 뽑아 강한다.중사강(中士講) : 30세 이하의 강은 《대학(大學)》, 《논어(論語)》를 강하고, 30세 이상은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강한다.하사강(下士講) : 30세 이하는 《소학(小學)》이나 《사략(史略)》을 강한다. 30세 이상은 《대학(大學)》, 《논어(論語)》 혹은 《통감(通鑑)》을 강한다.이상은 강관(講官)이 개강할 때의 규례이다. 상사(上士) 가운데 혹 논문(論文), 표문(表文), 책문(策問), 고부(古賦)를 지어서 강서(講書)를 대신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짓는 것을 허락한다. 입격시킬 만한 저술이 있는 경우는 강에서 통효(通曉)를 맞은 것과 같은 규례를 적용한다. 규정과 법식이 맞지 않는 저술은 불통(不通)을 맞은 것과 같은 규례를 적용한다. 중사(中士)와 하사(下士) 가운데 혹 고시부(古詩賦), 사서의(四書疑), 삼경의(三經義)를 짓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짓게 한다. 그 규정은 상사의 규례와 같이 한다.이상 강은 도사(都事), 수령(守令), 학관(學官), 춘추고강(春秋考講)을 제외하고 3년에 한 차례 시행하되 별도로 어사(御史)를 보내고, 고강(考講)과 저술(著述)은 일일이 통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삼사시(三士試) 열강(閱講)에서 글의 뜻에 통달하고 의리가 관통하여 막힘이 없는 자와 저술이 월등하여 6분(分) 이상인 자는 입계(入啓)하여 초시(初試)에 입격한 자격을 준다. 3분 이상은 필(筆), 묵(墨), 지(紙), 연(硯) 등을 상으로 넉넉하게 내린다. 불통을 맞은 자는 정군역(丁軍役)으로 강등한다. 고강과 저술이 월등한 자가 주부(州府)에서는 10인, 군현(郡縣)에서는 5인 이상인 경우, 해당 수령과 학관에 대해 한 자급을 올려주고, 강에서 불통을 맞은 자가 주부에서는 15인, 군현에서는 10인 이상인 경우, 해당 수령에 대해 한 자급을 강등하고 학관의 경우는 파직한다. 上士講 : 三十歲以下。 講四書。 兼《小學》《心經》《近思錄》中推生。 三十歲以上。 講三經兼《綱目》《通鑑》《宋鑑》中自願。 四十歲以上。 講四書三經 《周禮》《禮記》中推生。中士講 : 三十歲以下講《大學》《論語》。 三十歲以上講《孟子》《中庸》。下士講 : 三十歲以下。 講《小學》或《史略》。 三十歲以上。 講《大學》《論語》。 或《通鑑》。右講官講開時。 上士或有願製論表策問古賦。 以代講書者。 許製。 所著可以入格者。 以講能通曉同例。 所著不中規儀者。 以不通同例。 中士下士。 或有願製古詩賦四書疑三經義者。 亦許製。 其法與上士例同。右講除都事守令學官春秋考講外。 三年一次。 別遣御史。 考講著述一一通。 三士試閱講。 能通曉文味。 義理貫徹無疑者。 著述超等六分以上者。 入啓授初試。 三分以上。 賞給筆墨紙硯等優數。 不通者。 降丁軍役。 考講著述超等者。 州府十人。 郡縣五人以上。 其守令學官加一資。 講不通者。 州府十五人。 郡縣十人以上。 守令奪一資。 學官罷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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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읊은 금체시144) 박계길의 시에 차운하다 詠雪 禁體 次朴季吉韻 아득한 이 세상이 이미 같은 흔적이니어찌 청산에 옛 빛깔을 남겨 두랴섣달 추위를 유독 도와 계곡이 얼어붙고봄 기운 잠깐 속여 찬 구름이 가득하네맑은 풀 멀리 있는 형세에 새들 발길 끊겼고나무에 바람 부는 위세는 날쌘 말이 달리는 듯하네섬계를 찾아가려 하나145) 가는 길 잃었으니머리를 긁으며 황혼에 서 있있지 못하겠어라 茫茫宇宙已同痕肯許靑山舊色存偏助臘寒氷澗合乍欺春意凍雲繁晴蕪遠勢飛禽絶風樹威聲快馬奔欲訪剡溪迷去路不堪騷首立黃昏 금체시 금체란 사물을 시로 읊으면서 그 시어로 흔히 쓰이는 글자, 예컨대 눈을 읊으면서 옥(玉), 월(月), 이(梨), 매(梅), 연(練), 서(絮), 노(鷺), 학(鶴), 아(鵞), 은(銀) 등의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시를 짓는 규칙을 말한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여음 태수(汝陰太守)로 있을 때 소설(小雪)의 날에 빈객들을 