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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醫監爲相考事 黃海兵營審藥崔榮運瓜滿代 本監當次人員入啓蒙 允爲有置職姓名關後錄爲去乎 依例待政下 批爲只爲 合行移關 請照驗施行須至關者右 關吏 曹光緖十年八月 日相考[關] 提調 [署押]後 通訓大夫行黃海兵營審藥 朴基俊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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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최봉조(崔奉祚)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鍾垕 崔奉祚 金鍾垕<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73_001 1829년(순조29) 10월 17일에 답주 유학 김종후가 최봉조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촌의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9년(순조29) 10월 1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김종후(金鍾垕)가 최봉조(崔奉祚)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종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편상 부득이한 사정으로 토지를 판다고 적었다. 방매 대상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촌(山嶺村) 앞평원 뜰에 있는 섭자(攝字) 답(畓) 1두5승락지(결부수: 1부 5속)의 논으로 현재 시산(時山)의 이름으로 양안에 등재된 곳이다. 이 논을 본문기와 함께 전문(錢文) 7냥으로 거래했다. 문서의 작성자는 답주 1인으로 김종후가 자필(自筆)하여 문서를 작성했다.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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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九年己丑十月十七日 崔奉祚前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 傳來畓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以 本 府黃田面霅峙山嶺村前坪員伏在 攝字畓一斗五升落負數壹負八束時山帳庫乙 價折錢文七兩捧上爲遣 右處本文記幷 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 若有是非之弊是去等 將此文告 官相考事自筆 畓主 幼學 金鍾垕[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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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夔模 노(奴) 사금(士今) 梁夔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8년(헌종4) 12월 1일에 답주 유학 양기모가 유학 모인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촌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8년(헌종4) 12월 1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양기모(梁夔模)가 유학 모인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양기모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편상 부득이하여 논을 방매한다고 적었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촌(山領村) 굴포평(屈浦坪)에 있는 직자(職字) 답(畓) 4마지기(결부수: 12부 4속) 노(奴) 사금(士今)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이를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와 함께 전문(錢文) 40냥을 받고 영원히 팔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양기모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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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捌年戊戌十二月初一日 幼學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已 順天黃田面霅峙山嶺村屈浦坪職字畓四斗落只負數十貳四束奴士今帳庫乙價折錢文四十兩依數捧上爲遣 右前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告官相考事畓主自筆 幼學 梁夔模[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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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양한영(梁漢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正澤 梁漢永 崔正澤<着名>, 金潤基<着名>, 鄭潤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71_001 1826년(순조24) 2월 24일에 답주 한량 최정택이 유학 양한영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의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6년(순조24) 2월 24일에 답주(畓主) 한량(閑良) 최정택(崔定澤)이 유학(幼學) 양한영(梁漢永)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정택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먹었던 땅을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했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굴포후평(屈浦後坪) 섭자답(攝字畓) 4마지기(결부수: 13부 6속)로 노(奴) 사금(士今)의 이름자로 양안에 올라있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15냥이다. 구문기와 함께 영원히 판다고 밝혔다. 문서작성 시 참여자는 답주 한량 최정택, 필집(筆執) 유학 김윤기(金潤基), 증인 유학 정윤채(鄭潤彩)이다.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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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陸年丙戌貳月二十四日 幼學梁漢永處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多可 要用所致 不得已 本府黃田面霅峙屈浦後坪攝字畓四斗落只 負數十三卜六束 奴士今帳㐣 價折錢文十■五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 日後若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告官 卞定事畓主 閑良 崔定澤[着名]筆執 幼學 金潤基[着名]證人 幼學 鄭潤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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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조재의(趙在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在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0년 2월 18일에 유학 조재의가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30년 2월 18일에 유학 조재의(趙在義)가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천부 황전면(黃田面) 구포평(九浦坪)에 있는 위토답(位土畓) 4두락을 대대로 경작해오다가 필요한 곳이 있어 부득이 전문 62냥에 팔고 본문기(本文記)까지 매수인에게 양도하니, 이후 다른 말을 하는 폐단이 있다면 이 문서로써 바로잡을 것을 약속하였다. 