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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 상황을 전하는 간찰 1944년 1월 3일에 정읍 칠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편지를 막 쓰려던 차에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지난번에는 전주의 박 주사(朴主事) 형과 잠시 술자리를 갖고 빨리 돌아왔는데 차가 이미 출발해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심경을 전하고, 자신은 임실과 전주, 부안을 돌아 섣달 그믐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근황을 전했다. 새해 들어 얻은 것이라고는 나이 한 살 뿐이니 한탄스럽다고 하고, 이전에 말했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추배(追配)하는 문제에 대한 진행 경과를 전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도강김씨(道康金氏) 몇 명이 호응하지 않은 일은 원장(院掌)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환상(煥相) 형이 주선하였고, 논의를 어긴 송씨(宋氏) 몇 명은 자신이 움직이는 데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서원 향사(享祀)의 제수 비용 몫으로 2백원을 내서 승낙을 받는 일은 금전만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유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니 범범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상대방이 4닢[葉]을 빌려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고, 이는 손자의 병 때문이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 노진영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 원지(院誌) 간행비 20원을 속히 부쳐달라고 전해달라는 당부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여러 형들은 새해 들어 편안한지 묻고, 자신이 바빠서 각자 안부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 편지로 안부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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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欲裁書之際 先承惠緘悚感萬萬 而向者更未拜別后他全州朴主事兄 一杯酒暫飮 故速往速來矣 南車已發只自向風悵歎而已 咎實在我 安敢望厚恕否 謹從審新元兄體萬旺 大少寶節均慶仰頌慰祝 弟功服人 自任實全州扶安 除夕歸家 而新年所得者 只添一齒 浩歎奈何奈何就先生之事 至於道康金氏數人不應事 在於院掌 故煥相兄周旋 其他宋氏數人違議事 亦在於弟之運動怎 兄院享需費二百円承諾條 日間速付於心松兄然後 以那意到底爲書 如何如何 無論某大事 非徒金錢主張也 先買其心 則勿泛勿泛 而事若終境已成自道押圖計耳 勿慮焉惠施四葉貸感謝感謝 善用於孫兒病故矣 貴隣鄭玩杓兄許 院誌剞劂費二十円到底爲言速付 如何如何 鄭友言內 那條則與仁兄商議付送云則無異仁兄惠給於我矣尤極感激者耳 餘立俟回示 不備上謝甲申元月三日曉 弟功服人金成基拜諸兄新歲泰安否 忙未各候以此雷照如何如何【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地斯文軫永兄〈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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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曺正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曺正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목재 운송에 관하여 보낸 간찰 모년 4월 29일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일전에 말했던 주목(株木)에 대하여 운송인의 말이 광주 경양까지 운송하는 것은 40전(戔)이면 운송을 하겠지만, 삼각리(三角里)까지는 주목 하나당 50전씩이라도 도로 문제로 운송하지 못하겠다고 한다고 전하였다. 동복(同福) 상가리(上佳里)의 김국일(金國日)에게 두 차례 왕래했더니 그곳에 주목 1개, 연목(椽木) 104개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춘서목(春西木) 1개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격을 주어야 할 것이며, 경양까지 40전씩이면 운송할 것이니 이를 헤아려서 가부간에 빨리 회답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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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진행 상황 등을 알리는 내용의 간찰 1944년 2월 8일에 정읍 칠보면에 사는 김성기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에 편지를 받고 답장을 바로 보내지 못했던 것은 집안에 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근래 장인어른의 상(喪)을 당해서 5일만에 집에 돌아와 일에 두서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상대방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성서원 유림들의 마음을 사야 하므로 제수 비용 몫으로 200원을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김성기의 의견이었는데 이때 노진영이 아마도 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김성기는 그 돈 200원을 김환상(金煥相)에게 주었더니 매우 감사하다는 언급을 했다고 전하고, 이 돈은 춘제(春享)의 제수비용으로 쓸 계획이라고 하였다. 선생을 추배하는 일은 거의 희망이 보이므로 적극 도모하고 있다고 하였다. 통장(通狀)은 잘 썼다고 하는데 더 정리한 뒤에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설 계획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감기에 걸려 앓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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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열(高光說)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說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광열(高光說)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토지 매도를 주선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6월 25일에 장성군 동화면 송계리에 사는 고광열(高光說)이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달에 이별한 뒤로 마음이 울적한데 생활은 편안한지 묻고, 자신은 근래 여름감기에 걸려 며칠간 고생하다가 요즘에야 조금 회복 중이라고 안부를 전하였다. 노진영 측에서 먼저 토지 매입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고, 그에 대해 고광열이 매도할만한 토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5마지기의 땅이 나왔는데 토지 가격은 745원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매입할 의향이 있으면 다음 달 초순 사이에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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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계해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사돈어른과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의 간찰 계해년 4월 6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사돈어른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종 인편이 있었는데 바쁘고 어수선하여 한 번도 서신을 보내지 못하여 몹시 그리운데, 생활은 편안하시고 아드님도 어른 잘 모시며 공부 잘하고 있는지, 집안 식구들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예전 그대로 지내지만 외롭고 쓸쓸한 심정이 갈수록 깊어지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과 집안이 무탈하다는 점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조카 욱(彧)은 볼수록 더욱 기특하고 사랑스러우며 자못 앞으로 크게 될 가망이 보인다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언제 한번 만나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성호(星皓) 집도 평안한지 묻고, 바빠서 따로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러한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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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을축년 1월 15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의 큰형수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간찰 을축년 1월 15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큰형수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받고 몹시 놀랐고, 서로 우애가 좋았는데 비통함을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위로하면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계절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마음을 가라앉혀 몸이 축나지 않도록 하시라고 당부하였다. 