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룡재전 이견대인' 의 見龍在田利見大人義 내가 일찍이 《주역》을 읽다가 〈건괘(乾卦〉 이효(二爻)의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 봄이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라는 설에 이르러서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자가 이 세상에 태어남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천하의 큰 운수와 관계되어 청명한 지기(至氣)를 부여받고 천하의 큰 뜻을 경륜하여 우주의 원대한 계략을 움켜쥐며, 하늘의 기둥이 기우려하면 그 몸으로 받들고 창생들이 도탄에 빠지면 그 몸으로 구원할 수 있다. 그 포부가 이와 같다면 군주가 현자(賢者)를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겠는가? 진실로 국가의 기용(器用)일 것이다.비록 그렇지만 좋은 값을 기다려127) 저절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현자의 일이고, 몸을 굽혀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은 군주의 도리이다. 동기(同氣)가 서로 찾는128) 일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름을 팔고 저절로 이르게 할 수 있겠는가? 윗사람이 진실로 목마르듯 바라는 정성으로 대하고 사제(思齊)129)의 마음을 보인다면, 인재를 구하는 노고는 악발(握髮)130)보다 심하고 예우 또한 설례(設醴)131)보다 융숭할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행실을 본받는 것은 어쩌면 풀이 바람에 눕는132) 것처럼 빠를 것이요, 그림자가 형체의 움직임을 따르는 것은 북채와 북이 서로 호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다. 그러니 저 산림의 초가에 사는 무리와 영해의 먼 구석에 사는 무리 중에 누가 밭 갈기를 그만두고 번연히 마음을 고쳐먹지 않겠으며, 모두 낚시질을 그치고 귀의해 오지 않겠는가? 이에 봉궐(鳳闕)로 날아오르고 용문(龍門)으로 치달려, 명군(明君)을 만나서 재주를 펼치고 성주(聖主)를 만나서 능력을 베풀면, 책략이 부합하고 간쟁이 받아들여져서 "직무를 맡아 저토록 전담하는구나."라고 할 것이다.이 때문에 군주는 현자를 소홀히 하는 잘못이 없고 신하는 멀리 떠나려는 뜻이 없게 되니 용이 나타난 날에 구름이 따르고 범이 포효하는 때에 바람이 맹렬한 것이요, 기러기 날개가 순풍을 타고 큰 물고기가 바다에서 마음껏 노니는 듯 하는 것이다.133) 때를 만남이 이와 같으니 어찌 품은 바를 다 펴지 못할까 걱정하리오? 군주의 신임을 얻음이 저와 같으니 혹시라도 배운 바를 펼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 세상을 태평성대134)에 가져다 놓고 만백성을 수역(壽域)135)에 올려놓을 것이다. 문물은 당우(唐虞)136)의 시대이니 훌륭하도다! 아름다운 징조가 모두 이르고, 예악은 상주(商周)137)의 시대이니 찬란하도다! 좋은 상서가 다투어 오리라.강구(康衢)의 연월(烟月)138)을 구가하니 어찌 방패와 창이 햇빛에 번쩍거릴 날139)이 있겠는가? 나라의 형세가 반석처럼 편안할 것이니 이 무궁한 즐거움을 헤아린다면 《주역》에서 이른 바 '이견대인(利見大人)'의 공효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아! 현룡(見龍)의 재주를 가지고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운 자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솥을 지던 이윤(伊尹)이 성탕(成湯)을 찾아갔으니140) 성탕은 600년 푸른 역사를 수립하였고, 칼을 두드리던 태공(太公)이 주 문왕(周文王)을 받들었으니141) 주 문왕은 800년 희업(姬業)142)을 이었도다. 백리(百里)는 자신을 팔았고143) 영자(寗子)는 소를 먹이다가144) 진(秦)나라에서 제(齊)나라에서 이룬 공업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견대인(利見大人)'의 공효이니 또 어찌 낱낱이 사례를 들겠는가?옛일을 논하는 것이 무익하다면 이것은 접어두자. 해동(海東) 천년에 삼한(三韓)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성명(聖明)한 군주는 자궁(紫宮)에서 팔짱을 높이 끼고 있고145) 현명한 인재들이 청괴(靑槐)146)에 진열해 있었다. 