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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2년 박병해(朴炳海)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炳海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5월 20일, 박병해가 노진영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942년 5월 20일, 박병해(朴炳海)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흘러 상일(祥日)에 이른 상황을 전하고 이때 위문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전했다. 여기에서 언급한 상은 소상(小祥, 돌아간 지 만 1년 기일) 혹은 대상(大祥, 돌아간지 만 2년 기일)으로 보인다. 발신자 박병해의 거주지는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源泉里)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충신 증승지, 증호조참판 박지수(朴枝樹)와 효자 주부(主簿) 박천주(朴天柱)가 11대조와 12대조이다. 7대조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박필운(朴必運)이요, 통정대부(通政大夫) 박준각(朴準珏)의 손자이다. 1918년에 그의 생전 거주지인 원천리 1구에 세워진 '사인박병해행의송덕비(士人朴炳海行義頌德碑)'에 의하면 그는 훌륭한 명문의 후손으로 남에게 은혜 베풀기를 좋아했고, 1916년에 많은 돈을 내놓아 마을을 돕고, 1918년에도 돈을 내놓아 100호를 도왔기에 마일이 모두 칭찬하여 인인(仁人)이라 칭찬했다고 했다. 송덕비는 남평(南平) 문제보(文濟普)가 글을 짓고 광산(光山) 이철호(李喆鎬)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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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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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49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6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홀아비이고, 동거인은 23세 딸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무신년(1848)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1849년이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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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장대윤(張大胤)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胤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8년(영조4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胤)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8년(영조44) 강진현에서 무자년(176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2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65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 김씨는 65세이고, 아내인 이천서씨(利川徐氏)는 23세이다. 이어서 이천서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서일태(徐日泰), 조부는 서원적(徐元迪), 증조부는 서계축(徐啓丑), 외조부는 이암극(李諳極)으로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함께 살고 있는 아우 장대운(張大雲)은 현재 19세이다. 호주인 장대윤의 이름자 '胤'은 장대윤의 일련의 호구문서로 보아 '允' 자의 오기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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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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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5년(정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5년(정조19) 강진현에서 을묘년(1795)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46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秋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22세로 기재되어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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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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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정묘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정묘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며느리의 상을 당한 것을 위로하고, 금산 행차에 대한 기대를 표하며 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내용의 간찰 정묘년 12월 25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보낸 간찰이다. 사는 곳이 멀어 오래도록 소식이 막혀 그리운 마음이 깊었는데 이번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부랴부랴 펼쳐보니 마치 한 자리에 마주한 것만 같았다고 인사하였다. 서신을 통해 섣달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상대방의 생활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위로가 되었지만, 며느리의 상변(喪變)을 당해서 얼마나 참담하고 어떻게 견디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어머니의 건강이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서 근래 발을 다치는 일이 있어 애타는 심정이라고 하였다. 금산(錦山) 어르신의 상(喪)은 실로 사문(斯文)의 불행인데, 내년 봄에 금산에 행차하신다니 매우 기뻐서 미리부터 기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인편이 바쁘다고 해서 우선 이렇게 답장을 쓴다고 하면서 내년에 많은 복을 받으시길 축원한다고 새해인사를 하였다. 보내준 해의(海衣 김)를 잘 받았다고 인사하고, 답할만한 것이 없어 대추를 조금 보내니 받아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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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3년 최봉구(崔奉九)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崔奉九 李太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9월에 행정사 고지기 최봉구가 생원 이태옥에게 이달 22일 가을 향사에 전작으로 추천되었음을 알리는 고목 1923년 9월에 행정사(杏亭祠) 고지기 최봉구(崔奉九)가 생원 이태옥(李太沃)에게 이달 22일 가을 향사(享祀)에 전작(奠爵)으로 추천되었음을 알리는 고목이다. 강진군 작천면 신기(新基)에 사는 생원 이태옥에게 문안 인사와 함께 9월 22일에 있을 행정사 가을 정향(丁享)에 전작으로 추천되었다는 것을 아뢰는 내용이다. 가을 정향은 음력 8월 정(丁)자일에 제향하는 것으로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한 달에는 상정(上丁)·중정(中丁)·하정(下丁)이 있다. 전작은 헌관(獻官)이 올리는 술잔을 받아서 신위 앞에 드리는 일을 말한다. 행정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군자리에 있는 양산김씨(梁山金氏)의 사우이다. 유항재(有恒齋) 김양(金亮, ?