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으로 가는 이지봉21) 수광을 송별하며 짓다 奉別李芝峰睟光赴京 지금 시대 문단에서그대는 대장군이로다우리나라는 무력 쓰지 않고중하는 증명할 문헌 충분하네22)예악과 의관은 보존되어 있고산천과 길은 나뉘어 있네떠나려 함에 보검을 주니귀국길에 서군 무덤에 걸어주기를23) 今代騷壇上君爲大將軍東韓無用武中夏足徵文禮樂衣冠在山川道里分臨行贈寶釰歸路掛徐墳 이지봉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을 말한다.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중하……충분하네 중하에 예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 〈팔일(八佾)〉에서 공자가 "하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기나라에 이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며, 은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송나라에 이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한 것은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라고 하였다. 떠나려……걸어주기를 오나라의 계찰(季札)이 사신의 신분으로 서(徐)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나라의 왕이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어했지만 사행의 도중이라 줄 수 없었고 돌아오는 길에 주리라 마음먹었다. 나중에 일을 마치고 서나라에 왔지만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계찰은 서나라 임금의 무덤에 그 보검을 걸어 놓고 왔다고 한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여기서는 정문부와 이수광이 서로 간의 신의를 중시하고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