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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參年甲辰八月十八日 八同生和會明文右明文爲和會事 奴婢▣▣(田畓)乙 曾於乙卯年間…▣(父主)已爲分給成文 而奴婢等年歲根泒乙全不載錄乙仍于今當和會之日 一依文記中所載 更爲書塡爲▣ ▣(遠)方奴婢則不入於當初文記中 故各衿分執爲去乎 依此文使喚事▣(一)承重田民乙 旣已別張文記成置 而松山宗基不入於文記故今更書塡事一 乙卯年各衿分給後 文記所載奴婢所生子孫 則依淂後所生 今不書塡事一 老奴婢等段 不入於今此分衿文記中 而其所生則各衿分執爲去乎 各宅勿以遺漏奴婢侵責事一 逃奴婢等段 其某子孫中推淂 則平均分執事奉祀位松山代田八斗落只 家前朴參奉宅辰字畓二十一斗落只 家前興千辰字畓四斗落只 家前金花辰字畓十四斗落只 映字田太種七斗落只婢士德二所生婢金花年癸卯 婢銀代三所生奴太山年丁未 婢銀介三所生婢春德年己未 同婢五所生婢德今年丙寅 婢桂玉二所生婢他眞年戊申 印一男 厚之衿新奴婢秩 奴命吉良幷四所生奴唜致年丙戌 婢俊化一所生奴哲男年丁亥 婢行迹一所生婢卜德年丙申 婢順代年丙戌 乙卯分衿秩奴允石良幷三所生奴善卜年辛卯 奴漢丁良幷二所生婢春伊年癸卯 婢生伊年丙申 婢孫非四所生婢眞香年壬寅 婢長非二所生婢貴葉年癸未 奴命山良幷二所生婢今德年 奴彦伊良幷一所生婢南花年戊申 大橋畓十三斗落只 百夜谷畓下邊五斗落只保十古之畓七斗落只 烏西畓七斗落只 甲辰執籌秩 奴莫同良幷一所生婢玉女年丁丑 同奴二所生奴唜立年己卯 同奴三所生奴香金年甲申 白川奴乭先良幷二所生奴孫業年己丑 婢大德四所生婢甘德年戊子 同婢五所生婢唜母年辛卯 奴萬終良幷三所生奴大春年丙辰 奴遠伊良幷四所生奴有意年癸未 奴羅斤乃良幷六所生奴唜龍年己彦 印二男 愼之衿新奴婢秩 婢孫非一所生奴允卜年乙未 婢女丁一所生奴守男年壬辰 婢唜之二所生婢西德年乙亥 婢內卩非三所生婢莫代年癸卯乙卯分衿秩 奴命吉良幷三所生婢莫德年癸酉 奴允石良幷二所生奴斗之年己丑 婢恩代二所生婢恩尙年丙申 婢長非一所生奴思郞金年丁丑 婢億終一所生奴男伊年丙申 婢牧丹買納婢愛玉年辛丑 奴伐介良幷二所生奴淂南年戊子 新字代田牟種十五斗落只 路下天命畓十斗落只 鳥樹畓五斗落只 大洞畓七斗落只 烏西畓五斗落只甲辰執籌秩 奴莫立良幷一所生奴哲金年庚子 白川奴遠伊良幷三所生婢好玉年辛巳 奴羅斤乃良幷三所生奴奉吉年辛卯 奴乭先良幷四所生婢者斤年戊戌 奴大春良幷二所生奴乭無赤年辛卯 婢彦介一所生婢礼一年乙丑 康津婢莫眞四所生奴占金年戊寅 醴泉奴先伊年 興陽婢萬非二所生婢 年 印三女 鄭昌瑞妻安氏衿新奴婢秩 禮玉一所生奴唜孫年 奴漢丁良幷一所生奴士男年己亥 婢行迹二所生婢億春年癸卯 婢恩介一所生婢春介年庚戌乙卯分衿秩 奴唜孫良幷一所生奴唜生年乙巳 同奴二所生婢唜春年庚戌 奴今山良幷五所生婢莫介年庚戌 婢進介二所生婢女香年壬申 鳥樹朴參奉畓十三斗落只 亭子底田十斗落只 甲辰執籌秩 婢玉女二所生奴勝龍年癸卯 白川奴唜金良幷一所生奴乭先年己巳 婢禮一一所生婢禮安年丙戌 婢大德六所生婢唜生年乙未 奴大春良幷三所生奴有斗只年丁酉同奴五所生奴 年癸卯 康津婢奉德一所生婢天今年己亥 興陽奴卜伊良幷二所生奴希男年壬申 醴泉奴季希年四男 審之衿新奴婢秩 奴延山良幷一所生奴山水年丁未 奴方竹良幷一所生奴乭金年戊戌 婢桂玉一所生婢他今年丙午 奴延山良幷二所生婢山花年庚戌 乙卯分衿秩 婢奉代一所生奴延山年己巳 婢順代一所生婢孝信年丙午 婢有德一所生奴戌溫年戊子 婢卜西非一所生婢愛同年婢蘭伊五所生婢後德年丁巳 婢六月一所生婢旕介年丙午 奴連希年丁亥 山亭下畓十五斗落只 九里岩代田上邊四斗落只甲辰執籌秩 婢淂女五所生奴莫立年乙亥 白川奴遠伊良幷五所生婢夫業年丙戌 同奴七所生奴有日年壬辰 奴彦盃良幷五所生奴季達年乙未 婢大分一所生婢禮德年戊子 奴羅斤乃良幷四所生奴奉先年甲午 同奴五所生奴好吉年丙申 康津婢莫眞一所生奴保男年己未 同婢二所生婢奉化年癸亥 印五女 梁一南妻安氏衿新奴婢秩 婢春化三所生奴良金年辛亥 婢莫德一所生奴莫金年戊戌 同婢二所生婢莫眞年戊申 婢六月三所生婢旕生年己酉乙卯分衿秩 婢乱伊二所生婢乱化年己酉 同婢四所生婢先德年丁巳 婢夢介一所生婢尋春年辛未 婢內卩非二所生婢恩化年丙申 洞田五斗落只漆田古介畓八斗落只 鄭忠義宅銅岩前畓三斗落只 甲辰執籌秩 奴莫立良幷二所生婢哲女年甲辰 白川婢大德一所生婢亂生年丁丑 同婢柒所生婢玉女年己亥 婢禮一二所生奴仲已年壬辰 同婢三所生奴後吉年甲午 婢大分三所生婢乭今年己亥 康津婢莫眞四所生婢奉德年丁卯 奴卜伊良幷一所生奴希卜年庚午 醴泉奴慶仁年 印六男 益之衿新奴婢秩 婢俊化三所生奴莫南年辛丑 婢春化二所生奴良卜年丁未 奴石木良幷三所生婢夢花年丙午 婢得女二所生婢愛女年甲寅乙卯分衿秩 婢奉進年乙酉 婢春介一所生婢萬每年戊子 婢奉進一所生奴元金年戊申 同婢二所生婢元今年辛亥 婢六月二所生婢旕德年甲辰 婢乱伊三所生婢亂生年癸丑 婢春每一所生婢春今年戊午 ■■(婢得) 積田代田太種五斗落只 畓四斗落只 主簿宅畓十三斗落只九致良畓漆斗落只 甲辰執籌秩 婢得女三所生奴乃金年辛酉婢玉女一所生奴玉龍年丙申 白川奴彦盃良幷二所生奴敬業年丙子 婢大德三所生奴西音伊年乙酉 奴乭先良幷三所生婢仲女年壬辰 婢愛生一所生奴士立年甲子 奴遠伊良幷八所生奴有好年乙未醴泉奴季生年 興陽婢萬非一所生奴一弘年壬申 印七女 曹挺有妻安氏衿新奴婢秩 婢有德二所生奴戊生年 婢夢介二所生奴介金年婢戒玉三所生婢春玉年庚戌 