그런데 다스림은 소강(小康)147)에 지나지 않았고 때가 대도(大道)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원대한 계모와 큰 덕을 지닌 선비가 암혈(巖穴)에 능력을 숨기고 종적을 감추는데, 위에서는 불러주는 군주가 없고 아래에서는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 재능을 펴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현자를 구하는 정성이 미진하여 그러한 것이고, 제회(際會)148)의 기약이 막연하여 그러한 것이다. 내가 어찌하여 오늘날에 '이견(利見)'이 되지 않고 있음을 의심하는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 성은 모(某), 이름은 모(某)이다. 그의 거처는 강호(江湖)이다. 나의 남은 뜻은 이와 같다. 삼가 의(義)를 쓴다. 余嘗讀易。 至于乾之二爻。 有曰: "見龍在田。 利見大人"之說。 未嘗不揜卷而嘆。 君子之於斯世也。 豈偶然哉? 關天下之大數。 稟淸明之至氣。 經綸天下之巨志。 挹握宇宙之遠略。 天柱將傾則可以此身而擎之。 蒼生塗炭則可以此身而援之。 其爲抱負之如斯。 則人君之於賢者也。 顧不重歟? 信乎國家之器用也。 雖然待價自顯。 乃賢者之事。 側身旁求。 是人君之道。 不有同氣之相求。 焉得以致其鬻名而自臻乎? 爲人上者。 苟能推如渴之誠。 示思齊之心。 勞已甚於握髮。 禮亦隆於設醴。 下效上行。 豈能風草之斯速。 影隨形行。 甚於桴鼔之相應。 彼山林草屋之徒。 嶺海遐陬之輩。 孰不輟耕而幡然。 皆爲罷釣而歸來? 於是翺翔乎鳳闕。 駿奔乎龍門。 遇明君而展才。 遭聖主而施能。 運籌之合。 諫諍之聽。 可謂任職之如彼其專也。 是以君無慢賢之失。 臣無長往之意。 而雲從於龍見之日。 風烈於虎嘯之秋。 鴻毛順風。 巨魚縱壑。 逢時如此。 何患所懷之不盡? 得君如彼。 無或所學之不布。 措一世於熙皡。 躋萬姓於壽域。 文物唐虞。 猗歟休徵之畢至。 禮樂商周。 煥乎嘉瑞之爭臻。 謳歌康衢之烟月。 詎有干戈之耀日? 國勢如盤石之安。 擬此樂之無竆。 則易所謂利見大人之功效。 不在玆乎? 嗚呼! 以見龍之才而利見於大人者。 往古來今。 有幾人哉? 負鼎之伊尹聘成湯。 而成湯樹六百之蒼籙。 鼔刀之太公載周文。 而周文綿八百之姬業。 百里之自鬻也。 寗子之飯牛也。 於秦於齊。 功業可想。 其爲利見大人之效。 又何能枚擧乎? 談古無益。 請舍是矣。 海東千載。 國有三韓。 聖明高拱於紫宮。 賢材布列於靑槐。 治不過於小康。 時不升於大猷者。 愚未知何故而至於斯乎? 抑無乃宏猷碩德之士。 鞱光晦迹於巖穴。 而上無聘招之君。 下無援引之人。 而未展其才能耶? 然則求賢之誠。 未盡而然也。 際會之期。 邈爾而然也。 愚何有疑於今日之未爲利見乎? 其人爲誰? 某姓某名。 其居則江湖矣。 愚之餘意如是夫。 謹義。 좋은 값을 기다려 자신의 뜻을 알아줄 군주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論語 子罕》 동기(同氣)가 서로 찾는 뜻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周易 乾卦 文言》 사제(思齊) 《논어》 〈이인(里仁)〉의 "현인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보면 안으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악발(握髮) 주공이 천하의 인재를 선발하는데 전념하여 "머리를 한 번 감는 사이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갔고, 밥 한 끼를 먹는 사이 세 번이나 입 속의 음식을 뱉어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라는 고사를 가리킨다. 《史記 권33 魯周公世家》 설례(設醴) 현사(賢士)를 후한 예로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전한(前漢)의 초 원왕(楚元王)이 빈객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 적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 목생(穆生)을 위하여 항상 단술을 마련하여[常爲穆生設醴]' 예우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漢書 楚元王傳》 풀이 바람에 눕는 원문의 '풍초(風草)'로, 바람이 불면 풀이 쓸리듯이 윗사람이 인도하면 아랫사람이 따른다는 말이다.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하였다. 《論語 顔淵》 기러기……것이다 왕포(王褒)의 〈성군이 어진 신하를 얻음에 대하여[聖主得賢臣頌]〉에 "마치 큰 기러기 깃이 순풍을 만난 듯이 순조롭고 신속하며, 마치 큰 물고기를 큰 바다에 풀어놓은 듯이 거침없을 것이다.[翼乎如鴻毛遇順風, 沛乎若巨魚縱大壑.]"