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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장계득(張啓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啓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직역이 대변군관(待變軍官)인 장태익(張泰翼)의 사망으로 인하여 아들로서 대신 호주를 이었는데, 현재 25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태익,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이다. 어머니인 김씨도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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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0년(헌종6) 강진현에서 경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1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누이는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기해년(1839) 8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기해년의 다음 해인 경자년(1840)이다. 그러므로 1행의 도광(道光) 18년은 도광 20년의 오기로 봐야 한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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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기사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기사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 댁에 안부를 묻고 사부(沙阜)의 중부(仲父) 상(喪)을 당한 것을 알리면서 장례 날짜를 알리는 내용의 간찰 기사년 8월 26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인편이 있었던 뒤로 소식이 뜸하여 항상 궁금했는데 고모님은 건강하고 종씨(從氏)는 어른 잘 모시며 공부 잘 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이번 달 11일에 사부(沙阜)의 중부(仲父) 상(喪)을 당했으니 가운(家運)이 혹독하여 애통하다고 하고, 거기에 또 숙부님이 이일학(二日瘧)에 걸려 마음이 타들어갈 뿐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사부의 부고가 늦어졌고 또 하인들이 모두 사부로 들어가 이제야 돌아왔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부고를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백씨(伯氏) 어른은 서울에 갔다가 돌아왔는지 소식을 몰라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부의 장례 날짜는 10월 19일로 정해졌다고 알렸고, 면화(綿花) 20근을 보내니 받아달라고 하였으며, 과거에 고모부님 댁에서는 몇 명이나 합격했는지 묻고 자신의 집안은 모두 낙방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이일학은 이틀거리라고도 하는 학질의 하나로, 이틀을 걸러서 발작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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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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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김흡(金{土+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翕} 李碩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2_001 갑진년에 김흡(金{土+翕})이 장산(章山)의 이석사(李碩士)에게 복시(覆試)에서 장원을 한 것을 축하하고 자신은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내년 봄에 날이 따뜻해지면 향례(享禮)에 참석하겠다는 내용의 간찰 갑진년 12월 23일에 김흡(金{土+翕})이 장산(章山)의 이석사(李碩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래 소식이 막히고 한해가 저물어 가서 그립던 가운데 보내준 서찰을 받고 몹시 기뻤고,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다고 하여 더욱 위안이 되었는데 거기에 복시(覆試)에서 장원을 했다니 더욱 기쁘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학질을 앓다가 중간에 점차 떨어질 듯 했는데 지난달 보름 이후에 또 재발하여 고통 받고 있으며 온갖 약이 듣지 않아 몹시 걱정이라고 하였다. 보내준 새해 선물을 받고 매우 감사했으면서도 봄가을 향례(享禮)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해 매번 편안치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병이 봄에 날씨가 따뜻해졌을 때 낫는다면 향례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하였다. 섣달그믐이 멀지 않은데 오직 새해에 더욱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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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을미년 김형진(金炯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炯鎭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과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며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내용의 간찰 을미년 12월 24일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니 그리움 더욱 간절한데 요즈음 섣달 추위에 생활은 편안하고 대소가 식구들 고루 좋으며,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마을도 청정한지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 식구들도 무탈하며 조카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면서 다만 세상이 어지러워 모든 일이 두서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상대가 왕림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가능할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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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0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15세 딸인 아지(阿只)가 있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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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이씨(李氏)는 46세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이중이(李重伊), 조부는 이선용(李善用), 증조는 이봉하(李奉夏), 외조부는 김연분(金延分)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딸 아지(阿只)는 14세이고 둘째 아들 연금(延金)은 11세이다. 장대언의 이전 준호구에는 처가 초계최씨(草溪崔氏)로 되어 있다. 경주이씨는 초계최씨가 사망한 뒤에 두 번째로 얻은 부인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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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순조2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25년(순조25) 강진현에서 을유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46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홀아비였던 장재풍(張再豊)이 사망하고 그의 형인 장용이가 호주가 되었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8세인 딸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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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장지성(張至星)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星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21세 딸이 있으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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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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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86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35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1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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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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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4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에서 갑오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55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가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17세인 딸 하나가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계사년(1833)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계사년의 다음 해인 갑오년(1834)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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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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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92년 공명첩(空名帖) 3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追贈)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증손자로 인하여 그의 증조부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의 증조부 이인열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이인열(李仁烈)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그러나 이인열의 추증교지에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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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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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무술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이창호(李昌浩)가 상대방이 부탁했던 미투리 두 켤레를 사 놓았으니 상대방이 방문하면 찾아드리겠다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윤 7월 17일에 이창호(李昌浩)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전에 부탁했던 미투리[麻鞋] 두 켤레를 이미 사 두었는데 마침 인편이 없어서 바로 보내드리지 못했으니, 하루 이틀 사이에 방문해주시면 그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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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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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61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朴載榮이 朴載鼎으로 개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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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7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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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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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始星<着名>, 趙元兼<着名>, 禹仁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답(畓) 1두 4승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금년 들어서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이라고 적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내정동(內井洞)에 있는 상자(霜字) 답 1두 4승락지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1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하였다. 김여성(金如星)과 조원겸(趙元兼)이 증인으로, 우인평(禹仁坪)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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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생 망인(亡人)의 장지(葬地)와 장일(葬日)의 선택과 관련하여 각 절차의 방위 등을 기록한 장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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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유년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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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정사년 파계시목록(破契時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사년 계를 깨뜨리면서 계금의 결산 내역을 정리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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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이규행(李圭行)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圭行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을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임명한 고신교지(告身敎旨)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李圭行)을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에 임명한 고신이다. 통정대부의 품계는 정3품 당상관이며, 돈녕부 도정은 정3품 당상관직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문무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식(告身式)의 형식과 달리 임명자의 이름이 관직명보다 아래에 적혀 있다. 소장자료 '1925년 이진녕(李震寧) 등 통문(通文)'과 1892년 이보승(李普升) 추증교지(追贈敎旨) 등을 살펴보면 이규행의 본관은 경주로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서 살았으며,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으로 이인열(李仁㤠)의 증손, 이시준(李時濬)의 손자, 이보승(李普升)의 아들이다. 돈녕부는 정일품아문(正一品衙門)으로 왕의 친족과 외척의 관부이며, 돈녕인(敦寧人, 왕실의 친척으로 宗姓 9촌·異姓 6촌, 왕비의 同姓 8촌·이성 5촌, 세자빈의 동성 6촌·이성 3촌) 사이에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창설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종정부(宗正府)로 병합되었으며, 궁궐 밖 중부 정선방(貞善坊, 현 종로구 익선동)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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