婢恩介四所生婢分代年癸亥乙卯分衿秩 婢士德一所生婢金德年戊戌 奴允伊良幷二所生婢南介年庚戌 婢有德年婢烏今三所生婢玉女年丙子漆田古介畓七斗落只 太元畓七斗落只 洞田牟種十斗落只 甲辰執籌秩 白川奴彦盃良幷一所生奴勝業年甲戌奴羅斤乃良幷二所生婢古邑德年丁亥 婢大分二所生婢有德年庚寅 婢亂生三所生婢甘丁年壬寅 婢愛生三所生奴義立年壬申康津婢莫眞五所生婢奉進年壬午 婢奉化一所生奴金金伊年甲午 同婢三所生婢 年 醴泉奴戒奉年 印八男 逸之衿新奴婢秩 婢恩介二所生奴千年年辛亥 奴今山良幷四所生奴今身年辛丑 奴允石良幷四所生婢允介年癸卯 奴丁秋良幷一所生婢桂玉年乙酉 乙卯分衿秩 婢俊玉年庚午 婢戒玉三所生奴春生年甲寅 婢春每二所生奴輝里同伊年辛酉 婢德春年婢今介二所生婢於屯介年 婢溫今三所生婢士今年甲寅婢進介一所生奴戒弘年癸酉 銅岩代田牟種十五斗落只 茅亭下畓十三斗落只 鄭忠義宅銅岩前畓三斗落只 竹昌畓五斗落只甲辰執籌秩 南原婢得女四所生婢建女年甲子 婢建女一所生奴士信年甲申 同婢二所生婢士貞年丙戌 同婢三所生婢愛業年丙申同婢四所生婢西貞年己亥 興陽婢 一所生婢 白川奴萬終良幷四所生婢大分年庚申 奴遠伊良幷六所生奴有見年己丑 婢亂生二所生婢可也之年己亥 印遺漏奴婢秩 白川奴彦盃年乙巳 奴遠伊年戊申 奴羅斤乃年癸丑 婢愛生年戊戌 奴唜金年丁酉 奴者斤金年乙巳 奴遠伊一所生奴有命 二所生奴有氣 興陽婢萬飛年白川故奴雲一良幷一所生婢 年癸卯 奴五香孫年壬戌逃奴婢秩 奴方竹良幷二所生婢秀永介年壬寅 同婢一所生奴秀奉年 二所生奴秀白年 婢亂伊一所生奴牙山年甲辰婢億終二所生婢戒成介年戊戌 三所生奴南翠年乙巳 奴介男年 奴連卜年一男 故通德郞安厚之代子 進士 峑[着名]二男 宣敎郞 安愼之[着名]三女 故司勇鄭昌瑞代子 幼學 東五[着名]四男 宣敎郞 安審之[着名]五女 故通德郞梁一南妻 安 氏[梁一南妻安氏印]六男 宣敎郞 安益之[着名]七女 宣敎郞曹挺有代子 幼學 善行[着名]八男 故學生安逸之代子 幼學 嵾[着名]筆執 外孫 鄭東五[着名](背面)康熙五十七年戊戌二月二十二日 光陽縣 背頉爲背頉事 右文付婢德今 所生婢德只年五十 同婢一所生奴業山年卄九 二所生奴業月年十五 等三口良中 捧價放賣於縣居崔□處 的實故 依例立案成給爻周背頉印行縣監[署押]康熙六十年十二月日平安郡爲背頉事 右文付婢德只三所生莫礼年十三己丑生一口身乙 郡居申道涵處放賣的實是乎等以 依例立案成給後 爻周爲事行郡守[署押]【배면에 착명(着名) 14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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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이구(李坵) 별급문기(別給文記) 2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李坵 安峑 李坵<着名>, 李之茂<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48년(인조26) 12월 7일에 재주 장인 이구가 사위 안전에게 사마시 진사 입격을 축하하기 위해 노비와 전답을 별급하면서 발급한 별급문기 1648년(인조26) 12월 7일에 재주(財主) 처부(妻父) 이구(李坵)가 사위 안전(安峑)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급하면서 작성한 별급문기(別給文記)이다. 안전이 사마시 진사 부문에서 합격한 것을 축하하면서 재산을 별급한 것으로 별급한 재산을 살펴보면 노비 5구(奴 景龍, 奴 厚龍, 奴 見龍, 婢 春月, 婢 禮生)와 나주 이천(伊川畓) 6두락지, 산탁동(山托洞)에 있는 답(畓) 7두락지이다. 문서의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재주 처부 이구, 필집(筆執) 3촌질 지무(之茂)이다. 이와 동일한 분재기가 있는데 그 분재기와 본 분재기의 다른 점은 본 분재기에는 노비의 나이가 적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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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婿進士安峑處別給文右文爲吾年幾至七十 索莫無好事 而吾君之淂參蓮榜 出於穪覯 渾會之喜 倒老境之開懷爲如何哉 玆得奴丑金一所生奴景龍年 二所生奴厚龍年 三所生奴見龍年四所生婢春月年 婢香介一所生婢禮生年 羅州伊川伏在畓六斗落只山托洞伏在畓七斗落只 聊表欣抃之情 鎭長使喚耕食事順治五年戊子十二月初七日 財主 妻父 李[着名]筆執 三寸姪 之茂[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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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 안후지(安厚之) 등 8남매 화회명문(和會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安厚之 等 8男妹 安厚之 等 8男妹 安峑<着名>, 安愼之<着名>, 鄭東五<着名>, 安審之<着名>, 安益之<着名>, 曺善行<着名>, 安嵾<着名> □…□(흑색, 5.