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1》 태평성대 원문의 '희호(熙皥)'는 화락(和樂)하고 자득(自得)한 모양을 말하는데,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노자(老子)》 제20장에 "세속의 중인들이 희희낙락하여,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듯, 봄날의 누대에 오른 듯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고 하였고,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성왕의 백성은 스스로 만족해한다.[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다. 수역(壽域) 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준말로, 태평성대를 뜻한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구례를 찬술하고 왕제를 밝혀서 온 세상의 백성들을 이끌어 인수의 지역에 오르게 하면, 풍속이 어찌 주나라 성왕과 강왕 때의 태평 시절 같지 않겠으며 수명이 어찌 은나라 고종 때와 같지 않겠습니까.[述舊禮明王制, 驅一世之民, 躋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 하였다. 당우(唐虞)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시대로, 곧 요순(堯舜) 시대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상주(商周) 상주는 상(殷)나라와 주(周)나라 시대로, 예악이 정비된 때를 말한다. 강구(康衢)의 연월(烟月) 강구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사통팔달의 큰길을 이르고, 연월은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추는 모습으로 태평성대의 평화로운 풍경을 말한다. 방패와……날 전란(戰亂)을 말한다. 솥을……찾아갔으니 불우했던 인물이 성군을 만났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 "이윤은 이름은 아형이다. 아형이 탕을 만나고자 했으나 길이 없자 유신씨의 잉신이 되어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맛난 음식으로 탕에게 유세하여 왕도를 이루었다.[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以滋味說湯, 致于王道.]"라고 하였다. '이윤(伊尹)'은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의 대신이다. '성탕(成湯)'은 탕왕을 말한다. 칼을……받들었으니 비천한 일을 하다 성군을 만났다는 뜻이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여망이 푸줏간에서 칼을 두드리다 주 문왕을 만나 등용되었네.[呂望之鼓刀兮, 遭周文而得擧.]" 하였다. 희업(姬業) 희성(姬姓)이 왕이 된 주(周)나라의 왕업을 가리킨다. 백리(百里)는 자신을 팔았고 '백리'는 백리해(百里奚)이며, '자육(自鬻)'은 자신의 재능을 파는 것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백리해(百里奚)가 진(秦)나라의 희생을 기르는 자에게 양가죽 다섯 장을 받고 자신을 팔아 그곳에서 소를 먹였다.[百里奚自鬻於秦養牲者五羊之皮, 食牛.]"라고 하였다. 영자(寗子)는 소를 먹이다가 '영자(寗子)'는 영척(甯戚)이며, '반우(飯牛)'는 소를 먹인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이 미천했을 때, 제(齊)나라에 들어가 남의 소를 먹이면서 제 환공의 행차를 바라보고는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하자, 환공이 듣고 그를 현자로 여겨 등용했다. 《呂氏春秋 擧難》 자궁(紫宮)에서……있고 자궁(紫宮)은 제왕의 거처로 궁궐을 말한다. '고공(高拱)'은 성군이 팔짱을 낀 채 아무 하는 일이 없이도 천하를 크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청괴(靑槐) 조정(朝廷)을 비유한 것이다. 《주례(周禮)》 〈추관 조사(秋官 朝士)〉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마주 대하는 곳이 삼공의 자리이다.[面三槐, 三公位焉.]"라고 하였다. 소강(小康) 조금 편안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예기》 〈예운(禮運)〉에 의하면, 유가(儒家)에서 이상(理想)으로 삼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세상이다. 제회(際會) 풍운제회(風雲際會)의 준말로, 임금과 신하가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