모아 놓고 취성당에서 금체시(禁體詩)를 지었으며, 소식(蘇軾)도 여음 태수로 있을 때 눈이 내리자 취성당에서 구양수의 두 아들과 함께 구양수의 금체시를 본받아 눈을 읊은 일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34 聚星堂雪》 섬계를 찾아가려 하나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막 개고 달빛이 휘영청 밝은 것을 보고는 갑자기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즉시 거룻배를 타고 찾아갔는데, 대규의 집 문 앞까지 가서는 흥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왔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王徽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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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로 떠나다 앞의 시에 차운하다 發薊州 次前韻 산세 빙 둘러싸서 갔다가 도로 돌아오니큰 고을 빼어난 경치 참으로 아름답도다유주 병주와 접해 있으니 풍광 예스럽고기성과 미성 분야222) 우주에 들어오네오른쪽에 배를 끼고 바다를 따라 돌아가고동쪽에서 온 사신 행렬 하늘 바라보며 재촉하네두루 살펴보니 평소의 뜻 보상하기 충분한데다만 서리에 나그네 귀밑털 허옇게 센 것 한스럽네 山勢周遭去却回雄州形勝信佳哉幽幷界接風烟古箕尾星分宇宙來夾右舟航沿海轉從東冠蓋望天催觀周足償平生志只恨霜凋旅鬢皚 기성과 미성 분야 고대 중국에서 하늘의 이십팔수(二十八宿)의 방위에 따라 천하를 12개 지역으로 나누어 대응시키고 이를 '십이분야(十二分野)'라 하였는데,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은 모두 동쪽 방위에 속하는 별자리로 중국의 요동 일대와 연경 및 우리나라가 위치한 곳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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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사의 〈아침 조회〉 시에 차운하다 次千秋使早朝韻 천자께서 궐안 가운데 앉아 계시니관료들 새벽에 궐에 나가 몇 줄로 도열했네등불 그림자 멀리 나뉘니 은빛 반짝거리고패옥 소리 서로 울리니 옥소리 짤랑거리네북두칠성을 번개가 감싼 날223) 오늘임을 알겠으니황도에 구름이 걷히자 태양이 보이네접역224)의 미천한 신하 금수와 같은데다행히 순 임금 섬돌 곁에서 소무를 받들게 되었네225) 赭袍高拱殿中央鴛鷺晨趨作幾行燈影遙分銀的的佩聲交戞玉瑲瑲辰樞電繞知今日黃道雲開見太陽鰈域賤臣同百獸幸陪韶舞舜階傍 북두칠성을……날 임금의 탄신일을 의미한다. 황제(黃帝)의 모친인 부보(附寶)가 기(祁) 들판에 있을 적에, 번개가 크게 치며 북두칠성의 첫째 별을 휘감는 것을 보고는 감응하여 잉태한 뒤 24개월이 지나서 황제를 낳았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五帝本紀》 접역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동해에 가자미가 많이 나오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순……되었네 명나라 궐에 들어가 천자를 뵙게 되었다는 뜻이다. 소무(韶舞)는 순(舜) 임금의 음악 이름으로, 명나라 황제를 순 임금에 비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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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에 관한 전례 農民典例 농민의 전결(田結)은 10결(結)을 1호(戶)로 삼고, 1호의 부세(賦稅)는 한 해에 4등급으로 나눈다.상풍농(上豐農) 1호 : 세미(稅米)4) 100두(斗), 황두(黃豆) 15두.부미(賦米)5) 60두, 부포(賦布) 10필(匹).【5승(升) 포(布)이다. 1필은 35척(尺)이다.】중풍농(中豐農) 1호 : 세미 80두, 황두 12두.