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33_001 1664년(현종5) 8월 16일에 안후지 이하 8남매가 아버지 사후 화회하여 전답과 노비를 나누면서 작성한 화회명문 1664년(현종5) 8월 16일에 안신지(安愼之) 등 8남매가 화회하여 전답과 노비를 나누면서 작성한 화회명문이다. 서문에는 아버지 안방준 생전에 분급해 주신 분재기에 노비 등의 나이와 노비의 부모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번 화회하는 날에 문기에 기록된 대로 다시 제대로 써 넣고 먼 지방의 노비를 당초에 분재하지 않았으므로 각자 몫으로 나눈다고 적었다. 그 후 4가지 작성원칙을 명시해 놓았는데 첫째는 승중(承重) 전민(田民)을 별도의 종이에 적었지만 송산(宋山)의 종기(宗基)는 써 넣지 않았으므로 이번에 써 넣는다는 것, 둘째, 아버지가 분재한 을묘년 이후에 태어난 노비의 자손은 득후소생(得後所生) 이므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늙은 노비는 이번 분깃문기에 넣지 않고 그의 자식들은 각자 분집하니 각 집에서는 남은 노비가 있다 하여 침책(侵責)하지 말 것, 도망 노비의 경우에는 자손 중에 추심하여 억게 되면 평균분집(平均分執)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봉사위(奉祀位)로 전답 54두락과 노비 5구, 1남 안후지(安厚之) 몫으로 전답 32두락, 노비 20구, 2남 안신지(安愼之) 몫으로 전답 2두락, 노비 20구, 3녀 정창서(鄭昌瑞) 처(妻) 안씨 몫으로 전답 13두락, 노비 17구, 4남 안심지(安審之) 몫으로 전답 19두락, 노비 20구, 5녀 양일남(梁一南) 처(妻) 안씨 몫으로 전답 16두락, 17구, 6남 안익지(安益之) 몫으로 전답 29두락, 노비 20구, 7녀 조정유(曺挺有) 처 안씨(安氏) 몫으로 전답 24두락, 노비 16구, 죽은 8남 안일지(安逸之) 몫으로 전답 36두락, 노비 19구, 빠뜨린 노비 11구, 도망노비 8구를 기록해 놓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인원은 1남 안후지의 아들 진사 안전(安峑)으로부터 2남 선교랑 안신지, 3녀 고(故) 사용(司勇) 정창서 대자 유학 정동오(鄭東五), 4남 안심지, 5녀 고 통덕랑 양일남 처 안씨, 6남 선교랑 안익지, 7녀 선교랑 조정유의 아들 유학 조선행(曹善行), 8남 고 학생 안일지의 아들 유학 안참(安嵾)과 필집(筆執) 외손(外孫) 정동오(鄭東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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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秊庚寅二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位畓 累年耕食是如可 私債太多 出處無路 故不得已 本府黃田面山令九浦坪員伏在 職字畓四斗落只 負數十七束奴三郞帳庫乙 價折錢文陸拾壹兩 依數交易捧上爲遣 右前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是非之端是去等 此文기 憑考卞正事自筆畓主幼學趙在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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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五年乙卯四月二十日 幼學崔錫衡前明文右文記段 矣先山在於寶城白也面水中山艮龍癸坐之原 而家貧所致 果未定山直守護是加尼右人親山入葬於同麓之意累累懇請是乎所 當此窮節老親下生道將至末如?除良 且爲同山所守護之方 矣先山伐內一席之地 決價錢文伍拾兩 準數捧上 成文記 永永放賣許給爲去乎 日後子孫族戚間 如有爻象 以此文記 告 官卞正事山主 綾州 雙鳳村 幼學 金大賢[着名]金泰賢[着名]證人 幼學 南重哲[着名]筆執 幼學 金基賢[着名](背面)白也面水中山文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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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안방준(安邦俊) 별급문기(別給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安邦俊 安峑 安邦俊<着名>, 鄭東潤<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48년(인조26) 12월 5일에 할아버지 안방준이 맏손자 안전에게 사마시 합격을 축하하면서 노비와 전답을 별급해 준 별급문기 1648년(인조26) 12월 5일에 할아버지 안방준(安邦俊)이 맏손자 안전(安峑)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급하면서 작성한 별급문기(別給文記)이다. 