장례에 필요한 것들은 미리 준비했겠지만 큰 변고를 거듭 당하여 일이 많고 경황이 없을 것을 생각하면 슬픈 심정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종질녀(從侄女)가 잘 버티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그 광경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심정을 전하였다. 자신은 기력은 쇠해가고 나이는 더 먹어가니 족히 말할 것이 없다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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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김직(金{土+畟})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畟}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에 김직(金{土+畟})이 옥계(玉溪)의 누군가에게 아들 상을 당한 일을 위로한 간찰 정미년 12월 14일에 김직(金{土+畟})이 옥계(玉溪)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치를 거슬러 아들이 먼저 죽는 일을 당한 옛 현인인 자하(子夏)가 심하게 울다가 실명을 했던 고사를 먼저 말하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당한 형님을 위로하였다. 더구나 더욱 아끼고 사랑했을 부인께서는 슬픔을 어찌 감당하고 계신지 위로하며 모쪼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절제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상변(喪變)을 많이 거치다보니 마음이 단단해져서 망(忘) 자 한 글자에 부쳐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도가 되는 것 같다고 하고, 기력이 쇠해가는 마당에 이것이 병의 빌미가 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면서 형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슬프고 가여울 뿐이라고 하였다. 소식이 막혔던 차에 계씨(季氏) 형을 만나서 위로가 되었는데 바로 작별해서 섭섭하고, 백씨(伯氏) 형님이 평안하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바빠서 각각 서신을 쓰지 못하니 이 뜻을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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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처행(車處行)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車處行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차처행(車處行)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성 대원사(大原寺) 산판(山阪) 건으로 보낸 간찰 모년 10월 10일에 차처행(車處行)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소식이 오래 막히고 안부를 알지 못해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고, 겨울 추위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두 편안하고 식구들 고루 경사스러운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로 나와 지내다 보니 고생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하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보성 대원사(大原寺) 산판(山阪)에 마침 좋은 재목이 있어서 알려드린다며, 형의 마음에 든다면 서신을 보는 즉시 대원사로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바로 그날 회답 서신을 주고받을 때 자신이 나가보려고 한다고 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만났을 때에 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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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김흡(金{土+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翕}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2_001 계묘년에 김흡(金{土+翕})이 옥계(玉溪)의 이생원 댁에 안부를 묻고, 보내준 새해선물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면서 오는 봄 향사(享祀) 때에는 참석할 생각이라는 내용의 간찰 계묘년 12월 22일에 김흡(金{土+翕})이 옥계(玉溪)의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이다. 국상(國喪)으로 다 같이 슬퍼하는데 보내준 편지를 받고 직접 만나 뵌 듯 반가웠고, 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잘 지내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노환(老患)이 날로 생겨나서 문 닫아 걸고 신음하느라 만 가지 생각이 다 식어서 가련한데 동생마저 병이 낫지 않아 일마다 걱정스러우니 좋은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보내준 새해 선물은 잘 받았는데 한번 나아가 인사드리지 못하고 앉아서 받기만하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병이 더 심해지지 않는다면 봄 향사(享祀) 때에는 반드시 참석하려고 생각중이지만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가는 통장(通章)은 매강서원이 보낸 것이니 우리 쪽 각 서원에 보내주고, 봉안할 때는 반드시 왕림해달라고 하였다. 인산서원은 그곳에서 전송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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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병인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종씨(從氏)의 상(喪)을 위로하고 서원의 향사(享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병인년 8월 1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갑작스런 종씨(從氏)의 상(喪)에 너무 놀랐는데, 서늘한 가을이 시작될 즈음에 고인의 서신을 받고서 얼굴을 뵌듯했다고 하면서 고모부와 형님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쓸쓸하고 무료하게 날을 보내며 어린 손자들을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홍역이 아직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염려스럽다고도 하였다. 숙부와 종씨의 병환 소식에 몹시 걱정스러운데 무슨 증세냐고 묻고, 이런 노년에 병환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고 하면서 자신도 동갑인 까닭에 더욱 우려가 크다고 하였다. 그간 손부(孫婦)를 맞아들였는지도 물었다. 과시(科時)에 형과 노여(老汝) 형이 나란히 갔다고 해서 날마다 소망하였는데 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성호(星皓)의 집안도 평안한지 묻고, 바닷가의 여러 고을이 농사가 좋지 않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사는 근처는 가뭄 피해가 커서 흉년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전하였다. 장산서원(章山書院)의 향사(享祀) 때 원장(院長)이 자리에 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자신은 몸을 빼기 어렵거니와 기고(忌故) 때문에 단념했다고 전하였다. 상대가 미역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성호에게는 바빠서 따로 서찰을 쓰지 못하므로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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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천수(金千洙)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千洙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0_001 을미년에 김천수(金千洙)가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매형의 준수함을 칭찬하며 오는 20일 뒤에 다시 초대할 계획임을 전하는 간찰 을미년 12월 6일에 김천수(金千洙)가 사돈어른에게 보낸 간찰이다. 