부미 45두, 부포 8필.하풍농(下豐農) 1호 : 세미 60두, 황두 9두.부미 30두, 부포 6필.흉년에는 농민 1호당 : 세미 40두, 황두 9두.부미 15두, 부포 4필.〈농민 호정의 공미에 관한 전례[農民戶丁貢米典例]〉【9품 이상의 관원, 생원, 진사 및 사대부 집안에서 아직 출가하지 않은 자는 호미(戶米)를 면제해 주고, 병사가 된 자는 호미를 면제해 준다.】1호(戶) 10결(結) : 남녀를 통틀어 상하 15세 이상부터 60세까지 모두 호적에 기록하고, 1인당 1년에 백미(白米) 5승(升)을 바쳐 수령의 세록(歲祿)으로 삼는다.【사신(使臣)에게 지공(支供)하는 비용도 이 속에 포함한다.】〈농민의 호정이 역역에 제공하는 의무에 관한 전례[農民戶丁力役典例]〉1호가 10결(結)을 농사지을 경우 1년에 5정(丁)을 내어서 역역(力役)을 제공한다.【장빙(藏冰)6), 시탄(柴炭)7), 마초(馬草)8) 등의 역역을 담당하는 것을 정식으로 삼는다.】 정식 외에 별도로 민력을 쓸 일이 있으면【성지(城池)를 수리하거나 관사와 공해(公廨) 등을 짓는 것을 별도의 규식으로 삼는다.】 서울은 한성부에 입계하고, 지방은 수령이 감사에게 보고한 뒤에 그 민력을 쓰되, 5인 이상을 함부로 쓰는 자는 파직한다.이상은 10결(結) 1호(戶)에 관한 규정이다. 무릇 부세(賦稅), 호정(戶丁), 공미(貢米), 역역(力役) 등의 일은 호수(戶守) 1인이 납부를 감독한다. 무릇 부세는 1년 안에 수곡(水糓)이 상풍(上豐)이고 전곡(田糓)이 중풍(中豐)이면, 수곡은 상등(上等)을 적용하고 전곡은 중등(中等)을 적용한다. 전곡이 상풍이고 수곡이 중풍이면, 전곡은 상등을 적용하고 수곡은 중등을 적용한다. 하풍(下豐)과 흉년일 때에도 모두 이 규례를 적용한다.신은 삼가 상고하건대,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의 제도는 백성에게 10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었습니다. 이보다 많으면 걸(桀)이 되고 이보다 적으면 맥(貊)이 됩니다.9) 지금 우리나라의 부(賦)는 하·은·주 삼대보다 몇 배나 많은데 세(稅)는 도리어 옛날 제도보다 줄어들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이 그 연유를 자세히 따져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세법(稅法)은 바로 조종(祖宗)의 옛 제도이므로 이처럼 줄였습니다. 부법(賦法)으로 말하면 필시 연산군(燕山君)이나 광해군(光海君) 때 간신이 법률을 마음대로 조정하여 조종의 제도를 다 바꾸어 백성들에게 혹독하게 거두었습니다. 아첨하여 임금을 받든 폐단이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도 다 제거되지 못하여 그대로 답습하여 점점 쌓여서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 폐단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비록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위에 있고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으로 하여금 교화를 베풀게 하더라도 백성들은 필시 지극한 은택을 입지 못할 것입니다.신이 삼가 우리나라 논밭에서 나는 1년의 소출을 고찰하여 비옥한 땅인지 척박한 땅인지에 따라 절충하고, 풍년과 흉년에 따른 차이를 바로잡아 감히 1호당 10결의 법을 정립하고 연분사등(年分四等)의 규정을 만들었으니 대략 하·은·주 삼대 때 10분의 1의 조세를 거두는 법을 모방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선왕의 정교(政敎)는 아마 이로 인하여 점차 회복될 것이고 백성들도 살아갈 수 있어 지극한 다스림을 혹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비록 그렇지만, 신이 일찍이 옛날의 왕자(王者)는 백성들에게 10분의 1을 취하니 그 거두는 것이 매우 적지만 오히려 나라의 재정이 넉넉하고 봉록이 풍족한 것을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후세의 군주는 백성에게 거두는 것이 한정이 없어서 10의 5보다 훨씬 많이 거두었지만 나라에는 남아 있는 재물이 없고 관리의 녹봉도 매우 빈약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그 까닭을 깊이 생각해 보니, 옛날의 인군은 스스로 보양(保養)하는 것은 매우 적게 하고 관원들은 법도가 있었으므로 수입을 따져서 지출하였기에 적게 거두어도 재정이 넉넉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무익한 관원이 위에 너무 많고 급하지 않은 수요가 아래에 지나치게 많습니다. 