안방준이 손자 안전에게 재산을 별급한 사유는 손자의 사마시 합격 때문이다. 별급한 재산의 양은 노비 7구와 둔전답 20두락지이다. 문서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재주(財主)인 조부 안방준, 필집(筆執)으로 외손(外孫) 정동윤(鄭東潤)이다. 안전(安峑, 1614~1686)의 자는 경인(景仁), 호는 소와(邵窩)이며 안방준의 큰아들인 안후지(安厚之)의 장남이다. 1648년에 진사시에 총 100명 중 51위로 입격하고, 이후 조복양의 학행 천거를 받아 1667년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다. 그 이후 종묘서령, 상서원 직장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고 그 이후 사포서 별제와 의금부도사, 송화현감 등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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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최맹담(崔孟談)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碓還 崔孟談 僧 碓還<着名>, 僧 英保<着名>, 僧 以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86_001 1811년(순조11) 5월 10일에 승 대환이 최맹담에게 보성군 정곡면 옥천촌 목자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11년(순조11) 5월 10일에 승(僧) 대환(碓還)이 최맹담(崔孟談)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경작하다가 흉년을 만나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보성군(寶城君) 정곡면(井谷面) 옥천촌(玉泉村) 마을 앞에 있는 목자(牧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7부 2속) 1배미이다. 매매 가격은 전문(錢文) 15냥이며 이 돈을 받고 본문기도 함께 준다고 명시하였다. 문서 발급 시 참여자는 답주 승 대환 이외에 증인 승(僧) 영보(英保), 필집(筆執) 승 이명(以明)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정곡면 옥천촌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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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十二月初五日 孫峑 司馬別給文記右文去辛酉年養父主中司馬 数年淂病捐世後 吾一家子孫零落殆盡 惟我一身孑孑獨存 子孫幸淂生涱数頗不小 無一人初試參榜者 而汝淂中進士 八十年間所未有之慶 玆以白川奴卜仁四所生婢己生年十六癸酉 婢彦介肆所生奴重日年十二丁丑 伍所生婢己陽年九庚辰 婢大德貳所生奴番左年十戊寅 奴唜金貳所生奴乭卜年十二丁丑 奴大春壹所生婢古邑干年七壬午 奴羅斤乃壹所生婢古云年八辛巳 七口及屯田畓貳拾斗落只庫乙 永永別給爲去乎 後所生幷以鎭長使喚耕食者財主 祖父[着名][署押]筆執 外孫 鄭東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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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이환(理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同春 理還 李同春<着名>, 朴萬柱<着名>, 山人 取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86_001 1795년(정조19) 3월 8일에 답주 이동춘이 보성군 정곡면 옥천촌에 있는 파자 논을 산인 