매수인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한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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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정윤▣(鄭允▣)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萬福 鄭允▣ 李萬福<着名>, 崔武成<着名>, 金種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4년(순조24) 10월 25일에 전주 이만복이 유학 정윤▣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평 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4년(순조24) 10월 25일에 전주(田主) 이만복(李萬福)이 유학(幼學) 정윤▣(鄭允▣)에게 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만복은 자신이 매입했던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평(山嶺坪) 중기(中基)에 있는 섭자(攝字) 전(田) 4마지기(결부수: 4부 5속)의 땅을 전문(錢文) 3냥 5전을 받고 신문기 1장으로 매입자에게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이만복과 증인 최무성(崔武成), 필집(筆執: 문서작성자) 김종기(金種基) 3인이다. 문서 작성시 청의 연호와 간지가 일치하지 않아 간지를 따랐다. 문서의 작성에 있어 토지의 방매 사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 참여자의 서명이 화압(花押: 그림 서명)에 가깝다는 점, 방매(放賣)를 방매(訪賣)로 쓰는 등 뜻이 맞지 않는 글자를 쓴 것이 3자 이상이며, 이두를 기록할 때 '이거든(是去等)'을 '이거(是去)'로 기록하고 마친 점 등 여러 면에서 글을 작성하지 못하는 이가 작성한 미숙한 매매문서로 보인다.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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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三年甲申十月二十五日 幼學鄭允▣…右明文事段 矣身自起買得田 本邑順天黃田面霅峙山嶺坪中基太種四斗落只攝字田四卜五束崔長福帳庫乙 黃成才帳庫乙 可〖價〗折前〖錢〗文三兩五戔 炭山登後東便洞也 此文記一丈幷 永永訪〖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雜談以去 此文記告官卞正事田主 李萬福[着名]訂人 崔武成[着名]筆執 金種基[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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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一煥 鄭一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0년(순조30) 1월 16일에 답주 유학 정일환이 순천부 황전면 삽치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0년(순조30) 1월 16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일환(鄭一煥)이 논을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일환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 먹었던 논을 다른 곳으로 옮겨 사기 위해서 방매한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중고현평(中古峴坪)에 있는 종자(從字) 답(畓) 2마지기 진광(振光)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과 구포평(九浦坪) 직자(職字) 답(畓) 6마지기(총합 부수: 19부 9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67냥에 본문기와 함께 영원히 팔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정일환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뒷면에는 거래토지 내 상변(上邊) 2마지기(2부2속)의 땅을 다른 이에게 팔았다고 적었다. 글자가 기록된 위치는 앞쪽 직자답의 뒤쪽으로 직자답의 일부 2마지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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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秊庚寅二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位土畓 累年耕食是如可要用所致 不得已本府黃田面下道霅峙山令村前九浦坪 職字畓 四斗落 負數十柒卜爲三郞廊帳庫乙價折錢文陸拾貳兩 依數交易捧上爲遣, 右前本文記幷以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罪之弊是去等 此文告官卞正事自筆畓主 幼學 趙在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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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최석형(崔錫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奴 順德 崔錫衡 奴 順德<着名>, 李大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철종10) 2월 24일에 안씨댁 노 순덕이가 전라도 보성군 백야면 옥천리에 있는 친산의 일부와 관련 방결전을 최석형에게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 1859년(철종10) 2월 24일에 안씨(安氏)댁 노(奴) 순덕(順德)이가 전라도 보성군(寶城郡) 백야면(白也面) 옥천리(玉泉里)에 있는 친산의 일부와 관련 방결전을 최석형(崔錫衡)에게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이다. 안씨의 친산이 백야면 옥천리의 안산(案山)에 있어서 산 아래 방결(防結) 목자(牧字) 전답(田畓) 3배미(결부수: 8부 1속)를 해마다 담당하여 농사짓고 있었는데 용문면(龍門面)에 사는 최석형(崔錫衡)의 선산도 한 동네 안에 있어 그의 내청룡되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나눈 지 이미 몇 년 되었었는데 지금은 다시 청룡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그쪽에 영원히 땅을 허급해 주고 방결작 8부 1속의 땅과 송추 값과 올해의 결부가로 총 3냥 5전을 받고 방결전답 8부1속을 영원히 담당할 뜻으로 다시 두 산과 계곡으로 경계를 정하고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기지(基地)의 주인인 안씨 댁 노 순덕과 증인 이대식(李大植)이다. 