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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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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19년 장재풍(張再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再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再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9년(순조19) 강진현에서 기묘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38세로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앞의 준호구들에 나온 '장재풍(張載豊)'과 동일인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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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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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4년 장채수(張采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秋文益 張采守 張采守<着名>, 秋文益<着名>, 金成詹<着名>, 梁義賢<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 추문익(秋文益)이 장채수(張采守)에게 자신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94년 추문익(秋文益)이 장채수(張采守)에게 자신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수년 전부터 자신이 기경(起耕)한 논으로, 금년 봄에 많은 사채(私債)로 인하여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 논의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의 강변에 있으며, 면적은 5되지기[刀落只]이고 방매가는 전문(錢文) 22냥 5전이다. 이 논에 대한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성첨(金成詹)이 증인으로, 양의현(梁義賢)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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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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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0년 계중(稧中) 토지전당명문(土地典當明文) 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張明化 張明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밭 2두락지를 계중(稧中)에 전당을 잡히며 작성한 전당문기 1900년 장명화가 서계전(書稧錢) 14냥 3전을 마련할 길이 없어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상자(霜字) 밭 2두락지를 계중에 전당을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전당 기한은 절월(節月)을 기한으로 하였으며, 이 기한을 넘기게 되면 밭을 팔아서 보태도 좋다는 약속을 하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은 없이 장명화가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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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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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성조양택사정입국(成造陽宅四正入局)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집을 짓는 사방 방위와 배치를 결정하면서 그에 따른 거주인의 길흉을 판단하여 택일하기 위한 성조 양택 사정입국(成造陽宅四正入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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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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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신축년 장지철(張志喆)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종중 어른에게 보낸 언간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종중 어른에게 보낸 언간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몹시 그리웠는데 체후는 편안한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보소(譜所) 일을 처리하느라 객지를 여러 날 돌아다니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고, 또 일가댁 산소에 있었던 화재 사건을 전하였다. 화재는 이번 달 5일에 발생하였고 생초목이라서 피해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일가의 선영(先塋)이 나의 선영이기 때문에 기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화재의 원인은 지나가던 사람의 담뱃불이 떨어져서 발생하였고 직접 불을 껐으며, 산소가 전부 타지는 않았기에 불행중 천만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달포 전에 보첩(譜牒) 일로 보청(譜廳)에서 사통(私通)을 보냈는데 받아보았는지 몰라서 답답하다고도 하였고, 일가댁에 서로 마찰이 있어 민망한 일은 도유사(都有司)가 말씀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하였으며 일이 지체되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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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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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4년 장한종(張漢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允宗 張漢宗 趙允宗<着名>, 黃貴福<着名>, 宋太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조윤종(趙允宗)과 황귀복(黃貴福)이 장한종(張漢宗)에게 언답(堰畓) 3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64년(고종1) 8월에 조윤종과 한귀복이 장한종에게 자신의 언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 언답은 본래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이었다. 그런데 지난 병진년 봄에 수해로 제언이 무너졌다가 지금까지 제언을 다시 쌓지 못하여 논이 황폐하게 된 것이 방매사유라고 밝히고 있다. 방매 대상은 교포리(橋浦里)에 있는 곤자(崑字) 1두락지와 동자(同字) 2두락지를 합한 논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5냥이다. 