이환에게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795년(정조19) 3월 8일에 답주(畓主) 이동춘(李同春)이 산인(山人) 이환(理還)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큰아들이 산 논을 여러 해 경작하다가 전에 없던 큰 흉년을 만나 생활이 어려워 판다고 방매 동기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보성군(寶城君) 정곡면(井谷面) 옥천촌(玉泉村)의 앞들에 있는 파자(頗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7부 2속) 1배미의 논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28냥이고 문서 작성 시 참여자는 답주 이동춘과 증인 박만주(朴萬柱), 작성자 산인(山人) 취옥(取玉)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정곡면 옥천촌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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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六十年乙卯三月初八日山人理還前明文右明文爲放賣事段 矣長子買得畓多年畊食是如可 値此無前之殺年 生道萬無乙仍于 伏在寶城井谷面玉泉村村前員頗字畓二斗落只一夜味負數七卜二束庫乙 價折錢文貳拾捌兩交易捧上爲遣 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如有雜談是去等持此文卷告 官卞正事畓主 李同春[着名]證 朴萬柱[着名]筆 山人取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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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什陸年辛未五月初十日崔孟談處明文右明文事段 矣自起買得 累年耕食是如可 逢此大殺之年 生道爲難不得已 寶城井谷面玉泉村前伏在牧字畓二斗落只一夜味負數七卜二束庫乙價折錢文什五兩依數捧上爲遣 右人前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僧 碓還[着名]證人 僧 英保[着名]筆執 僧 以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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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안처항(安處恒) 처 김씨(金氏) 허여명문(許與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安處恒 妻 金氏 安處岳 妻 卞氏 安昌赫<着名>, 金潤光<着名>, 申彦采<着名>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1월 3일에 안처항 처 김씨가 안처악의 처 변씨에게 자신의 제2자 안명헌을 계후하도록 허락하면서 발급해 준 입후 허여명문 1783년(정조7) 1월 3일에 안처항(安處恒) 처(妻) 김씨(金氏)가 안처악(安處岳)의 처(妻) 변씨(卞氏)에게 발급해 준 입후(立後) 허여명문(許與明文)이다. 허여문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안처항에게는 동성 6촌 아우가 되는 안처악이 안씨의 대종(大宗)임에도 불구하고 적처와 첩에게서 모두 아들이 없이 죽었으므로 안처항의 제2자인 안명헌(安命憲)을 계후(繼後)하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항에 대하여 가문의 논의를 통해 허락하였으니 나라의 법전에 의거하여 예조에 입안(立案)을 신청하도록 당부하였다. 안명헌의 입후 과정에서 안명헌의 아버지인 안처항과 또 입후이후 아버지가 되는 안처악이 모두 생존에 없자 각인의 처(妻)가 문서를 수수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아들의 입후를 허락하는 안처항 처 김씨, 문장(門長) 유학(幼學) 안창혁(安昌赫), 증인 동성4촌남 출신(出身) 김윤광(金潤光), 작성자 유학 신언채(申彦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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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八年癸卯正月初三日 家翁同姓六寸弟故學生安處岳妻卞氏前 許與明文右文爲許與事 家翁同姓六寸弟安處岳 