추기로는 목자 전답에 대하여 세금을 내면서 원징(寃徵)과 탈하(頉下) 받은 차례 및 액수를 적어 참고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백야면 옥천리는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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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九年己未二月二十四日 明文右明文段 親山在於白也面玉泉里案內是加尼 山下防結牧字三作 爲八負壹束 年年擔當矣 龍門面居崔錫衡先山在於一洞之內 而分界於渠矣內靑龍嶝者 已有年所矣以其私情切迫之意 恃其情誼 靑龍嶝分界之地 永爲許給之意 上項防結八負壹束果 松楸價及當年結卜價 合參兩五戔 卽爲捧上是遣 右結八負壹束 永爲擔當之意 更爲分界於兩山其溪谷 永爲許給 以此憑考事基址主 安奴 順德[着名]訂人 李大植[着名]此亦中 采元牧字二十次 二負九束內六束丁巳寃徵蒙頉 二十六次 二負二束內六束舊防蒙頉 二十一次 三負 丁巳寃徵蒙頉合計 四負二束 在三負九束以此憑考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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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年庚寅正月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移買次 本府黃田面下道霅峙中古峴坪從字畓貳斗落振光帳庫乙果 九浦坪職字畓陸斗落只 幷庫負數什仇卜仇束庫乙價折錢文陸拾柒兩 依數交易捧上爲遣 右前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談是去等 此文記告 官卞正事自筆畓主 幼學 鄭一煥[着名](背面)內上邊二斗落只二卜二束庫乙 他處放賣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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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이일춘(李一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孟談 李一春 崔孟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86_001 1814년(순조14) 2월 18일에 답주 최맹담이 이일춘에게 보성군 백야면 옥천촌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14년(순조14) 2월 18일에 답주(畓主) 최맹담(崔孟談)이 이일춘(李一春)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최맹담은 자신이 산 논을 생활하기가 어려워 판다고 방매 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보성군(寶城郡) 백야면(白也面) 옥천촌(玉泉村) 앞에 있는 목자(牧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7부 2속) 1배미이다. 거래 가격은 18냥으로 이 돈을 받고 본문기 3장과 함께 판다고 적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최맹담 1인으로 직접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백야면 옥천촌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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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이구(李坵) 별급문기(別給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李坵 安峑 李坵<着名>, 李之茂<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48년 12월 7일에 장인 이구가 사위 안전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급하면서 작성한 별급문기 1648년 12월 7일에 장인 이구(李坵)가 사위 안전(安峑)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도로 지급하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이구가 나이 70이 되어 평소에 즐거운 일이 없었는데 사위 안전이 진사시에 입격[得參蓮榜]하여 뭇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집안에 큰 즐거움을 주었으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노비와 전답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지급된 노비로 노 축금(丑金)의 3소생 노 견룡(見龍)과 비 향개(香介)의 2소생 비 예생(禮生)이 있고, 전답으로 나주와 이천에 있는 논 6두락과 산탁동(山托洞)에 있는 논 7두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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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婿進士安峑處別給文右文爲吾年幾至七十 素無好事 而吾君之得參蓮榜 出於稱覯 渾舍之喜 倒老境之開懷 爲如何哉 玆將奴丑金三所生奴見龍年十五 婢香介二所生婢禮生年十 羅州伊川伏在畓六斗落只 山托洞伏在畓七斗落只 聊表欣抃之情 鎭長使喚耕食事順治五年戊子十二月初七日 財主妻父 李[着名]筆執三寸姪 之茂[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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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안명혁(安命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白孫 安命㷜 朴白孫<着名>, 朴萬柱<着名>, 金積补<着名>, 朴性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84_001 1806년(순조6) 4월 22일에 산지주인 한량 박백손이 유학 안명혁에게 보성군 백야면 옥천산의 산지를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06년(순조6) 4월 22일에 산지(山地) 주인 한량 박백손(朴白孫)이 유학(幼學) 안명혁(安命㷜)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박뱅손은 집안 형편이 매우 가난하고 80세 되신 노모를 봉양하기 어려워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백야면(白也面) 옥천산(玉泉山) 손사룡(巽巳龍)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무덤 산지의 한 등성이 2항(二巷), 곧 청룡과 백호의 등성이 및 기르던 소나무 등과 산 아래에 있는 목자전(牧字田) 피종(皮種) 2두락지와 번답(反畓) 5승락지 4부5속이다. 이 곳을 안명혁의 부친을 입장(入葬) 하도록 돈 65냥을 받고 판다고 적었다. 본문기 3장도 함께 주었다는 것, 훗날 아우들, 조카들 및 자손들 중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있으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하여 바름을 가리라는 내용을 적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산지 주인 한량 박백손과 증인 동성 8촌인 박만주(朴萬柱), 제2순위 증인 한량 김적보(金積补), 작성자 유학 박성일(朴性一)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백야면 옥천산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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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九年甲戌二月十八日李一春前明文右明文事段 自起買得 白也面玉泉村前伏在牧字畓二斗落只一夜味負數七卜二束庫乙 生道爲難 右人前價折錢文拾捌兩依數捧上 本文記三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卞正事畓主 自筆 崔孟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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