이 거래에 송태향(宋太享)이 증인 겸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각각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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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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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8년 장명화(張明化) 토지상환명문(土地相換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守夫 張明化 鄭守夫<着名>, 金用西<着名>, 金有年<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8년(고종15) 정수부(鄭守夫)가 장명화(張明化)와 밭을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相換) 명문 1878년(고종15) 정수부와 장명화가 토지를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 명문이다. 정수부의 밭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하다가 상환하게 되었다. 대상 토지는 신리(新里) 뒤쪽 강변 몽토동(夢土洞)에 있는 위자(爲字) 밭 7두락지이다. 대체로 상환명문의 경우 서로 교환하는 상대방의 토지가 기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서에는 쓰여 있지 않다. 김용서(金用西)는 증인으로, 김유평(金有平)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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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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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矣身山地事成完▣…▣內矣身所居北面私自壬子定巡山發賣▣…▣於面中大有功焉再昨冬奸鄕鄭仁國輩誣訐▣▣之山及面中田畓幷爲奪付民庫各年▣…▣所謂以饒居氷租六十石進上所用藏氷價一百二十兩罰錢六十兩公然責納是遣去己巳年分矣身定父山於巡▣…▣錢三十兩於面中成文買得禁養松楸矣以此山地又稱法外廣占不給本價奪付雇廳盖許多錢穀之白地▣…▣項錢穀與山地明査推給亦呈▣▣▣則 巡使道題音內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 御使道▣…▣痛惡 兵校呂善黙則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宜當事題▣…▣後來歷則狀者之徵穀徵錢果如其數是遣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如乎錢穀與山地出給事分付則▣…▣道山地?依當初定界成完文以給亦爲置依狀者所願▣▣龍虎六谷依本文永永出給之意玆以▣…▣心以法令爲法令切定成給是如乎今則矣身幸蒙特恤之澤推尋山地也更不煩訴是乎矣梧枝面▣…▣武斷鄕曲威脅民財因爲致富爲旀一邑事曰左則左曰右則▣(右)鄕民之畏趙鈒如畏虎傷人害物比比有▣…▣納續昨冬又入於暗行 御使道按廉已被刑杖之境然足水未淸不悛前習更爲出入校院指揮隨從群▣…▣議擧事驩呶臆奪矣身之山地付於雇廳爲計是何用心是何事理乎用山之法入葬者爲主禁養當然而▣…▣前後所呈所志議送完文與本券九張幷以帖連仰訴伏乞▣…▣鈒乱法之習俾無矣身山地已決之下作梗橫侵之地千萬望只爲▣…▣▣(癸)酉三月 日〈題辭〉自本邑査實論報以處向事本官 初四日[官印]▣[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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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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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成造陽宅四正入局凡成造須得四正位然後推地運不剋本命可以興工可如子年用事以子加寅上丑在卯得四正位辰戌丑未坐向幷吉丑年以丑加寅上寅在卯得四正位寅申巳亥坐向幷吉寅年以寅加寅上卯在卯得四正位子午卯酉坐向幷吉餘皆放此寅午戌生 申子辰生 己酉丑生子午官灾 子午孫亡 子午元敗天才彔丑未多子孫 丑未亂風 癸丁買糴癸丁主死亡 寅申富貴 艮坤大亡寅申得才 卯酉命福 甲庚官灾甲庚人物興 辰戌萬福 乙辛喪事卯酉富貴 己亥年年敗家 寅申主死亡乙辛三年內得才 癸丁年年入喪 己亥富貴辰戌大通 艮坤富貴 卯酉主死亡巽乾年年大亡 甲庚長壽 辰戌大凶艮坤富貴 乙辛富貴 壬丙亂風己亥大亡 巽乾亂風 巽乾大凶壬丙多官灾 壬丙官灾亥卯未生 子午進福乙辛喪事丑未富貴巽乾富貴寅申大凶壬丙多才卯酉死亡癸丁進福己亥大凶艮坤大凶甲庚大凶辰戌亂風壬坐 午丙門生貴子亥乾門加官進福子坐 午丙門生貴子亥 巳丙門聰明富貴 未坤門旺六畜及第戌乾乾門加官進彔 門百事俱吉癸坐 巳丙門主聰明美貌秀才未坤門進橫財黃甲及第戌乾門家和孝順百事皆吉昌丑坐 丑坐與癸坐同艮坐 午丁門出人黃甲及第申庚門進財六畜寅坐 申庚門加官進彔午丁門明六畜田蚕甲坐 申庚門旺田蚕六畜午丁門主出豪强 戌乾門家和而只有外訟卯坐 子癸門富貴雙專 巳丙門食彔旺人戌乾門加官進財乙坐 子癸門聰明過人戌乾門美貌文章辰坐 戌乾門出色衣人子癸門旺六畜人外申庚門家和孝順巽坐 戌乾門全家孝義申庚門生子聰明子癸門進橫財致富巳坐 丑艮門旺牛亥壬門生色衣人未坤門藝術獲財丙坐 丑艮門進財亥壬門家和孝順未坤門因人富貴午坐 丑艮門因妻致富辰巽門夫婦和順丁坐 艮寅門生人聰明子巽門文武雙全未坐 辰巽門因妻致富丙■巳門出人美貌寅艮門旺牛馬坤坐 寅甲門出人文武之才戌乾門出人志氣之士辰巽門旺六畜申坐 戌乾門富貴辰巽門聰明秀才寅甲門因人進昌財庚坐 戌乾門出義氣辰巽門出人美貌寅甲門進財彔酉坐 未坤門出人孝義辰巽門因妻致富寅甲門進田旺人辛坐 寅甲門加官進財子癸門旺田蚕人丁辰巽門美貌奇童戌坐 辰巽門出人慷慨午丁門旺田蚕寅甲門進財乾坐 寅艮門藝術成家未坤門忠孝俱全亥坐 丑艮門出人秀才寅戌門旺田蚕申庚門家門孝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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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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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9년 박장현(朴章鉉)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章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 신성휴가 기록한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했던 박장현의 46세 당시 호적표.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康津郡守) 신성휴(申性休)가 46세 박장현(朴章鉉)에게 발급한 호적표이다. 같은 집의 전년도 호적표에는 호주가 박장현의 아버지 박재빈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호주가 바뀐 것으로 보아 그 사이 박재빈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박장현이 살았던 주소는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 제4통 제3호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재빈(載彬), 할아버지는 천익(千益), 증조는 웅준( 碓俊), 외조는 김쾌갑(金快甲)이다. 이전 구호적과 다른 점은 외조 및 자신의 처, 어머니 등의 본관을 기록하지 않은 점과 처의 4조(祖)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함께 살던 식솔로는 어머니 김씨, 아내 김씨, 아들 윤원(潤瑗), 윤원의 처 김씨, 둘째아들 윤통(潤統), 셋째아들 윤성(潤成), 넷째아들(潤玉)이다. 딸 1명도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현존인구는 남7명, 여4명, 도합 11명이다.