以安氏大宗 嫡妾俱無子不幸身死 其妻卞氏請以矣第二子命憲欲爲繼後 矣亦早失所天 恤此安宗之無托 惻其嗣續之將絶 玆以第二子命憲 一從門議 許與立後爲去乎 依 國典呈禮曺立案事許與主 故學生安處恒妻金氏[安處恒妻金氏]門長 幼學 安昌赫[着名]證同姓四寸娚 出身 金潤光[着名]筆 幼學 申彦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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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홍석문(洪錫文) 분급문기(分給文記) 2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洪錫文 女壻 安命一 等 子女 洪錫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3년(영조49) 1월 25일에 홍석문이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급 도문기 1773년(영조49) 1월 25일에 홍석문(洪錫文)이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급 도문기(都文記)이다. 서문에는 자신이 65세가 되어 죽을 날이 머지않았기에 약간의 전민(田民)을 구처(區處)하기 위하여 부모 및 자기 자신의 제위조(祭位條)를 제한 나머지를 각 자녀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서문 뒤에는 부모제위조(父母祭位條), 자신의 제위조(祭位條)를 차례로 적고 장자(長者) 거량(巨樑)의 몫부터 기록하였다. 전체 분배량을 살펴보면 장자 몫으로는 답(畓) 72두락, 전(田) 19두락, 노비 3구(口)이다. 다음으로 딸사위 안명일(安命一) 몫으로는 답 72두락, 전 14두락, 노1구이며, 차자(次子) 동량(東樑)의 몫으로는 답 70두락, 전24두락, 끝으로 죽은 딸의 몫으로는 답 1두락이 기록되어 있다. 분재기에 작성하는 순서가 남녀차별 없이 태어난 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성의 분재량이 두 아들에 비하여 적기는 하지만 큰 폭의 차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재기 발급 시 참여자는 재주(財主)인 아버지와 글쓴이로 장자 거량(巨樑)이 참여하였다. 도문기(都文記)는 분재시 자녀에게 분배한 모든 내용을 한 문서에 적은 문서를 말한다. 각 몫마다 따로 작성하여 나눠주는 경우에는 분급(分給), 별급(別給)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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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김팔만(金八萬)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卜三 金八萬 金卜三<押>, 黃斤老味<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41_001 1833년(순조33) 12월 21일에 답주 양인 김복삼이 안생원댁 문노 김팔만에게 보성군 노동면 유화치평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3년(순조33) 12월 21일에 답주(畓主) 양인(良人) 김복삼(金卜三)이 안생원댁 문노(門奴) 김팔만(金八萬)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동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방매 토지는 자신이 산 보성군(寶城郡) 노동면(蘆洞面) 유화치평(柳花峙坪)에 있는 연자답(輦字畓) 2마지기 7배미(결부수: 7부)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16냥이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1장과 함께 판다고 명시하였다. 문서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양인 김복삼과, 증인 양인 황근노미(黃斤老味)이다. 