~1569), 절효(節孝) 김호광(金好光, 1600~1624), 행정(杏亭) 김신광(金伸光, 1608~1666)을 향사하는 곳이다. 1820년(순조 20)에 통문을 발의하여 유항재의 강도지(講道地)였던 행정동(杏亭洞)에 사우를 세워 향사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설단(設壇)에 향사하다가 1960년에 향중유림(鄕中儒林)이 신실(神室)과 강당(講堂) 등을 중건하고 2008년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1994년 성균관 답통(答通)에 따라 도유향사(道儒享祀)로 승격되고 2004년에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군자서원(君子書院)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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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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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경진년 김성윤(金聲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聲允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진년에 김성윤(金聲允)이 사돈댁에 일반적인 안부 인사를 하면서 보낸 간찰 경진년 7월 17일에 김성윤(金聲允)이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봄에 가르침을 받고 담론을 나누었던 추억을 상기하며 돌아온 뒤에도 항상 그리웠다고 인사하였다. 지금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는데 상대의 생활은 편안하고 아드님도 편안히 어른 잘 모시며 식구들 모두 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살아가는 일에 골몰하느라 온갖 생각이 많고 오래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다행히 마을이 모두 편안하다고 하였다. 언제나 뵐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안하기를 축원한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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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6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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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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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3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3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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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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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신축년 장지철(張志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 신축년 8월에 장지철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뵌 지도 오래되었고 서신으로 연락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아보셨냐고 물었고, 자신은 집에 돌아온 뒤로 우연히 다리에 부종이 생겨 여러 날 앓았고 아직까지 다 낫지 않았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달포 전에 말씀드렸던 족보 책값에 대해 무슨 곡절인지 끝내 답변이 없어 안타깝다고 하면서 종제(從弟)인 장만원(張蔓遠)을 대신 보내니 이 사람의 말대로 하는 것이 사리에 당연하다고 당부하였다.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것에 대해 범상하게 여기지 말고 납부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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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3년(헌종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3년(헌종9) 강진현에서 계묘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4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27세 딸은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임인년(1842)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임인년의 다음 해인 계묘년(1843)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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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민수(玟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玟守 張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인 장생원(張生員)에게 보낸 간찰 갑진년 1월 2일에 사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 장생원에게 보낸 간찰이다. 장인어른의 새해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여전한 것이 새해 들어 가장 다행스런 일이고 그 외에 달리 전할 만한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근래 장인어른 집안에 아들을 낳는 경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집안에 후손을 남기는 조짐이니 매우 축하를 드린다고 하였다. 이번 달 보름 안에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무라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장인어른인 장생원댁은 신리(新里) 월복동(月復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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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장계득(張戒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戎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2년(정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戒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2년(정조16) 강진현에서 임자년(179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현재 28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천익(張天翼),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올해 8세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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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김석지(金錫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智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안부를 전하고 보내준 물건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는 내용의 간찰 병신년 10월 19일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 가을에 뵙고 몹시 감사했는데 뜻밖에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몹시 위로가 되고 또 죄송하다고 인사하였다. 편지를 통해서 매형이 잘 지내고 계시고 가족들 모두 편안하다고 해서 몹시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풍담(風痰)으로 고생하시는데 겨울 추위 때문에 더욱 안 좋아져서 애가 탄다고 하였고, 계씨형(季氏兄)을 못 보다가 만났더니 몹시 기뻤지만 흉년에 많은 식솔로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보내주신 건어(乾魚)는 잘 받았고 초자(椒子)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다만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며 다음 인편에 혹 더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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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미뤘으니 그 때 왕림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간찰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꿈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그립던 차에 사촌 성호(星皓)가 와서 매우 기뻤고, 그 편에 형님의 서신을 받아 읽고서 형님이 잘 지내고 계시고 식구들 모두 편안하며, 아드님도 어른 모시며 공부 