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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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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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於民役以其餘剩買置田畓數石落是加尼昨冬良▣(中)有司數人不善擧行是如奸鄕輩訐告官家柴塲及田畓並爲奪入属公於雇馬廳而諸有司決罪放送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該面氷丁租六十石及 進上所用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它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畓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 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馬廳而松楸之地渾歸属公故屢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越添肚氣峻責其誤官蠧民之習棄置而歸家則當日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送將校捉去矣身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大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據理叱退舊官發行後徃推所志則吕善黙諉以還納於舊官終不出給爲臥乎所右項凶〖區〗地當初買得既已明白所志有無無甚係關畓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意 論題行下敎是遣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橫政乎 並爲査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怨事 參商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巡使道 處分壬申六月 日〈題辭〉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兼官 卄四日[官印]都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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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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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謹候書근구죠후ᄒᆞ늬ᄉᆞᆼ용복창근미심잇의기쳬후일만ᄉᆞᆼ복소구구지지라죵ᄒᆞ는보ᄉᆞ로지의셔누일두류허다가각쳐의일도간셥ᄒᆞ고당여갈양으로금월쵸오일의오ᄃᆞ가일가ᄉᆞᆫ소가실화되와기로집니들어와셔자셔니들으니금월쵸오일나졔츙화되와셔구화을못한즁의타인니직자기별ᄒᆞ기로쳑방지방ᄂᆞ가서구화ᄒᆞ기로가셔본니쵸목의실화라단치안니ᄒᆞᄂᆞ잠시슈호는고ᄉᆞᄒᆞ고일가의션영니의션영인고로기별ᄒᆞᆫ직글니알옵ᄉᆞᆫ쇼가다실화는안니되여시ᄂᆞ지간노ᄉᆞᆼ지인의담불의러져셔실화되온즁의자직구화허여기로만번니ᄂᆞ당ᄒᆞ옵고불즁다ᄒᆞ옵너다노변의션ᄉᆞᆫ니게신고로간연의실슈가잇시ᄂᆞ노변쳐과글니되온일옵월젼의보쳡ᄉᆞ로보쳡의셔ᄉᆞᆺ통ᄒᆞ온즁의죵ᄒᆞ의사셔을바ᄃᆞ보옵는지몰ᄂᆞ답답즁의옵네ᄃᆞ각쳐의일가셔각각ᄒᆞᆫ일을보온니다일쳬로시을ᄒᆞ온데유독쥬간일가의셔ᄉᆞᆼ힐니되온니쳥니목도의민망헌거사도유ᄉᆞ가말ᄉᆞᆷ니ᄒᆞ용일로안ᄃᆞ고누차불호지언으로일ᄉᆞᆷ말ᄉᆞᆷᄒᆞ온니부데죵ᄒᆞ외말ᄉᆞᆷ을범연니마옵슈이되온면변도과ᄃᆞᄒᆞ온니다일지쳬가불지ᄉᆞ옵네다남은말ᄉᆞᆷ춍춍키로불비ᄉᆞᆼ辛丑八月初六日 宗下志喆拜上 少名만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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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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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康津郡守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樂山里 4統 1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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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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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임술년 서경순(徐璟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璟淳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2월에 곡성현 예산면 신기리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 임술년 2월에 곡성현(谷城縣) 예산면(曳山面) 신기리(新基里)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堂姪)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京主人)에게 전령(傳令)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서경순은 전임 수령의 자손으로 신기리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나 가문이 쇠퇴하고 복이 없어 십 수호도 되지 않은 친족이 모두 가난하게 근근이 사는 처지였다. 올봄 정월에 서울 사람에게 진 빚으로 패가망신한 평지촌(平地村)에 사는 이기무(李基茂)가 노점(路店) 술자리에서 서경순의 당질 연국(延國)을 불러서 이번 한성시(漢城試)에 함께 가자고 하자 당질이 자신은 집이 가난하여 노잣돈이 없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이기무는 웃으며 자기와 서울로 올라가면 서울 빚 5, 600전을 얻을 수 있고 무과 선달(武科先達)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였으나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농담으로만 알았더니 이달 12일에 당질 연국과 이기무가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다. 이에 서경순은 절박한 마음으로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서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청원서에 대해 곡성 수령은 2월 10일에 '경저리(京邸吏)에 전령을 내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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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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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7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2.4), □…□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허물어져 자금을 모아 정비하기 위해 이미 1896년 9월에 입지(立旨)를 발급해 달라고 정소하였다. 이 상서에서는 자금은 적고 공역(工役)은 허다하여 많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분묘에 떼를 입히고 정비하는 봉축(封築) 작업을 끝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하고, 분묘 부근의 금안방(金岸坊)과 기지방(機池坊)에 부역을 명하는 전령을 내려 묘소 정비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는 2월 22일에 면임(面任)에게 '정소한 대로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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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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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박창석(朴昌錫)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昌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2월 말일에 제 박창석이 보내준 물건에 감사를 전하고, 상대에게 약을 보내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7년 12월 말일에 제(弟) 박창석(朴昌錫)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준 물건에 감사를 전하고, 종기를 치료하는 약을 보내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이다. 