어제 못 가게 만류했는데도 사돈어른이 갑자기 떠나서 몹시 섭섭했었다고 하면서 밤사이 체후는 편안하고, 대소가(大小家) 모두 고루 잘 지내고 계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내고 있고 어른 모시는 생활도 예전 그대로이며 집안 식구들이 별탈이 없는 것 외에 별다른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매형은 지극히 어질고 준수해서 한미한 집안의 큰 행운이라고 인사하였다. 오는 20일 뒤에 다시 초대할 계획이니 헤아려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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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01_001 임진년에 박천흠(朴天欽)이 옥산(玉山)의 누군가에게 아들 상(喪)을 당한 것을 위로하고 자신의 아이가 가는 것은 마을의 돌림병이 물러나면 형세를 봐서 보내겠다는 간찰 임진년 12월 26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산(玉山)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아들 상(喪)을 당한 상대방에게 애도를 표하고, 어른 모시면서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물었다. 부음을 받고부터 가슴이 서늘하고 뼈가 시려서 차마 남에게 말도 할 수 없었다며 모쪼록 마음을 편안히 하고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고 다른 특별한 일은 없다고 하였고, 아이의 행차는 마을의 돌림병이 물러나면 형세를 봐서 보낼 것이라고 하였으며, 빠르고 늦는 것은 무슨 상관이겠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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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01_001 계사년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묻고 며느리의 신행 날짜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의향을 말해달라는 내용의 간찰 계사년 7월 27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아이가 돌아오는 편에 서신을 받지는 못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염려가 되었고, 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지금은 어떠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모쪼록 잘 조섭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아우 부자(父子)가 염병 증세로 거의 죽다 살아났고, 지난달 24일에는 넷째 매부(妹夫)인 상주(尙州)의 정서방(鄭書房)의 상변(喪變)을 당했는데 동기간의 비통한 심정은 차치하고라도 연로한 부모님의 기력이 손상되어 몹시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종씨(從氏) 상(喪)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라 놀랐다고 하였다. 집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인데 전혀 공부한 바 없이 허랑하게 여름 석 달을 보냈다고 한탄하고, 며느리의 신행을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10월 18일이 좋다고 하는데, 혹 구애되는 면이 있으면 다음 달 초에 평성(坪城)의 인편이 있다고 하니 그때 의향을 말씀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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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장지성(張至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至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6년(헌종12)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46년(헌종12)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지성은 현재 나이는 58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이고, 딸 아지(阿只)는 21세로 출가하였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이 없다. 이 문서는 병오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을사년(1845)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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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철봉(張哲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哲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哲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3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7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7세이고, 딸 아지(阿只)는 10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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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83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3년(정조7) 강진현에서 계묘년(178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9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되어 있고,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9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선(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9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0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0년(정조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0년(정조4) 강진현에서 경자년(1780)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7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6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6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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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10년 장재풍(張載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載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載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장재풍은 본래 홀아비였던 장계득(張啓得)의 사망으로 인하여 대신 호주가 되었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29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홀아비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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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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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13년 장철봉(張喆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喆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3년(순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喆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3년(순조13) 강진현에서 계유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0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4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4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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