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덕무(李德懋)의 시(詩) 구절을 적은 주련. 이덕무(李德懋)의 시(詩) 「만월대별박미중백영숙지금천(滿月臺別朴美仲白白永叔之金川)」의 한 구절을 적은 주련이다. 이 시는 개성의 만월대(滿月臺)에서 이덕무가 박지원(朴趾源)과 백동수(白東脩)와 이별하면서 쓴 것으로 『아정유고(雅亭遺稿)』 2에 수록되어 있다. 문서의 오른쪽 아래부분에 내(內)·외(外)라고 적혀있다. 이덕무의 자(字)는 무관(懋官)이며, 호는 형암(炯庵)·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영처(嬰處)·동방일사(東方一士)·신천옹(信天翁)이다. 정종의 아들인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성호(李聖浩)이며 어머니는 박남박씨(潘南朴氏)이다. 조선후기의 유학자이자 실학자로 박지원(朴趾源)·홍대용(洪大容)·박제가·유득공·서이수(徐理修) 등의 북학파 실학자들과 깊이 교유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박지원의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또는 연상(煙湘)·열상외사(洌上外史)이며, 본관은 반남이다. 아버지는 박사유(朴師愈)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이다. 조선후기 한성부판관,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홍대용(洪大容)·이덕무(李德懋)·정철조(鄭喆祚) 등과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대해 자주 토론했으며, 황해도 금천(金川)연암협(燕巖峽)으로 은거했다. 백동수의 자(字)는 영숙(永叔)이며, 호(號)는 야뇌(野餒)·인재(靭齋)이며,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무예가 뛰어나 당대에 창검(槍劍)의 일인자로 꼽혔고, 마술(馬術)과 궁술(弓術)에도 뛰어났다. 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 등 북학파 실학자들과도 깊이 교유하여 학문에도 높은 성취를 이루었고, 서예에도 능해 전서(篆書)·예서(隸書)를 특히 잘 썼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