뜻밖에 귀하의 사자(使者)가 와서 편지를 받고 대면한 듯하였다고 인사하고 12월 날씨에 어버이 돌보고 있는 상대가 안녕하시다고 하여 위로 된다고 하였다. 자신 쪽은 여전하다고 안부를 전한 후 보내주신 물건이 어찌 이렇게 과하게 마음을 쓰셨느냐며 손으로 받고 마음으로 부끄러웠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한 치종(齒瘇) 약을 보내며 5~6일간 복용하면 효과가 속히 나타날 것이라며 의심하지 말고 해보라고 당부했다. 나머지는 내년에 다시 이야기 하자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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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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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7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7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 3)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40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8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재영(在榮)은 나이 27세 신미생(辛未生)이다. 제수[嫂] 박씨는 연령 27세 신미생(辛未生)이고 본적은 밀양(密陽)이며, 아들 용탁(龍鐸)은 나이 19세 기묘생(己卯生)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6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호구상준인(甲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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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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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김영규(金泳奎)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泳奎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9월 24일에 생 김영규가 노진영에게 혼사에 관해 전한 서간과 별지 1건. 1927년 9월 24일에 생(生) 김영규(金泳奎)가 노진영(盧軫永)에게 혼사(婚事)에 관해 전한 서간(書簡)과 별지(別紙) 1건이다. 간찰에는 지난번 잠시 이별하고 슬픔이 더욱 깊었는데 요즈음 어른 모시고 계신 상대가 안녕한지, 집안은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전과 같이 지내며 집안에도 별 좋지 않은 일이 없다고 했다. 전에 약속했던 일을 혹시 기억하고 있는지, 혹시 잊었는지 물으며, 자신 종족의 종환(琮煥)씨가 청혼하는 자가 세 곳이라고 했다며, 어제 우리 집에 왔기에 여러 차례 부탁해 두었다고 했다. 지금 아들을 보내니 범범하게 듣지 마시고 좌우간에 성립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간 김에 회답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규수의 얼굴에 대한 것은 기타의 문제이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별지(別紙)는 국한문혼용으로 글귀를 썼는데, 내용은 요즘 세상에는 가벌(家閥)을 보지 않고 당사자만 보는 세상이니 청혼한 사람이 여럿이니 다만 나와 귀하 사이가 아니라면 어찌 이처럼 하겠느냐고 말하고 범범히 듣지 말아 달라고 다시 당부했다. 그리고 진남계(珍南稧)는 일전에 언제 어디에서 만났는지, 긴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회답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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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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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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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7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7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3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7년(헌종 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4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5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41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4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상준인(甲午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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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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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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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고언주(高彦柱) 등 3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彦柱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16일에 향교의 고언주 등 3인이 노진영에게 석전제의 제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27년 1월 16일에 광주향교(鄕校)의 고언주(高彦柱) 등 3인이 석전제(釋奠祭)의 제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새해 첫 달의 상대 안부를 묻고 다음 달 초1일에 거행하는 석전제의 제관(祭官)으로 귀하의 이름이 선정되었다며 이에 서함을 보내니 양해해 주시고, 제사기일 하루전날에 본 향교의 당(堂)에 와서 치재(致齋)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발신자는 향교의 제(弟) 고언주, 송재근(宋在根), 최수화(崔洙華) 3인이다. 피봉에 적힌 '본향교(本鄕校)'는 광주향교(光州鄕校)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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