주현(州縣)이 여기저기 퍼져 있고 향당(鄕黨)에는 법도가 없으며, 법령이 문란하고 교화가 행해지지 않습니다. 만약 진상하는 수량을 먼저 정하고 내직과 외직의 법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하·은·주 삼대 때 10분의 1로 거두는 좋은 정치와 훌륭한 교화가 시행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관제(官制)에 관한 법을 뒤에 논하니 성상께서 재결해 주소서. 農民之田。 十結爲一戶。 一戶賦稅。 歲分四等。上豐農一戶 : 稅米一百斗。 黃豆十五斗。賦米六十斗。 賦布十匹。【五升布。 一匹三十五尺。】中豐農一戶 : 稅米八十斗。 黃豆十二斗。賦米四十五斗。 賦布八匹。下豐農一戶 : 稅米六十斗。 黃豆九斗。賦米三十斗。 賦布六匹。凶歉農一戶 : 稅米四十斗。 黃豆七斗。賦米十五斗。 賦布四匹。農民戶丁貢米典例【九品以上官及生進及士夫處子未嫁者除戶米。 爲兵者除戶米。】一戶十結 : 通男女上下十五歲至六十歲之人。 皆錄于籍。 一人歲各貢白米五升。 爲守令歲祿。【使臣支供亦在其中。】農民戶丁力役典例一戶十結。 歲出五丁。 以供力役。【藏氷柴炭馬草等力役。 爲定式。】定式之外。 如有別用民力之事。【城池修理官舍公廨等修築。 爲別式。】京則漢城入啓。 外則守令報于監司。 然後用其力。 濫用五人以上罷職。右十結一戶。 凡賦稅戶丁貢米力役等事。 戶守一人董納。 凡賦稅一年之內。 水糓爲上豐。 田糓爲中豐則水用上等。 田用中等。 田穀爲上豐。 水穀爲中豐則田用上等。 水用中等。 下豐凶歉。 皆倣此例。臣謹按三代之制。 稅於民十分之一。 多此則爲桀。 小此則爲貊。 今我朝之賦。 倍蓰於三代。 稅則反省於古制。 其故何哉? 臣細思厥由。 以爲稅法。 則仍祖宗之舊制。 故省略如此。 至於賦法。 則必在燕山。 或光海朝。 姦臣弄法。 盡革祖宗之制。 而毒斂生民。 媚奉君上之弊。 未盡祛於反正之後。 因循漸積。 以至於此也。 此弊不革。 雖使文武御上。 周召宣化。 生民赤子必未蒙至澤矣。 臣謹考察我國土田一年之出。 折中以肥饒地品之宜。 正之以年歲豐凶之異。 敢立一戶十結之法。 年分四等之規。 略倣三代什一之助焉。 若此。 則先王之政敎。 庶可仍此漸復。 而生民可得甦息。 至治或可復見矣。 雖然。 臣嘗怪古之王者。 取於民十分之一。 其斂甚省。 猶且國用富厚。 班祿豐足。 後世之君。 取於民無法。 不啻十分取五。 而國無餘資。 官祿貧甚。 若此者何哉? 臣嘗深究厥由。 以爲古之人君。 自奉甚薄。 庶官有法。 故量入爲出。 斂薄而用裕。 今則不然。 無益之官。 太宂於上。 不急之需。 過煩於下。 州縣碁布。 鄕黨無法。 法令紊亂。 敎化不行矣。 若不先定進供之數。 次正內外庶官之制。 則三代什一之良政善敎。 難可行矣。 故謹論官制之法於後。 伏惟聖裁。 세미(稅米) 조세로 바치는 쌀을 이른다. 전세미(田稅米), 혹은 공미(貢米)라고 한다. 부미(賦米) 대동으로 거두는 세를 이른다. 대동법에서는 공물을 쌀로 대신 바치게 하였는데, 이때 거두는 세를 이른다. 장빙(藏氷) 겨울에 얼음을 채취(採取)하여, 빙고(氷庫)에 저장하는 일이다. 시탄(柴炭) 땔나무와 숯을 마련하는 일이다. 마초(馬草) 역마의 사료로 쓰는 풀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보다……됩니다 걸 임금은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으로 폭군의 대명사이다. 맹자(孟子)의 제자 백규(白圭)가 20분의 1의 조세를 취하고자 한다고 하자, 맹자가 이는 오랑캐의 방도[貊道]라고 하면서 10분의 1을 취했던 요순의 방도를 기준으로, 이보다 많으면 걸왕이고 이보다 적으면 오랑캐의 방도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孟子 告子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내직에 관한 전례를 논하다 論內官制典例 신은 삼가 살피건대, 농민을 네 등급으로 나누고 10분의 1일의 조세를 거두는 제도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내직과 외직의 제도 및 진상하는 방물(方物)의 수량을 먼저 정한 뒤에 그 법이 공평해지고 백성들이 지극한 은택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그 제도를 함부로 논하여 '농민에 관한 전례(典例)' 뒤에 붙입니다.