잘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고, 종질녀도 무탈하며 손자의 천연두는 그간 잘 나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을 모두 잃은 고로여생(孤露餘生)으로서 지금 이런 때를 만나니 수고하셨을 부모님 생각에 더욱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형님이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단란하고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주고 손자가 때로 춤추고 노는 모습을 보니 노쇠한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날짜를 미뤘으니 그때 여러 사촌들과 함께 왕림해서 회포를 터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고, 여인(汝仁) 형도 평안한지 모르겠다며 바빠서 따로 서신을 쓰지 못하니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주고, 더불어 갑회 모임에 함께 오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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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鄙地方面으로 말하면 全異한 細雨도 업난事實임이다 鄙地의 送人하시와 形便를 보시면 다알의시것심이다 鄙地年▣로 말하면 十分에 九은 災라 할수잇고 一은 豊이라고 할수잇심니다 弟의小作한畓租中에不可三束以上에 넘지못하게 收取하고 그대로 잇심니다 先尺決定은 每年의 定尺하엿시나어너니廢農故로 更히 送人하시라한거심니다 其時에도 不安心를 두시지만은 右記와갓치 年運닌니 十分容恕하시고 送覽하여주시면 以後부터셔난 만닐못먹난形便이잇드라도 更히말슴告白치안커심이다 歸去한 鄙妹의 苦痛한 事情과 遺語로하다하드라도 銘心不忘 先尺一升도 懶惰치안키로함니다 그리알으시고 二十五日內로 送覽하여주시룬 千萬大望하난밤니다 今年갓튼 年勢과 ᄯᅩ잇실가요 十分顧護하시와 今年에 更히 보와주시시오 麥를 갈게되야신니 速速키 送覽하여주시를 切望함이다 餘不備書舊九月二十五日 弟朴判根 上呈他人定尺도 更히보와갓신니곳來臨하시오못오게되면回答하여주시시오【피봉】〈前面〉光州郡本村面日谷里▣▣永氏〈後面〉緘 長城郡森溪面社倉朴判根拜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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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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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박판근(朴判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判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농사가 흉년이므로 소작료 결정에 앞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9월 25일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우선 올해 농사의 10분의 9가 재해를 입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소작한 논의 작료는 3속(束) 이상을 넘지 못하게 수취해 왔고 선척(先尺) 결정은 매년 정했지만, 워낙 농사가 흉작이므로 다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해준다면 이후부터는 못 먹는 형편이 있더라도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자신 누이의 고통스런 사정과 남긴 말을 명심해서 잊지 않고 선척 1승(升)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25일 안으로 사람을 보내 살펴주시기를 신신당부하였다. 올해와 같은 농사는 또 없었거니와 보리를 갈게 되었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면서 못 오게 되면 회답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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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재혁(盧在爀) 등 2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在爀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2월 2일, 노재혁 등 2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상을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942년 2월 2일, 노재혁(盧在爀) 등 2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자신의 아버지 상이 졸곡(卒哭)을 넘기게 되었는데, 그때 위문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다고 하였다. 연활자 인쇄의 방식으로 서간을 작성했다. 발신자는 노재혁, 노재철(盧在{火+喆})이며, 거주지는 마산부(馬山府) 성호동(城湖洞) 50번지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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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42년 노긍석(盧兢錫) 등 3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兢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4월 20일, 고자 노긍석 등 3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1942년 4월 20일, 고자(孤子) 노긍석(盧兢錫)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노긍석 등이 이마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린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상황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자애로운 상대가 위문(慰問)해 주심을 받았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노긍석(盧兢錫), 노만석(盧晩錫), 노남석(盧南錫) 3인이며 이들의 주소는 경상북도 달성군 지구면(求智面) 대포동(大浦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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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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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9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盧軫永 安秉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5일, 제 노진영이 손자 지섭의 학교 문제로 안병현으로부터 온 편지에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 1939년 5월 15일,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안병현(安秉鉉)에게 손자 노지섭(盧地燮)의 학교 문제로 애쓰고 편지를 준 안병현에게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이다. 자질(子姪)이 상대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데 한번 인사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성의가 부족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최근 청화한 날씨에 상대가 공무(公務)를 잘 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지난 일주일 전에 다른 곳에 나가서 2틀전 저녁에 광주 봉호(蓬戶)에 돌아왔는데 보내주신 전보가 와 있었다는 것, 다음날 과연 상대의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는 것,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미 소비한 3회분은 더 논할 것도 없고, 2회분 또한 활동으로 소비해 놓고 각자 자금을 내어 보냈다니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 나에게 혐의가 있는 것이지 형을 허물할 것이 없기에 다시 돌려 드리니 잘 받으시라고 했다. 자신이 마땅히 집에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 당연한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며 3~4개월 간 내로 꼭 찾아뵙고 방도를 도모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꼭 책임져 줄 사람이 있다는 말에 매우 기쁘다는 것, 먼저 실패하고 후에 성공하는 것이 맞으니 다시 제 뜻을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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