토지소재지인 노동면 유화치는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일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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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三年癸巳十二月二十一日 安生員宅門奴 金八萬前 明文右明文事 自己買得 伏在蘆洞面柳花峙坪輦字畓二斗落七夜味 負數七卜庫乙 價折錢文拾陸兩 依數捧上爲遣 本文記一丈幷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携貳之端 持此憑考事畓主 良人 金卜三[着名]訂人 良人 黃斤老味[畵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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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고득종(高得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奉祚 高得宗 崔奉祚<着名>, 崔仁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73_001 1832년(순조32) 12월 7일에 답주 유학 최봉조가 유학 고득종에게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2년(순조32) 12월 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최봉조(崔奉祚)가 유학 고득종(高得宗)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최봉조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짓던 논을 형세 상 부득이 한 사정으로 방매한다고 하였다. 거래대상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令村)에 있는 섭자(攝字) 답(畓) 1두 5승락지(결부수: 1부 8속)로 현재 시산(時山)의 이름자로 양안(量案)에 등재 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 6냥(兩)이며, 본문기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유학 최봉조와 문서를 작성한 유학(幼學) 최인구(崔仁九)이다. 문서의 뒷면에는 '산령촌답(山令村畓)'이라는 관리자의 주기(註記)가 적혀 있다. 위 내용중 최봉조의 토지소유경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였지만 최봉조가 3년전인 1829년에 7냥을 주고 김종후(金鍾垕)로부터 매입한 본문기가 남아 있다. 황전면 산령촌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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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二年辛卯十二月初七日 幼學高得宗前明文 右明文爲臥乎事段 傳來畓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以 本 府黃田面山令村前坪員伏在 攝字畓一斗五升落只負數壹負八束時山帳庫乙 價折錢文六兩 捧上爲遣 右處本文記幷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良中 若有是非之幹是去等 將此文告 官相考事畓主 幼學 崔奉祚[着名]自筆 幼學 崔仁九[着名](背面)山令村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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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전의감(典醫監) 관(關) 고문서-명문문기류-감관문기 典醫監 吏曺 提調<押>, 關字印 □…□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 8월에 전의감이 이조에 보낸 관 1884년(고종 21) 8월에 전의감(典醫監)에서 이조(吏曺)에 보낸 관(關)이다. 황해병영(黃海兵營) 심약((審藥)인 최영운(崔榮運)이 근무일수를 채웠으므로[瓜滿] 후임으로 전의감에서 차례가 온 사람을 국왕에게 보고하여 윤허 받았고, 그 직책과 성명을 통보하니 규례에 따라 정사(政事)가 열리면 하비(下批) 받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새로 임명하는 자의 관직과 성명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정3품 당하) 행(行) 황해병영심약(黃海兵營審藥) 박기준(朴基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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