신이 삼가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때의 제도를 살펴보니, 대국(大國)의 경우는 상대부(上大夫)가 3인이고, 하대부(下大夫)가 5인이고, 그 아래에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의 관사(官師)가 약간 인이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러므로 대국의 경(卿)은 그 녹봉이 10만 종(鍾)이니, 인원수가 적고 녹봉의 수량은 마련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신이 삼가 전고(前古) 중국의 관제(官制) 및 명(明)나라의 관제를 살펴보니, 우리나라처럼 너무 쓸데없는 관원질(官員秩)이 있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중국은 땅이 우리나라보다 10배가 넓고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10배나 많지만, 내직으로 여러 관직과 외직으로 주군(州郡)의 숫자는 우리나라에 비해 그다지 현격하게 많지 않습니다. 지금 수천 리밖에 되지 않는 땅덩이에다 360군현을 나누고, 수천 리밖에 되지 않는 땅의 수입을 가지고 북쪽으로 오랑캐를 섬기고 동쪽으로 왜인을 접대하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온갖 관사와 한직에까지 보내니, 백성의 재물이 어떻게 고갈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나라의 재용이 어떻게 넉넉할 수 있겠으며, 요록(料祿)을 어찌 넉넉하게 지급할 수 있겠습니까.10) 더구나 작은 나라의 인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문관·무관·남반(南班), 내직과 외직의 여러 관사와 학관(學官)·역관(驛官)·변경의 장수를 통틀어 머리에 관을 쓰고 띠를 띠고서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자가 걸핏하면 만으로 헤아리니, 양전(兩銓)11)을 맡은 자가 비록 인재를 잘 선발하고자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1부(府), 1사(司), 1원(院), 1관(館)의 경우, 많게는 15, 6원(員), 적어도 12, 3원을 밑돌지 않습니다. 아침에 옮기고 저녁에 바뀌며, 취해서 들어와 몽롱한 상태에서 나가고, 서리에게 명을 듣고, 도로에서 호창(呼唱)하는 자는 나라의 입장에서나 백성의 입장에서나 어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습니까. 지위의 높고 낮음만 따지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자가 관사에 가득하니, 자리만 차지하고 국록만 축내는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와 같다면 주공(周公)을 재상으로 삼고 고요(臯陶)에게 법을 집행하게 하더라도12) 왕도(王道)의 지극한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신은 바다 한쪽 구석 궁벽한 곳에 살아 조정 여러 관사에 대해서 비록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략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논하겠습니다. 홍문관(弘文館)이 있는데 또 예문관(藝文館)이 있고 승문원(承文院)이 있으니, 어찌 굳이 교서관(校書館)을 둘 필요가 있겠습니까. 훈련원(訓鍊院), 군기시(軍器寺) 등 병조의 여러 관사는 통합할 수 있습니다. 선공감(繕工監), 상의원(尙衣院) 등 공조의 여러 관사는 겸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내수사(內需)가 있고 또 내자시(內資寺)가 있으며, 이미 사옹원(司饔院)이 있고 또 사온서(司醞署)가 있으니, 사축서(司畜署)는 전생서(典牲暑)의 업무를 겸임할 수 있으며, 의금부(義禁府)는 전옥서(典獄署)의 업무를 겸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는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삼가 관제개정도감(官制改定都監)을 속히 세워 하·은·주 삼대 때의 다스림의 요체를 잘 아는 노성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 그 직임을 맡겨 하나하나 철저히 조사하여 혁파할 만한 것은 혁파하고 겸할 만한 것은 겸하게 하여 가능한 한 줄이고, 그러한 뒤에 또 공세마련도감을 두소서. 무릇 위에 무익하고 백성들에게 해로운 진상품에 대해서는 일일이 혁파하고, 그러한 뒤에 네 등급으로 나누는 제도와 10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제도를 팔도에 반포하여 시행하소서. 이렇게 하였는데도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민심이 불안해하고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으며 왕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신은 떳떳한 형벌을 받아 참혹하게 주륙을 당하더라도 또한 달게 받을 것입니다. 臣謹按欲行農分四等貢稅什一之制。 必先定內外官制及上供方物之數。 然後其法可均。 而民得蒙至澤矣。 故敢妄論其制。 以附于農民典例之後焉。 臣伏覩三代之制。 大國。 上大夫三人。 下大夫五人。 其下有上士中士下士官師若干人而已。 是以大國之卿。 其祿十萬鍾。 以其員數省約。 祿數易辦故也。 臣謹考前古中國官制及大明官制。 員秩之太宂。 莫有如我國者。 中國之地。 十倍於我國。 中國之人衆。 十倍於我國。 內而庶官。 外而州郡之多。 不甚懸絶於我國。 今以數千里之地。 分三百六十郡縣。 以數千里之地之入。 北事胡東接夷。 而以其餘饋百司宂官。 民財安得不竭? 國用安得豐裕? 料1)祿安得給足哉? 况小邦人才幾許? 而通文武南班內外庶司學官驛官邊堡之帥。 冐弁而束帶。 啄民之骨髓者。 動以萬計。 秉兩銓者。 雖欲精擇人才。 安可得也? 一府一司一院一館。 多則十五六員。 小不減十二三員。 朝遷暮改。 醉入夢出。 聽命於胥吏。 呼唱於道上者。 於國於民。 有何少補? 計班資之崇卑。 蠹生民之膏血者。 盈府而充司。 尸位而僭祿。 不可勝計。 若此則使周公作家宰。 臯陶執法。 王道之至澤。 不及於赤子矣。 臣僻居海隅。 朝廷庶司。 雖未詳知。 以聞見大槩論之。 弘文有館。 而又有藝文。 承文有院。 則何必校書? 訓鍊之院。 軍器之寺。 兵曹庶官合之可也。 繕工之監。 尙衣之院。 工曹庶官兼任可也。 旣有內需。 又有內資。 旣有司甕。 又有司醞。 司畜可兼典牲。 禁府可兼典獄。 若此之類。 不可勝記。 伏請亟立官制改定都監。 以老成夙德通達三代治體者。 充其位。 逐一査覈。 可革者革之。 可兼者兼之。 務從省約。 然後又置貢稅磨鍊都監。 凡進供之無益於上。 有害於民者。 一一革罷。 然後四等什一之制。 頒行於八路。 然而庶事不修。 民心不安。 國家不治。 王道不復。 則臣願伏常刑。 萬萬誅戮。 亦所甘心矣。 요록(料祿)을……있겠습니까 원문은 '科祿安得給足哉'인데, 문맥을 살펴 '科'를 '料'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양전(兩銓) 이조(吏曹)와 병조(兵曹)를 합하여 일컬은 것인데, 이조는 문관의 전선(銓選)을 맡고 병조는 무관의 전선을 맡았기 때문에 전조(銓曹)라고 일컬은 것이다. 주공(周公)을……하더라도 주공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고, 무왕(武王)의 아우이며 성왕(成王)의 숙부로, 이름은 단(旦)이다. 무왕을 도와 주(紂)를 치고,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하자 섭정(攝政)하여 천하를 잘 다스렸다. 고요(皐陶)는 순 임금 때의 훌륭한 신하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법관이 되어 법을 만들고 형벌을 제정하였다. 料 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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